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67)
67화 개문(開門) (3)
경은의 새해 편지.
그녀는 달랑 편지만 보낸 것이 아니었다.
명운이 주워 든 것은 새로 지은 무복이었다.
“옷이 다 낡았다고 생각한 건가?”
옷이 낡았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창고에는 아직 입지 않은 무복이 몇 벌이나 남아 있었다.
“흠.”
명운은 그래도 경은이 새로 지은 옷이니, 입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옷을 펼쳐 입은 순간, 그는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고의 옷이 낡아서 새 옷을 보낸 것이 아니구나.”
경은이 지은 옷은 창고의 무복보다 소매와 바지 기장이 길었다.
즉, 그녀가 보낸 옷은 명운의 키가 자랄 것을 예상해 지은 것이었다.
“섬세하긴.”
명운은 옅은 미소를 짓고는 편지를 펼쳤다.
편지에는 대명궁의 동향과 무림맹과의 전황 그리고 각 공자의 움직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지난번 편지보다 상세하군.”
그러나 이 편지에는 후계자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적혀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명운은 편지를 훑어보고는 다시 연공에 들어갈 수 있었다.
최근 명운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기의 흐름을 느끼는 것이었다.
“발아래에는 용맥(龍脈), 하늘에는 천기(天氣), 숲에는 임맥(林脈)이 존재한다. 무인의 내력이란 이들의 힘을 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기를 펼쳐 그 흐름을 읽는 법을 알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연공실 아래를 지나는 대맥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어쩌다 보니, 상대와 검격을 겨루는 것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내력은 무공의 근간이고, 내력의 근간은 기(氣)다. 기의 흐름을 알지 못하면 내력을 쌓는다고 해도 정통할 수 없고, 무공을 익힌다고 해도 극에 이를 수 없다.”
그는 사람과 사람이 아닌 만물의 근원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명운의 연공은 불가의 참선이나 도가의 면벽과 같은 과정을 밟아 나갔다.
* * *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 어느 날.
강하원은 대명궁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장원을 찾았다.
이 장원의 소유자는 대명궁에서 큰 포목점을 운영하는 이로 이름은 이전(李典)이라 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강하원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원으로 들어섰다.
내원은 아주 작은 연못과 그보다 큰 정자로 꾸며져 있었다.
‘저 노인인가?’
그의 시선에 들어온 노인은 정자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강 총관이라 불러야 하는 것인가?”
강하원은 노인이 묻자 두 손을 모았다.
“편하신 대로 부르시면 될 듯합니다.”
“안으로 들게.”
수염이 하얀 노인은 장원의 주인 이전이 아니라 귀주석가의 가주 석준명이었다.
“소인이 장로님을 뵙니다.”
강하원이 장로라 칭한 이유는 석준명이 귀주석가의 가주이면서 천마신교 십장로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뻣뻣하게 서 있으면 오히려 내가 불편하네.”
강하원은 두 손을 내린 뒤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럼 앉겠습니다.”
그가 앉자 석준명이 물었다.
“공자는 잘 있는가?”
“폐관수련 중이십니다.”
“성과는 어떠한가?”
“폐관을 끝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석준명이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다른 공자는 한참을 앞서 나가고 있네.”
칠 년.
그 안에 경쟁자들을 압도할 대공을 세워야 했다.
강하원이 그의 말을 받았다.
“공자님께서 폐관을 일찍 끝내신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부족한 무공으로 전장에 나가는 것은 나가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석준명이 하얀 수염을 쓰다듬었다.
‘맞는 말이긴 하지.’
그러나 그는 순순히 강하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전장에 나가진 못하지만, 싸우기 위한 준비는 할 수 있지.”
강하원은 석준명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내가 석 가주와 논쟁을 할 이유는 없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받았다.
“그건 그렇습니다.”
석준명은 강하원의 순순히 고개를 숙이자 한 번 더 찔러 보기로 했다.
“공자는 아직도 이번 일을 모르는가?”
후계자 결정이 공포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명천은 청해성 일대의 산적들을 토벌했고, 오공자 명정은 감숙에서 약간의 성과를 거두었다.
“수련에 전념하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자네는 충신인가?”
강하원은 바로 대답했다.
“충신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입니다.”
“대답에 망설임이 없군.”
“공자님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든 기꺼이 할 것입니다.”
석준명이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다.
“그가 죽으라면 죽을 것인가?”
죽음으로 주군을 섬길 수 있다면, 충신 중의 충신이었다.
강하원은 물러서지 않고 목에 힘을 주었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석준명이 입술 끝을 올렸다.
“소문보다 낫군.”
강하원이 얼굴을 굳힌 채 물었다.
“장로께서는 어떠한 소문을 들으셨습니까?”
“서숙에 재주가 있는 총관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네.”
“재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재주는 없지만, 충성심은 있다는 건가?”
강하원이 답했다.
“충성심은 섬기는 이의 근본입니다.”
석준명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일세.”
그는 시선을 정원으로 돌렸다.
“곧 삼공자가 토로번(吐魯番)으로 향할 걸세.”
토로번은 신강에 위치한 도시로 이곳을 점령하면 천산산맥의 무역로를 통제할 수 있었다.
“토로번은 본교의 통제하에 있지 않습니까?”
“삼공자의 목표는 북쪽의 규둔(叫屯)일세.”
“규둔이라면…….”
“만족의 땅이지.”
만족은 초원 부족 중 하나로 최근 그 세력을 남쪽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규둔을 공격한다는 것은 그들의 남하를 저지하겠다는 뜻이군.’
이번 공격이 성공한다면, 천마신교는 천선산맥 남쪽의 무역로를 지킬 수 있었다.
“장로께서는 그 공격에 공자님이 참가하길 원하고 계신 겁니까?”
“자네 생각은 어떤가?”
강하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불가합니다.”
석준명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연공실의 문을 열 때까지 겨우 몇 달이 남았을 뿐 아닌가?”
그는 몇 달 일찍 폐관수련을 끝내자는 입장이었다.
강하원은 강경했다.
“그 몇 달이 성취를 바꿀 수 있습니다.”
“공자의 합류가 불가능하다면, 서숙의 무인을 보내는 것은 어떤가?”
강하원은 이번에도 그가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공자님의 허락 없이는 서숙의 무인들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석준명이 씁쓸하게 웃었다.
“후후후, 자네는 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장로님께서 가능하지 않은 것을 요구하니, 불가하다고 답할 뿐입니다.”
석준명이 말했다.
“우리는 이미 대산주가와 동맹을 맺었네.”
대산주가는 삼공자 명원의 외가였다.
강하원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눈을 크게 떴다.
“대산주가와 동맹을 맺었단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어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강하원은 귀주석가가 다른 가문과 동맹을 맺을 때는 이쪽과 최소한 상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석준명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동맹을 맺는 데 일일이 그대와 상의해야 한단 말인가?”
“이쪽은 공자님의 대리인입니다.”
석준명은 냉소했다.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를 찾는군.”
강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로님!”
석준명은 그 순간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팍!
짧은 타격음과 함께 강하원의 움직임이 멈췄다.
‘모,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석준명이 허공을 격한 채 혈도를 찍은 것이었다.
“진정하지.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가 없으니까.”
원래라면 두 사람은 독대할 수 없을 만큼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두 사람이 독대하게 된 것은 명운의 폐관 때문이었다.
“정녕 마음대로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석준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쪽에서 반대한다고 해도 일은 이미 끝났네.”
“공자님께서 받아들이시지 않는다면 어쩌실 겁니까?”
“공자는 받아들일 걸세.”
석준명은 명운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그 아이를 지원한단 말인가?’
그는 자명단주 사마진이 명운을 지지하고 나섰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때문에 그는 귀주석가가 유일한 지원자라고 생각했다.
“폭거입니다!”
강하원은 다소 흥분한 상태였다.
석준명은 그의 항의에 혀를 찼다.
“쯧쯧, 우리 석가가 손을 떼면 서숙은 어떻게 될 것 같나?”
협박이나 다름없는 한마디.
강하원은 미간을 좁혔다.
‘여기서 귀주석가와 관계를 파기하는 것은 공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는 이 이상은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이번 정벌에 무인을 보내면 되는 것입니까?”
석준명이 말했다.
“비로궁에서 용맹을 떨친 호위무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네.”
비로궁은 첫째 명천의 대저택이었다.
강하원은 미간을 좁혔다.
‘공자께서 비로궁을 방문하셨을 때 호위한 것은 하후문뿐이다.’
석준명은 처음부터 하후문을 생각하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었다.
“그자 하나면 되겠습니까?”
석준명이 오른손 식지를 세웠다.
“이쪽에서도 한 명을 보낼 터이니, 둘이 되겠지.”
고수 둘이면 족하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실질적으로 만족을 토벌하는 것은 삼공자와 백호대가 될 것이다. 이쪽은 조연 역할에 충실하면 되겠지.’
석준명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는 공자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군.”
그가 정자를 뜨며 손을 흔들자 막혔던 혈도가 풀렸다.
“큭…….”
강하원은 잠시 동안 그 자리에 멍하게 서 있었다.
* * *
조광과 호위무사들은 하후문이 신강으로 떠나자 여유가 사라졌다.
“하후문은 좋겠어.”
팽헌충의 말을 관흠이 받았다.
“왜?”
“공을 세울 기회가 있잖아.”
“그런가?”
“나라면 이번 기회를 제대로 살릴 거야.”
뒤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종영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강에서 공을 세운다고 해도 그것은 삼공자의 공적이 될 뿐이야.”
팽헌충이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언제 온 거야?”
“방금.”
“문은 누가 지키고?”
“조광이지.”
네 사람은 돌아가면서 하루에 세 시진씩 연공실 문을 지키고 있었다.
“아, 조광 차례였나?”
“나 다음은 항상 조광이야.”
종영세가 살짝 목소리를 높였을 때였다.
하늘에서 하얀 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벌써 겨울인가?”
팽헌충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야.”
관흠은 머리를 갸웃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니?”
“새해가 되면 공자님의 폐관이 끝난다고.”
팽헌충은 명운의 폐관이 끝난 시점부터가 진짜라고 생각했다.
‘피를 보지 않고 지내는 것도 이번 겨울이 마지막이다.’
같은 시각.
조광은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공자님의 종소리다.”
그는 급히 구멍으로 밧줄을 밀어 넣었다.
잠시 뒤, 다시 종소리가 났다.
조광은 재빨리 밧줄을 당겼다.
밖으로 나온 줄에는 명운의 편지가 묶여 있었다.
그는 급히 줄을 푼 뒤 편지를 읽었다.
– 내일 오시초에 나갈 것이다.
조광은 눈을 크게 떴다.
“벌써 수련이 끝나신 건가?”
삼 년을 채우려면 두 달이 더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