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7)
7화 마도지존 (3)
“탁, 부지런히 갈고닦는다면, 언젠가는 네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명탁이 떨리는 목소리로 힘을 주어 말했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는 아버지 명증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모든 힘을 다 써 버린 것 같았다.
명증은 마지막으로 막내 명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명운을 보자마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깨달음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명운은 아버지의 한마디에 멈칫했다.
‘달라졌다도 아니고, 깨달음이라니…….’
무극에 이른 고수의 눈은 석비연 이상으로 날카로웠다.
“깨달음이라 부를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명증은 아들의 대답에 가볍게 웃었다.
“하하, 이 아비에게는 숨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깨달음이란 무공의 경지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학문을 대하는 마음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옳게 바뀌었다면, 그것 역시 깨달음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암한지경이 아닌 명운의 모습 그 자체였다.
명운은 고개를 숙였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명증은 그의 대답을 듣고는 확신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 운은 정말로 큰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구나.’
지난번에는 이처럼 담백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아니, 지금의 명정이나 명탁 이상의 불안함을 보이며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하나 오늘 명운은 자기에게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차분하고 자연스러웠다.
‘내 앞에서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명운의 달라진 모습에 약간의 점수를 주었다. 하지만 형들과 격차는 여전하다고 생각했다.
“비연.”
석비연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예, 교주님.”
“식사를.”
“식사를 들이겠나이다.”
그녀가 손짓하자 붉은 옷을 입은 시녀들이 찻잔과 요리들을 내왔다.
식탁 위에 놓인 요리들은 하나같이 진귀한 것들이었다.
“자, 들자꾸나.”
명증의 말이 떨어지자 세 아들이 일제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러나 명정과 명탁은 아버지의 안색을 살피느라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오직 명운만이 음식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맛이 있습니다.”
명증은 막내 명운의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조리장이 솜씨를 크게 낸 모양이구나.”
명정과 명탁은 명운의 얼굴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
‘저 녀석……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지?’
‘아버지가 전혀 두렵지 않은 건가?’
이십칠 년 전에는 명운도 그들과 같았다.
아버지의 거대한 권력과 절대적인 무공 앞에 위압감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오늘의 명운은 달랐다.
‘한번 죽어 본 인생, 더는 두려울 것이 없다.’
그가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송이군요.”
명증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맛이 느껴지더냐?”
“맛이 아니라 향이 느껴졌습니다.”
석비연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교주님과 이렇게 담소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그녀는 깨달음을 넘어 명운의 신변에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향이라. 송이의 향을 아느냐?”
명운이 대답했다.
“어머니가 계실 때 한번 맛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양회는 교주의 측실이었으나 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몇 년이 되었다.
명증은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자 젓가락을 멈췄다.
“아직도 어미를 생각하느냐?”
부드럽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예전의 명운이었다면, 그 차가움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을 터였다.
하나 오늘은 달랐다.
명운은 낭랑한 목소리로 물음에 답했다.
“서경에서 효에 대해 이르길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하고, 이를 정사에 베푼다’라고 하였습니다.”
명증은 소공자 시절 논어를 공부한 적이 있었다.
“제가(齊家)에 관한 이야기구나.”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효는 모든 일에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 된 이가 부모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찌 큰일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는 논어를 바탕으로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었다.
명증은 막내아들의 조리 있는 대답에 좁혔던 미간을 폈다.
“옳은 말이다.”
그는 명운의 말을 더는 문제 삼지 않았다.
석비연은 명운이 아슬아슬하게 역린을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하지만 죽은 양회의 이야기는 다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식사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명증이 아들들에게 말했다.
“다들 필요한 것이 있느냐?”
평소에는 하지 않던 질문이었다.
다섯째 명정은 아버지에게 무엇을 바란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여러 사람의 보살핌 덕분에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명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명탁에게 돌렸다.
명탁은 명정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했다.
“보, 보검(寶劍)을 가지고 싶습니다!”
이것은 나름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명증은 조건부로 그의 청을 받아들였다.
“탁, 네 무공에 성취가 있다면, 보검을 선물하마.”
명탁이 크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마지막은 명운이었다.
“운은 어떠하냐?”
막내가 항상 안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같은 질문이 내려올 때는 미리 대답을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은자가 필요합니다.”
명증은 그의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은자가 필요하다?’
학문과 돈은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섞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는 호기심이 돋았다.
“더 많은 책을 사기 위해서냐?”
명운이 짧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책이 아니면 어째서 은자가 필요하단 말이냐?”
명운은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먹힐지 안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던져 볼 수밖에.’
그가 주먹을 살짝 움켜쥐며 대답했다.
“학문만 생각하다 보니, 아랫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아랫사람들의 숙소를 살피니,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아랫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한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냐?”
“주변을 돌보지 못하는 군자는 위군자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군자.
이것은 천마신교에서 구파일방과 무림맹의 위선자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순간 명증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우리 막내가 위군자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좋다. 은자를 내어 주마!”
우리 막내라는 말은 지금까지 그가 한 번도 내뱉은 적이 없는 말이었다.
* * *
식사가 끝난 후.
명증은 석비연과 함께 정원을 걸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석비연은 교주의 물음에 대답이 아닌 질문을 선택했다.
“운 말입니까?”
명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오늘 식사에서 주목한 것은 명운뿐이었다.
“지난번과 크게 달라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 아직 무엇이 그 아이를 달라지게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명증이 앞서 걸으며 물었다.
“왜 은자라고 했을까? 운에게 필요한 것은 무공일 텐데 말이야.”
그는 명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아래를 본 것이 아닐까요?”
“흠, 아래라. 왜 그랬을까? 그대의 생각을 듣고 싶군.”
석비연이 대답했다.
“운은 위를 바라보기에는 너무 아래에 있습니다. 그의 시선이 위가 아닌 아래로 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녀는 명운에게 형들과 같은 시선을 요구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 생각했다.
‘칠공자라면…… 아래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명증이 연못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내 생각은 좀 다르네. 들어 보겠나?”
석비연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교주님의 가르침을 경청하겠나이다.”
명증의 목소리는 담백했다.
“아래를 보는 것은 자신이 위에 있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일세. 즉, 운은 자신의 아래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
그는 이것이 군주가 가져야 하는 자질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럼, 태도나 행동이 바뀐 것도…….”
명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문이겠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그 아이는 잘 알고 있을 것이야.”
석비연이 말했다.
“그것은 운에게 가혹한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명증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야심으로 가득한 사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지. 하나 그것이 아니라면 새로운 길이 열릴 테지.”
석비연이 용기를 내어 물었다.
“혹시 교주님께서는 운의 배경이 되어 주실 생각이십니까?”
교주가 배경이 되어 준다는 것은 유력한 후계자 후보가 된다는 말과 같았다.
명증이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난 힘들 것 같고, 그대가 되어 주는 것이 어떠한가?”
석비연이 속한 귀주석가는 현재 지지하는 후계자 후보가 없었다.
교주의 허락이 떨어진다면 귀주석가는 명운을 지지함으로써 후계자 경쟁에 참여할 수 있었다.
“교주님, 그것은…….”
명증이 웃었다.
“그대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지?”
석비연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합니다. 그리고 운의 이야기도 들어 보아야 합니다. 그 아이가 경쟁에 참여할 마음이 없다면, 이는 무의미한 이야기입니다.”
명증이 뒷짐을 지며 말했다.
“어쩌면 참여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르지.”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강하원이 입을 연 것은 태화전을 나온 다음이었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명운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되물었다.
“어떻게 되었다니?”
“누각에서 큰 웃음소리가 난 것을 들었습니다. 필시 좋은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강하원은 이날 교주의 웃음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그 웃음은 분명 좋은 것이었다.’
명운은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별일은 아니었네.”
“별일이 아니었는데 교주님께서 그렇게 웃으셨단 말씀입니까?”
명운은 그가 재차 묻자 누각 위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강하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공자님, 그 상황에서 무공이 아닌 은자를 택하셨단 말씀입니까?”
명운은 걸음을 멈춘 뒤 고개를 돌렸다.
“이상한가?”
강하원이 대답했다.
“크게 이상합니다.”
명운이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렇다면 성공이군.”
강하원은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성공이라니요. 무공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신 겁니다. 그 상황에서 스승을 요구하셨다면, 분명 고수를 보내 주셨을 겁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강 총관.”
“예, 공자님.”
“실력이 부족한 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겨야 하는 법일세. 그 자리에서 무공을 원한다고 했다면, 형들의 견제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일세.”
강하원이 뒤를 따르며 말했다.
“그것은 그렇지만, 이처럼 좋은 기회는 자주 오지 않습니다.”
그는 다소 견제를 받더라도 절정고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운은 스승이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이미 다 배웠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마지막 문을 여는 깨달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