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71)
71화 개문(開門) (7)
사마진의 원래 이름은 풍월(風月)이라 했다.
성은 없었고, 배운 것은 약간의 미인계와 암살 기술이 전부였다.
그녀의 운명은 어느 정도 예정되어 있었다.
첩자로서 중원에 잠입하거나 황제의 궁녀가 되어 신교에 이바지하는 것.
그 두 가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너무나 빼어났던 얼굴이 그녀의 운명을 바꾸었다.
– 네 얼굴을 크게 쓸 날이 있을 것이다.
전전대 자명단주였던 사마영은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손을 이끌었다.
그는 풍월에게 사마라는 성과 진이라는 이름을 주었고, 자신의 진신(眞身)을 전수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사마진의 미모는 크게 활약할 기회가 없었다.
– 내 예상이 틀렸구나. 하나 후회하지 않는다. 네 재능은 얼굴이 다가 아니었으니까.
사마진이 사부이자 양부인 사마영 이상의 고수가 되었던 것이다.
사마영이 죽은 뒤, 그녀에게는 운명의 변곡점이 찾아왔다.
새로 교주가 된 명증이 미모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녀를 부른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 명증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 소문 이상이군.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그는 사마진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 내 곁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것인가? 아니면 전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질 것인가?
이것은 다분히 한쪽으로 쏠린 선택지였다.
사마진은 교주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 제가 이십 년 동안 무공을 배운 것은 전장에서 피를 흘리기 위해서입니다.
명증은 웃었다.
– 좋다. 소원대로 전장으로 보내 주마.
그는 원한다면 언제든 사마진의 옷을 벗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물어봤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 스스로 벗지 않는 여인은 취하지 않는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사마진은 전장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검에 눈을 떴다.
“기분 나쁜 꿈이군.”
사마진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 것은 이십 년 전 일이 꿈속에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 교주 영감은 그렇다 치고, 그 노인네까지 꿈에서 볼 줄이야.”
그녀가 처음 전장에 나갔을 때, 그곳을 휩쓸던 마인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를 잔혹마도라 불렀다.
“잔혹마도는 죽었어. 이제 없다고, 지금 대명궁에 앉아 있는 것은 이리저리 휘둘리는 늙은이에 지나지 않아!”
잔혹마도는 신교좌사 양대충의 별호였다.
젊은 시절 양대충은 그녀의 상관이자 전장을 피로 물들이던 마인이었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그 시절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탁. 탁.
누군가 급히 그녀의 방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마진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아침부터 누가 이리 서두르는 것이냐?”
그녀의 물음은 크지 않았으나 달려오고 있는 이에게는 바로 옆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크게 들렸다.
이는 그녀가 전음지술(全音之術)을 시전했기 때문이었다.
달려오던 시녀가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소, 손님이 오셨습니다.”
사마진은 미간을 좁힌 채로 재차 물었다.
“누가 왔기에 이리 서두른단 말이냐?”
“칠공자께서 단주님을 찾아오셨습니다.”
“아침부터?”
시녀는 사마진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고개를 깊이 숙였다.
“오, 오시 초(오전 11시)입니다.”
“오시 초라고?”
사마진은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늦잠을 잤단 말인가?’
이런 늦잠은 거의 십 년 만이었다.
그녀는 미간을 좁힌 데 이어 이마까지 잔뜩 찌푸렸다.
‘모두 그 꿈 때문이다.’
사마진은 늦잠을 잤기 때문에 악몽을 꾼 것이 아니라 악몽을 꾸었기 때문에 늦잠을 잤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오시 초라는 것은 알겠다. 한데 왜 뛰어온 것이지?”
시녀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게…… 칠공자께서 벌써 한 시진 이상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마진은 멈칫했다.
“설마 내가 잠을 자고 있다고 말한 것이냐?”
“…….”
사마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제갈공명도 아니고, 잠을 자면서 손님을 기다리게 하다니.”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칠공자가 오래 기다린 것은 알겠다. 하나 그것이 네가 뛰어온 이유가 되진 않는다.”
“그것이…… 아 현관께서 오셔서 급히 단주님을 깨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현관은 사마진의 측근인 아소를 칭하는 말이었다.
“아소가?”
“오늘 아침 방문은 며칠 전 약속을 한 것이니, 칠공자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소 그 아이는 어디에 있다가 지금에서야 나타난 걸까?’
사마진이 두 발로 서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와 날 도와라.”
시녀가 허리를 펴며 그녀의 명을 받았다.
“단주님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잠시 뒤.
사마진은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치장한 채 명운 앞에 나타났다.
명운은 그녀가 역용을 하지 않고, 본래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급히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단주님을 뵙니다.”
사마진이 두 손을 들며 인사를 받았다.
“이쪽의 사정으로 공자님을 기다리게 한 것을 사과드립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맑았고, 이목(耳目)은 그 목소리보다 더 맑았다.
명운과 함께 찾아온 경은은 그녀를 보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신교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단 말인가?’
눈이 부실 정도로 희고 고운 피부, 그리고 옷으로 감춰지지 않는 곡선들과 검고 윤기가 흐르는 머리는 같은 여자가 보아도 동요할 정도의 미모였다.
그러나 명운은 그녀의 미모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서역으로 상단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마진은 명운의 눈빛과 목소리에 흔들림이 없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이제는 나도 나이를 속일 수 없는 것일까? 소년의 가슴조차 흔들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그녀는 명운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키가 제법 컸고, 목소리도 바뀌었다.’
명운은 변성기가 찾아와 이전처럼 가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얼굴은…… 제법 괜찮구나.’
그의 얼굴은 부드러운 선과 날카로운 선이 조화롭게 이어져 있었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닮은 모양이군.’
교주 명증은 부드러움보다는 사내다운 선이 앞서는 사내였다.
명운이 그를 닮았다면 각이 진 남자다운 얼굴이 되었을 터였다.
사마진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서숙의 상행을 돕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번 상행으로 공자께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명운 또한 자리에 앉았다.
“단주님께서는 이쪽의 상행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돈을 얻고자 한다면, 상단을 꾸리는 것보다는 돈이 많은 이를 찾아가는 것이 빠르지 않겠습니까?”
시간은 명운을 기다려 주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상단을 키워 돈을 번다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운은 형들보다 일 년 가까이 늦었다. 시간 낭비는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좋다.’
명운이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돈만 생각한다면 단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나 상단을 운영하면 돈의 흐름과 서역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후에 대업을 도모할 때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마진이 말끝을 올렸다.
“공자께서는 너무 멀리 보시는 것 아닙니까?”
“급히 가면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차분하면서도 침착한 목소리.
사마진은 자신이 사람을 잘 보았다고 생각했다.
‘형들과 확실히 다르다.’
그녀는 한 가지 가정을 했다.
‘명천이 보위산 공략에 실패한다면, 운에게도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물론 명천이 보위산에서 대승을 거둔다면, 명운의 노력과 상관없이 후계자가 결정될 터였다.
“교주님께서는 가장 큰 공을 세운 공자에게 권좌를 물려주신다 했습니다.”
이는 명운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아직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공자의 보위산 공격이 성공하면, 대세는 그에게 기울 것입니다.”
명운이 오른손을 들며 물었다.
“단주님께서는 보위산 정복과 무림맹주의 목. 어느 쪽 공이 더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무림맹주의 목을 얻을 수 있다면, 보위산 공략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전자는 하늘의 달이나 별을 따오겠다는 공상과도 같은 소리였다.
사마진이 살짝 아미를 찌푸렸다.
“공자, 절 놀리시는 것입니까?”
“공의 크기를 물었을 뿐입니다.”
사마진이 찌푸렸던 아미를 펴며 물었다.
“보위산 정복과 같은 크기의 공을 알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무림맹주의 목이 과하다면, 구파일방 장문인의 목이면 대등할까요?”
사마진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또한 보위산 공략과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지 않겠습니까? 공자, 이쪽이 해낼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녀는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말을 하고 있었다.
“실현 가능성이 정말로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경은은 사마진과 명운, 두 사람의 대화가 서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부님은 한 시진 동안 기다리셔서 화가 나신 것일까? 계속 자명단주의 말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그녀는 이런 식의 대화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마진이 말했다.
“공자, 구파일방의 장문인을 쓰러뜨리려면, 우선 본 단주를 넘어서야 할 것입니다.”
자명단주 사마진, 그녀는 천마신교 중진 중 가장 뛰어난 고수였다.
그녀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은 다른 삼단의 단주는 물론 사대호법까지 이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불가해도 몇 년 뒤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명운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이는 허풍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사마진은 그의 진짜 실력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삼 년 전 보여 준 운의 실력은 확실히 뛰어났다. 여기에 폐관수련의 성취를 더 한다면, 사신대 대주와 겨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 구파일방 장문인들과 비교한다면 아직 차이가 크다.’
그녀는 명운이 뛰어난 천재라고 해도 자신을 넘어서려면 십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자,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사마진은 지금이라도 차근히 공을 쌓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운이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혔다.
“하면 단주께서 제 실력을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경은은 크게 놀라 명운의 소매를 당겼다.
“공자님!”
그러나 명운은 말을 바꾸지 않았다.
사마진은 뜻밖의 요청에 고개를 옆으로 숙였다.
“폐관수련의 성과를 확인하고 싶단 말입니까?”
“단주님이라면 냉정하게 평가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사마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역이구나.’
그녀는 조금 더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좋습니다.”
사마진의 허락이 떨어지자 경은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큰일이구나!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일은 이미 그녀가 어찌할 수 없는 수준까지 커지고 말았다.
일 다향 뒤.
자명단 지하연공실.
명운과 사마진은 검을 든 채 마주 섰다.
“이곳이라면 아무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두꺼운 석문이 두 사람과 외부를 완전히 차단했다.
명운은 생각했다.
‘어째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처음 계획은 이랬다.
사마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선물을 한 뒤 덕담을 몇 마디 듣고 자명단을 나온다.
이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한 시진 이상을 기다린 게 문제였나?’
삼 년의 폐관수련을 거친 그에게 한 시진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 것은 다른 것이었다.
‘상단이 문제였을까?’
상단은 미래를 위한 포석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사마진은 그것이 불필요하다 말했다.
‘그녀의 말이 틀린 말이었다면, 동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말이 옳았기에 명운은 동요하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여기에 이른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다.’
명운은 사마진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았다.
“한 수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사마진은 옷을 갈아입지 않은 채 화려한 경장으로 그를 상대했다.
“공자, 부디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본 실력의 절반 정도만으로도 명운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절반도 과할지 모른다.’
명운은 그녀의 빈틈없는 모습을 보며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군. 그녀의 저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사마진은 강자였다.
그녀의 거대한 존재감이 그의 투쟁심과 승부욕을 꿈틀거리게 만든 것이었다.
‘폐관수련 이후 처음으로 만난 강자.’
명운은 검을 아래로 내렸다.
스윽.
‘진심으로 해야 할까?’
진심으로 상대하지 않는다면 질 수도 있었다.
‘무엇을 고민한단 말인가? 이쪽은 여유가 없다.’
그는 무조건 진심으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사마진이 말했다.
“공자께 선수를 양보하리다.”
명운과 달리 그녀는 여유가 있었다.
이는 사실 당연했다.
사마진은 이공자 명각이 상대한다고 해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고수였다.
명운이 검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사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무의 시작을 알렸다.
‘거리가 제법 있으니, 첫 공격은 도약에 이은 찌르기일 것이다.’
그녀는 명운의 찌르기를 받아칠 것인지 아니면 흘릴 것인지 생각했다.
하나 명운이 검을 움직이자 그녀의 이러한 예상은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말았다.
스스슥.
명운은 허공을 향해 검을 휘저었을 뿐이었다.
‘선수를 이런 식으로 써 버린다고?’
사마진은 미간을 좁혔다.
‘아직 어려.’
바둑으로 따지면 흑을 쥔 자가 첫수를 의미 없이 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명운이 한 수는 의미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검이 허공을 돌아 멈췄을 때, 사마진은 급히 검을 들었다.
사방에서 수많은 적의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형검기?’
그녀는 검을 휘둘러 막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했다.
‘위험해! 느껴지는 기운은 검기 그 이상이다!’
사마진은 급히 허공으로 뛰어오르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위로 도약할 수가 없었다.
강렬한 기운은 위에서도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검막을!’
사마진은 검막을 펼치고자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짧은 소리가 났다.
툭.
검신이 등을 가격하는 소리.
사마진은 심장이 멎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내가 졌다고?’
시작과 동시에 끝난 비무.
그녀는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