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72)
72화 개문(開門) (8)
“다시 할까요?”
명운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의 뒤에서 묻고 있었다.
사마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언제, 아니 어떻게 자신의 뒤로 돌아갔단 말인가?
‘악몽이 계속되고 있는 건가?’
그녀는 아직 자신이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 꿈이다. 꿈이 아니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나타난 명운의 얼굴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다시 하도록 하죠.”
“다시?”
“예, 다시 한 번 더 하죠.”
명운은 앞으로 십여 보를 걸어간 뒤 몸을 돌렸다.
“시작하겠습니다.”
사마진은 말없이 검을 들었다.
철컥.
명운은 그녀의 자세를 보고는 앞서와 같은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허공을 빙글 도는 검.
이것은 초식이라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사마진은 사방에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무형검기를 느꼈다.
‘온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검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나마 명운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오른쪽?’
사방에서 밀려드는 무형검기와 자신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명운.
그 둘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무형검기보다는 운을 막아야 한다.’
그녀는 무형검기가 아닌 명운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의 움직임은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삭!
사마진의 검이 허공을 벤 순간, 명운의 검신이 다시 그녀의 등을 쳤다.
툭.
“이번에는 아슬아슬했네요.”
사마진은 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고, 공자가 맞는 겁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명운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키가 조금 자라긴 했지만, 제가 맞습니다.”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운은 아주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빨랐다.’
문제는 빠른 움직임만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무형검기는 그녀를 갈기갈기 찢을 듯 강렬했다.
‘내가 적이었다면, 무형검기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몸을 꿰뚫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면, 명운의 무위는 그녀가 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천마의 재래? 아니면 무극? 어느 쪽이든 상식을 벗어나는 수준이다.’
사마진이 재차 물었다.
“정말로 공자가 맞는 겁니까?”
명운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제 검이 그렇게 이상합니까?”
그는 검을 아래로 내린 채 그녀 옆에 섰다.
겉모습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절정고수에게 느껴지는 특유의 위압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아도 막 변성기에 접어든 소년이다.’
사마진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말끝을 올렸다.
“그 한 수는 무엇입니까?”
명운이 다소 상기 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형검(假形劍)이라 합니다. 환영검의 무형지환(無形之幻)을 응용한 것이죠.”
환영검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것은 모두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하면 공자께서 만들어 낸 검법이란 말입니까?”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단지 초식 하나이니, 검법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가형검이 검법보다는 식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사마진이 던지듯 말했다.
“꿈과 같은 검이군요.”
“꿈이라니요?”
명운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꿈이라니, 사마단주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사마진은 그가 되묻자 시선을 아래로 낮췄다.
“이런 검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꿈에서나 볼 법한 그런 검이 아닐까 합니다.”
명운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폐관수련 때 만든 것이니, 처음 보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 꿈이라는 말은 과한 평가라 생각합니다.”
“과한 평가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가형검은 특이한 검이긴 하나, 극찬을 받을 검법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보다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사마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어떻다니, 날 두 번이나 꼼짝 못 하게 만들었으면서…….’
그녀는 교주인 명증도 이렇게 강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마치 검의 달인이 이루지 못한 꿈과 같았습니다.”
“단주께서는 꿈이라는 말을 계속하시는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검이니까요.”
“보고도 믿을 수 없다라. 단주께서 두 번이나 막지 못하셨기 때문에 그러십니까?”
사마진은 말문이 막혔다.
‘막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야! 그 검은 상식을 벗어난 검이잖아.’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명운이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이번에는 단주께서 먼저 공격해 보시겠습니까?”
선수 양보.
앞서 보여 줬던 무위가 명운의 진짜 실력이라면, 그녀가 선수를 잡는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하지만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
사마진은 오른발을 살짝 뒤로 물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번에는 이쪽에서 먼저 가도록 하죠.”
명운은 선수를 양보한다는 뜻에서 검을 아래로 내렸다.
“시작하시죠.”
사마진은 오른손에 들린 검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검신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최고의 검으로 상대한다.’
앞서 두 번의 대결이 없었다면, 그녀는 절대 이 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섬격일섬(閃擊一閃)!’
이 일검은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검격이었다.
‘운, 막을 수 없다면 피해 다오.’
섬격일섬은 쾌속 그 자체였기에 중간에 멈추는 것이 불가능했다.
다시 말해 그녀가 명운을 해하고 싶지 않아도 해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검이었다.
탓!
오른발이 앞으로 움직이는가 싶더니, 사마진의 신형이 화살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섬격일섬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피하지 못한 쾌검(快劍)이었다.
“엇!”
사마진이 외마디 비명을 외친 것은 마지막 순간, 명운이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섬격일섬을 피했다? 거짓말!’
이윽고 사마진은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바, 발을 걸었다?’
명운은 섬격일섬을 흘린 뒤, 쾌속으로 돌진하고 있는 그녀의 발을 건 것이었다.
사마진은 점점 바닥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부딪힌다.’
그녀는 화려한 경장을 입은 채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다면?
머리에 꽂은 장신구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고, 검은 머리는 먼지와 함께 헝클어질 터였다.
한마디로 대망신.
‘안 돼!’
그녀가 속으로 비명을 내지른 순간이었다.
바닥과 가까워지던 그녀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어?”
사마진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명운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괜찮으십니까?”
명운이 손을 뻗어 앞으로 쓰러지던 그녀를 받쳐 든 것이었다.
사마진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괘, 괜찮습니다.”
그녀는 명운의 품에 안긴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이십 년 만에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전장에서 검을 뽑은 이후, 그 어떤 사내도 그녀의 몸에 이처럼 손을 덴 적이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호기로운 기세가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사마진이 다소곳한 목소리로 말했다.
“푸, 풀어 주세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명운은 그녀의 몸을 세운 뒤, 손을 놓았다.
“죄송합니다.”
사마진은 그의 한마디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공자는 참으로 못 됐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순간 사마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나쁜 사람이란 말입니다!”
명운은 그녀가 화난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심하게 한 것은 아닌데 말이야. 바로 안아서 반듯하게 놓아드렸으니까.’
상대가 남자였다면, 그는 발을 거는 대신에 일격을 날렸을 것이다.
‘흠, 제대로 상대하지 않았다고 화가 난 것인가? 그런 것 같진 않은데 말이야.’
명운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단주님, 이번에는 전력으로 다시 싸우도록 하죠.”
사마진은 그의 말을 듣고는 말끝을 올렸다.
“전력으로 말입니까?”
명운이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는 절 생각해서 절반의 힘으로 상대해 주신 것 아닙니까?”
그는 사마진이 자신의 힘에 맞춰 검을 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오해였다.
그녀는 조금 전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검격을 펼쳤다.
사마진은 흥분한 나머지 어조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내, 내가 지금까지 널 생각해 주었다고? 날 놀리는 것이지?”
명운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두 손을 흔들었다.
“제가 단주님을 놀리다니요?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사마진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명운! 그렇게 강하면서 어째서 지금까지 무공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냐!”
그녀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다 틀렸어. 뭐가 신교제일검이란 말이냐!’
그녀와 명운의 격차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명운은 그녀의 외침에 두 손을 모았다.
“단주님,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고쳐 보겠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사마진이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던졌다.
탕.
“다 틀렸어.”
명운은 재빨리 그녀의 검을 주웠다.
“제가 단주님의 금기라도 깬 것입니까?”
강호에는 비무초진이라는 것이 있었다.
– 자신을 처음으로 이긴 사내의 아내가 되겠다.
그는 자신이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를 이겼기 때문에 또는 처음으로 안았기 때문에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명운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흠…… 과거의 나와 비교한다면 그녀와 그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생에서 그는 사마진과 비슷한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과거로 돌아와 수년을 더 살았다.
영혼의 나이를 따진다면, 그는 그녀보다 다섯 살 이상이 많았다.
‘사마진은 굳세고 강한 여인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그녀는 충분히 좋은 반려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명운은 생각을 정리했다.
‘책임을 져야 한다면, 사내답게 책임을 지겠다.’
그는 그녀를 아내로 맞이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사마진이 다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금기는 무슨 금기란 말이냐?”
감정이 격해져 있기 때문일까?
그녀는 명운에게 더 이상 존대를 하지 않았다.
명운 또한 그녀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이 아니라면 왜 이렇게 화를 내시는 것입니까?”
사마진은 조금 전과는 반대로 목소리를 낮췄다.
“하… 네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야.”
명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제가 너무 강하다고요?”
“그래, 방금 섬격일섬은 내 모든 공력을 건 것이었다. 하지만 넌 아주 쉽게 피해 버렸지.”
명운은 피한 것도 모자라 그녀의 발을 걸고, 그녀의 몸을 받쳐 올리는 여유까지 보여 주었다.
“정말로 그게 단주님의 전력을 실은 공격이었단 말입니까?”
사마진이 그를 노려보며 외쳤다.
“더 할 수 없이 빠른 검이었단 말이다!”
명운의 눈에는 그녀의 검이 그렇게 빨라 보이지 않았다.
‘특히 공격이 시작되기 전 기의 흐름이 너무 또렷하게 느껴졌다.’
공격 직전.
사마진은 푸른 검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녀의 단전에 모여 있던 대부분의 기가 이동한 곳은 검이 아닌 두 다리였다.
즉, 명운은 그녀가 앞으로 쏘아질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단주님, 설마 가형검을 진심으로 피하지 못하신 것은 아니죠?”
사마진은 기가 막혔다.
“그것을 어떻게 피한단 말이냐!”
그녀는 자신을 사방에서 덮치던 무형검기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명운은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제가 강해지긴 했다고 생각했지만, 단주님께서 감당하시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겸손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명운은 폐관수련 마지막까지 검강(劍罡)을 쓰지도 만들지도 못했다.
‘무극이나 절정의 경지는 검강을 쓸 수 있을 때 가능한 것 아니었던가?’
사마진이 말했다.
“후계자 경쟁은 이제 필요 없는 것이 되었다. 교주님께 가서 네 무공을 보여 드리면, 그분께서는 망설이지 않고 네게 소교주 위를 내릴 것이다.”
명운은 손을 내저었다.
“아버님께서는 가장 큰 공을 세운 아들에게 권좌를 물려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마진이 힘을 주어 말했다.
“네 무공은 그 경쟁이 필요 없을 정도란 말이다.”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단주님께서 절 기만하고 계신 것은 아니겠죠?”
그러자 사마진이 아미를 위로 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왜 널 기만한단 말이냐?”
그녀의 표정은 진심으로 보였다.
“기만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정말로 제 검을 막을 수가 없었단 말입니까?”
“정말로 막을 수 없었어. 네가 너무 강하니까.”
사마진은 생각했다.
‘꿈이 사납더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냐.’
명운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단주님은 제가 얼마나 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교주님도 널 이기지 못할 것이다.”
명운은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렇진 않을 것입니다. 아버님께는 천마신공이 있습니다.”
그는 명각이 사용한 천마선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검강을 넘어선 수강(手罡)이었다.’
사마진은 천마신공이 언급되자 말끝을 올렸다.
“천마신공이 그렇게 강하단 말이냐?”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천마신공은 절대적입니다.”
이것은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답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