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의남매 (2)
석문밖에 선 경은은 초조한 얼굴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그녀에게 말을 건 이는 평소 안면이 있던 아소였다.
“괜찮을까요?”
“공자께서는 수련 성과를 확인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상대가 너무 강해서…….”
경은이 삼킨 말은 다음과 같았다.
– 상대가 너무 강해서 공자님께서 좌절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녀가 끝까지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아소는 그녀가 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주님께서는 지도검법에도 능숙하시니까요.”
지도검법이란 아랫사람이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는 검법을 말했다.
물론 두 사람의 대결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검법도 있습니까?”
“자명단에는 있습니다.”
“그렇군요.”
아소는 경은이 초조해하지 않도록 여러 차례 말을 걸었다.
그리고 가끔 굳게 닫힌 석문으로 시선을 보냈다.
‘한데 두 분은 왜 이렇게 나오시지 않는 걸까?’
명운과 사마진이 안에 들어간 지 어느덧 반 시진이 지났다.
‘무슨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겠지?’
명운이 패배를 인정하지 못한 채 다음 승부를 고집할 수도 있었다.
‘설마 그런 것은 아니겠지?’
그녀는 서숙과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쪽에서 문을 열까요?”
수하의 물음에 아소가 손을 내저었다.
“아직 반 시진밖에 지나지 않았다.”
고수들의 비무는 때때로 하루를 넘기기도 했다.
‘물론 칠공자의 실력으로는 한 시진이 아니라 촌각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비무가 길어지는 것은 단주님께서 그에게 지도를 하시거나 그가 고집을 피우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소는 사마진이 압승을 확신했다.
이는 그녀만이 아니었다.
석문 앞에서 기다리는 이들은 모두 사마진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공자님께서 무사하시겠죠?”
“무사하실 겁니다.”
아소가 경은의 물음에 답했을 때, 석문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드득…….
경은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석문 안쪽을 주시했다.
‘드디어 나오신다.’
문이 삼 할쯤 열리자 사마진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비무가 끝났다.”
아소는 그녀의 옷차림이 살짝 흩어진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옷만이 아니야. 단주님의 머리 장식 한쪽이 풀려 있다. 예상보다 격렬한 비무가 있었던 것인가?’
경은은 사마진보다는 뒤에 걸어 나오고 있는 명운을 주목했다.
“공자님.”
“기다렸나?”
“다행이십니다.”
경은은 명운의 얼굴이 밝은 것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에서 아무 일도 없으셨구나.’
아소는 경은을 곁눈질로 살짝 살피고는 사마진에게 나아가 두 손을 모았다.
“비무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이 물음은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경은에게 대답을 들려주기 위해 이와 같은 질문을 한 것이었다.
사마진은 그녀의 물음을 받고는 생각했다.
‘기특한 질문이군.’
그녀가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 대답했다.
“흠, 흠. 폐관수련에서 다소 성취가 있음을 확인했다. 하나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명운은 사마진의 뒤에서 두 손을 모았다.
“단주님의 후한 평가에 감사드립니다.”
아소는 두 사람의 대화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으나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명운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마진은 오른손을 살짝 들었다.
“나도 일이 있으니, 여기서 헤어지도록 하지.”
명운은 두 손을 모은 채 깊이 허리를 숙였다.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누가 보아도 사마진이 명운을 지도한 것처럼 보였다.
* * *
“네게 상을 내리고자 한다.”
명운의 앞에 고개를 숙인 것은 의녀 초예였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명운의 키는 지금보다 작았을 터였다.
“오늘부터 너는 자유다.”
초예는 명운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들었다.
“공자님?”
“원한다면 서숙을 떠나도 좋다.”
초예가 재차 고개를 숙였다.
“서숙을 떠나다니요. 전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그녀는 가족을 살해한 천마신교를 저주했지만, 자신과 동생을 구해 준 명운은 한없이 존경했다.
“난 널 이곳에 속박할 생각이 없다. 네가 원한다면 남아도 좋고, 원하지 않는다면 떠나도 괜찮다.”
명운은 경은으로부터 벽곡단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경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제대로 된 벽곡단을 만든 것만으로도 자신의 일을 다 한 것이다.’
그는 그녀와 그녀의 동생 초하를 구한 것이 올바른 투자였다고 생각했다.
초예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공자님, 공자님을 평생 섬기게 해 주십시오.”
명운은 그녀의 굳은 목소리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후회하지 않습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그러면 네게 다른 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그는 고개를 강하원에게 돌렸다.
“강 총관.”
강하원이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하명하시지요.”
“그녀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어 상을 내리도록.”
강하원이 두 손을 모으며 명을 받았다.
“공자님의 명에 따라 초예에게 상을 내리겠나이다.”
초예는 몸을 일으킨 뒤,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강하원은 그녀가 사라진 뒤 말했다.
“아름다운 아이입니다.”
초예의 미모는 삼 년 전에도 돋보였다.
삼 년이 지난 지금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복을 타고난 것이지.”
“미모가 항상 복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명운은 그가 어떠한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고 있었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인가?”
“그녀를 노리고 있는 젊은이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네가 보호해 주게.”
“공자님께서는 생각이 없으십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명운은 그녀를 자신의 첩이나 애인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
“선택은 그녀가 하는 것일세.”
부모가 있다면, 부모가 그녀의 신랑감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초예는 삼 년 전 천마신교의 인간사냥에 부모를 모두 잃고 말았다.
명운은 그녀 스스로에게 선택을 맡기고자 했다.
“그녀의 짝을 공자님께서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명운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난 이미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네.”
강하원은 그녀의 미모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운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공자님, 정략결혼도 중요한 전력 강화 수단입니다.”
중원의 군주 중 몇몇은 정략결혼으로 세력을 키워 나라를 일으키기도 했다.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물건처럼 쓰자는 말인가?”
강하원은 명운의 목소리에 짙은 경멸이 서려 있는 것을 느꼈다.
‘공자님은 이런 일을 싫어하시는구나.’
그가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
“정략결혼은 초예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명운은 좁힌 미간을 펴지 않았다.
“하면 경은인가?”
경은은 나이가 초예보다 많아 지금 당장 혼례를 올린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번에는 강하원도 물러서지 않고 받아쳤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경 총관이 아니라 공자님의 혼인입니다.”
명운은 그의 한마디에 낮게 신음했다.
“으음…….”
배경이 부족한 그에게 정략결혼은 배경을 강화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사마단주와 비무초진이 진짜였다면, 강 총관이 크게 좋아했겠군.’
그가 사마진과 혼인을 한다면, 자명단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수 있었다.
강하원이 진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가 생각해 둔 가문이 몇 있습니다.”
명운은 초예 때와는 다르게 거절하지 않았다. 이는 그의 생각을 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말해 보게.”
강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우선 대산노가가 있습니다.”
대산노가는 대산팔가 중 하나로 대대로 현무대 대주직을 이어 오고 있었다.
“대산노가는 넷째 형의 외가가 아닌가?”
대산노가와 혼약을 맺는다면, 그는 사공자 명준과 동맹을 맺게 되는 것이었다.
“마음에 걸리십니까?”
“우리는 지금 셋째 형과 동맹 중이 아닌가?”
“삼공자와 동맹을 맺은 것은 저희가 아닌 귀주석가입니다.”
명운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귀주석가를 버리자는 말인가?”
“그들은 언제든 우리를 버릴 수 있습니다.”
대산노가가 서숙을 버리기 전에 먼저 움직이자는 말이었다.
그는 지난번 일로 귀주석가에 적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되었다.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다른 곳을 말해 보게.”
강하원은 명운에게 대산노가를 강요하지 않았다.
‘아직 남은 가문이 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음 가문을 이야기했다.
“다음은 남가(南家)입니다.”
“남가?”
“사대호법 중 수좌인 남기남의 가문입니다.”
명운은 그의 말을 듣고는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남기남이라면 다음 세대 우사가 될 사람이 아닌가?”
남기남은 현재 신교우사인 공복진의 심복으로 그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남가를 아군으로 만든다면, 대업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공 우사는 이미 큰형과 손을 잡지 않았나. 그것이 가능한가?”
지금 남가와 혼례를 올린다면, 장공자 명천의 아래에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렵겠지만, 보위산 공략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큰형이 위축되었을 때, 남가를 이쪽으로 끌어들인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두 번째 혼담은 보위산 공략을 실패로 가정한 것이었다.
“흐흠…….”
나쁜 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선의 수라 할 수도 없었다.
‘혼약은 쉬이 물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운은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니면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혼약은 아군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 가문에 적이 있다면, 그 적 또한 함께 따라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남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세 번째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어느 가문인가?”
강하원이 대답했다.
“이번에는 가문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명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이라고?”
한 사람을 지목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대단한 배경을 가지고 있거나 상당히 뛰어난 뭔가를 지니고 있을 때였다.
‘누구지?’
이번만큼은 그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말해 보게.”
강하원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명단의 아소입니다.”
자명단의 아소.
그녀는 사마진의 측근 중 한 명으로 서숙과 가까운 자명단 사람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아 소저라니?”
명운은 강하원이 아소의 이름을 언급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 소저는 자명단에서 단주님을 모실 만큼 중요한 인물입니다.”
아소가 사마진과 가까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만으로 혼약의 대상이 되는 건가?”
“아 소저와 혼례를 올리게 된다면, 자명단과 사이를 더욱 두텁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 소저는 외모도 좋고, 성품 또한 너그러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합니다.”
강하원의 말대로 아소는 괜찮은 부분이 많은 여인이었다.
명운은 생각했다.
‘연상인가?’
사마진 만큼은 아니었지만, 아소도 지금의 그보다는 나이가 충분히 많았다.
‘연상을 선택한다면 차라리 진을 선택하는 것이 낫겠지.’
사마진과 아소.
두 사람은 겉으로 볼 때,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욱 아름답고 세력이 큰 사마진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했다.
“흠…….”
강하원이 목에 살짝 힘을 주었다.
“자명단의 사마 단주님은 혼례를 치르지 않아 다른 가족이 없습니다. 제가 듣기로 그분께서는 아 소저를 딸처럼 아낀다고 하셨습니다. 즉, 아 소저와 혼례를 올리는 것은 자명단주님의 딸과 혼례를 올리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명운은 생각했다.
‘진과 의남매를 맺었으니, 아 소저와 혼인을 한다면 조카와 혼인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는 좋지 않다.’
그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 소저는 넘어가도록 하지.”
아소는 강하원이 준비한 마지막 패였다.
“공자님, 다 싫으신 것입니까?”
그는 적어도 아소만큼은 그가 거절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공자님께서는 따로 마음에 두신 여인이 있는 것인가?’
초예가 아니라면 경은 정도를 생각할 수 있었다.
명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난 아직 열여섯일세. 혼례를 서두를 나이는 아니라 생각하네.”
“아직 열여섯이 아니라 며칠 뒤면 열일곱입니다.”
강하원의 말대로 명운의 열여섯은 며칠 남지 않은 상태였다.
“강 총관.”
“공자님.”
명운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네. 생각을 해 보겠네.”
강하원이 고개를 숙였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그는 뒷걸음으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