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75)
75화 의남매 (3)
명운은 사마진과 비무를 펼친 뒤에도 낙산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태화전에 표를 올려 아버지 명증에게 만남을 청했다.
“오늘도 답이 오지 않은 건가?”
명운의 물음에 강하원이 고개를 숙였다.
“일정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리는 듯합니다.”
표를 올린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명증은 그의 입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누군가 중간에서 막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가 올린 표가 아버지 명증에게 건네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짙게 들었다.
“공자님께서는 공 우사를 의심하고 계신 것입니까?”
“교의 실무는 모두 그가 관장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은 그렇습니다.”
강하원은 그래도 공자들의 표를 막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 번 더 표를 올릴까요?”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며칠 되지 않았으니, 더 기다려 보지.”
그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아버지 쪽은 그렇다고 해도 귀주석가 쪽 반응이 미적지근하군.’
폐관수련을 끝낸 지 열흘.
지금까지 귀주석가에서는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
강하원이 서숙의 자금 사정을 설명하려는 순간, 시종이 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명운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누가 왔는지 말을 해야 하지 않겠나?”
“석, 석 장로께서 오셨습니다.”
명운은 오른쪽 입술 끝을 올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더니, 석 장로가 그 짝이군.’
“드디어 납시었군. 안으로 모시어라.”
“예, 알겠습니다.”
강하원이 명운에게 물었다.
“공자님, 시간을 조금 두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그는 석준명을 만나기 이전에 이쪽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명운은 그의 물음에 오른손을 흔들었다.
“밖으로 나가 영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례를 범하고 있는 것일세. 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네.”
상대는 강호에 위명이 쟁쟁한 십장로 중 한 사람이었다.
원래라면 문밖까지 달려 나가 그를 맞이해야 했다.
“그것이 정말로 무례한 행동입니까?”
강하원은 석준명과 앙금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강 총관, 어쨌거나 그는 본교의 장로님이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강하원이 미간을 좁힌 순간 멀리서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혼자가 아닌 모양이군.”
“명첩까지 보낸 것을 보면, 단단히 준비한 모양입니다.”
석준명은 수행원들과 함께 서숙을 방문했다.
“장로님께서 드십니다.”
시종의 목소리와 함께 석준명 일행이 안으로 들어섰다.
‘십여 명이 넘는군.’
일행 중에는 비조검 석주도 포함되어 있었다.
명운은 앞으로 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장로님을 뵙니다.”
그가 먼저 인사하자 석준명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자신이 위에 있음을 나타내는 행동이었다.
“공자, 오랜만입니다.”
명운은 석준명과 기 싸움을 벌이지 않고 상석을 양보했다.
그러자 강하원이 오른쪽으로 돌아섰고, 석준명 일행은 왼쪽을 차지했다.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명운의 말에 석준명과 그의 수행원들이 자리에 앉았다.
“긴 시간 고생이 많으셨소.”
“성취가 있었으니, 헛된 고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석준명은 명운의 말에 속으로 혀를 찼다.
‘성취라. 실제는 소문과 다른 것인가?’
그는 명운의 성취가 부족하여 강하원이 크게 실망했다는 소문을 들은 바 있었다.
“폐관수련에서 성취가 있으셨습니까?”
명운은 공손한 태도로 그의 말을 받았다.
“삼 년이나 수련했으니, 성취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어떠한 성취입니까?”
“검과 권 모두 성취가 있었습니다.”
석준명이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장하십니다.”
그는 명운의 성취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다.
대신 강하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강 총관, 축하하네.”
강하원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의 말을 받았다.
“축하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공자께서 무공을 대성하지 않으셨나?”
강하원은 명운의 진짜 실력을 몰랐기에 이마를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장로님, 공자께서는 성취가 있으신 것이지. 대성하신 것은 아닙니다.”
석준명은 그의 반응을 보고는 명운의 성취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나이 또래에 맞는 성취란 말이군.’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로 바뀌었다.
“내가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은 공자께 권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오.”
명운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받았다.
“장로님의 권유라면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석준명은 명운이 이전과 다르게 고분고분하다고 느껴졌다.
‘철이 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된 것일까?’
어린 시절 총명함이 사라진 것은 아쉬웠지만, 그는 대업을 위해서는 이런 고분고분한 모습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석가는 주가와 동맹을 맺었다오.”
“강 총관에게 들었습니다.”
“주가가 지지하고 있는 이가 삼공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면 삼공자가 어떠한 일을 벌이고 있는지도 알고 있겠구려?”
“신강에서 만족을 토벌한다고 들었습니다.”
석준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알고 있으니, 이야기가 쉬울 것 같소.”
“…….”
“공자, 신강으로 가서 삼공자를 도와주시오. 두 형제가 힘을 합한다면 못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하오.”
명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쳇, 폐관수련을 끝내자마자 신강으로 가서 셋째 형을 빛나게 해 주라는 말이군.’
석가는 노골적으로 그에게 조연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권유는 수락할 수가 없습니다.”
순간 석준명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아버님께 표를 올린 상황이라 서숙을 떠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석준명은 그의 해명을 듣고는 좁혔던 미간을 폈다.
“표는 교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올린 것이오?”
“그러합니다.”
“하면 교주님을 만나고 떠나면 될 것이오.”
석준명은 서둘러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만족을 토벌하는 것은 삼공자다. 이쪽은 두 사람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
명운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버님을 만난 뒤, 신강으로 떠나겠습니다. 대신 청이 하나 있습니다.”
석준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공자께서 청이 있으신 것이오?”
“신강까지는 길이 멀고 험합니다. 그래서 여러 준비가 필요하니, 석가에서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석준명은 웃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단 말이오?”
“좋은 말과, 무기, 그리고 가죽옷과 노숙에 필요한 물품, 그것을 운반할 하인들이 필요합니다.”
“물건으로 받고 싶소? 아니면 돈으로 받고 싶소?”
명운이 답했다.
“사는 수고를 줄일 수 있으니, 물건으로 받고 싶습니다.”
석준명은 그의 청을 받아들였다.
“알겠소. 공자가 말한 것을 가능한 빨리 준비하도록 하리다.”
명운은 그의 수락에 두 손을 모았다.
“석가의 후원에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강하원이 끼어들 틈도 없이 모든 것이 결정되고 말았다.
석준명이 돌아간 뒤, 강하원이 물었다.
“공자님, 너무 쉽게 그들의 손을 들어 준 것이 아닙니까?”
명운이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그들과 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네.”
강하원의 음성은 날카로웠다.
“공자님!”
그는 물러도 너무 물렀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명운이 오른손을 세웠다.
“자네가 걱정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닐세.”
강하원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공자님께서 너무 물러지신 것이 아닌가 걱정이구나.’
그는 타이르듯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공자님, 다른 것은 다 그렇다고 해도 하인은 석가의 사람으로 채우면 곤란합니다.”
“석가의 감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명운이 그것을 몰라 하인을 끼워 넣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일세.”
“예?”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 의심이 사라지는 법이지.”
“공자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명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연공실로 가세.”
강하원은 얼굴을 굳혔다.
“더 보여 주실 것이 있으십니까?”
“물론.”
강하원은 어두운 얼굴로 연공실을 향했다.
연공실에 도착하자 명운은 기를 펼쳐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연공실로 이어지는 복도 끝에 시녀 하나가 전부인가? 흠, 서숙에 잠입한 비선들도 더는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양이군.’
그는 밖을 확인하고는 문을 닫았다.
쿵.
강하원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비무를 해 보세.”
“비무 말입니까?”
강하원은 경은으로부터 명운이 사마진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었다.
‘자명단주에게 한두 수 배운 것을 내게 시험해 보겠다는 뜻인가?’
그는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명운의 명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서숙의 지하 연공실은 자명단의 연공실은 물론 낙산원의 연공실보다도 좁았다.
명운은 걸음을 옮기며, 경은과 조광을 처음 가르쳤을 때를 떠올렸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잘도 가르쳤군.’
그는 강하원의 반대편에 선 뒤, 두 손을 아래로 내렸다.
“선수를 양보하겠네.”
“공자님!”
“자네는 내가 먼저 공격하길 원하는가?”
강하원이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공자님의 검이 제 몸에 닿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명운이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내기를 해 보겠나?”
“내기가 되는 일이 아닙니다.”
“내 검이 자네 몸에 닿으면, 내가 이기는 것일세. 반대로 십여 초식이 지나도 내 검이 그대의 몸에 닿지 못한다면 이쪽 지는 것일세.”
강하원은 미간을 좁혔다.
“공자님.”
“내기에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의 청을 들어주는 것이니, 다른 말을 하지 말게.”
명운은 언제든 그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내기에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강하원뿐이었다.
‘설마 공자님이 내게 기회를 주시려는 것인가?’
그는 좁혔던 미간을 폈다.
“후회하실 겁니다.”
명운이 어깨를 펴며 말했다.
“좋아, 그럼 이쪽에서 선공하지.”
강하원은 자세조차 취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는 낙산원에서 보여 준 실력으로는 어림없다고 판단했다.
‘그 실력이라면 십 초식이 아니라 백 초식이라도 무리다.’
명운은 묵검을 뽑았다.
스릉.
“이쪽에서 먼저 가겠네.”
그는 허공에 큰 호를 그렸다.
명운의 이 한 수는 사마진을 쓰러뜨린 가형검이었다.
강하원은 명운이 호를 그리는 것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대산검법이 아니군.’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사방에서 거대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그는 검을 뽑고자 손을 아래로 내렸다.
‘툭’ 하고 소리가 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내기에 이긴 것은 누구지?”
명운의 물음에 강하원은 숨이 멎을 뻔했다.
“고, 공자님.”
어느새 명운이 그의 뒤로 돌아가 검신으로 그의 등을 쳤던 것이었다.
‘미, 믿을 수가 없다.’
그의 반응은 사마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명운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자네도 인정하지 않는군.”
강하원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털썩.
“공자님, 속하 죄를 지었습니다.”
명운은 말끝을 올렸다.
“패배를 인정하라 말을 했는데 왜 죄를 지었다 말하는 것인가?”
“속하, 공자님을 믿지 못한 채, 공자님을 의심하고 말았습니다.”
강하원은 말을 마친 뒤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쿵. 쿵. 쿵.
“강 총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명운은 손을 내밀어 그를 제지했다.
“그러지 말게.”
그의 음성은 어느새 낮아져 있었다.
“공자님.”
명운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원망하지 말게.”
“원망하지 않습니다.”
강하원은 울음소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강 총관, 내가 그대를 속여서 서러운가?”
“서러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닙니다. 기뻐서 나오는 눈물입니다.”
강하원은 속으로 외쳤다.
‘공자님께서 무극(武極)에 이르셨다!’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