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천원대 (3)
“누구지?”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이런 쪽지를 무시하는 건 찝찝한데 말이야.’
그를 불러낸 이는 천원대 내부 사람일 수도 있었고, 천원대와 관련된 외부 사람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천원대와 관련된 사람일 것이다.’
명운은 자신을 헤치고자 했다면, 장목암까지 불러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가 보면 알겠지.’
그는 상대의 요구에 응하기로 했다.
“답장은 필요 없겠지.”
명운은 쪽지를 촛불에 태웠다.
화르륵.
쪽지는 곧 재가 되어 사방에 흩어졌다.
그는 자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오늘 일을 정리하도록 하자.’
명운은 낮에 쓴 문서들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차분히 다시 옮겨 쓰기 시작했다.
‘흠, 오기가 생각보다 많아.’
그는 오기를 고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새로운 문서를 만들고자 했다.
“쉽지 않군.”
의견을 덧붙일 때는 확실한 이유를 달았다.
때문에 작업이 더욱 느려졌다.
“여기서는 이쪽이 나으려나?”
명운은 경은과 서진의 동작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문서를 작성했다.
‘이 정도 일도 제대로 못 해내면, 큰일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탁.
붓을 놓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달이 기울고 있었다.
“이런…….”
자시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늦을 것 같았다.
‘십 리는 한순간에 움직일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니까.’
명운은 책상 위에 켜진 촛불을 껐다. 그리고는 창문을 살짝 열었다.
끼익.
그는 주변을 살핀 뒤,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재빨리 지붕 위로 올라섰다.
‘비밀리에 만나자고 했으니, 이쪽도 비밀리에 나가야 할 것이다.’
명운은 사방으로 기를 뻗었다.
‘정문에 경계병이 둘, 후문에 하나, 나머지는 없다.’
그는 동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지붕과 지붕 사이를 건너 담장 앞에 이르렀다.
‘흠…… 일 장은 족히 되겠군.’
명운은 멋들어진 경공술을 발휘하는 대신 벽 중간을 밟고 위로 올라섰다. 그러고는 벽 아래를 살폈다.
검은 물이 달빛에 출렁이고 있었다.
‘담장 아래는 해자였군.’
단숨에 벽을 넘었다면 분명 낭패를 보았을 터였다.
그는 신중하게 움직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디 가 볼까?’
명운은 담장 아래로 몸을 날린 뒤, 길이 아닌 숲으로 향했다.
탁!
발에 힘을 주어 올라선 곳은 나무 위였다.
그는 숲속을 달리는 대신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서 이동했다.
‘이렇게 움직이면 발자국이 남지 않으니까.’
명운은 흔적까지 계산해 치밀하게 행동을 했다.
일각 정도를 달리자 멀리 장목암이 눈에 들어왔다.
‘저 괴상한 바위는 잊을 수가 없지.’
장목암은 쓰러진 나무처럼 삐뚤게 서 있는 바위였다.
‘서두르자.’
그는 속도를 높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명운은 장목암 위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흠, 장목암 위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라면 고수군.’
그를 불러낸 이는 어설픈 이가 아니었다.
‘십중팔구 무림맹 출신 고수일 터.’
그러나 명운은 그가 자신을 불러낸 이유는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쪽에 원한을 가진 것은 아닐 테고, 뭔가 경고를 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는 장목암 아래 도착하자 발에 힘을 주었다.
탁! 탁!
바위에 튀어나온 부분을 밟고 두 번을 오르자 어느새 장목암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명운은 두 손으로 장목암 위쪽을 잡은 뒤 힘을 주어 정상에 올랐다.
“더 높이 날 수도 있었을 텐데, 실력을 감추고자 한 것인가?”
명운은 상대의 목소리를 듣고는 멈칫했다.
“누님?”
장목암 위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무림맹 출신 고수가 아닌 자명단주 사마진이었다.
“의외라는 얼굴이네.”
그녀는 명운과 등을 지고 있음에도 그의 얼굴을 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명운이 손에 묻은 먼지를 털며 말을 받았다.
“천원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지?”
“대명궁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니까요.”
사마진은 하늘색 옷을 입은 채 긴 머리를 허리까지 내리고 있었다.
“운이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날 줄은 몰랐어.”
명운은 머리를 긁적였다.
“멀리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마진이 살짝 말끝을 올렸다.
“아까는 대명궁과 가까운 곳이 아니라면서?”
명운은 이 한마디에 완벽하게 허를 찔리고 말았다.
“그, 그것은…….”
사마진이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야.”
명운은 그녀의 미소를 보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화가 나신 것은 아니군. 그건 그렇고 누님이 이렇게 직접 오셨다는 것은 긴히 할 말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자세를 바로 했다.
“대명궁에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까?”
“대명궁은 아니고 북쪽이야.”
“북쪽 말입니까?”
사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강에 문제가 생겼어.”
지금 신강에서는 삼공자 명원이 만족 토벌을 벌이고 있었다.
“셋째 형입니까?”
“그게…… 형세가 불리한 모양이야.”
“네? 형세가 불리하단 말입니까?”
삼공자 명원은 명각 다음으로 출중한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문과 무에 모두 정통한 데다가 실력 있는 측근과 호위무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 셋째 형이 고전하고 있다고? 만족의 실력이 그만큼 대단한 것인가?’
명운은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마진은 그의 생각을 꿰뚫어 본 사람처럼 말했다.
“원이 상대를 얕보았다가 초전에 크게 패한 모양이야.”
“이후 수세에 몰렸다는 말씀입니까?”
“양 좌사에게 구원을 요청했다더군.”
명운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자존심이 강한 셋째 형이 구원 요청을 할 정도라면, 형세가 정말 어려운 모양이군요.”
그는 신강에 있는 하후문이 걱정되었다.
‘하후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하후문은 출병 때부터 토벌군에 종군하고 있었다.
“맞아, 편지에 따르면 완벽한 수세에 몰려 있는 모양이야.”
“그래서 양 좌사께서는 구원을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양대충은 삼공자 명원의 패배를 좌시할 수가 없었다. 그의 패배는 곧 천마신교의 패배였다.
더욱이 명원이 만족의 화살에 전사하기라도 한다면, 천마신교에 미칠 충격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무조건 구원을 보내야 한다.’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구원 부대를 보내고 싶긴 한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야.”
사마진의 이야기는 명운의 결론과 조금 달랐다.
“보위산 공략 때문입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신교의 병력이 모두 보위산으로 향하고 있어. 양 좌사는 진심으로 명원을 돕고 싶지만, 방법이 없는 상황이지.”
명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 텐데요?”
그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대명궁의 전력을 알고 있었다.
‘대명궁에는 아직 삼단의 병력이 남아 있다.’
자명단, 적비단, 혜선단 등 삼단은 이번 보위산 공략에서 배제되었다.
그들이 움직인다면 명원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마진이 그의 생각을 읽었다.
“삼단의 병력 말인가? 삼단의 병력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교주님의 허락이 필요해.”
양대충의 권한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사신대가 한계였다.
명운은 오른손으로 턱을 받쳤다.
“그 말씀은…… 셋째 형은 아버님께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군요.”
“공을 세우기는커녕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을 어찌 알리겠어.”
명증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삼공자 명원은 사공자 명준 못지않은 꾸지람을 들을 것이 뻔했다.
명운에게는 이쪽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경쟁자가 줄어드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마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진이 그것을 바랐다면 날 찾아오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사마진이 자신을 찾아온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양 좌사께서는 어떻게 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사마진이 되물었다.
“운은 공을 세우고 싶어?”
그녀가 그를 찾아온 이유는 이 물음 하나 때문이었다.
명운은 즉시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누님께서 공을 세울 기회를 주신다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사마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권한으로 두 개 조를 움직일 수 있어.”
각 조에는 스무 명 정도의 무인이 있었다.
즉, 자명단에서 사십 명의 병력을 내어 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두 개 조로 셋째 형을 구원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양 좌사를 움직이면, 천원대에서 조 하나를 뺄 수 있을 거야.”
천원대까지 포함하면 세 개 조 육십 명.
‘아직 조금 부족하다.’
사마진이 말했다.
“여기에 낙산원과 서숙의 무인들을 모두 합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그녀는 이미 계산을 끝낸 뒤,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명운은 그녀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조금 곤란합니다. 서숙에는 강 총관을 제외하면 무인이 없고, 낙산원의 무인들은 이미 신강으로 떠났습니다.”
“벌써?”
“지금쯤 신강의 입구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사마진은 그의 말에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진짜 곤란하네.”
명운은 그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정신 차리자. 진의 외모나 감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낙산원에 남은 것은 조광 정도뿐이었다.
사마진이 오른손 식지를 빙글 돌렸다.
“그럼, 부족하지만 이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명운은 생각에 잠겼다.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짧은 침묵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누님, 쓸 수 있는 부대가 하나 더 있긴 합니다.”
사마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쓸 수 있는 부대가 있어? 설마 비조검 석주의 적비단은 아니지?”
적비단주 육도검 등명군은 강직한 자로 교주의 허락이 없이 병력을 움직일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등명군에게 부탁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백호대 이조가 있습니다.”
백호대 이조.
그들은 초원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보위산 공략에 참가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셋째 형과 깊은 연을 맺고 있는 백호대 병력이다.’
사마진이 아미를 위로 올렸다.
“백호대 이조라고?”
“저희가 한번 상대했던 자들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설원.
그곳에서 백호대 이조는 철저히 무너지고 말았다.
사마진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그자들이 바로 백호대 이조였나?”
“예, 그들은 대부분 초원 출신이라 만족과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마진은 그들까지 합류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 결정된 것이네?”
명운은 모든 것이 다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천원대주의 허락이 필요하겠죠.”
“그건 문제없어. 천원대주는 양 좌사의 명령이라면 죽는시늉도 하는 사람이니까.”
“그 정도입니까?”
사마진이 가벼운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항장으로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그녀가 거리를 좁히며 물었다.
“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공을 사용했다면서?”
명운은 머리를 긁적였다.
“대단한 무공을 펼친 것은 아닙니다. 말을 할 때, 내공을 약간 실은 것뿐입니다.”
“그래도 그건 너무 위험했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몰랐을 것입니다.”
음성에 내공을 실어 보내는 것은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사마진이 재차 오른손 식지를 세웠다.
“내 귀에 들어올 정도면 그 소식을 접한 이들이 분명 있었을 거야.”
명운은 생각했다.
‘그 소식을 접한 이들이 있다고 해도, 폐관수련 직후 소문 때문에 크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진이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까.’
명운은 사마진이 자신을 진심으로 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짜 남매 같네.’
그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앞으로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마진은 더는 명운을 추궁하지 않았다.
“그리고 구원 작전 말인데……. 가능하다면 무공을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명운이 멈칫했다.
“무공을 쓰지 않고 셋째 형을 구원하란 말씀입니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어.”
계책으로 위기에 처한 명원을 구한다.
‘흠, 해 보는 수밖에.’
명운은 재차 그녀의 말을 받았다.
“한번 해 보죠.”
사마진은 그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무리한 요구를 받아 줘서 고마워.”
“무리한 요구라니요. 다 저를 위한 말씀인데요.”
사마진이 짧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운.”
왠지 모르게 여운이 있는 부름.
명운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예?”
“무운을 빌어.”
사마진이 몸을 돌리자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카락이 위로 떠 올랐다.
하얀 얼굴과 달빛.
그리고 하늘 위로 떠오른 머리카락.
명운은 천상의 선녀가 있다면, 사마진과 같으리라 생각했다.
‘정말 아름답다.’
이윽고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아…….”
그는 생각했다.
이러다가 그녀에게 반할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