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81)
81화 천원대 (4)
한 달 전.
신강 석하자(石河子).
군막 안으로 들어서자 눈앞을 가로막았던 먼지 폭풍이 사라졌다.
하지만 귓전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는 여전했다.
두두두.
천군(天軍)이 수천 개의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밖은 어때?”
하후문은 군막 안에 앉아 있는 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전합니다.”
그는 군모를 벗은 뒤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를 털었다.
툭. 툭.
그가 먼지를 털 때마다 하얀 눈처럼 먼지가 쏟아졌다.
“공자님은 예정대로 공격하실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하후문에게 말을 건 이는 귀주석가에서 보낸 고수 정문이었다.
그는 현무대 조장으로 근무할 때와 사뭇 달랐다.
예전에 비해 부드러워졌다고 할까?
아니면 독기가 빠졌다고 할까?
어느 쪽으로 표현하든 예전의 단단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금 쉬어 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하후문이 창을 받침대에 기대며 말했다.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언제든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야?”
“공자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공을 서두르면 실수하는 법이야.”
하후문은 의자 대신 사용하는 나무토막 위에 앉으며 그 말을 받았다.
“공자께서는 보위산 공략전 전에 승전보를 보내고자 하십니다.”
“보위산 공략이라.”
“보위산 공략이 성공한다면, 신강에서 승전보를 보내도 아무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삼공자 명원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곳 신강에서 공을 세운다고 해도 보위산 공략이 끝난 뒤라면, 하찮은 승리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 명증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려면 그 전에 승리가 필요했다.
하후문은 건면을 꺼낸 뒤 그것을 그대로 입에 넣었다.
“물에 불려 먹는 것이 낫지 않아?”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정문이 물었다.
“공자님과는 연락을 하고 있나?”
하후문이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공자님이라면 어느 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네가 진짜로 모시는 분 말일세.”
정문은 명운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공자님과 연락을 하지 못한 지 오래입니다.”
“그런가?”
“얼마 전 편지로 공자께서 폐관을 끝냈다는 소식을 듣긴 했습니다.”
정문이 고쳐 앉으며 물었다.
“폐관수련을 끝내셨다고? 성과는 있으신 건가?”
“강 총관님께서 편지에 자세한 내용을 적지 않으셨습니다.”
“흠, 그건 아쉽군.”
정문은 명운과 인연이 깊었다.
‘현무대에서 앞만 보고 살아가던 내 인생을 바꾼 분이시지.’
이번에는 하후문이 물었다.
“강 총관님의 말에 따르면, 정 숙위께서 서숙과 인연이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까?”
정문의 현재 공식 칭호는 숙위였다.
정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별거 아니야.”
“예?”
“대명궁에서 공자님을 살짝 도와드렸는데, 그 대가로 너무 큰 것을 받아 버렸지. 덕분에 현무대에서도 쫓겨났고.”
하후문은 생각했다.
‘쫓겨났다라. 공자님의 심계를 고려하면, 정 숙위가 말하는 것처럼 간단한 사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건면의 마지막 조각을 입에 털어 넣은 뒤 말했다.
“그래도 숙위까지 진급하셨지 않습니까?”
“뭐, 전화위복이라는 것이겠지.”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고 하였습니다.”
정문이 피식 웃었다.
“자네 말이야. 생각보다 말을 잘하는군.”
그는 괜찮은 동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딱딱하기만 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어.’
이곳에서 두 사람은 제법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십여 명이 함께 사용하는 넓은 군막을 단둘이 사용하고 있었으며, 야간 경계 임무도 나갈 필요가 없었다.
사흘 뒤.
먼지 폭풍이 지나가자 명원은 사방에 척후를 풀었다. 그리고 얼마 뒤, 적군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다.
“북쪽으로 이백 리 이상 떨어진 곳에 만족의 병력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만족의 족장 우루무(雨累無)는 명원과 싸움을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선 사신을 보내라.”
싸우지 않고 만족을 복속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았다.
“편지에는 무엇이라 적을까요?”
명원이 말했다.
“편지는 보낼 필요가 없다.”
만족은 중원의 글자를 읽을 수 없었다.
그는 그런 자들에게 편지를 보낸다고 해도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다.
“구두로 항복을 권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조건은 어떻게 할까요?”
명원이 답했다.
“조건 없는 항복.”
무조건 항복.
그의 수하 석기련은 이것은 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공자님, 만족에게는 미끼가 필요합니다.”
명원이 눈썹을 세웠다.
“내가 그 녀석들에게 뭔가를 제시해야 한단 말이냐?”
“그것은 아니지만 싸움을 피하려면, 뭔가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석기련은 제대로 된 회유책을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원이 바라는 것은 화끈한 승리였다.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
석기련은 명원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공자님께서는 전투의 승리를 바라고 계시는구나.’
그는 더 군말하지 않고 두 손을 모았다.
“알겠습니다. 공자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며칠 뒤.
만족에게 갔던 사신이 돌아왔다.
하나 그는 머리가 없는 채였다.
이것을 본 명원은 대노했다.
“이놈들이!”
석기련은 이미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공이 부족한 친구를 보냈지.’
그는 이런 일로 정예 병력을 잃는 게 싫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명원이 포효하듯 외쳤다.
“전군! 북쪽으로 진군한다!”
그의 명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정벌에 나선 군대는 대산주가의 가병과 삼공자 명원의 호위무사들이 주력을 이루고 있었다.
“진군이다!”
“북을 울려라!”
전군의 숫자는 대략 삼백.
황제의 군대와 비교하면 반딧불이라 할 수 있는 군세였으나 그들이 상대하는 만족도 수만을 넘나드는 대병력은 아니었다.
게다가 명원의 정벌군은 전원이 천마신교의 정예라 할 수 있었다.
‘질에 있어서는 황제군과 비교를 거부한다.’
석기련은 만족과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만족의 족장 우루무가 이끄는 군대는 천인대라 했다.’
숫자만 비교하면 양쪽의 차이는 삼 대 일.
그는 질로서 수적 열세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후문과 정문도 북쪽을 향해 진군했다.
“결국 시작되었군.”
“빨리 끝내고 돌아갔으면 합니다.”
“자네 먼지 폭풍이 지겨운 모양이군.”
“그게 아닙니다. 하루라도 빨리 공자님께 돌아가 힘이 되고 싶습니다.”
정문이 앞을 주시하며 그의 말을 받았다.
“주군이 있는 사람은 부럽군.”
하후문이 고개를 그에게 돌렸다.
“정 숙위께서는 석 가주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셨습니까?”
“나는 석씨도 아니고, 그분을 오래 모신 것도 아니야. 사정이 있어서 그 아래 있을 뿐이지.”
“그렇습니까?”
“그런 것이야.”
두 사람은 말머리를 나란히 한 채 북쪽으로 진군했다.
그리고 이틀 뒤, 그들은 이름 없는 초원에서 만족과 마주했다.
“전군 공격!”
명원은 만족을 보자마자 공격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성급한 것이었다.
만족은 천마신교와 정면으로 싸우는 대신 거리를 벌리며 화살을 쏘았다.
슈슈슉!
비처럼 내리는 화살은 쉬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악!”
“사, 살려 줘!”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지는 이가 허다했다.
“방패를 들어라!”
“물러서지 마라!”
명원은 검을 휘두르며 이를 악물었다.
“전원 나를 따르라!”
그는 어떻게든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석기련과 신풍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공자님, 어렵습니다!”
“우선은 화살을 막아야 합니다.”
궁술과 기마술에서는 만족을 당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퇴각하란 말이냐!”
명원은 휘하 고수들을 이끌고 만족을 향해 돌진하고자 했다.
“공자님! 안 됩니다!”
명원은 얼굴을 굳혔다.
“적이 눈앞에 있다! 화살에 겁을 먹고 꼬리를 보일 수는 없다!”
그는 말을 마친 뒤 검을 위로 세웠다.
“돌격!”
하후문은 앞서 나가는 명원의 모습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공자께서 너무 앞서 나가시는군요.”
정문의 생각도 같았다.
“문, 아무래도 우리가 도와야 할 것 같군.”
“그쪽도 문 아니십니까?”
정문이 말의 배를 가볍게 차며 답했다.
“이번에는 두 문 모두 움직여야 할 것 같다.”
두 사람은 동시에 속도를 높였다.
두두두.
말들이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초원을 내달렸다.
슈슈슉!
화살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명원과 고수들은 검을 휘둘러 화살을 쳐 내며 거리를 좁히고자 했다.
‘젠장!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명원은 과감하게 말에서 내려 경공을 전개했다.
‘짧은 거리라면 이쪽이 더 빠르다!’
슉!
그가 경공을 전개하자 순식간에 적과 거리가 줄어들었다.
후미에서 화살을 쏘고 있던 만족들은 명원의 경공술에 경악했다.
“사,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새인가?”
명원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뒤, 그들 사이로 파고들어 검을 휘둘렀다.
촤악!
그의 검에서 뻗어 나간 검기가 만족 병사의 몸을 단숨에 꿰뚫었다.
“헉.”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만족 병사가 말에서 떨어졌다.
“어떠냐!”
명원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주변 만족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달아나는 것이냐!”
그들은 단순히 달아나는 것이 아니었다.
‘거리를 벌려야 화살을 쏘지.’
만족 기병들은 적당한 거리를 벌리고는 명원을 향해 일제 사격을 실시했다.
슈슈슈슉!
명원은 자신을 향해 모여드는 화살을 보고는 급히 검을 들었다.
“겁쟁이들!”
그 모습을 본 만족의 족장 우루무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리석은 자군. 단기로 우리 군에 돌진하다니.”
명원은 적이 화살을 쏠 수 없게 바싹 붙으려 했지만, 만족 병사들은 화살을 난사하며 그의 접근을 막았다.
타타탁!
수많은 화살을 검으로 쳐 냈으나 점점 적과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너무 깊이 들어왔다.’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
수십 개의 화살이 다시 한번 그를 향해 쏟아졌다.
타타타탁!
그는 검기까지 끌어내어 화살을 막았다. 하지만 쏟아지는 화살은 그칠 줄을 몰랐다.
‘젠장!’
푹!
그의 검막을 뚫고 들어온 화살이 그의 오른쪽 허벅지에 꽂혔다.
“큭! 이렇게 빠른 화살이…….”
허벅지에 꽂힌 화살은 평범한 화살보다 배나 빠른 것이었다.
그 때문에 검을 휘둘렀으나 화살을 쳐 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내, 내가 이런 곳에서 쓰러질 것 같으냐!”
석기련과 마충이 그를 구하고자 나섰으나 만족 병사들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라!”
“어림없지!”
석기련과 호위무사들이 만족 병사들과 접전에 들어간 순간, 두 필의 말이 쏜살같이 그들의 옆을 통과했다.
“저자들은?”
석기련의 옆을 통과한 것은 하후문과 정문이었다.
하후문이 창을 꼬나든 채 돌진했다.
“먼저 선행하겠습니다!”
정문이 그의 뒤를 따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한다.”
하후문은 화살에 맞은 채 비틀거리는 명원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창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화살을 막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탁!
그의 창이 만든 창막(槍膜)은 벽이 되어 만족의 화살을 막아 냈다.
명원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하후문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너는?”
하후문이 목소리를 높였다.
“만벽창(萬壁槍)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퇴각하십시오!”
그가 만든 창막의 이름은 만벽창이었다.
“알았다.”
명원은 경공을 전개하고자 했지만, 화살에 맞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크윽…… 화살촉에 독이 있었던 것인가?’
그가 주저앉은 순간, 누군가 그의 몸을 낚아챘다.
“공자를 확보했다!”
명원을 낚아챈 이는 바로 정문이었다.
하후문은 정문의 외침을 듣고는 바로 몸을 돌렸다.
“퇴각한다!”
그는 말머리를 돌리는 동시에 창을 휘두르며 혈로를 뚫었다.
“비켜라! 비켜!”
만족의 족장 우루무는 하후문과 정문의 활약에 혀를 찼다.
“쯧, 마교에도 영웅이 있는 모양이군.”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만족 병사들이 일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날 만족은 명원을 사로잡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천마신교 병사를 저격하는 데 성공했다.
“적이 물러간다.”
“이긴 것인가?”
누군가의 물음에 마충이 고개를 흔들었다.
“죽은 것은 대부분 아군이다.”
천마신교는 지휘관인 명원이 중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서른 명이 넘는 전사자를 내고 말았다.
“첫 전투에서 열 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석기련과 마충의 얼굴은 어두웠다.
“부상을 당한 사람은 더욱 많습니다.”
명원이 눈을 감으며 물었다.
“싸울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남았나?”
“이백이 조금 넘습니다.”
전사자는 열 명 중 하나였지만, 잃어버린 전력은 삼 할을 넘었다.
“더 싸울 수 있을까?”
“한두 번은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 그 이상은 어려울 것입니다.”
책사인 신풍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 이상은 무립니다. 석하자까지 후퇴한 뒤, 증원을 기다려야 합니다.”
명원은 미간을 좁혔다.
“무슨 소리냐! 증원이라니!”
그는 이 이상 추한 꼴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투는 그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만족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천마신교 병사들은 마차로 벽을 쌓은 채 필사적으로 반격했다.
그들은 해가 질 때까지 싸웠는데 어제 전투보다 더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만족의 피해도 어제보다 컸다는 것이었다.
만족 족장 우루무는 오늘도 대활약을 펼친 두 무사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저 두 사람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지목한 두 무사는 바로 하후문과 정문이었다.
그들은 마차와 적병을 넘나들며 용맹을 과시했다.
“저 두 명이 유독 돋보이는군.”
마충의 말에 책사 신풍이 눈을 가늘게 떴다.
“두 사람 모두 우리 쪽이 아닙니다.”
“우리 쪽이 아니라니?”
“한 명은 서숙, 한 명은 석가 사람입니다.”
신강의 천마신교 병사들은 이틀에 걸쳐 대활약을 한 두 사람을 신강이문(新疆二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