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85)
85화 초원의 왕 (4)
석주가 합류한 다음 날.
또 한 명의 고수가 찾아왔다.
“조광이 공자님을 뵙니다.”
명운은 조광을 보고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용케 우리를 따라잡았군.”
“공자님의 부름을 받자마자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조광은 낙산원에서부터 두 필의 말을 번갈아 타면서 명운을 따라잡았다.
“자네까지 왔으니, 남은 것은 이제 백호대뿐이군.”
“백호대도 함께 가는 겁니까?”
“초원에 익숙한 이조가 합류할 걸세.”
백호대 이조는 덕령에서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명운은 백호대 이조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실력에 비해 허풍이 센 친구들이었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
대열의 선두는 여전히 평우였다.
“이곳부터는 길이 좁아지니, 조심하십시오.”
길이 좁은 곳에서는 말을 갈아탄다고 해도 속도를 높일 수 없었다.
“속도를 낼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군.”
평우가 명운을 달래듯 말했다.
“좁은 길은 이틀이면 끝납니다.”
명운은 그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이틀이나 이런 길을 더 가야 한단 말인가?”
“이틀이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좁은 길을 따라 북동쪽으로 이동했다.
조광은 강하원 뒤에 위치했는데, 그는 일행이 북동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총관님, 신강은 서쪽 아닙니까?”
강하원이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서쪽은 산이 너무 높아 길이 없다네. 북동쪽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크게 손해 보는 것은 아닐세.”
조광 역시 십만대산 북쪽은 처음이었다.
“대산과 풍경이 많이 다릅니다.”
“초원으로 나아가는 길이니까.”
밤이 되자 일행은 좁은 길에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길 위에서 잠을 청하는 것은 처음이군요.”
명운이 강하원의 말을 받았다.
“여기 있는 이들 대부분이 처음일걸세.”
강하원은 명운의 위쪽에 누워 있는 평우에게 말을 걸었다.
“평우, 이 길은 마차로 갈 수가 없는데, 서역 상인들은 어떻게 마차를 타고 대산에 오는 것인가?”
“청해호 쪽으로 도는 길을 택하면 마차를 타고도 대산에 갈 수 있습니다.”
“도는 길이라니? 이 길보다 더 도는 길이 있는가?”
평우가 대답했다.
“청해호 쪽으로 돌면 한 달은 더 걸립니다. 이 길은 사실 지름길이죠.”
강하원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지름길이라는 말에 속으로 혀를 찼다.
‘허, 초원으로 가는 길은 정말 알 수가 없구나.’
다음 날 아침.
명운은 건면으로 가볍게 식사를 했다.
“이곳에서는 불을 피우기조차 힘들군.”
조광은 지금까지 건면을 먹었기 때문에 특별할 것이 없었다.
“건면도 먹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명운은 다른 이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명을 내렸다.
“출발한다!”
그의 명이 떨어지자 말들은 다시 좁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좁은 산길은 평우의 말대로 이틀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나타난 새로운 길.
팽헌충은 그 길을 보자마자 혀를 찼다.
“뭐야! 새로운 길이라고 하더니, 또 산길이잖아!”
조광이 그의 말을 받았다.
“좁은 산길 다음은 넓은 산길이군.”
넓은 산길은 그래도 말을 바꿔 타면서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명운 일행은 점점 속도를 높였다.
평우가 앞서 달리며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덕령입니다.”
“벌써 덕령인가?”
“석가가 제때 합류해 예상보다 이틀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덕령에서는 백호대 이조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백호대 도착이 늦으면 헌충, 자네가 남아서 그들을 데려오게.”
“제가 말입니까?”
“자네 말고는 따로 맡길 사람이 없네.”
팽헌충은 고삐를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팽헌충, 공자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한나절을 더 달리자 높다란 고개가 눈에 들어왔다.
평우가 오른손을 들어 그 고개를 가리켰다.
“저곳이 바로 덕령입니다.”
팽헌충은 높디높은 고개를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저길 올라가는 겁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곳을 넘지 않고는 초원길로 나아갈 수 없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와 있는 이들이 있는 것 같군.”
고개 정상에 위치한 이들을 본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강하원 역시 고개 정상에 누군가 있는 것을 보았다.
“백호대가 벌써 와 있는 것일까요?”
“고개에 오르면 알게 되겠지.”
그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덕령의 가장 위쪽은 평평해서 수백 명이 동시에 쉬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명운 일행이 이곳에 이르자 먼저 도착해 있던 이들이 몸을 일으켰다.
“백호대 이조!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렁찬 외침을 내지른 것은 백호대 이조장 칠랑이었다.
그는 백호대 무복 대신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있었다.
명운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백호대 무복은 입고 있었는데 말이야.’
겉모습만 보면 그들은 초원 부족들과 구별이 힘들 정도였다.
“오래 기다렸는가?”
칠랑이 어깨를 펴며 답했다.
“사흘을 기다렸습니다!”
사흘.
명운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사흘을 기다렸다면, 숙영한 흔적이 있을 터. 하나 이 주변에는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칠랑의 허풍을 모른 척 넘어갔다.
“생각보다 수하들이 많군. 모두 몇 명인가?”
명운의 말대로 백호대 이조는 명운 일행과 맞먹을 정도로 인원이 많았다.
“모두 오십입니다! 초원을 그냥 둘 수 없어, 반만 데려왔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반이 오십이라고?”
“원래는 백 명이 넘습니다.”
백 명이면 하나의 조가 아닌 작은 대에 가까웠다.
‘이조의 수가 그렇게 많은가?’
백호대는 십만대산의 외곽 수비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조처럼 특별한 조가 몇 더 있었다.
칠랑이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저희 이조가 합류했으니, 공자님께서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만족인지 뭔 족인지 하는 놈들을 다 쓸어버리겠습니다.”
그들은 초원의 부족과 싸움에 익숙했지만, 천인대를 운용하고 있는 만족과 싸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 친구 허풍은 전보다 더 는 것 같군.’
명운은 밝은 음성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자네만 믿겠네.”
“공자님, 맡겨 주십시오!”
칠랑은 명운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듯 연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악으로 바뀌었다.
부조장 선우형이 칠랑에게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했던 것이다.
“조장님, 칠공자의 얼굴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음? 그럴 리가? 우리와는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닌가?”
선우형 뒤에 있는 수하들도 칠랑에게 말했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얼굴입니다.”
칠랑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보았다고?”
그때 누군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설원!”
선우형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어 모두에게 주의를 주었다.
“쉿, 목소리를 높이지 마라.”
칠랑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에게 물었다.
“우형, 생각이 났는가?”
선우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설원에서 우리가 상대했던 그 꼬마와 얼굴이 닮았습니다.”
칠랑은 꼬마라는 말을 듣자마자 몇 년 전의 참패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그 꼬마가?”
그의 얼굴은 경악으로 가득 찼다.
선우형이 말했다.
“조장님, 모르는 척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칠랑은 그의 말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
“으으음, 그래야 할 것 같군.”
그와 부하들은 힐끔힐끔 명운을 바라보았다.
명운은 그들의 생각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제야 생각난 모양이군.’
그는 칠랑과 부하들을 내버려 두고는 천원대 일조장 서진에게 다가갔다.
서진은 부하들과 떨어진 채 바위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괜찮은가?”
명운의 물음에 서진이 급히 몸을 일으켰다.
“아, 공자님께서 오시는 줄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명운은 손을 내저었다.
“내가 쉬라 하지 않았나? 괜찮네.”
서진은 자세를 바로 했다.
“공자님,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 겁니까?”
“자네하고 말한 지도 며칠 된 것 같아서 말이야.”
서진은 명운을 알 수 없는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이럴 때는 너그러운 윗사람 같지만, 사람을 다그칠 때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철인이다.’
그는 죽으라는 명을 내렸던 명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네도 북쪽은 처음인가?”
“그렇습니다.”
“기분은 어떤가?”
“보위산 때보다는 괜찮습니다.”
명운이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보위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나?”
“보위산 말입니까?”
“한 번도 가 보지 않아서 말이야.”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위산은 대설산과 함께 동쪽의 최전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산세는 대설산보다 험하고, 큰 봉우리가 둘 있습니다.”
명운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 두 봉우리 중 하나를 우리가, 나머지 하나를 무림맹이 차지하고 있다고 들었네.”
“맞습니다. 매번 보위산 정벌은 무림맹 쪽 봉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보위산에서 무림맹 세력을 밀어내면, 서역에서 중원으로 가는 길을 장악할 수 있었다.
“보위산을 손에 넣으면, 주천이나 장액까지는 큰 장애물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대설산의 설산파도 고립시킬 수가 있죠.”
“가욕관이나 옥문관은 어떠한가?”
“그곳은 관의 영역입니다. 무림맹과 신교, 어느 쪽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곳입니다.”
명운이 떠보듯 물었다.
“자네는 이번 정벌의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그냥 묻는 것일세. 편히 대답해도 되네.”
서진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삼 할 정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명운이 말끝을 올렸다.
“대군을 동원했는데도 말인가?”
“워낙 산세가 험해서 무림맹이 죽기를 각오하고 막는다면,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명운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쪽도 피해를 각오하고 밀어붙인다면?”
“그러면 정벌은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밀어붙이면, 손해가 막심하여 보위산에서 진군이 멈추게 될 것입니다.”
명운은 생각했다.
‘서진의 말대로라면, 내 예상보다도 승리가 쉽지 않겠군.’
깔끔한 승리가 아니라면, 장공자 명천에게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었다.
이번 보위산 정벌의 관건은 ‘얼마나 피해를 줄일 수 있는가?’였다.
사흘 뒤.
명운 일행이 신강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돌로 만든 기둥과 상단 사람들을 위한 작은 사원이 서 있었다.
사원에는 승려나 관리인 대신 말라 버린 꽃과 텅 빈 향로가 놓여 있었다.
“대략 이곳부터가 신강입니다.”
명운 일행은 초원의 먼지를 듬뿍 뒤집어쓰고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석하자까지는?”
평우가 대답했다.
“평소에는 열흘 정도 걸리지만, 지금처럼 말을 바꿔 타면서 나아가면 엿새면 갈 수 있습니다.”
“토로번 쪽으로 크게 우회하면 어떻게 되는가?”
평우는 고개를 옆으로 숙였다.
“토로번으로 우회하신단 말입니까? 그쪽으로 가면 닷새는 더 걸릴 겁니다. 한데 왜 그쪽 길을 물으십니까?”
명운이 그의 물음에 답했다.
“짧은 길로 가면 만족의 척후에게 들키고 말 테니까.”
그의 판단력은 노련한 지휘관과 같았다.
뒤에서 듣고 있던 좌조장 악전이 입을 열었다.
“공자님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수가 부족하니, 북쪽으로 크게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명운은 고개를 강하원에게 돌렸다.
“강 총관은 어떤가?”
강하원 역시 명운의 의견에 동의했다.
“저도 그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다만, 닷새가 늘어나는 것을 고려해 저녁에도 한 시진씩 더 걷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면 하루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명운은 고개를 다시 평우에게 돌렸다.
“돌아가는 길로 안내하게. 가능하겠지?”
평우가 지남어(나침반의 일종)를 꺼내며 말했다.
“초원에는 길이 없지만, 방향을 알고 있으니 가능할 것입니다.”
구원군은 텅 빈 사원을 지나 북쪽으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두두두.
그들이 가는 곳에는 먼지와 흙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황량하군요.”
그들은 낮에는 지남어를, 밤에는 별자리를 더듬으며 북쪽으로 나아갔다.
사흘 뒤, 일행은 나포박호라는 거대한 호수에 도착했다.
“나포박호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토로번입니다.”
명운은 물결이 찰랑거리는 호수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흠……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는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해 우회를 결정했지만, 이는 적에게 포위된 삼공자에게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하후문, 종영세, 관흠. 우리가 갈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라.’
같은 시각.
삼공자와 그의 군대는 심각한 상황에 몰려 있었다.
“식량이 거의 떨어졌습니다. 배급을 절반으로 줄이면 열흘은 버틸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무립니다.”
삼공자 명원이 쓰디쓰게 웃었다.
“결국, 구원군은 없다는 말인가?”
그들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매일 같이 전사자가 나오면서 입이 줄었기 때문이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포위망을 뚫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버티기도 힘든 병력으로 포위를 뚫는다고?”
“야음을 틈타면 절반은 빠져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명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다음 날, 해가 뜨면 추격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만족에 비해 말이 모자랐기 때문에 만족에게 추격을 당하면 그것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초원 위에서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할 것이다.’
석기련이 그에게 의견을 물었다.
“공자님,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명원이 굳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곳에서 최후까지 버티다가 마지막 일격을 가할 뿐이다.”
그와 수하들은 최후의 전투를 각오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