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초원의 왕 (5)
토로번.
이 도시가 한족의 세력권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은 한나라 때 일이다.
당시 이름은 고창(高昌)으로, 토로번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몽고 제국의 지배 이후였다.
강하원은 토로번을 보고는 감탄하듯 말했다.
“초원 한가운데 저렇게 큰 도시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명운 또한 토로번의 규모에는 놀랐다.
“대명궁보다도 크군.”
“신교와 토로번은 우호적인 상황입니다. 입성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잘만하면 싼값에 말을 교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토로번에는 입성하지 않을 걸세.”
강하원이 그의 말에 멈칫했다.
“정말로 입성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토로번에 만족의 밀정이 있다면, 우리 움직임을 알려 주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네.”
만족에게 이쪽의 움직임이 알려지면, 북쪽으로 우회한 것이 모두 무(無)로 돌아갔다.
‘북쪽으로 우회하기 위해 지금까지 아껴 왔던 시간을 모두 써 버렸다.’
강하원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는 토로번에 입성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컸다.
‘여기서 말을 바꿀 수 있다면, 하루 정도는 시간을 당길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도 상대의 밀정에게 발각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했다.
“북쪽으로 우회한다.”
명운의 말이 떨어지자 선두에 선 평우가 말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대로 토로번을 우회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이날 저녁.
명운과 구원대는 따뜻한 성벽 안이 아닌 초원에서 추위에 떨며 잠을 청해야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명운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초원의 삭막함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명운은 백호대 이조장 칠랑을 불렀다.
“칠 조장.”
칠랑은 명운의 부름이 자세를 바로 했다.
“부르셨습니까!”
그의 움직임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굳어 있었다.
이는 설원의 혈투를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척후를 뽑아 주게.”
“척후 말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눈이 좋고, 말을 잘 타는 이들로 뽑았으면 좋겠군.”
“얼마나 뽑으면 됩니까?”
“열 명이면 될 걸세.”
“알겠습니다.”
칠랑은 두 손을 마주한 뒤, 이조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잠시 뒤 열 명의 대원과 함께 나타났다.
“이조에서는 이들의 눈이 가장 좋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그대들은 척후로 나서게 될 것이다.”
대원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공자님, 척후가 무엇입니까?”
명운은 화를 내는 대신 부드럽게 말했다.
“척후는 본대보다 앞서 달리며, 앞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보고 알리는 역할을 맡는다. 적을 만나거나 특별한 일이 벌어지면, 싸우지 말고 본대로 돌아와 내게 보고를 하면 된다.”
백호대 이조원들은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명운이 명을 내렸다.
“척후들에게는 각기 두 필의 말을 줄 것이다. 너희는 그 말을 타고 이십 리를 앞서 나가라.”
“존명!”
열 명의 척후가 본대에 앞서 출발했다.
명운은 지금부터는 절대 만족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들키면 우회한 이유가 없게 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우리의 안전도 보장할 수가 없게 된다.’
그는 심호흡하며 강하원을 불렀다.
“강 총관.”
“부르셨습니까?”
“우리는 반 시진 뒤에 출발할 것이다. 모두에게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출발에 앞서 우조장 마진구가 명운을 찾아왔다.
“마진구가 공자님을 뵙니다.”
“무슨 일인가?”
“말 중 이 할 정도가 피로로 인해 속도가 나지 않는 상황입니다.”
명운이 그의 의견을 물었다.
“자네는 이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척후와 본대를 나누었듯 후위를 두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본대의 속도를 유지하려면, 부대를 나눌 수밖에 없다는 말.
명운이 재차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후위를 맡으면 좋을 것 같나?”
“제가 이야기했으니, 제가 후위를 맡도록 하겠습니다.”
후위를 맡는 자는 공을 세울 기회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이에게 맡길 수는 없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청을 허락했다.
“알겠네. 후위는 그대가 맡도록.”
“존명.”
우조장 마진구는 좌조장 악전과 논의를 해 두 조를 다시 편성했다.
그들은 무공이 뛰어난 조를 좌조에 모으고, 무공이 다소 떨어지는 자를 우조로 보냈다.
좌조장 악전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 조장, 미안하군.”
우조장 마진구는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할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작전의 성공일세.”
“대명궁으로 돌아가면, 이번 일을 단주님께 반드시 보고하겠네.”
“악 조장, 그런 말 말고 자네의 공이나 잘 챙겨 두게.”
마진구는 후위로 물러나 본대와 거리를 두었다. 그는 전공에서 손해를 보게 될 터였지만, 낙심하지 않았다.
‘단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전공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칠공자의 성공이다.’
그는 상관인 사마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 * *
굳은 표정의 척후가 목소리를 높였다.
“만족을 발견했습니다!”
명운은 척후의 보고에 기뻐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그는 차분한 태도로 물었다.
“위치는?”
“남쪽으로 이십 리 떨어진 곳입니다.”
“얼마나 있나?”
“천막이 수백 개가 넘습니다.”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만족의 숙영지인가? 아니, 만족 그 자체라고 봐야겠지.’
그는 즉시 본대의 이동을 중지했다. 그리고는 척후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칠조장.”
“예, 공자님.”
“믿을 수 있는 수하를 몇 명 뽑아 남쪽을 경계하라.”
“정찰은 하지 않는 겁니까?”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정보를 알려고 하다가 이쪽의 존재를 알릴 우려가 있네.”
그는 상대에 대해 아는 것보다 이쪽을 감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구원 작전의 성공은 오로지 기습에 달려 있다.’
명운은 적의 허를 찌르지 못하면 승산이 없다고 보았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경계에 나서겠습니다.”
칠랑이 떠난 뒤, 명운이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모였나?”
그의 물음에 강하원이 대답했다.
“후위에 있는 마 조장을 제외한 전원이 모였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인 이들을 살폈다.
‘비조검 석주, 좌조장 악전, 천원대 일조장 서진, 그리고 조광과 강 총관인가? 뭐 이 정도면 되겠지.’
그는 모두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오늘 밤, 야습에 나설 것이다.”
강하원은 명운의 말에 눈썹을 위로 올렸다.
“공자님, 석하자로 돌입하지 않는 겁니까?”
그는 단독 공격은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석하자의 삼공자와 힘을 합쳐도 승산은 절반이 채 안 될 것이다. 하물며 우리 단독으로는…….’
일 할이 채 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계산을 했다.
명운이 그의 물음에 답했다.
“포위망을 뚫고 안으로 돌입한다고 한들 포위를 풀 수는 없을 것일세. 적이 방심하고 있을 때, 치명타를 날려야 하네.”
그의 과감한 작전은 모두의 우려를 낳았다.
이번에는 비조검 석주가 발언했다.
“공자님, 이쪽은 겨우 백입니다. 천이 넘는 만족을 공격했다가 초원 한가운데서 포위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야습을 하는 것이 아닌가? 기습으로 적을 분쇄하면 포위를 당하는 일은 없을 걸세.”
석주는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전쟁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군.’
그는 이런 식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석주 다음으로 의견을 밝힌 것은 좌조장 악전이었다.
“공자님, 차라리 야음을 틈타 석하자에 돌입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삼공자님과 힘을 합치면, 만족도 포위를 풀고 물러날 것입니다.”
명운은 얼굴을 굳혔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전력을 합친다고 해도 만족이 포위를 풀 가능성은 작네. 만족을 분쇄하지 않는 한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일세.”
강하원이 물었다.
“공자님, 야습에 성공하려면 적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고 있네. 그래서 천원대를 선봉에 세울 것일세.”
천원대 일조장 서진은 그의 말에 멈칫했다.
“제가 선봉입니까?”
“그대가 선봉이네. 차봉은 좌조장과 비조검이 맡아 주시오.”
좌조장 악전은 명운의 말에 허리를 굽혔다.
“차봉을 맡겠습니다.”
그와 달리 비조검 석주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었다.
석주는 이번 작전에 비관적이었다.
‘지금의 칠공자에게서는 소년 시절의 총명함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천이 넘는 적을 상대로 백여 명으로 야습이라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다.’
그는 한때 명운을 지지하던 이였다.
그러나 이런 식이면 어떠한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했다.
“강 총관.”
“하명하십시오.”
“그대는 칠랑과 함께 동쪽으로 돌아가 적진을 옆에서 공격하게.”
“알겠습니다.”
명운은 마지막으로 조광과 팽헌충을 불렀다.
“조광, 팽헌충.”
“예, 공자님.”
“두 사람은 본대와 함께 돌입하여 공격이 성공하면, 본교의 비전(飛箭)을 하늘에 쏘게.”
“본교의 비전 말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교의 비전을 보면, 석하자의 아군이 화답할 것일세.”
그는 삼공자 명원의 지원까지 생각하고 작전을 짰다.
‘셋째 형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이쪽만으로 끝을 보아야 할 것이다.’
명운의 작전은 과감함을 넘어 도박에 가까운 것이었다.
모두에 대한 지시가 끝나자 석주가 물었다.
“한데 공자님께서는 어디에서 싸우실 것입니까?”
명운이 대답했다.
“나는 이곳에서 그대들의 승리를 기다릴 걸세.”
석주가 눈을 크게 떴다.
“이곳에서 말입니까?”
“이상한가?”
석주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상하고말고! 제갈공명도 아니고, 공자 중 선봉에 서지 않는 이가 누가 있단 말인가?’
그는 명운이 선봉에 서지 못하는 이유가 그의 무공에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폐관수련의 성과가 부족한 것이다.’
그가 명운에게 되물었다.
“공자님, 선봉에 서시면 큰 공을 세우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왜 그리하지 않으십니까?”
만족 족장이라도 잡는다면 대명궁에 그 이름을 크게 알릴 수 있었다.
명운은 그의 물음에 담담하게 답했다.
“공은 그대들에게 양보하도록 하겠네.”
석주가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공자께서 본진에 남겠다고 하십니다.”
그의 물음에 답하는 이는 없었다.
강하원은 명운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좌조장 악전은 사마진에게 명운의 명령에 절대 복종할 것을 지시받았다.
마지막으로 천원대 일조장 서진은 명운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 인물이었다.
“비조검, 공자님께서는 생각이 있으실 거요.”
그를 말린 것은 좌조장 악전이었다.
악전의 무공은 석주에 비해 떨어진다고 할 수 없었다.
“악 조장, 그대는 대체…….”
천원대 일조장 서진도 그를 말리고 나섰다.
“비조검, 공자님을 믿고 싸워 주시오.”
석주는 그 누구도 자신을 지지하지 않자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공자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석주는 명운 때문에 이번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다 틀렸어.’
모두가 물러간 뒤, 명운은 일조장 서진을 따로 불렀다.
“서 조장.”
“예, 공자님.”
“선봉은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할 것일세.”
말발굽 소리는 잠들어 있는 적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저희만이 아니라 본대도 그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대는 괜찮네.”
“정말 괜찮은 것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들이 도착하기 전에 내가 경계병을 모두 제거할 테니까.”
서진의 목소리가 순간 커졌다.
“예?”
“서 조장, 목소리를 낮추게.”
서진은 바로 목소리를 죽였다.
“공자님께서는 이곳에 계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명운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내가 본진에 있으면 어찌 기습이 성공하겠나.”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대는 돌입에 성공하면,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 적을 습격하게.”
서진이 물었다.
“바깥쪽은 공격하지 말라는 말씀이십니까?”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서 비명이 들려야 혼란이 극대화될 걸세.”
“알겠습니다.”
명운은 한 가지를 더 주문했다.
“승기가 이쪽으로 기울면 만족의 족장을 잡게.”
“족장이라면…….”
“그는 가장 깃대가 높고, 화려한 천막에 머물고 있을 걸세.”
서진이 물었다.
“이미 달아나고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는 달아나지 못할 걸세.”
“공자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혈도를 찍어 둘 걸세.”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서진에게 넘기겠다는 말이었다.
서진의 눈이 보름달처럼 크게 커졌다.
“공자님?”
명운이 손바닥을 세우며 말했다.
“투항한 자가 천원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을 세워야 할 것이네.”
그는 서진의 진급까지 계산해 이번 작전을 짠 것이었다.
이에 서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자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보고 계신단 말인가?’
그는 명운을 달리 볼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돌아가게.”
서진은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
“존명.”
명운은 남은 일행에게 자신이 머물 수 있는 군막을 설치하게 했다.
석주는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찼다.
“쯧쯧쯧, 적이 언제 덮칠지 모르는 곳에 군막까지 펼치는군.”
그의 옆에 선 악전이 말했다.
“비조검, 공자께서는 초전일세. 그 점을 우리는 감안해야 하네.”
“자신이 세운 작전을 믿지 못해서 뒤로 물러난 것이 아닌가?”
“이보게.”
“됐네. 자네와 싸우진 않을 테니까.”
비조검 석주는 이번 작전에 불만이 많았지만, 항명할 생각은 없었다.
‘패하고 돌아와 그 책임을 묻겠다.’
이윽고 초원에 어둠이 내렸다.
명운은 천막 안에서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천막의 뒤를 찢었다.
‘역시 아무도 없군.’
그는 모두의 시선을 피해 남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