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87)
87화 초원의 왕 (6)
전황은 압도적이었다.
천마신교 병사들은 석하자의 오래된 요새에 틀어박혀 있었고, 만족 기병들은 사방을 마음대로 내달렸다.
만족 병사들은 이 싸움이 한 달 이내로 끝날 것이라 말했다.
“겨울이 지나가면 싸움도 끝나겠지?”
“더 길어진다고 해도 봄이 가기 전에는 끝날 거야.”
“마교 놈들 왜 이곳까지 왔는지 모르겠군.”
초원은 예로부터 유목민의 땅이었다.
그들은 천마신교를 비롯한 여러 상단이 자신들의 땅을 빌려 교역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에게 통행세를 받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교대 후에 술이나 하지?”
조금 전까지 그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동료의 대답이 없었다.
“음”
병사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말에서 떨어졌다.
퍼억.
“헉.”
아주 짧은 비명과 함께 병사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와 그의 동료를 말에서 떨어뜨린 것은 명운이었다.
명운은 한 번 더 두 병사의 혈도를 찍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남은 것은 앞에 둘 정도인가?’
만족의 숙영지는 석하자 북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북쪽 경계가 매우 느슨했다.
‘예상대로야. 북쪽 경계는 허술하기 그지없군.’
그는 어둠과 함께 움직였다.
‘저긴가?’
기를 뻗자 앞서 움직이고 있는 두 기병이 느껴졌다.
명운은 속도를 늦추면서 소리를 죽였다. 그의 움직임은 야생 동물들조차도 쉬이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하물며 만족 기병이 그의 기척을 느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팍! 팍!
짧은 타격음과 함께 두 기병이 말에서 떨어졌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군.’
명운이 상대의 혈도를 찍은 것은 그가 적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성인군자라서가 아니었다.
‘검이나 비수를 쓰면 피 냄새가 날 것이고, 사혈을 찍으면 고통 때문에 비명이 커질 것이다.’
그가 점혈을 선택한 것은 한마디로 은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안으로 들어간다.’
명운은 북쪽 경계병을 모두 제거하고는 만족의 숙영지 안으로 잠입했다.
숙영지 안쪽은 밖과 달리 경계병이 전무했다.
‘승기를 잡았기 때문에 방심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남쪽에 경계병을 모두 배치한 것인가? 어느 쪽이든 이쪽에는 유리한 상황이다.’
그는 오늘 야습이 성공하리라 확신했다.
명운은 두 발에 내력을 모은 뒤, 높이 뛰어올랐다.
슉!
그는 허공에 뜬 채 발아래 늘어서 있는 천막들을 훑어보았다.
‘가장 깃발이 높은 곳은…… 저곳인가?’
명운이 주목한 것은 황금색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 군막이었다.
‘깃발의 색이 다를 뿐 아니라 크기도 두 배 이상 크다.’
그는 군막 안에 사람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족장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부하들이 많으면 소리가 밖으로 퍼져 나갈 수 있으니까.’
족장의 부하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주변 군막의 병사들이 모두 잠에서 깨어날 수도 있었다.
그는 그것만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에 적이 많다면,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지.’
명운은 땅으로 내려온 뒤, 황금색 깃발을 향해 움직였다.
‘흠, 역시 족장의 군막인가?’
다른 군막과 달리 황금색 깃발이 꽂힌 군막은 경비병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명운은 입구 반대편으로 돌았다. 그러고는 천막에 손을 가져갔다.
‘우선 안을 살피자.’
그는 천막에 구멍을 내는 대신 기를 뻗어 안을 살피고자 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중원의 말이 천막 안에서 들려왔다.
“공자의 지원 덕분에 손쉽게 이길 수 있었소.”
공자.
이 한마디에 명운은 멈칫했다.
‘공자라고? 이것은 초원의 말이 아니지 않은가?’
군막 안쪽에 있는 이들은 중원의 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명운은 귀를 열었다.
그러자 안에 있는 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이공자께서는 가한을 초원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공자 명각의 수하가 만족의 족장과 만나고 있었다.
“하하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초원에는 만족보다 규모가 큰 부족이 여럿 있었다.
그래서 만족 족장 우루무는 상대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정말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가한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명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명각이 만족과 손을 잡았을 줄이야.’
삼공자 명원의 패퇴는 만족의 힘만으로 이룬 것이 아니었다.
만족 기병들 사이사이에 숨은 명각의 수하들이 내력을 실은 화살로 천마신교 병사들을 저격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실제로 명원을 저격한 것도 명각의 부하였다.
“내가 초원을 손에 넣는다면 이공자 사람들에게는 통행료를 면제하리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겠지. 여기에 더해 군마 삼천 필을 그에게 선물하겠소.”
“그 말씀, 그대로 공자께 전하겠습니다.”
명운은 명각은 역시 명각이라고 생각했다.
‘술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연막이었구나.’
주변을 속이기 위해 연막을 펼치는 것은 비단 명운만이 아니었다.
명각도 형제들과 아버지의 눈을 속이기 위해 술에 취한 척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명각은 역시 만만히 볼 수 없다.’
그는 자신과 최후까지 경쟁하게 될 자가 명각이라 확신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벌써 돌아가시오?”
“삼공자가 야음을 틈타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하하, 그대는 정말 치밀하오.”
명각이 보낸 무인들은 삼공자 명원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포위망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명각의 수하가 우루무의 군막을 떠났다.
‘추격할까?’
추격한다면, 명각의 음모를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니야. 지금 중요한 것은 야습의 성공이다.’
그는 명각의 계책을 자세히 아는 것보다는 만족을 깨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명각을 제압하는 것은 어차피 먼 미래다.’
명운은 우선 만족 족장 우루무를 사로잡기로 했다.
‘안에 누가 있는지 보자.’
그는 양손에서 기를 뻗어 천막 안을 살폈다.
군막 안에는 우루무 한 명만이 있었다.
명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군. 혼자라니.’
우루무가 부하들과 만찬이라도 벌이고 있었다면, 그는 쉬이 그들을 제압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 우루무가 명각의 수하와 밀담을 나눈 덕분에 그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스윽.
내력을 실은 검을 앞으로 내밀자 질긴 가죽이 마치 두부처럼 잘려 나갔다.
명운은 소리를 죽인 채 안으로 들어섰다.
우루무는 안으로 들어온 그를 보고는 크게 놀랐다.
“너, 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팍. 파팍!
명운은 허공을 격한 채 그의 혈도를 찍었다.
“후우…….”
우루무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당황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우루무는 중원의 점혈 무공을 몰랐기에 자신의 몸이 왜 마비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귀신에 홀린 것인가?’
그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 명운이 그의 뒤로 다가왔다.
‘확실히 하는 게 좋겠지.’
명운은 다시 한번 우루무의 혈도를 찍었다.
팍! 팍!
그가 혼혈을 찍자 우루무는 정신을 잃은 채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털썩.
명운은 쓰러진 우루무를 의자로 옮겼다. 그리고는 마치 술에 취해 잠든 것처럼 상황을 꾸몄다.
‘이쯤 하면, 녀석의 부하들이 와도 잠든 줄로만 알 테지.’
이제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늦었지만, 명각의 수하를 추격하는 것, 두 번째는 이곳에 남아 아군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흠…… 명각의 수하를 추격하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야습이 먼저다.’
그는 우루무의 군막을 빠져나온 뒤,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서진이 이끄는 선봉대는 몸을 낮춘 채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들키면 끝장이다.’
상대는 천이 넘는 대군이었다.
경계병에게 발각되는 날에는 도망도 치지 못하고 들판에서 전멸할 것이 뻔했다.
‘그래도 공자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다고 했으니까 믿을 수밖에.’
그는 부하들과 달리 믿는 구석이 있었다.
부조장 종호가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계병이 보이지 않습니다.”
서진이 전방을 주시하며 말을 받았다.
“만족이 남쪽 포위망에 집중하고 있어 북쪽에는 경계병을 두지 않은 모양이다.”
“절호의 기회군요.”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수신호만 허락할 것이다.”
부조장 종호가 수신호로 그의 말을 받았다.
– 알겠습니다.
서진은 수하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뒤, 그는 오른쪽에 쓰러진 경계병을 발견했다.
‘역시 공자님께서 미리 손을 쓰셨구나.’
그는 부하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게 전방을 가리키며 수신호를 보냈다.
– 앞으로 이동하라.
선봉대는 그와 함께 만족의 숙영지로 스며들었다. 그리고는 세 명씩 짝을 이뤄 천막 안에서 자고 있는 만족을 습격했다.
“헉!”
“으악!”
짧은 비명과 함께 피 냄새가 진동했다.
서진은 부하 두 명과 함께 우루무의 군막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어두워서 어디가 어디인지 잘 보이지 않는구나.’
그는 명운처럼 높이 뛰어오를 수가 없었다.
“아악!”
비명 소리가 높아지면서 주변 만족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누구냐?”
“싸움이 난 것인가?”
피 냄새가 짙어지자 몇몇 만족이 무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누구냐?”
“반란인가?”
서진은 그들을 향해 검을 뻗었다.
촤악!
피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서진은 두 부하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서둘러라! 지금 족장을 찾지 못하면 대공을 놓칠 것이다.”
“예, 조장님!”
서진의 속이 바짝 타들어 갈 무렵, 한 줄기 전음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 족장의 군막은 남쪽으로 백여 보 떨어져 있다.
그는 이것이 명운의 전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자님께서 와 계시다!’
서진은 부하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남쪽이다. 족장은 남쪽에 있다!”
그와 두 부하는 가로막는 만족을 베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전진하는 동안 만족 병사들이 계속해서 잠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이야?”
“적인가?”
혼란에 휩싸인 와중에 백호장 한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적의 야습이다!”
그의 외침에 만족 병사들은 비로소 상황을 알게 되었다.
“야습이라고?”
“적이 포위망을 뚫었단 말인가?”
“경계병은 무엇을 했고!”
만족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모이려는 순간, 악전과 석주가 이끄는 본대가 돌입했다.
두두두…….
그들은 말을 탄 채 무기를 높이 들었다.
“남김없이 적을 처단하라!”
촤악!
악전이 검을 휘두르자 만족 병사 한 명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석주는 당황하는 적을 보며 생각했다.
‘설마 기습이 성공했단 말인가?’
그는 악전과 함께 선두에서 검을 휘둘렀다.
“죽어라!”
검에서 뻗어 나온 검기가 만족의 방패를 그대로 관통했다.
“컥!”
악전은 아군과 적이 섞이는 것을 막고자 본대의 방향을 남쪽으로 돌렸다.
“계속 전진하라! 전진하면서 베라!”
그는 만족의 숙영지를 휘저어 그들을 혼란에 빠뜨릴 생각이었다.
명운은 근처 천막 위에서 그들의 지휘를 지켜보았다.
“능숙하군. 내가 나설 것도 없겠어.”
악전의 지휘는 훌륭했고, 야습은 성공이나 다름이 없었다.
조광과 팽헌충도 악전의 뒤를 따르며, 십여 명의 만족 병사를 베었다.
“헌충. 지금이다.”
조광의 말에 팽헌충이 비전을 꺼냈다.
잠시 뒤, 그의 손을 떠난 비전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펑!
짧은 폭음과 함께 하늘에 두 줄기 섬광이 나타났다.
“삼공자가 이걸 보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조광이 말을 몰며 그의 말을 받았다.
“보지 못한다고 해도 할 수 없지.”
그는 혼란에 빠진 만족 병사들을 보며 생각했다.
‘또 성공인가? 공자님의 계책은 신묘하다고밖에는 할 수 없다.’
같은 시각.
석하자의 요새에서 두 줄기 섬광이 관측되었다.
“저 섬광은!”
“본교의 비전이 아닌가?”
경계를 서던 무인들이 급히 석기련을 깨웠다.
“석 대인, 석 대인.”
석기련은 눈을 비비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북쪽에 본교의 비전이 올라왔습니다.”
“본교의 비전이라고?”
“두 줄기 섬광입니다.”
석기련은 이마를 찌푸렸다.
“이 상황에서 누가 그것을 쏜단 말인가? 우리를 끌어내려는 속임수일 수도 있다.”
그가 비전을 의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삼공자의 토벌군은 지난 두 달 동안 네 번을 졌고, 그때마다 상당한 양의 물건들이 적의 손에 넘어갔다.
‘본교의 비전 또한 녀석들의 수중에 넘어갔다.’
석기련은 경계를 강화하라는 명을 내린 채 토벽 위에 올라섰다.
“흠, 아무래도 수상하다.”
“출격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지 않는다.”
결국, 명운이 의도했던 삼공자군의 참전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팽헌충이 쏘아 올린 비전이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아군의 신호다!”
멀리 우회하고 있던 칠랑의 백호대가 그것을 포착한 것이었다.
“지금 돌입할까요?”
칠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이다! 전원 적진을 향해 돌입한다!”
그의 명이 떨어지자 사나운 기병들이 일제히 속도를 높였다.
“돌진이다!”
칠랑이 이끄는 백호대 기병 수십 명은 이제 막 혼란에서 벗어나려 하는 만족의 배후를 강타했다.
“쓰러져라!”
만족 병사들은 뒤에서 나타난 적을 보고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적이 뒤에도 있다!”
“포위다! 녀석들이 우리를 포위했다!”
명운은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칠랑도 제법이군.”
그는 야습이 완벽하게 성공했음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