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정보원 노유(路游)
살수가 꼭 밤에만 사람을 죽이러 다녀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이처럼 벌건 대낮에 머리통을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었다.
이런 경우는 대개 광기가 극에 달했든지 또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든지 둘 중 하나였다.
초휴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식겁한 건 풍만루 정보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이곳을 이토록 빨리 찾아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때 주점 안의 다른 무사들도 멀찍이 뒤에 숨어서는 감히 고개도 못 내밀고 있었다. 공연히 이 싸움에 말려들었다가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초휴가 서슬이 시퍼렇게 다가오는 것을 보자, 우 방주의 온몸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초휴의 악명은 그도 익히 알고 있었다. 자그마치 천 명도 넘는 사람들의 피를 손에 묻혀 용호방에 오른 섬뜩한 존재가 아닌가. 우 방주도 초휴와 같은 내강경이긴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세 초식이나 제대로 받아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우 방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뒤룩뒤룩 살이 찐 그의 몸이 이때만큼은 새처럼 빨라서, 어느새 저 멀리 삼십장 밖까지 가 있었다.
경공술을 익힌 적이 없는 초휴였지만 강기를 두 다리에 응집시키자 그 폭발력은 가히 놀라웠다. 이는 그가 수련한 내력이 매우 심후하고 기본기도 탄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윽고 핏빛 칼날이 칼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짙은 살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 살기는 저 멀리 앞서가던 우 방주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 살벌했다. 살기가 바로 등 뒤에까지 이른 찰라, 우 방주는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왼손으로 초휴를 공격했다. 그 손놀림이 어찌나 빨랐던지, 어떤 게 실체고 어떤 게 잔영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손이 용수철처럼 길게 늘어나는 것이 놀라웠다. 불쑥불쑥 내뻗는 그의 일장은 홍수도가 그의 몸에 이르기도 전에 초휴의 단전을 파괴할 수도 있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우 방주는 ‘탐운수(探雲手)’라 불리는 이 절기를 무려 이십 년간이나 수련해왔다.
그 결과, 본능처럼 자유자재로 시전할 만큼 궁극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러나 초휴는 굳이 피할 생각도 안 했다. 강대강의 맞대결을 택한 그는 천절지멸대자양수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냈다.
어두운 자줏빛이 감도는 초휴의 대자양수와 우 방주의 탐운수가 맞부딪히며 강기가 폭발한 순간 굉음이 터져 나왔다. 자양마염(紫陽魔焰)을 오롯이 손바닥으로 받아낸 우 방주는 얼마 못 가서 참담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비명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초휴의 눈동자가 끝없는 소용돌이처럼 변하더니 상대의 의식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우 방주는 자기도 모르게 검은 심연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극심한 통증으로 정신 줄을 놓다시피 한 상태여서 순식간에 이혼대법에 걸려든 것이다.
무념무상의 세계에 갇힌 그는 자신이 비명을 지르던 것마저 잊어버렸다. 최면상태가 길게 지속되진 않았지만, 초휴가 자신의 절기인 쾌도술(快刀術)을 펼치기엔 충분했다.
핏빛 살기가 짙게 풍긴 순간, 우 방주는 정신이 돌아오기도 전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건 원수의 수급을 가져다 선친의 영전에 바치고자 한 의뢰인의 요청에 따른 조치였다. 물론 조건이 가외로 붙으면 좀 성가신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큼 웃돈을 더 얹어주겠다는데야,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초휴가 기세도 당당하게 우 방주의 수급을 들고 사라지자, 숨어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우 방주가 인심을 잃긴 했지만, 그래도 청양부에서 거물이라면 거물인 존재였다. 어쨌든 내강경의 고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초휴의 칼날에 이토록 쉽게 목숨을 잃을 줄이야. 초휴는 그를 죽이는 데, 닭 잡을 만큼의 힘도 쓰지 않은 듯 보였다. 이처럼 가공할 만한 실력을 엿볼 수 있었던 것만도 청양부 사람들에게는 신세계를 경험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특히 풍만루 정보원은 자신의 직업상, 그 급박한 순간에도 머리만은 바삐 돌아갔다.
‘저 정도 실력이면 아무래도 용호방 십팔 위는 너무 박한 순위야. 팔 위라면 모를까.’
이런 생각을 한 그는 미친 듯이 초휴를 뒤쫓기 시작했다.
수급을 들고 뚜벅뚜벅 걸어가던 초휴가 등 뒤의 기척을 느끼고 돌아섰다. 초휴와 시선이 맞부딪힌 순간, 정보원은 자기도 모르게 움찔 놀라서 멈춰섰다.
“아까 이 머리의 주인과 거래하던 자로군. 그런데 나를 왜 따라온 거지? 이 뚱보를 위해 복수라도 할 생각인가?”
초휴의 기세에 잔뜩 주눅이 든 정보원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대인께서 오해하신 모양인데, 저는 그 뚱보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대인께 몇 가지 여쭤볼 말이 있어서 말입니다.”
“뭘?”
초휴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정보원은 그의 이런 반응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소생은 노유(路游)라고 합니다. 풍만루 대산군 분타 소속의 삼급 정보원입지요. 대인께서는 최근에 용호방 십팔 위에 오르셨습니다. 그러나 자료가 충분치 않더군요. 예를 들어 대인께서 주로 쓰시는 무공의 종류나 출신 내력 같은 것 말입니다. 혹시 소생에게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러자 초휴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며 핀잔을 주었다.
“무사에게 있어 무공은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와도 같다. 당신 같으면 비장의 무기를 함부로 남한테 공개할 수 있겠나? 세상이 다 알도록 용호방에도 버젓이 올리고?”
“대인께서 소생의 말을 오해하셨군요. 풍만루에서는 그저 대인의 무공 이름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이미 남들 앞에 공개된 무공이라면 비장의 무기라고 하기에도 좀······. 그리고 대인의 출신 내력은 제가 선택해서 듣기 좋은 것으로만 골라 보고하겠습니다.”
“그러면 나한테 어떤 이득이 있지?”
“그야 대인의 명성이 더 빛이 나겠지요. 용호방에 오른 내용도 더 근사해지고요.”
노유가 잠시 망설인 끝에 이렇게 대답하자 초휴가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유명해지면 그만큼 위험도 뒤따르기 마련이지. 살찐 돼지가 잡아먹힐까 봐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그런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런데 말이야, 일전에 무림에서 내가 추격당할 때, 풍만루도 한몫을 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러자 노유가 바짝 겁을 먹고 대답했다.
“대인, 그 당시 대인의 정보를 무림에 넘겼던 것은 임중군 지부라서 저와는 무관합니다. 게다가 풍만루는 그저 정보만 사고팔 뿐, 대인을 추격하는 일 자체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요. 정보를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저희는 정보를 팔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게 저희의 일이니까요. 청룡회도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까. 청룡회 얘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인데, 풍만루는 간혹 청룡회의 일을 돕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청룡회에서 목표물의 행방을 놓쳤을 때, 풍만루에 정보를 사러 오기도 하니까요. 저희는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습니다. 그저 중립을 지킬 따름이지요. 이건 강호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한번 넘긴 정보는 재탕해서 제삼자에게 넘기는 일은 결단코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대인의 정보에 대해서도 절대 비밀에 부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군요.”
노유의 장황한 설명에 초휴가 눈썹을 찡그려 보였다. 사실 풍만루라는 조직에 대해 줄곧 흥미를 느껴왔던 건 사실이다. 예컨대 지난날 무림의 추격을 받을 때만 해도 풍만루 사람은 그림자도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도 저들은 이미 그의 행적을 꿰뚫고 있었다는 점이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수완도 풍만루만의 비장의 무기인 셈이니, 그가 물어본다고 해서 선뜻 가르쳐 줄 리 만무했다.
초휴는 더 이상 노유와 말을 섞을 필요를 못 느꼈다.
“용호방에는 관심 없다고 했잖나. 어서 꺼져!”
초휴가 자신을 죽일 의사는 없어 보이자, 노유는 용기를 내어 종이 한 장을 그에게 내밀었다.
“대인, 여기 적혀 있는 게 소생의 주소입니다. 저와 연락하실 수 있는 여러 방법도 여기에 있고요. 만약 정보가 필요하시면 언제든 저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풍만루의 정보는 단연코 정확하고 믿을 만하거든요. 그래도 의심이 들면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세요. 제가 장담하건대, 누구나 다 저와 똑같은 말을 드릴 겁니다.”
노유가 자신만만하다는 듯이 가슴을 탕탕 쳐 보이자 초휴는 종이를 받아들었다. 이를 본 노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초휴는 무수히 많은 살인을 저질러온 살수다. 남들 같으면 그의 근처에 감히 다가가지도 못할 판에, 노유는 이 어려운 일을 넉살을 부려가며 해내었다.
노유는 일에 있어, 상대를 선과 악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저 모두가 자기의 정보를 사가는 고객이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라고 생각했다. 초휴 같은 실력자에게 정보를 고정적으로 팔 수만 있다면 이건 대박감이다. 그 치사하고 쪼잔한 우 방주보다 씀씀이도 화통할 것 같았다.
노유와 헤어진 초휴는 청룡회로 돌아와 임무를 완수했다는 보고를 했다. 근래에 초휴는 계속 이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무공을 수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급적 실전을 많이 치르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무공을 좀 더 몸에 자연스럽게 숙달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혼대법의 경우에는 상대와 끊임없이 정신력을 겨루는 상황에서 수련해야 그 위력이 배가될 수 있었다.
일찍이 북릉부에서는 이혼대법으로 삼노야의 마음에 살짝 영향만 미쳤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 방주를 최면상태에 이르게 할 만큼, 그의 정신을 강력히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리 긴 시간 동안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무사에게 있어 ‘순간’이란 상대의 목숨을 빼앗기 충분한 시간일 터였다.
임무를 성공리에 마친 대가로 수련자원을 챙긴 그는 곧바로 수련에 들어갔다. 그런데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려서 나가보니, 뜻밖에도 화노와 랑왕이 와 있었다. 그들이 자신을 찾은 것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진 건 어쩔 수 없었다.
평소 청룡회 살수들이 서로 친밀하게 지낼 기회가 없다시피 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천죄 분타에 워낙 일손이 달리니, 웬만해서는 다른 분타처럼 임무를 놓고 다툴 일이 없다는 정도랄까.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뿐, 개인적으로 교류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두 분이 어쩐 일이오?”
화노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에 나와 랑왕이 함께 사급 임무를 맡을 계획이야. 그런데 이게 말이 사급이지, 사실은 오급이나 다름없더라고. 목표물은 내강경 여덟 명인데 의뢰비 수준은 오급에 가까워. 완전히 남는 장사라는 거지. 그런데 우리 둘만으로는 힘이 부족하니, 초 형도 합류해주면 좋겠어. 우리 셋이 임무를 완수하면 초 형이 의뢰비의 사할을 갖는 조건으로 말이지. 나머지는 우리 둘이서 삼할씩 가지는 거지. 어떻게 생각해?”
초휴가 곰곰이 따져보니, 오급 의뢰비의 사할이라도 우 방주를 죽였을 때 챙긴 의뢰비의 두 배는 될 수준이었다. 이처럼 여럿이서 힘을 합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청룡회에서는 흔한 경우였다.
게다가 동업자들의 주제 파악 수준이나 상황판단력도 이만하면 쓸 만했다. 자기들의 실력이 초휴보다 떨어지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고 시작하니, 앞으로도 일이 순탄하게 진행될 것 같았다.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겠군. 그렇게 하지.”
“좋아. 그럼 우리 셋이 가서 타주 대인께 보고를 드립시다. 타주 대인의 승낙만 떨어지면 곧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하자고.”
“이런 일에도 타주 대인의 승낙이 필요하오?”
초휴가 고개를 갸웃하자 화노가 대답했다.
“단독 임무는 볶아 먹든 삶아 먹든 타주 대인이 관여를 안 하시지. 하지만 이번처럼 집단으로 움직일 때는 먼저 타주 대인의 명을 받든 다음 행동해야 해. 그러지 않고 마음대로 했다가는 금기를 어긴 셈이 되거든. 예전에 그런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자의 말로가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