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30)
1030화 살인쯤이야
그러나 조량옥이 초휴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에게 너무 뚜렷하게 적의를 보였던 탓에, 임봉무는 조량옥의 말을 전혀 믿어주지 않았다.
“사형, 좀 어른스럽게 굴어요. 우리 두 사람 간의 일에 남까지 끌어들이지 말란 말예요. 초 선배님은 이제 우리 구봉검종의 객경이에요. 또 그분에 대해 나쁜 말을 하면 아버님께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어요!”
정색하며 쏘아붙인 임봉무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 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조량옥은 성질이 나서 코웃음을 쳤다.
“내 말을 안 들었다간 크게 후회하고 말걸!”
* * *
다음 날 아침, 초휴는 일어나자마자 구봉검종의 장경각(藏經閣)에 가서 책들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물론 구봉검종의 무공을 보려는 건 아니었다. 구봉검종의 무공이 그리 하급은 아니지만, 고급이라고 쳐 주기도 어려웠다. 초휴로서는 공짜로 준다 한들 읽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초휴가 보고 있는 것은 대라천에 관한 상식과 역사였다.
초휴는 대라천의 옛 역사는 아마 감춰져 있으리라 생각했다. 대라천 사람들의 조상이 한 일은 그다지 명예로운 것이 못 되지 않는가.
다른 세계에서 목숨 걸고 도망쳐 나온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정함과 정의로움은 헌신짝처럼 내버리지 않았던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는 해도 결코 떳떳한 일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대라천에 관한 기록에는 그 사건이 아주 자세하게 쓰여 있었다.
상고 시대에는 온 세상이 동서남북 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라천에 온 후에도 그 지명을 그대로 썼다.
대라천의 지형은 하계와 완전히 달랐음에도 그랬던 것은,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몇몇 군이나 부의 이름도 예전 세계의 지명에서 따왔다.
그리고 사역 한가운데에는 대라신궁이 있었는데, 대라신궁은 대라천 전체의 중심이었다. 용맥이 있는 곳이자 상고 시대 무사들이 공간을 뚫고 대라천에 처음 도착한 지점이었다.
대단히 중요시되는 곳으로, 절정급 대문파 몇몇이 손을 잡고 독차지하고 있었다. 십 년마다 각 대문파에서 자격을 갖춘 자를 선발해서 대라신궁에 들여보내 수련시켰다.
이 모든 이야기가 대라천의 역사에 상세히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독고유아와 영현기가 싸웠던 곳에서 튀어나온 대라천 사람이 조상의 땅 어쩌고 떠든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는 그러다가 방청람의 손에 죽었다고 했다. 지금 보니 대라천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조상의 땅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라천 사람들은 조상의 땅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모르는 듯했다. 적어도 구봉검종에 남은 기록에는 그런 말은 없었고 상고 대겁난 이전의 하계가 어땠는지만 적혀 있었다. 조상의 땅은 상고 대겁난으로 사라졌다고 했으니, 그 후에 산목숨은 남지 않았노라고 암시하는 셈이 아닌가.
초휴는 지금의 대라천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대라천 말도 유창하게 익혔다.
지금까지는 임봉무와 임애재도 그의 이상한 말투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깊은 산 속에 살면서 사람과 말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말투를 바꿔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의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초휴는 그렇게 장경각에 며칠을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자 임애재는 좀 불안해졌다. 그가 초휴를 객경으로 삼은 것은 구봉검종의 세력을 키우기 위함이었지, 유생처럼 공부를 시켜줄 목적에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초휴는 아예 장경각에 처박혀서 나올 줄을 모르지 않는가.
임애재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장경각에서 나오라고 청했다. 하지만 초휴는 마땅찮은 기색이었다.
“임 종주, 저는 오래도록 숲에서만 살았습니다. 바깥 상황을 좀 알아야 할 게 아닙니까. 아직 못 본 책이 한참 더 있는데 왜 나오라고 재촉하십니까?”
초휴는 그간 정말 책만 읽고 있었다. 대라천의 만 년 역사를 어떻게 며칠 사이에 다 읽고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라고 이런 걸 읽는 게 즐거워서 책에 파묻혀 지내는 게 아니었다. 대라천의 역사 속에서 여러 세력과 종문이 꾸려지는 방식, 풍격 등을 알아내는 게 목적이었다.
며칠 내내 읽어본 결과, 초휴는 대라천 사람들을 한마디로 평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구식이었다. 구식이 강한 것은 아니고, 좋다는 뜻도 아니다. 하지만 꼭 나쁘다는 법도 없다.
대라천의 전승은 상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 대라천의 종문 중 절반 이상, 정확히 말해 팔 할은 상고 시대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초휴의 가짜 신분인 고존의 전승 역시 상고 시대부터 내려온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무려 일만 년이 흐르는 동안, 대라천에서 새로 떨쳐 일어선 세력은 이 할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하계는 정반대니 말이다. 일만 년 넘게 전승이 이어진 세력은 매우 드물었다.
초휴는 이런 상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대라천의 각 세력은 너무 강하고 굳건했다. 그리고 대라천 무사들로서도 목숨 걸고 붙어 보겠다는 마음이 별로 없다 보니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싶었다.
이것은 고작 며칠 동안 살펴보고 내린 결론에 불과했다. 더 보기도 전에 임애재가 그를 불러낸 것이다.
초휴를 바라보며 임애재는 쓴웃음을 지었다.
“초 형제, 계속 그렇게 책만 보는 사이에 우리 구봉검종이 사라질지도 모르오. 근래 우리 구봉검종에는 무수한 골칫거리가 연달아 밀려들고 있소.”
초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초 형제도 이미 아는 일이지만, 구봉검종과 가까웠던 방림군의 몇몇 종문이 우리의 천절검전을 노리고 있소. 그래서 자꾸 시비를 걸어온다오. 본래 나는 그들과 천절검전을 공유하기로 약속했었지. 하지만 그들은 파렴치하게도 내 딸을 죽이려 들었으니, 나도 더는 원만히 타협할 생각이 없소. 요 며칠 동안 그들은 방림군을 헤집으며 우리 구봉검종의 사업을 하나하나 때려 부수고 있소이다. 빨리 해결책을 만들지 못하면 그들은 구봉검종을 한 덩이씩 먹어 삼킬 것이고, 결국 우리 구봉검종은 사라지게 될 거요!”
초휴는 괴이한 소릴 듣는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 일에 굳이 해결책을 생각해 내야 합니까?”
임애재는 더 괴상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그럼 생각할 필요가 없단 말이오?”
초휴는 담담히 말했다.
“그들이 종주의 천절검전을 노린다고 하셨지요. 지보를 도둑질하려 했으니 재물을 빼앗아가려는 원수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종주가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하나뿐인 따님까지 죽이려 들었습니다. 가족을 죽이려 한 원수지요. 이제는 조금씩 구봉검종을 갉아먹어 멸문하려 들고 있습니다. 멸문지화를 일으키려는 원수가 아닙니까. 저들은 종주의 재물을 빼앗고 가족을 죽이고 종문을 멸망시키려 한단 말이죠. 정수리에 똥만 안 갈겼다 뿐입니다. 이 와중에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요?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이 마땅하지, 그것 말고 무슨 방법을 생각한단 말입니까?”
임애재는 초휴의 말에 울컥한 듯했으나 할 말이 별로 없었다.
“나도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는 걸 왜 모르겠소. 하지만 목숨을 걸어 봐야 이길 수가 없단 말이오. 한 곳이라면 또 모르지만, 자그마치 세 문파가 손잡고 나섰으니 무슨 수로 싸우겠소?”
초휴는 손에 들었던 책을 내려놓고 담담하게 말했다.
“전에는 싸울 수 없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제가 객경으로 있잖습니까. 그래도 안 된단 말입니까?”
그 말에 임애재는 비로소 낯빛이 밝아져서 손을 비볐다. 그는 바로 이 말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는 모두 초 형제에게 맡기지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손을 쓰면 좋겠소? 일단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죽이는 데에 그리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손을 들어 칼로 치면 그만입니다.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지요. 저는 사람을 죽일 때, 복잡하고 귀찮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임 종주는 내가 출수한 뒤 휘하를 이끌고 와서 뒷수습이나 해 주시면 족합니다.”
초휴의 태연자약한 모습에 임애재는 다소 놀랐으나, 별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 담담한 말투에서는 자신감만이 아니라 농후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초휴가 일부러 살의를 비친 게 아니라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것이었다.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초휴는 줄곧 산속에서 은거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기껏해야 요수(妖獸) 같은 것이나 죽여 보았을 텐데, 어떻게 이처럼 강대한 살기를 지니게 되었을까?
그러나 임애재는 그런 생각을 잠깐 했을 뿐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초휴 자신의 말에 의하면 그는 도불마 삼맥의 무공을 모두 익혔으나 마도 무공에 가장 정통하다고 했다. 마도 무공은 극단적으로 어둡고 음침하며 혈살의 기운도 가득 모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초휴가 이런 살기를 지닌 것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이곳에는 독고유아가 없기 때문인지 대라천 무사들은 마도 무공에 별 편견이 없었다. 마도 무공을 수련하는 무사를 좀 싫어하는 정도였다.
아무래도 마도 무공은 음침했고 마공을 수련하는 무사도 비교적 극단적이었으니까. 살인을 일삼고 성질도 비뚤어졌다.
그러나 좀 꺼리고 싫어할 뿐, 하계처럼 툭하면 마도를 제거하고 정의를 세우자고 설치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 보면 하계에서 독고유아의 존재는 그야말로 마도 일맥을 최절정까지 끌어올린 동시에 바닥까지 처박은 것이기도 했다.
방림군 장하파 근처의 숲속에 구봉검종의 수백 명 정예가 집결했다.
구봉검종 무사들은 모두 신기한 기색이었다. 구봉검종 같은 종문은 굴기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파와 치고받고 분쟁을 겪기 마련이다. 그런 것에는 그들도 익숙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무 준비도 없이 다짜고짜 쳐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간단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 행보였으니,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임봉무는 초휴 뒤에 서 있었다. 그녀는 초휴를 믿었다. 제라산맥에서 초휴가 순식간에 진단경 무사 다섯을 죽인 위세를 보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깊이 믿고 있었다.
조량옥은 임봉무 곁에서 경계하는 얼굴로 초휴를 보고 있었다. 직감이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초휴는 절대 선량한 자가 아니다. 지금은 구봉검종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는지 몰라도, 실제로는 분명 음흉한 속셈을 품고 있을 것이다.
“임 종주, 장하파에 대해 대략적이라도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초휴가 임애재에게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잊어버릴 뻔했구려. 싸우기 전에 상대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어야 했는데.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니 말이오.”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에서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그저 제 손에 죽을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가 궁금해서 말이죠.”
임애재는 말문이 콱 막혔으나 헛기침을 했다.
“장하파의 내력은 우리 구봉검종과 매우 비슷하오. 구봉검종의 선조는 북역 현천경에서 왔고, 장하파 장문 방장하(方長河)는 남역의 절정급 대문파 전무신종(戰武神宗) 출신이오. 방장하는 전무신종에서 높은 사람의 미움을 샀다고 합디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가 쫓겨났다더군. 막 방림군에 와서 자리를 잡을 무렵에는 구봉검종에 이것저것 구차한 부탁을 하기도 했지. 그런데 인제 와서 은혜를 저버리고 감히 내 딸을 죽이려 하다니!”
초휴는 임애재의 격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아래턱을 만지작거리며, 대라천 사람들은 일을 참 괴상하게 처리한다고 생각했다.
절정급 대문파에서 잘못을 범한 제자를 처리한다면서 죽여 없애는 법이 없지 않은가. 심지어 전수해준 무공을 도로 거두지도 않고 종문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끝이었다.
옛정을 생각해서 그러는 것일까? 쫓겨난 제자가 원한을 품고 나중에 보복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드나?
어쨌거나 초휴라면 그런 식으로 후환을 남기지 않을 터였다. 하계의 다른 종문 역시 죽이기까지는 안 해도 무공은 거두어 갔다.
하지만 대라천은 다른 모양이다. 어차피 그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초휴는 손짓하여 사람들을 이끌고 곧장 장하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