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35)
1035화 놓아주다
굉음이 울린 순간 문동래 일행은 더 버티지 못했다. 발아래 바닥이 조각나 무너져서 모두 일 층으로 떨어졌다.
초휴가 그들에게 다가와 담담히 말했다.
“나는 남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너희를 내려오게 했다. 그리고 방금 나더러 어디서 온 놈인지 알게 뭐냐고 한 자가 누군가? 이렇게 왔으니 어디서 온 놈인지 제대로 보거라.”
그 순간 다들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방림군 모두가 초휴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나, 구봉검종 사람들 외에는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 세 문파를 멸문할 때 너무 속도가 빨라서 다들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죽었던 것이다.
게다가 초휴는 지금까지 계속 구봉검종에 머물며 외출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초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것은 구봉검종 사람들뿐이었다. 조금 전까지 문동래는 고존의 전인이 어쨌다는 거냐며 실컷 비아냥댔으나, 막상 초휴가 눈앞에 나타나자 겁이 나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진화련신의 중년 무사 하나가 길 저편에서 다가왔다. 그는 상황을 보더니 안색이 살짝 변해 얼른 다가와서 공손히 예를 올렸다.
“고존의 전인이신 초 공자 되십니까? 물정 모르는 어린 것들이 술을 마시고 헛소리를 늘어놓았군요. 부디 초 공자께서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급히 달려온 진화련신 무사는 몹시 저자세였다. 너무 저자세라 초휴가 뭐라 꾸짖기가 뭣할 정도였다.
초휴는 그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신 분이오?”
중년 남자가 웃었다.
“저는 부산(富山) 주가(周家)의 가주 주방(周放)입니다. 철딱서니 없는 아들놈이 뭣도 모르고 저들과 어울린 모양인데 초 공자께서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사실 나는 남한테서 따지지 말고 넘어가라는 말을 듣는 걸 아주 싫어하오. 당사자가 아니니 이래라저래라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셈이 아니겠소? 그럼 저자에게 따지지 말고 당신과 따져보면 되겠소?”
중년 남자의 낯빛이 굳어졌다. 그러나 초휴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나 초휴도 그리 꽉 막힌 사람은 아니오. 당신 아들이 말을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처벌을 하겠소.”
그 말에 주방이 한시름 놓으려는데 초휴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말을 잘못했으면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게 온당하겠지. 여기 문풍각 놈처럼 말이오. 이자는 내가 잡아두겠소. 당신은 문풍각과 잘 아는 사이일 듯하니 가서 전하시오. 문풍각에 있는 모든 자료와 각종 서적을 전부 구봉검종에 넘기라고. 그러면 아들은 무사할 거라고 말이오. 사소한 잘못이라도 제대로 벌해야 교훈을 얻는 법이니까.”
주방은 저도 모르게 안색이 변했다. 초휴의 말은 문풍각의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다른 문파라면 설령 초휴가 무공을 달라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사람만 남아 있으면 재건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문풍각의 정보나 자료는 몇백 년의 수집으로 축적한 것인지라 그들의 명줄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을 전부 초휴에게 내줄 바에야 문풍각을 해산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주방이 뭐라 말해 보려는데 초휴가 으름장을 놓았다.
“주 가주, 이건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그저 말만 전하면 그만이오. 그 정도 일쯤이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듯한데?”
초휴의 찌르는 듯한 눈빛에 주방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생겼으니 초휴도 더는 구경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문동래는 임봉무가 끌고 오게 해서 구봉검종으로 돌아갔다.
초휴가 떠나자 주가 공자가 비로소 투덜거렸다.
“고존의 전인이라면서, 너무 제멋대로에 속이 좁은 것 같습니다. 문 형이 고작 말 몇 마디 나쁘게 했다고 문풍각의 명줄을 내놓으라니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방은 그의 따귀를 갈겼다. 주가 공자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맞아본 일이 손에 꼽을 정도였던 것이다.
“망할 놈아, 입 다물지 못하느냐! 명심해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함부로 떠들면 안 된단 말이다! 다른 사람이 제멋대로건, 속이 좁건 네가 왈가왈부할 자격이 되는 것 같으냐? 네 입이나 제대로 간수해라!”
아버지의 엄숙한 얼굴에 주가 공자는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주방은 초휴가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산에서 비가 몰려오니, 방림군의 평화도 끝이 나려나 보다.”
방림군은 오랫동안 조용했다. 방림군 무사들의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다들 실력이 엇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다툼이 일어 봐야 작은 소동에 불과했고 방림군을 통틀어 이삼백 년 동안 멸문지화가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초휴가 나타나더니 그 강대한 힘으로 방림군의 평화를 완전히 깨부수고 있지 않은가. 이제부터는 모두가 몸을 사려야 했다.
구봉검종에 돌아온 초휴는 임봉무를 시켜 문동래를 적당한 곳에 가둬놓으라 하고 다시 기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조량옥은 초휴가 임봉무가 함께 돌아오자 또 질투로 속이 끓었다. 그러나 임봉우에게 끌려오는 문동래를 보자 안색이 변했다.
임봉무는 문동래의 무공을 봉인하고 사람 없는 밀실에 가둬놓았다. 조량옥이 기회를 틈타 밀실에 들어가자 그를 본 문동래가 흥분해서 외쳤다.
“조 형, 나를 좀 살려주게!”
구봉검종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조량옥은 사실 문동래와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 먼젓번 임봉무와 문동래의 다툼도 기실은 조량옥이 뒤에서 사주해서 일어난 것이었다.
조량옥은 임봉무가 자신을 외면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문동래를 시켜 그녀의 평판을 깎아내리게 했던 것이다.
그런 뒤에 자신이 나서서 임봉무를 위로하고, 나는 절대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 말해줄 셈이었다. 하지만 생각 외로 일이 커지는 바람에 자신이 수습할 범위를 넘어버렸다. 해서 임애재까지 나서고서야 해결되었던 것이다.
조량옥은 다급하게 물었다.
“문 형, 이게 무슨 일이야? 어쩌다 여기 갇히게 된 건가?”
문동래가 우울하게 말했다.
“초휴 때문이지 왜겠어! 고존의 전인이라고 잘난 체를 하면서 속은 뭐같이 좁아터졌지 않나. 몇 마디 듣기 싫은 말을 했다고 그에게 끌려와서 여기 갇혔네. 게다가 아버님더러 문풍각의 모든 자료와 나를 맞바꾸자고까지 했단 말이네. 우리 문풍각의 명줄을 끊겠다는 거지!”
조량옥이 미간을 찡그렸다.
“초휴는 뭔가 수상한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자야. 하필이면 그자의 비위를 거스르다니 일이 고약하게 되었군. 구봉검종 대사형인 나조차 그를 피해 다녀야 하는 상황인데.”
문동래가 이를 악물었다.
“일단 나를 풀어주게. 돌아가서 아버님께 말씀드려 군수 대인께 중재를 부탁해야겠어. 그자가 다른 사람이야 무시할지 몰라도 군수 대인한테야 막 나가지 못할 테지.”
풀어달라는 말에는 조량옥도 좀 망설여졌다. 어쨌거나 초휴가 잡아 온 사람인데 자기 멋대로 풀어주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완전히 초휴의 눈 밖에 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조량옥이 망설이자 문동래가 코웃음을 쳤다.
“조 형, 우리가 벗한 세월이 얼마인데 날 모른 체 할 셈은 아니겠지? 내가 저번에 얼마나 큰일을 해 주었는데 그러나. 판단을 잘해야 할 걸세. 먼젓번 일을 자네 사부와 임봉무가 알게 되면 어찌 될 것 같나?”
그 말에 조량옥의 안색이 변했다. 그때는 질투로 마음이 가득 차서 도가 지나친 짓을 했다. 만일 사부와 사매가 자신이 한 짓인 걸 알게 되면 구봉검종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다가 문득 말했다.
“자넬 감금한 건 초휴 혼자 결정한 것이고, 사부님은 모르시는 일이지?”
문동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초휴가 날 을러댔고 자네 사부님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 그러니 모르시겠지.”
조량옥이 눈을 굴렸다.
“알았어, 풀어주지. 하지만 반드시 자네 아버님더러 군수 대인께 찾아가서 초휴를 막아 달라고 하게.”
문동래가 콧방귀를 뀌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말래도 그렇게 할 거니까. 이미 초휴와 틀어졌으니 앞으로 방림군에서 고개 들고 다니려면 어떻게든 그자를 눌러 놓는 수밖에 없어.”
조량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평범한 구봉검종 제자의 옷을 가져와 문동래에게 입한 다음 그를 데리고 나갔다.
구봉검종 같은 종문에서 언제 사람을 가둬나 봤겠는가. 제대로 된 감방도 없었다. 그를 감금한 밀실은 구봉검종 제자들이 폐관 수련할 때나 쓰던 곳이었다. 대사형인 조량옥이 문동래를 데리고 나가는 거야 어려울 게 없었다.
* * *
문동래를 내보낸 뒤 조량옥은 고자질하러 사부한테 갔다. 임애재는 그를 보자 온화하게 웃었다.
“량옥이구나. 무슨 일로 왔느냐?”
기실 그는 조량옥을 퍽 아꼈다. 어쨌거나 십여 년을 가르친 제자 아닌가. 그리고 조량옥은 줄곧 얌전하고 어른스러운 청년인지라 그는 조량옥을 사위로 삼을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조량옥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사부님, 초휴 그자가 우리 구봉검종의 근간을 망치려 합니다!”
임애재는 미간을 찌푸렸다.
“량옥아, 함부로 말하지 마라. 초 형제는 구봉검종의 객경이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구봉검종을 위한 것이야. 이렇게 뒤에서 그를 험담하는 것을 남들이 알면 무어라 하겠느냐?”
조량옥은 속이 타들어 갔다.
“사부님, 초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십니까? 문풍각의 문동래를 잡아 와서 문풍각더러 모든 자료와 기록을 다 내놓으라고 협박했습니다. 문풍각의 명줄을 끊겠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렇게 제멋대로에 행패를 부리고 다니면 결국 그 원한은 모두 우리 구봉검종에 쏟아질 겁니다. 사부님, 문풍각 처지에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남에게 그런 협박을 받으면 목숨 걸고 덤비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제가 그를 발견해서 문동래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일이 커져서 군수 대인에게까지 흘러가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임애재는 이마를 탁 쳤다. 그간 그도 좀 들뜨는 바람에 군수를 잊고 있었다.
군수는 방림군 일에 세세하게 관여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신고가 들어오지 않으면 당연히 조사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다급해지면 온갖 이득을 갖다 바치며 군수에게 중재해 달라고 청할 게 아닌가. 그러면 구봉검종으로서도 어쩔 수 없게 될 터였다. 초휴가 고존의 전인이라지만 군수의 배후에는 일만 년의 전승을 지닌 절정의 대문파 황천각이 있는 것이다.
그때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놈을 놓아줬다고?”
조량옥이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왔는지 초휴가 문간에 서 있었다. 초휴는 임애재에게 군수에 관해 물어보려 들렀다가 조량옥이 하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그가 문풍각에 요구한 자료는 아주 중요했다. 임봉무가 찾아낸 영현기에 관한 실마리는 강호 정보원이 쓴 것이었다.
문풍각은 강호 정보원을 자처하지는 않았으나 실제 하는 일은 거의 동일했다. 그러니 문풍각의 자료에는 독고유아에 관한 실마리도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조량옥이 몰래 그자를 놓아줬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을 저지른 뒤에야 임애재에게 와서 사후 보고를 하고 있으니 초휴의 인내심은 완전히 한계를 넘고 말았다.
지금까지 조량옥이 초휴 앞에서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휘둘러 봐야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임봉무에게도 말했지 않은가. 용은 원숭이가 끽끽 대며 위협하는 것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는 원숭이가 자신의 영역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눈치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 지경으로 없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나 원숭이를 가만 놔두는 것은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였다. 그렇지 않다면 귀찮은 원숭이쯤이야 단박에 밟아 죽여 버린들 뭐가 문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