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39)
1039화 동역 행주 육삼금
초휴는 작은 마을을 지나 제라산맥으로 들어갔다. 전력을 동원해서 천자망기술을 극한까지 펼쳐 남은 힘을 느껴보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산맥에는 아무 이상한 점도 없었던 것이다. 힘이 남아 있었더라도 오백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사라진 것 같았다.
그는 느닷없이 고개를 휙 치켜들고 싸늘하게 말했다.
“수상하게 숨어서 뭘 보는 건가!”
그러자 등 뒤에서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의 실력은 진화련신이었으나, 천자망기술을 가동하고 있던 초휴는 그에게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기운을 감지했다. 천지통현인 해영종보다도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청년이 웃었다.
“이보시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구려. 제라산맥이 당신 것도 아니고, 나는 여기에 서 있었을 뿐인데 수상하게 숨어 있다니?”
청년의 외모는 나름 단정했다. 그러나 좀도둑처럼 얍삽한 표정에 우스꽝스러운 두 갈래 수염을 기르고 있어 진지하지 못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었다.
“제라산맥에 들어왔을 때부터 내 뒤를 따라왔잖소. 우연히 길이 겹쳤다고 할 셈인가? 어디서 온 사람이요? 누구의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
초휴가 대라천에 온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워낙 출중한 실력 덕분에 짧은 시간 동안 방림군 전체의 원한을 톡톡히 샀고, 그로 인해 죽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누가 찾아와서 시비를 걸거나 복수하려 한들 이상할 게 없었다.
청년이 허허 웃더니 하늘을 가리켰다.
“어디서 왔느냐고? 하늘길에서 왔지! 황천각 동역 행주 육삼금(陸三金)이라 하오. 처음 뵙겠소이다.”
초휴는 살며시 눈매를 좁혔다. 점잖지 못해 보이는 청년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꽤 대단하지 않은가. 해영종보다도 지위가 높으니 말이다.
초휴는 대라천의 다른 문파는 잘 몰라도, 방림군 전체가 황천각의 관할 범위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가 본 기록마다 황천각에 관한 설명은 빠지지 않고 아주 자세하게 쓰여 있었던 것이다.
황천각의 동역 행주는 곧 황천각의 간판이라 할 수 있었다. 한 세대마다 단 한 사람, 잠재력과 능력이 가장 뛰어난 제자를 골라 임명했다.
동역을 떠돌아다니면서 황천각 소속의 군을 감찰하는 것이 행주의 임무였다. 소속 지역에 무슨 일은 없는지, 군수가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등등. 일종의 감찰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해영종 같은 군수는 설령 자기 실력이 더 강해도 그에게 깍듯하게 대해야 했다. 위에다 안 좋은 보고라도 올리면 몹시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황천각 동역 행주가 자신을 찾아오다니, 방림군에서 일으킨 일을 군수 해영종이 일러바친 모양이 아닌가.
“과연 하늘길에서 내려오신 분이로군. 그래 육 형은 무슨 일로 날 찾아오셨소?”
육삼금은 본래 크지도 않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말했다.
“별 중대사는 아니고, 호기심이 생겨서 와 봤소. 해영종이 방림군에 고존의 전인이 한 분 오셨다고 하더구려. 내가 동역의 행주인데 못 본 척해서야 되겠소? 당연히 인사를 해야지요. 여쭙건대 초 형제는 어느 분의 전승을 이어받으셨소? 어쩌면 우리 황천각의 선조와 교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구려.”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해영종한테도 말했지만, 우리 일맥의 이름은 적을 무찌르기 전에는 밝히기 어렵소이다.”
육삼금이 흐흐 웃었다.
“밝히기 어려운 거요, 밝힐 수가 없는 거요? 맹성하가 한강성을 대라천 절정의 대문파로 키워낸 후로 얌전히 지내던 고존의 전인들은 명성이 대단해졌지. 그 이야기는 그 자체야 미담이지만, 적잖은 사기꾼을 만들어냈소. 못된 심사를 품고 고존의 전인을 사칭하는 자들이 생겨났으니 말이오.”
초휴는 싸늘하게 물었다.
“그 말은 내가 가짜라는 소리인가?”
육삼금이 한 발짝 다가섰다.
“가짜가 아니라면 누구의 전인인지 말해 보시오!”
초휴는 이미 파진자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는 담담히 말했다.
“당신이 말하라고 하면 말해야 하나? 내가 가짜라고 의심한다면 가짜라는 증거를 가져오시오. 당신이 나더러 무슨 마신의 환생이라고 주장해도 내가 아니라는 증거를 대야 한단 말이오?”
“감추고 숨기는 시점에서 이미 군자라 할 수 없다!”
육삼금의 작은 눈에서 한 가닥씩 금빛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주변에 신비한 운율이 흘러넘쳤다.
초휴의 눈에서도 살기가 솟았다. 그는 해영종을 쫓아 보낸 것으로 일이 해결된 줄 알았다.
겉으로는 제법 패기가 있어 보였는데 이토록 소심하고 신중한 인물일 줄이야. 초휴가 무슨 문제라도 일으킬까 봐 아예 황천각에 떠넘겨 버린 셈이었다.
황천각도 평소 같으면 이런 작은 일 때문에 일부러 방림군까지 사람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동역 행주 육삼금이 마침 부근에 있었다. 그래서 황천각은 내친김에 그를 보낸 것이다.
또 하필이면 육삼금은 변변찮은 겉모습과는 달리 황천각 제자 중에도 출중한 인물이었다. 도저히 말이 안 통하면 그를 죽이고 다른 지역으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겠다고 초휴는 생각했다.
대라천과 하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문파들마다 자리 잡은 지역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하다는 것이었다. 대개 다른 종문의 구역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상태에서 홀연히 경을 읊는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기 있고 맑은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고 고요하게 해 주는 듯했다.
제라산맥 깊은 곳으로부터 젊은 도인이 눈처럼 흰 당나귀에 올라 한가로이 손에 든 도경을 읊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앞에서 대치하는 육삼금과 초휴를 발견한 그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황천각 육 형 아니오? 공교롭구려. 여기서 마주치다니. 그쪽 분은 뵌 적이 없는 것 같소이다. 저는 영보관 은령자(銀靈子)라 합니다.”
은령자라는 젊은 도사의 등장은 초휴와 육삼금의 대치상태를 허물고 그들의 시선을 완전히 빼앗아버렸다.
초휴는 도가에서 말하는 자연과 소요(逍遙, 얽매인 데 없이 편안함과 자유로움)가 이렇게 온몸에서 배어나는 사람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계의 도문 무사들은 어떻던가. 천지통현인 능운자건, 육장류건 모두 속세의 탁한 먼지가 잔뜩 묻어 있어서 그런 기질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노천사는 마음을 비운 듯 보였으나 사실은 더 심했다. 속세에서 일평생을 보내더니 아예 기질이 변해 버린 것이다.
장승정은 고집이 대단해서 목표를 정하면 놓을 줄을 몰랐다. 그는 아마 평생 가도 자유로워지지 못할 터였다.
그러나 지금 당나귀에 앉은 젊은 도사한테는 손에 든 도경 한 권이 이 세상 전부인 것 같았다.
육삼금 역시 기세를 거두고 평온한 얼굴로 공수를 올렸다.
“영보관의 은령자 도형이셨구려. 은령자 도형이 천하를 주유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내가 이곳에서 일을 끝내는 대로 황천각에도 꼭 들러 주시오.”
육삼금은 겉으로 보기에는 칠칠치 못해 보였지만 사실은 아주 오만한 사람이었다. 서른도 되기 전에 진화련신을 돌파하고 황천각 동역 행주가 되었다. 해영종 같은 동네에서 황제 노릇을 하는 자와 신경전을 벌이려면 능력이건, 실력이건 대단하고 비범해야 했다.
온 대라천을 통틀어 그가 진정으로 인정하는 동급 무사는 얼마 없었는데 은령자가 개중 하나였다.
은령자는 도온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마음에 도를 품었으니 어떤 심마의 습격도 두렵지 않았다.
그 뛰어난 자질을 본 삼청전의 도존이 친히 나서서 그를 제자로 거두려 한 일이 있었다. 그가 좋다고만 하면 다음 도존의 자리를 주겠노라고 했다. 삼청전 전체가 전력을 기울여 은령자를 키워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한 조건을 은령자는 거절했다. 거절한 이유도 아주 우스웠다. 영보관 잿밥이 맛있어서 떠날 수가 없다고 했다.
만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사람들은 일부러 도존을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은령자는 진심으로 한 말인지라 결국 삼청전 도존은 탄식하며 떠날 수밖에 없었다.
대라천 전체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육삼금 또한 그 일로 은령자에게 탄복했다.
영보관도 도문 대문파이기는 했다. 제자들의 전투력도 놀라웠고 무선경의 강자도 배출했다. 그러나 진정한 절정급 대문파와 비하면 격차가 있었으니 기껏해야 반쪽짜리인 것이다.
도문의 지존인 삼청전과는 당연히 비교할 수도 없었다. 만일 육삼금 자신이 그런 제의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황천각에 계속 충성할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었다.
초휴는 은령자를 본 순간 머릿속에서 어떤 기억이 스치는 듯했다. 영보관이라는 이름이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곧이어 그 역시 활짝 웃었다.
“은령자 도형이시구려. 나는 초휴라 하오. 영보관 분을 만날 줄은 몰랐소.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일맥의 조사께서는 영보관과 아주 가까웠노라 말씀하셨지요. 옛날 상고 대겁난 전에는 영보관에 오래 머무신 적도 있었노라고 말씀하셨소. 그러나 대라천에 온 후로 우리 조사께서는 무도에 심취하시어 모든 전승을 물려준 후 폐관 수련에 드셨소이다. 그렇게 폐관하다 돌아가시는 바람에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이오.”
은령자의 얼굴에 놀라워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초 형의 조사께서는 어느 분이시오? 어쩌면 제가 들어보았을지도 모르니 알려주시지요. 옛 선조의 전인끼리 만나는 것도 인연 아니겠소.”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참으로 미안하구려. 피치 못할 이유로 우리 일맥은 지금 밝힐 수 없소. 원수의 전인을 물리쳐 완전히 설욕한 뒤에야 세상에 이름을 밝힐 수 있다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상고 대겁난 전 우리 조사께서는 젊은 시절 영보관에서 기거하며 영보관 관주 적하진인께 무도를 배웠다고 말이오. 적하진인은 당시 무선에 가장 가까운 강자였지요. 그러나 대겁난이 오기 전 백성을 구하려다 명을 달리하셨으니 이 얼마나 안타깝고 한스러운 일이오. 그리고 당시 영보관의 대사형이었던 능청자 선배는 실력이나, 사람됨이 대단히 뛰어나 뭇 사람이 우러러보았다고 들었소. 우리 조사께서도 감탄을 금치 못하셨답디다.”
“조사께서는 옛날 영보관에 인재가 무리 지어 나왔는데,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못하여 그저 배분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말씀하셨소. 그 시절 영보관 이사형은 겉보기에는 철없어 보였으나 자질이 출중했고, 삼사형은 무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진법에는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었다고 말이오. 사사형은 도사인데도 고기를 즐겨 먹었고, 오사형은 술을 좋아했고, 주방을 담당한 최문 사숙이 만드는 밥도 아주 맛있었다고 하셨소. 그분들은 모두 옛날 조사님의 좋은 벗이었소. 하지만 모두 상고 대겁난 와중에 명을 달리하셨고, 그것도 다른 사람들을 구하려다 돌아가셨지요. 능청자 선배와 가장 어린 소사제만 살아남았다고 들었소. 조사님은 영보관이 당시 제일가는 대문파는 아니었으나 가슴에 품은 뜻은 대문파보다 더 대단했다며, 오래도록 기려 마땅하다고 칭송하셨소.”
초휴는 영보관이 했던 일에 대해 소범천과 환허육경에서 본 기록이 많았다. 그래서 옛날 영보관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옆에서 듣던 육삼금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휴가 말한 내용 일부는 사실이었다. 대라천 사람 모두가 아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조차 몰랐던 이야기가 아닌가.
영보관은 대라천에서 꽤 유명한 종문이었으나 사람 수는 제일 적었다. 일만년이 흐르는 동안 부엌 주방장까지 다 합쳐도 세 자리가 넘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영보관 제자의 실력만은 절정급 대문파에 뒤지지 않았다. 동급끼리 놓고 보면 가장 뛰어나다 해도 좋을 정도였다. 한 줄기 영보하광이 뻗어 나오면 누구도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육삼금이 기억하기로 영보관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은 초기의 두 장문이었다.
‘청운도존(靑雲道尊)’ 능청자와 그의 사제 ‘자양도존(紫陽道尊)’ 서풍화(徐楓華)였다.
자양도존은 그의 사부에게서 도호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일평생 도호 없이 속세에서의 이름을 그대로 썼다.
한 종문에 도존이 둘이요, 무선이 한 쌍이었다. 대라천에 온 후 영보관은 그 두 사람의 힘만으로 다시 떨쳐 일어섰다.
제일 빛났던 시기를 책임진 두 사람의 위세와 명망은 그 어느 대문파에도 뒤지지 않았다. 영보관은 인원이 적다 보니 대대로 무선을 배출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그들의 명성은 훼손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