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예전에는 없던 규칙
직계와 방계 간에 무슨 암약이 있었고, 어떤 오해가 있었으며, 누가 어떻게 일을 망쳤는지 등에 대해 초휴는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귀찮다는 듯이 상대의 말을 끊었다.
“더 안 죽여도 된다니, 힘 낭비 안 하고 잘됐군.”
화노와 랑왕도 남의 일에 무관심한 건 마찬가지였다. 여하튼 임무는 완수한 셈이고 수고비도 챙겼으니, 그다음 일이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장천기가 눈치도 없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살수님들, 애당초 우리는 내강경 여덟 명을 죽이는 조건으로 의뢰비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세 명이 남았고, 여러분도 적잖이 수고를 덜게 되었고요. 그렇다면 이치상 우리가 세 명에 해당하는 의뢰비는 돌려받아야 마땅하다고 봅니다만.”
초휴가 냉랭한 눈빛으로 장천기를 쏘아보았다. 저 철부지의 눈에는 청룡회가 돈이나 거슬러주는 만만한 조직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화노와 랑왕도 어이가 없어 실소를 금치 못했다.
결국, 이번에도 초휴가 대표로 말했다.
“세상 물정을 이렇게 몰라서야 쓰나. 청룡회가 받은 것을 도로 토해내는 조직이라고 누가 그러던가? 의뢰비에 불만이 있다면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어주지. 원래 조건대로 나머지 셋도 마저 죽여주면 거스름돈 운운할 필요가 없겠지?”
그러자 장유기가 당황하여 황급히 끼어들었다.
“저 어린 놈이 터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인 것이니 양해해 주시구려. 의뢰비는 당연히 여러분의 것이오. 이것으로 여러분의 임무는 끝난 것으로 합시다.”
청룡회가 돈 받고 일해주는 심부름꾼 같은 조직이라지만, 엄연히 흉측한 살수들만 모여있는 집단이다. 그런 자들과 도대체 무슨 이치를 따지겠다는 건가. 임중군 출신 내강경 셋 중에 그나마 매수한 자가 하나라도 남은 걸 다행으로 알아야 했다.
초휴가 그들마저 모조리 죽여 버린다면 이번 거사는 애먼 돈만 날리고 건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최악의 결과가 될 테니 말이다.
장유기가 목숨을 부지한 임중군 무사들에게도 말했다.
“자네들이나 우리나 다 같은 장씨 가문의 후손들이네. 예전에는 자네들이 직계이고 우리가 방계였지만, 지금 가문이 이 지경이 된 마당에 그런 걸 따져 무엇 하겠는가? 지금 자네들은 딱히 선택의 여지도 없을 테니 우리 쪽으로 합류하게. 앞으로 직계와 방계 구분 없이 동등한 장씨 가문 사람으로서 잘 지내보세.”
그 말에 임중군 무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결국 체념한 듯 수중의 병기를 내려놓았다. 가뜩이나 집안이 무너지던 판국에 가주인 장원봉마저 죽어버렸으니, 장유기의 말마따나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생판 남의 밑으로 숙이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한집안 핏줄이니 딱히 수치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그제야 장유기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마음을 굳혔으면 지체할 필요 없이 물건들을 챙겨 대산군으로 가세나.”
이리하여 원만하게 일이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초휴가 갑자기 막아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잠깐! 사람이 가는 거야 얼마든지 좋지만, 물건은 놓고 가는 게 어떤가?”
“무슨 물건을 놓고 가라는 말이오?”
“그야 당연히 임중군에서 가져온 것들이지. 예를 들면 수련자원 같은 것들 말이오.”
생각지도 못한 초휴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장유기가 안색이 돌변하여 항변했다.
“그런 억지가 어딨소? 이건 규칙에도 위배되는 일이오. 이 물건들은 처음부터 장씨 가문의 소유였소. 그런데 무슨 명분으로 우리 재산을 달라고 요구하는 거요?”
이미 청룡회에 의뢰비를 치른 이상, 마무리 짓지 못한 세 명의 목숨값을 돌려받기는 글렀다는 사실을 장유기도 잘 알고 있었다. 포기는 빠를수록 좋으니, 그 일은 문제 삼지 않을 생각이었다.
대신, 임중군 측에서 가져온 물건만큼은 결코 내어줄 수 없었다. 가문에서 진정 값진 것들이 직계인 임중군 측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에 대산군 측이 노렸던 것도, 임중군 측이 차지하고 있던 문중 재산과 보물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다음 순번에 지나지 않았다.
가져오는 대로 쓸 수 있는 재산이나 수련자원 등과는 달리, 사람이 어디 다루기 만만한 존재이던가. 문중에 사람이 모자란 것도 아니었다. 끝까지 자기가 직계임을 내세우며 뻣뻣하게 구는 자들까지 받아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막말로 사람은 죽이라고 내어줄 수 있어도 물건만은 지켜야 했다.
그런데 초휴도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내가 억지를 부렸다고? 당신들이 중간에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저들을 다 죽였을 테고, 자연히 물건도 우리 차지가 되었을 텐데? 저들을 죽이지 않는 대신 물건이라도 두고 가는 게 규칙에 맞는 거요.”
“억지도 정도껏 부리시오. 당신들 청룡회는 정말 너무도 하는구려. 의뢰비를 받아 챙겼으면 됐지, 이참에 부수입까지 올릴 작정인 게요? 게다가 예전에는 청룡회에 그런 규칙 따위는 없었소.”
장유기가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자, 초휴가 결국 홍수도를 빼 들며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예전에는 없던 규칙이라도, 내가 말한 이상은 그 규칙을 지켜야 한다!”
“대체 이게 무슨 횡포란 말이오? 무조건 밀어붙이면 통할 줄 아는 모양인데, 이런 짓이 청룡회의 명성에 누가 되리라는 것을 모르는 게요?”
홍수도가 칼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장유기는 큰일 났다 싶어 급한 대로 청룡회 명성까지 들먹였다. 살수도 엄연한 직업이고 모든 직업에는 직업 윤리라는 게 뒤따르기 마련이다.
의뢰인의 동의 없이 정보를 흘리거나, 또는 의뢰받은 일을 빌미로 의뢰인의 뒤통수를 치는 등의 짓은 절대 해서 안 될 금기사항들이었다.
처음 한 번이야 운 좋게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 경우가 잦아지면 결국 남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어있다.
신뢰할 수 없는 살수를 누가 고용할까? 이처럼 신뢰는 살수에게 있어 밥줄을 보장해주는 덕목이었다.
보다 못한 화노까지 초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초 형, 절대로 의뢰인을 건드려서는 안 돼. 그게 청룡회 규칙이야. 타주 대인이 이 일을 아셨다가는 우리도 좋은 꼴 못 보게 되네.”
옆에서 이 말을 엿들은 장유기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청룡회 살수들 전부가 초휴처럼 굴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유독 초휴만 재물에 눈이 뒤집힌 듯했다. 그렇다면 아직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초휴의 반응은 그의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물론 나도 그건 알지. 그런데 착각한 게 있네. 조금 전에 저들이 분명 말했잖아, 우리 임무는 이제 끝났다고 말이지. 임무가 끝났으니, 이제 저들은 더 이상 우리의 의뢰인이 아닌 셈이지. 규칙에 의뢰인한테 손대지 말라고만 되어있을 뿐, 다른 도적질을 하는 것까지 금한다는 조항은 없지 않냔 말이지.”
“이봐, 형제들! 자그마치 한 가문의 재물과 수련자원이 저렇게나 쌓여있어. 우리 셋이 똑같이 나누어도 만만찮은 분량이라고. 타주 대인 쪽은 염려할 필요 없어. 이렇게 사소한 일까지 대인의 귀에 들어갈 리도 없을뿐더러, 지금 분타 내에서의 우리 위상을 한번 생각해 보라고. 이깟 일로 대인이 우리를 처벌할 수 있을 것 같아? ”
화노와 랑왕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상하게도 초휴의 말은 늘 설득력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천죄 분타에 살수로 들어온 지 벌써 이년도 넘었다. 타주 대인이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는 그들이 초휴보다 더 잘 알았다.
타주가 늘 입으로는 청룡회 규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엄포를 놓지만, 사실 자기 말에 절대복종만 하면 까짓거 규칙 따위는 개나 줘버려도 개의치 않을 위인인 건 분명했다. 각자 입단속만 단단히 하면 이 일이 저 멀리 총타까지 알려질 리도 만무했다.
그렇다면······?
순간 두 살수의 눈이 살기로 번뜩였다.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장유기의 표정이 극도로 일그러졌다. 살수들이 속내를 드러낸 이상, 물건을 순순히 내어준다 해도 목숨을 보장받기는 글렀다.
“뛰어! 다들 흩어져서 도망쳐!”
장유기는 저항할 의지가 눈곱만큼도 없었다. 몸소 이 살수들과 싸워보진 않았지만 그걸 꼭 싸워봐야 알겠는가. 그는 머리와 몸이 분리된 장원봉의 시신을 똑똑히 본 상태였다. 요즘 들어 대산군 측의 세력이 부쩍 강해졌다고는 하나, 예로부터 가문의 알짜배기 무공은 직계인 임중군 무사들 사이에 전승되어왔다. 따라서 장원봉의 실력은 절대 얕볼 수준이 아니었다.
이게 바로 대산군 장로들이 팔자에도 없는 연극을 하게 된 배경이었다. 임중군 측과 대놓고 맞서 싸울 엄두를 낼 수 없으니, 일단 상대편을 매수해 장원봉부터 암살하고 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겁냈던 장원봉을 살수들이 삼대팔의 열세로 맞붙어 깔끔하게 죽였다. 상황이 이럴진대, 재고 자시고 할 게 어딨겠는가. 살려면 무작정 도망칠 수밖에.
일이 이렇게 된 건 고령의 장유기가 강호 소식에 어두운 탓도 있었다. 조금만 더 바깥세상에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초휴 가면의 문양만 보고도 그의 정체를 금세 파악했을 텐데 말이다. 상대는 자그마치 용호방에 오른 고수였다. 성질도 포악하고 수법도 잔인하기로 이름난 ‘혈마’가 그의 별호였다.
장유기가 상대의 정체를 똑똑히 알았더라면, 아까처럼 상대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해서 당당히 뻗대며 따지진 못했을 터였다. 아니 뒤통수가 아니라 더한 곳을 맞았다 해도, 설설 기며 주머니 속 동전까지 탈탈 털어내어 바쳤을 것이다.
“화노, 자네의 신법이 가장 빠르니 나머지 다른 자들을 추격해. 한 놈도 살려 보내서는 안 돼. 랑왕, 자네는 나와 함께 내강경을 해치우세.”
초휴의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은 행동에 들어갔다. 초휴와 랑왕은 양 떼를 헤집는 맹수처럼 내강경 무사들을 쓸어갔다. 저들은 두 살수의 파상 공세에 밀려 제대로 저항할 생각도 못 했다.
장유기가 그나마 실력이 쓸 만했지만 이미 일흔을 훌쩍 넘긴 고령이었다. 체내 기혈이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그는 제대로 몇 합 겨뤄보지도 못한 채, 수중의 병기를 놓치고 말았다.
초휴는 병기를 쳐낸 데 이어서 대자양수로 상대의 가슴에 일장을 가했다. 그러자 가뜩이나 얼마 남아 있지도 않던 장유기의 기혈이 전부 불타 소진되고 말았다. 살육의 한가운데서 초휴의 일격으로 장유기가 절명하는 것을 본 장천기는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애당초 대산군 측에서는 장유기 등의 장로들이 노망이 나서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다들 믿었다.
장천기의 부친을 비롯한 중견 세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청룡회를 끌어들이자고 제안했던 건 다름 아닌 장천기 본인이었다. 그래서 살수와의 접선 장소에도 그가 나왔던 거다. 장천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참담한 결과에, 그저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한번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핏빛 살기로 숨통을 조여오는 초휴의 칼날은 길게 후회할 시간마저 허락지 않았다. 내강경 무사들은 그나마 가까스로 그 칼날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선천경 무사들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채,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결국, 장천기는 못다 한 후회를 황천길 위에서 마저 하게 되었다.
잠시 후 낡은 절간에 살아있는 건 살수 세 명뿐이었다. 랑왕이 한옆에서 다소 숨이 찬 모습을 보였다. 이때 그는 내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내강경 무사를 몇 명씩이나 상대한 데다, 선천경 무사들도 가세한 싸움이었다. 다수를 상대로 치열한 격전을 벌였으니 체력과 내력 둘 다 소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
반면 초휴는 딱히 지친 느낌도 없었다. 끊임없이 샘솟는 그의 웅혼한 내력은 보는 이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는 선천공과 유리금사고 덕분에 동급 무사들보다 수배나 막강한 체력과 내력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랑왕은 그저 초휴가 놀라울 뿐이었다.
이때 밖으로 추격에 나섰던 화노가 돌아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모조리 해치웠어.”
“좋아. 먼저 물건을 삼등분한 다음, 밖의 시신들을 모두 절 안으로 옮기자고. 그리고 흔적이 남지 않게 절간째로 불살라 버리세.”
초휴의 제안에 화노와 랑왕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들은 임중군에서 옮겨온 물건 보따리를 한차례 살펴본 후, 이를 동등한 가치대로 삼등분했다. 그러고는 한 사람이 한 꾸러미씩 자기 몫으로 챙겼다.
물론 저울에 단 것도 아니고 전문가의 감정을 거친 것도 아니니, 세 꾸러미의 값어치는 다소 차이가 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름 화통한 사내인 그들은 너무 꼼꼼하게 따질 생각은 없었다.
물건 배분이 끝나자 그들은 밖에 널린 시신들을 절간 내 한곳으로 운반했다. 시신들이 모이자 화노가 절간의 문기둥에 손을 올려놓았다. 불기운을 머금은 강기가 손에 응집되자 그의 두 손이 화염처럼 뻘겋게 변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기둥에 불이 붙더니 삽시간에 절 전체로 불이 번졌다. 이를 본 랑왕이 싱글벙글 웃으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
“불의 속성을 가진 내력을 수련한 덕을 톡톡히 보는군. 부싯돌은 갖고 다닐 필요도 없겠어.”
불길에 휩싸인 절을 지켜보던 그들은 화력이 절정에 달하자 그곳을 떠났다. 야산에서 자연발화로 큰불이 나는 경우는 매우 흔했고, 화마는 대부분 흔적도 없이 모든 걸 집어삼키곤 했다.
큰비가 내리지 않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끌 수 없는 불이었다. 내일 아침이면 모든 게, 재로 변해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