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40)
1040화 가짜가 진짜면 진짜도 가짜다
육삼금은 이런 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상고 대겁난 당시 그 둘의 사부 역시 무선경에 들 자격이 되는 강자였으나 대라천에 올 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명을 달리했다고 말이다. 아마 그 사람이 초휴가 말한 적하진인인 것 같았다.
적하진인은 전설 속의 존재였다. 대라천 초기 몇 사람만 언급했을 뿐이다. 일만년이 지난 지금, 대라천에는 그 이름을 아는 사람조차 별로 없으리라고 육삼금은 장담할 수 있었다. 황천각쯤 되는 대문파 제자라야 알 만한 이름이었다.
육삼금은 미심쩍은 눈으로 초휴를 힐끔 보았다.
정말 사실만을 말하는 것 같은데, 고존의 전인이 확실한 건가?
은령자는 벌써 흥분했다.
“초 형의 조사님은 그런 일도 다 아신단 말이오? 그렇다면 우리 영보관 조사님과 아주 친하셨던 게 분명하구려. 우리 영보관과 인연 있는 분의 전인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면 사부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육삼금이 그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의 말이 모두 사실이오?”
은령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털끝만큼도 틀린 곳이 없소. 옛날 청운, 자양 두 분 조사님께서 말씀하셨소. 두 분이 살아날 길 한 가닥을 잡아 대라천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적하 조사님과 다른 조사님들이 목숨 걸고 싸우신 덕분이라고 말이오. 그래서 영보관에서는 지금도 그분들의 위패를 모셔 놓고 향을 피우고 있소. 문하 제자들이 영원히 잊지 않게 하려고 말입니다. 그리고 자양 조사님은 일기를 쓰시는 습관이 있어서, 상고 대겁난 이전의 추억을 써놓은 기록을 적잖게 보았소. 그 시절 조사님들의 성격과 취향도 초 형이 말씀하신 것과 완전히 똑같소. 사실 그건 우리 영보관 제자 중에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오. 초 형이 이렇게나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초 형 일맥의 조사께서는 필경 우리 영보관과 아주 친밀하셨던 게 분명하오.”
초휴는 끄덕였다.
“정말이지 대단히 친하셨던 모양입디다. 우리 일맥의 조사께서는 도불마 삼맥의 무공을 다 익히셨으니까. 옛날 적하진인은 문파에 대한 편견이 없어 우리 일맥의 조사님께도 도문의 지극한 이치를 적잖게 가르쳐 주셨지요. 그러니 우리 일맥이 어찌 그 은혜를 잊겠소.”
은령자는 초휴의 말에 아주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두 사람이 말하는 내용도 거의 들어맞았다. 그러자 육삼금은 적잖게 머쓱해지고 말았다.
초휴를 의심할 수는 있어도 은령자를 의심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이 수상한 자가 진짜라는 말 아닌가. 그는 양손을 비볐다.
“초 형이 정말 고존의 전인인 줄은 몰랐구려. 내 안목이 형편없어 하마터면 오해할 뻔했소이다.”
어색한 기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육삼금은 퍽 낯가죽이 두꺼워서 초휴가 겁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만찮은 고존의 전인에게 굳이 미움을 사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초휴는 담담했다.
“내가 그렇게 수상쩍은 사기꾼처럼 생겼소?”
육삼금이 헤헤 웃었다.
“사실 그건 내 탓이 아니오. 해영종 그자가 아리송한 말을 해서 이렇게 된 거요. 걱정하지 마시오. 내 돌아가서 그 늙다리를 톡톡히 혼을 낼 테니.”
초휴는 눈썹을 움찔했다. 이자는 천지통현인 해영종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육삼금이 그렇게 말한 것은 단순히 황천각 동역 행주라는 신분 때문이 아니라, 본인에게 정말 해영종을 무시할 자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초휴는 알 수 있었다.
육삼금이 붙임성 좋게 손을 휙휙 저었다.
“마침 은령자 도형도 계시니 내가 두 분께 밥을 사지요. 사죄도 할 겸 해서 말이오.”
육삼금이 워낙 저자세로 나오니 초휴도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는 누구하고나 금세 친해지는 넉살 좋은 성격인 듯했다. 아예 이참에 육삼금한테 오백년 전 독고유아에 관한 일도 물어볼 수 있겠다 싶었다.
문풍각 기록에 의하면 오백 년 전 독고유아와 영현기는 퍽 큰 소동을 피웠다. 황천각 같은 동역 대문파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황천각은 아예 직접 명령을 내려 제라산맥 일대를 봉쇄하지 않았던가. 그 숨겨진 내막을 다른 곳은 몰라도 황천각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 * *
육삼금은 넉살이 좋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초휴는 그의 단점도 발견했다. 씀씀이가 아주 쩨쩨했다.
밥을 사겠다고 하기에 초휴는 육삼금이 자신과 은령자를 안주부에서 제일 큰 주루에 데려가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육삼금은 이리저리 둘을 끌고 다니더니, 그 작은 마을의 허름한 식당에서 닭고기 전골을 시키는 게 아닌가. 심지어 가게 주인에게 공짜 술까지 뜯어냈다.
초휴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그는 헤헤 웃었다.
“초 형, 내가 접대를 변변찮게 하려는 게 아니오. 이 식당을 무시하지 마시구려. 이 집 전골은 퍽 유명하다오. 방림군에 순찰하러 올 때마다 해영종이 온갖 산해진미를 대접하지만, 나는 그걸 다 거절하고 일부러 여기 와서 먹는단 말이오. 초 형도 한 번 맛보시구려. 정말 맛있소.”
초휴는 한 입 먹어 보았다. 정말 맛이 좋기는 했다. 대라천이 워낙 비옥해서인지 아니면 주인의 솜씨가 좋아서인지, 닭고기가 아주 쫄깃하고 맛있었다. 옆에서 은령자도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은령자는 생김새가 아주 영준했다. 도포 차림에 특유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속세를 벗어난 사람처럼 표표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밥을 먹기 시작하니 무슨 이리나 호랑이가 고기를 뜯는 듯하지 않은가. 누가 그의 밥을 빼앗아가려는 것도 아니건만, 그럴듯하던 모양새가 사정없이 망가졌다.
육삼금은 은령자와 초면이 아니었으나, 그와 밥을 먹기는 처음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묻고 말았다.
“은령자 도형, 영보관에서 벽곡(辟穀, 고기와 채소를 피하고 솔잎이나 곡식 등만 먹는 도가의 수행법)을 시키느라 밥을 제대로 주지 않는 거 아니오?”
은령자가 민망하게 웃었다.
“부끄럽군요. 영보관에서는 벽곡은 하지 않소. 부엌에 계시는 임 사숙의 솜씨가 워낙 대단한데, 끼니마다 맛있는 음식은 딱 한 가지만 하시고 나머지는 대충 만드십니다. 임 사숙의 말씀에 따르면 부엌 일을 할 때마다 제일 처음 만드는 음식에 가장 정성을 쏟으신다는 거요. 두 번째를 만들 때는 이미 완벽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구할이나 일할이나 마찬가지이고, 어차피 배가 차기는 똑같으니 먹을 수만 있으면 그만 아니냐고 하신단 말이지요. 그래서 한 끼 먹을 때마다 그 맛있는 음식 하나를 두고 모두가 다투는데,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되었지 뭐요.”
초휴는 아래턱을 만지작거렸다. 영보관은 부엌에서도 인재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주방장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셋은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대체로는 육삼금이 떠들었고, 어쩌다 은령자가 끼어들고, 초휴는 듣기만 했다.
대라천에 관한 상식은 이미 방림군 여러 세력의 기록을 통해 거의 알아 두었다. 그러나 좀 더 깊숙한 속사정은 방림군 종문에 대한 정보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육삼금 같은 대문파 제자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가 다른 종문에서 알아낸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 게 분명했다.
반쯤 먹었을 때 육삼금이 홀연히 탄식했다.
“최근 수백년 들어 대라천도 좀 시끄러워졌지요. 동서남북 사역 모두 일이 터지고 있으니까. 나도 황천각에 돌아갔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다오. 남역 극락마궁이 또 일을 꾸미고 있다고 합디다. 그 미치광이들은 온종일 기괴하고 이상한 것만 연구해대니 조만간 사고를 칠 게 뻔하오. 북역에는 미친 놈이 하나 나타났다지 뭐요. 삼청전 도존이 도리를 강연하는데 공공연히 나서서 잡소리라면서 반박했다지 뭐요. 소동이 꽤 컸던 모양이오. 서역에서는 천라보찰과 범교가 쉴 새 없이 싸우고 있소. 같은 대머리끼리 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원.”
초휴는 육삼금의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대라천도 하계와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겉보기에는 평온한 것 같지만, 수면 밑에서는 거센 흐름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동역이 제일 평화로운 셈이겠구려.”
초휴가 슬며시 한마디 하자 육삼금이 냉소했다.
“정반대요. 동역에서 벌어진 일이 제일 크지요. 몇백년 전 한강성이 굴기하여 일약 절정의 대문파가 되었잖소. 동역이 작지는 않지만 그래 봐야 고만고만하고, 절정급 대문파는 한정되어 있소. 그런데 느닷없이 한강성이 끼어들었으니,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은 살육과 암투가 벌어졌을지 누가 알겠소? 그만한 일이 터진 이상 동역에서 벌어진 다른 일은 이미 거론할 가치도 없지.”
그렇게 말한 육삼금은 문득 물었다.
“참, 은령자 도형. 영보관의 동천복지(洞天福地)에는 별 이상이 없었소?”
초휴는 탁자를 톡톡 두드려 가며 들었다. 그는 동천복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 역시 대라천의 상식이었다.
이름은 동천복지라고 부르지만 사실 하계의 소범천이나 환허육경처럼 대라천에 딸린 부속 공간이었다. 천지 원기가 바깥보다 농후했고,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이상 현상이 많았다. 천지조화를 훔쳐 온 듯 각종 위력을 발휘했다.
대라천의 절정급 종문은 전부 동천복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나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옛날 한강성이 굴기할 때 동역의 동천복지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맹성하가 성하산인 일맥의 비술을 써서 억지로 동천복지를 하나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대라천 전체가 그 일로 경악했던 것이다.
은령자가 고개를 저었다.
“없었소. 다 정상이오.”
육삼금이 한숨을 쉬었다.
“농소종의 동천복지 낭현경(琅嬛境)은 원기가 흩어지는 추세라고 합디다. 능소종은 이미 낭현경을 봉쇄하고 제자의 출입을 금지했다지 뭐요. 황천각 어르신들은 상고 대겁난 같은 일이 대라천에서 다시 일어나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소.”
초휴가 물었다.
“동천복지의 원기가 새어나가는 것이 상고 대겁난과 무슨 관련이 있소?”
상고 대겁난에 대해 하계에서는 무수한 추측이 오갔다. 대라천에 와서 본 군소 세력의 기록에는 상식적인 것만 쓰여 있었을 뿐이었다. 상고 대겁난에 관한 기록이 있기는 했으나 모두 모호해서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초휴의 질문에 육삼금은 어이없어했다.
“사부님께 배우지 않았소? 고존의 전인이면 그런 것쯤은 알아야지요.”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알기는 알지만, 스승님은 사문의 원한 때문에 나를 아주 엄혹하게 가르치셔서 말이오. 수련할 때마다 무슨 귀신이 들린 듯했으니 그런 것을 볼 시간이 어디 있었겠소? 내 말투도 좀 이상하지 않소? 그간 수련만 하고 누구와 말할 기회도 거의 없어서 이 모양인 거요.”
은령자는 동정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안됐구려.”
육삼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오.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고, 여자도 못 만나고, 매일같이 노친네만 마주하고 지내셨군그래. 초 형, 혹시 가슴에 뭔가 맺힌 것은 없소? 해영종 말로는 초 형 수단이 지독하다던데, 혹시 답답해서 맺힌 걸 풀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