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41)
1041화 구름을 밟고 황천각에 오르다
초휴는 헛기침했다.
“거 쓰잘데기 없는 소리는 관두고 상고 대겁난 이야기나 해 보시구려.”
엇나가려는 화제를 초휴가 억지로 끌어다 제자리에 갖다 놓자 육삼금이 말했다.
“별로 말할 것도 없소. 황천각 기록에 의하면 사람에게 수명이 있듯이 세상 만물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오. 이 천지자연도 물론이고. 상고 대겁난은 천지의 수명이 다해서 온갖 천재와 인재가 생기는 것이지요. 삼청전의 설명이 퍽 재미있소. 그들의 말에 따르면 천지는 죽지 않고 윤회하여 모습을 바꾸는 거랍니다. 우리 인간은 기생충처럼 이 천지에 빌붙어 사는 존재고 말이오. 이미 이곳에 익숙해졌으니 환경이 바뀌면 버티기가 어렵소. 그러니 그 겁난이라는 건, 사실 천지에는 겁난이 아니고, 그저 우리 인간의 겁난이라는 거요. 다행히 상고 대겁난이 오기 전에 조짐과 이상 현상이 여러 가지 있었소. 동천복지의 원기가 밖으로 새어 흩어진 것도 개중 하나요. 대라천에는 근 일만년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근래 몇백년 들어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소.”
은령자가 말했다.
“그러나 사실 정상이라고 볼 수도 있소. 동천복지의 공간은 본래 불안정하여 파동이 일어나기 쉬우니까요. 사람이 들어가서 수행하거나 진법을 펼치면 곧잘 망가지기도 하잖소.”
육삼금이 마지막 술을 비웠다.
“그랬으면 좋겠구려. 하지만 비관적인 사람들은 늘 상고 대겁난의 재림을 두려워하고 있소. 오거나 말거나 상관없으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만날 일이 없길 바라오. 내가 죽은 뒤에야 알 바 아니지.”
초휴는 육삼금에게 슬쩍 물었다.
“육 형은 동역 행주이니 동역에 관해 많이 알 것 아니오. 우리 일맥의 성명을 밝히기 곤란한 이유는 육 형도 해영종에게서 들었을 거요. 조사님의 원수를 찾아 그 전인을 무찌르기 전에는 이름을 밝힐 면목이 없단 말이오. 혹시 오백년 전 동역에 나타났던 마공을 쓰는 강자 독고유아의 이름을 들어보았소?”
육삼금은 입을 삐죽였다.
“당신네 고존 전인도 참 유난이시구려. 그냥 한 번 진 걸 가지고 뭘 그리 난리인지. 평생 져본 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말은 그렇게 했으나, 육삼금은 그래도 한참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기억에 없소. 아무래도 너무 오래전이니까. 오백년이면 세대가 바뀔 정도 아니겠소. 요즘 일을 물어보면야 나도 대답해 줄 수 있지만. 하지만 나는 몰라도 알 만한 사람이 있지. 황천각의 선대 노각주는 무선경의 지존 강자요. 마침 오백년 전 시절에 살았던 분이기도 하고. 비록 현재 황천각 고위층이라 할 수는 없지만, 지위가 낮지는 않소. 정말 그런 자가 있었다면 아마 그분이 아시지 않을까 싶소.”
그렇게 말한 육삼금이 갑자기 눈을 빛내며 말했다.
“초 형, 우리 거래를 하면 어떻겠소? 그 사람에 관해 알아보고 싶다면 내가 황천각 노각주를 소개해 드리리다. 노각주는 백년 전에 황천각 각주 자리를 내어놓은 뒤로 대라천의 시시비비에는 관여하지 않고 계십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소.”
초휴는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뭘 거래하고 싶소?”
육삼금이 헤헤 웃었다.
“간단한 일이오. 얼마 후면 황천각과 능소종이 저마다 제자를 내보내 비무대회를 열 거요. 초 형이 황천각 객경이 되어서 나가 주었으면 좋겠소. 초 형의 실력으로 구봉검종 같이 시시한 곳에서 객경 노릇을 하는 것은 억울한 일 아니겠소. 구봉검종이 뭐란 말이오. 초 형제가 맹성하 같은 사람이라 한들 구봉검종이 한강성만큼 커지는 건 어림도 없소. 모두가 엽유공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오.”
육삼금의 느닷없는 제안은 초휴로서는 좀 의외였다. 물론 지금 두 사람이 적대하는 관계는 아니지만, 이럴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잖은가. 그래서 초휴는 대놓고 물었다.
“두 종문의 대회인데 왜 육 형은 참가하지 않소? 동역 행주면 각주의 후계자도 될 수 있는 자리 아니오. 황천각의 참가자로 육 형보다 더 적격인 사람은 없을 듯한데.”
그러자 육삼금은 뻘쭘하게 말했다.
“나도 물론 참가하고 싶지. 하지만 올해 대회에는 참가를 금지당했소. 능소종과 우리 황천각은 같은 동역 대문파인지라 비무대회를 한두 번 치른 게 아니오. 먼젓번 대회에서 능소종 제자 놈의 말버릇이 너무 더러워서 울화가 치밀어 그만 진심으로 때렸지 뭐요. 그래서 그자의 무공을 폐해 버리는 바람에 이번 대회에는 참가할 수 없게 되었소. 이건 자화자찬 같긴 하지만, 이번 대회는 내가 없으면 황천각이 무조건 질 거요. 그래서 각주도 진작 나더러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하셨소. 친구가 많으니까 하나 불러서 객경으로 삼으면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말이오.”
그렇게 말한 육삼금은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친구야 많이 있소만, 다들 바보가 아니니까······. 그리고 평범한 비무대회라 해도 능소종과 황천각의 체면이 달린 문제 아니겠소. 황천각을 대표해 참가해서 능소종을 무찌르면 그 사람의 종문과 능소종의 관계에도 당연히 영향이 갈 테지. 지금 여기 있는 은령자 도형에게 부탁하지 않는 건 그 때문이오. 이런 작은 일 때문에 은령자 도형의 영보관이 능소종과 관계가 나빠지면 곤란하잖소. 하지만 초 형은 상황이 다르지. 고존의 전인이니 외톨이 홀몸 아니오. 능소종을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소. 능소종도 그 정도 일 때문에 깊은 산 숲속까지 쫓아가 당신 스승님을 귀찮게 하지는 못하겠지. 초 형, 승낙만 한다면 황천각 노야도 소개해 주고 황천각의 최고급 객경 대우를 해 주리다.”
맹성하 이후 대라천에서는 객경을 모시는 풍조가 성행했다. 구봉검종 같은 종문은 정말로 실력이 막강한 객경을 찾아낸다 해도 오래 붙잡아 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황천각쯤 되는 절정급 대문파에서는 다양한 실력의 여러 객경을 두고 있었다. 최고급 객경 자리는 천지통현 강자의 몫이었다.
무선 강자가 남의 객경 노릇을 할 리는 없지 않은가. 육삼금이 초휴를 최고급 객경으로 대우하겠다는 것은 그를 천지통현 강자로 대우하겠다는 말이었다.
초휴의 입꼬리에 웃음이 걸렸다.
“그렇게 합시다.”
줄곧 얌전히 지낸다고 좋은 일이 생기겠는가. 대라천의 대략적 상황을 감 잡은 뒤, 설치고 다니자 벌써 이렇게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는가. 동역 절정의 대문파인 황천각 객경이 된다면 아무도 초휴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초휴가 흔쾌히 자신의 제안을 수락하자 육삼금은 크게 기뻐했다.
“그럼 내 일만 좀 처리하고 바로 갑시다. 참, 은령자 도형은 대라천을 주유하는 중이지요. 황천각과 능소종의 대회에도 관심 이 있을 듯하니, 같이 가면 어떻겠소?”
은령자도 온화하게 웃었다.
“나야 좋지요.”
일이 결정되자 육삼금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일단 초휴를 데리고 동역으로 갔다. 초휴는 아직 구봉검종의 객경이었으니 구봉검종에 통지는 해야 했다.
물론 알리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황천각의 일 처리가 그래서야 곤란할 터였다.
좀 오만하게 굴어도 되긴 하지만 법도는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육삼금은 아예 임애재를 안주부로 불렀다.
* * *
안주 군수부에 있던 해영종은 어리벙벙한 얼굴로 초휴와 육삼금을 쳐다보고 있었다.
초휴에게 은근히 의심을 품고 있는 판인데,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니 초휴가 황천각 객경이 되어 있지 않은가.
육삼금은 서슴지 않고 초휴는 고존의 전인이라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황천각에서 육삼금의 지위는 거의 하계의 태자나 마찬가지였고 해영종은 한 지역의 제후쯤 되었다. 그러니 해영종은 육삼금의 체면을 세워 주고 깍듯하게 모셔야 했다.
모든 동역 행주가 황천각 각주 자리에 오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절반 이상은 그래왔다. 그 정도만 해도 매우 높은 확률인 것이다.
해영종은 자신이 초휴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심하게 생각하지 않고 초휴와 완전히 척을 졌더라면 골치 아파질 뻔했다. 그는 껄껄 웃었다.
“그래서 제가 말했잖습니까. 초 소협은 자질이 비범한 것이 딱 봐도 고존의 전인이 확실하다고요. 지금 보니 역시 그렇군요.”
육삼금은 입을 삐죽였다.
‘역시 그렇기는 개뿔이!’
초휴가 수상쩍고 의심스럽다고 열심히 주절거렸던 주제에. 덕분에 만나자마자 대판 싸울뻔하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그들이 한바탕 인사말을 나누고 있을 때, 임애재가 임봉무와 함께 도착했다.
오는 내내 임애재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먼젓번 초휴의 태도에 군수가 격노하는 바람에 자기한테까지 화가 미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쨌거나 그간 해영종이 종문의 수장을 군수부까지 부르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그가 오자 해영종이 곧장 말했다.
“임 종주, 초 소협은 우리 황천각 객경이 되기로 했소. 해서 그대도 알아 두라고 부른 거요.”
해영종 생각에는 구봉검종 같은 종문에 굳이 이런 말을 해 줄 것도 없었다. 초휴가 황천각 객경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구봉검종의 핵심 무공을 내놓으라고 해도 얌전히 내놔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육삼금은 동역 행주로서 그리 나쁜 평판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유난을 떤 것이었다.
임애재는 깜짝 놀랐다. 그는 뭔가 말하려 했으나, 결국은 힘 빠진 얼굴이 되었다.
“잘 알겠습니다. 초 공자의 앞날이 순탄하기를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그는 어느 정도 환상을 품고 있었다. 구봉검종이 초휴 덕분에 언젠가는 제이의 한강성이 될지도 모른다고. 이제 드디어 그 꿈에서 깬 셈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근심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초휴가 떠나고 나면 구봉검종은 어찌 될까? 초휴가 죽인 목숨, 그가 벌여놓은 짓, 그 모든 걸 결국 구봉검종이 짊어지게 되지 않겠는가.
초휴는 헛기침했다.
“군수 대인께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소. 어찌 됐든 구봉검종은 내가 제일 처음 객경으로 몸담았던 종문입니다. 이렇게 떠나게 되었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는군요. 제가 가고 나면 군수 대인께서 신경을 좀 써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구봉검종은 초휴에게 호되게 당한 셈이기도 했다. 초휴로서도 육삼금과 마주쳐서 곧장 황천각 객경이 될 줄은 몰랐다. 본래 그의 계획은 구봉검종이 방림군을 손에 넣도록 키우는 것이었고, 거리낌 없이 원한을 사고 다닌 것도 그래서였다.
그 때문이라도 해영종한테 이 정도 부탁을 하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말 한마디면 되는 일이 아닌가.
해영종으로서도 이런 것은 그저 말 한마디로 답하면 될 일이었다. 그는 손을 휙휙 저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구봉검종은 방림군에서 잘 지낼 겁니다.”
초휴는 이제 황천각 객경이니 같은 편이었다. 그리고 육삼금이 직접 황천각에 데려왔으니 분명 두 사람은 사이가 좋을 게 아닌가. 해영종으로서는 이런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 * *
임애재와 임봉무는 군수부를 나왔다.
임애재는 낙담하여 넋이 나간 딸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얘야, 혹시 초 공자에게 분수 넘는 마음을 품은 건 아니겠지? 마음을 비우려무나. 우리와 초 공자는 아예 다른 세상 사람이다. 내가 네 이름은 봉무라고 붙여 주었다만, 너는 진짜 봉이 아니건만 저쪽은 진짜 용이로구나. 하하, 아비가 너무 헛생각만 많았던 게지. 정말 내가 한강성 엽유공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뭐냐.”
임봉무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활발했고 실력도 남자 못지않았다. 그녀가 초휴처럼 강대한 실력의 젊은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한들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임애재는 알 것 같았다. 그와 초휴는 다른 세상 사람이었다. 자신은 군소 세력의 장문일 뿐이고, 저쪽은 고존의 전인이 아닌가.
그동안 고존의 전인으로 남의 객경이 된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그런 객경의 힘으로 우뚝 일어선 곳은 한강성 하나뿐이었다.
임봉무는 억지로 웃었다.
“아버님,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우리 구봉검종에 큰 힘이 되는 사람이 사라진 게 안타까운 것뿐이에요.”
사실은 임애재의 말대로 그런 마음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임봉무는 강한 사람을 좋아했다. 그러나 방림군의 청년 준걸이라는 자들은 그녀의 상대가 못 되는 판이니 어떻게 좋아할 수가 있겠는가? 우러러볼 만한 실력을 갖춘 초휴가 그녀의 눈을 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초휴의 지위는 어떤가. 군수 대인과 맞먹을 정도가 되었다. 그것을 본 임봉무도 자신과 초 선배는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임을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