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42)
1042화 황천각의 시시비비
어쨌건 해영종은 구봉검종을 보살펴주겠노라고 말해서 초휴의 체면을 세워 주었으니, 초휴도 아예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군수 대인이 원하시는 바는 황천각 본부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해영종은 육삼금을 힐끔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동네 황제 노릇을 좋아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무도에 더 정진하는 게 소원이니까요.”
그의 속마음이야 황천각 사람이면 다 아는 것이니 육삼금 앞에서 감출 필요도 없었다. 초휴가 말했다.
“좋은 방법을 알려 드리지요. 방림군을 더 쥐어짤······ 아니, 더 많은 재물을 거두어 공적을 불릴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방법이오?”
해영종은 초휴의 말에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서 군수 노릇을 십여 년 했다. 초휴처럼 젊은 무사한테 뭘 더 배우겠는가?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군수 대인은 방림군의 세력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이득을 보고 있지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지만 아무래도 너무 느립니다. 경쟁이 있어야 부담을 느끼는 법 아니겠소? 차라리 아예 방향을 바꾸는 게 나을 겁니다. 군수 대인은 폐관 수련에 들어간다고 선포하고, 암암리에 방림군 무림 세력이 서로 싸우도록 부추기는 겁니다. 그리고 더는 관여하지 마십시오. 그러다 누군가 멸문당할 위기에 몰리면 찾아가서 이득을 나누자고 요구하는 거요. 너무 많아도 안 되고, 적어도 곤란하죠. 오할이 딱 좋습니다.”
“그렇게 되면 야심 있는 세력은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오할을 내주는 한이 있어도 남을 쳐서 빼앗아 오려 하겠지요. 야심이 없는 자들도 목숨 보전을 위해 힘을 쌓기 시작할 것이고요. 방림군 전체가 고인 물처럼 가만히 있으면야 아무 재미가 없죠. 일단 흐르기 시작해야 군수 대인의 수입도 많아질 테니까요. 이 방법의 유일한 단점은 아주 강대한 세력이 금세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건 군수 대인이 얼마나 억누를 수 있는가에 달린 문제인 겁니다.”
해영종과 육삼금은 초휴가 말한 방법을 듣자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정말 지독한 수법을 말해주는구나 싶었던 것이다. 독한 와중에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정작 당사자는 쏙 빠져 있다는 점이었다.
죽고 죽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고, 해영종은 뒤에서 이득만 얻을 뿐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해영종과 황천각을 원망할 수 없을 것이다.
방림군의 무림 세력 모두가 아무런 욕심이 없어서 싸움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면 또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싸우고 죽이는 것은 무사의 천성이며, 탐욕을 부리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해영종은 능히 상상할 수 있었다. 정말 초휴의 방법대로 하면 단시일 내에 방림군은 끓는 솥이 될 테고, 그 솥 안에 든 것은 다 그의 차지가 될 것이다.
초휴가 말한 단점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제아무리 큰 종문이라 한들 어찌 황천각을 이기겠는가?
해영종은 저도 모르게 육삼금을 힐끗 보았다. 그는 헤헤 웃고 있었다.
“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오. 우리 황천각의 명성에 문제가 생기는 일만 터지지 않으면 그만이지.”
해영종은 초휴에게 예를 올리며 엄숙하게 말했다.
“초 소협의 조언에 감사드리오.”
그가 초휴 대신 구봉검종을 보살펴 주겠다고 한 것은 말 한마디로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초휴의 건의는 그가 더 빨리 공적을 쌓아 황천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초휴와 육삼금이 떠난 후에야 해영종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휴는 고존의 전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줄곧 무도에만 전념해 왔다고 했으면서 이런 권모술수는 어떻게 아는 것일까? 십여 년 군수 노릇을 한 그보다도 한 수 위가 아닌가.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본래 실력과 심계는 비례하지 않는 법이다.
그는 실력이 막강하지만 사고는 단순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아무 생각 없이 경솔하게 설치면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밖에 모르는 자들 말이다.
어쩌면 초휴는 타고나기를 심계가 깊은 것인지도 모른다. 고존의 전인이라면 무도의 자질만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뒤떨어지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맹성하도 그렇지 않았던가. 실력이 강했을뿐더러 합종연횡의 외교에도 능했다. 한강성을 도와 온갖 계책을 내놓아 절정급 대문파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니 말이다.
* * *
황천각과 능소종의 비무대회는 능소종이 자리한 능소성에서 열렸다.
비무라지만 사실은 은원과 갈등의 장이기도 했다. 두 문파는 상고 대겁난 전부터 길이 서로 달랐다.
그러면서도 무도의 경향은 퍽 비슷하여 서로를 눈에 거슬려 하며 지낸 세월이 무척 오래되었다. 상고 대겁난 전에도 몇 번이나 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대라천에 온 이후 모두가 깨달았다. 그들은 운이 좋아 살아남은 생존자들이었고 무사 하나하나가 귀한 존재였다. 아무 의의도 없는 싸움으로 목숨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두 문파가 다시 충돌했을 때 양측의 고위층이 규칙을 정했다. 생사결은 허락하지 않는다. 오년마다 한 번씩 비무대회를 거행한다. 순수한 비무일 뿐이니 목숨을 걸고 싸워서는 안 된다. 어느 쪽에서든 내기를 걸 수 있다. 이외에도 여러 규칙이 있었다.
일만년이 지난 지금, 대라천은 대규모로 발전했으니 생사가 걸린 격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황천각과 능소종으로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좀 갈등이 있기는 했으나, 이런 방식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것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능소종과 황천각의 실력이 엇비슷하다는 전제하에서의 이야기였다. 한쪽이 너무 허약해지면 그때는 상대에게 멸문당해도 할 말이 없을 테니까.
초휴는 육삼금을 따라 능소성으로 가면서, 비로소 동역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방림군에만 있어서 몰랐던 것이다. 그가 보기에 방림군은 일개 군 치고 하계보다 넓기는 했으나, 그래도 아주 큰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육삼금과 함께 동역의 여러 지역을 가로지르다 보니 느낌이 달랐다. 방림군은 황천각이 다스리는 여러 군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겠구나 싶었다. 황천각의 세력 범위는 하계의 동제만큼은 아니어도 북연과는 견줄 만했다.
능소성은 어느 군에도 속하지 않고 그저 홀로 서 있는 거대한 성이었다. 성벽의 높이는 수백 장에 달했다. 성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웅대하기 짝이 없었다.
성벽은 하나같이 백옥처럼 윤기가 도는 푸른 돌로 지어져 있는지라 매우 장엄하고 경건한 느낌을 주었다. 육삼금은 조금 놀란 듯한 초휴의 안색을 보고 입을 삐죽였다.
“능소종은 원래 이렇게 겉치레를 좋아한다오. 별 쓸데도 없는 짓인데 말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육삼금은 조금 질투가 났다. 능소종의 외관이 황천각보다 나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황천각 사람들은 비교적 실용적이었다. 대라천에 왔을 때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하계에 있을 때의 모습대로 종문을 재건했다. 능소종처럼 일부러 대라천에서 온갖 기이한 재료를 찾아 휘황찬란하게 지으려 하지 않았다.
능소성에 들어선 순간 초휴는 농후한 천지 원기가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안 그래도 대라천은 천지 원기가 짙은데, 능소성은 더 심해서 놀랄 정도였다.
능소성 전체에 거대한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진법의 힘으로 바깥의 천지 원기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거의 동천복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능소성은 능소종의 소재지이니 당연히 오가는 무사 대부분은 능소종 사람이었다. 모두 흰옷 차림에 자신만만하게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문파답게 기세가 당당했다.
그러나 초휴의 관심은 다른 데에 있었다. 그는 대라천 종문들이 옷을 맞춰 입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왔을 때 만난 군소 문파 사람들은 그를 현천경 무사라고 착각했었다. 그렇다면 현천경 무사들은 검은 옷을 즐겨 입는 모양이었다. 능소종은 흰옷이었다.
두 문파의 비무대회가 열릴 참이니 동역 대문파에서 얼굴을 비출 만한 사람은 모두 참관하러 왔다. 그래서 누가 능소종 제자고 누가 외부인인지 구분하기는 쉬웠다.
육삼금이 말했다.
“초 형, 은령자 도형. 우리 황천각 사람들은 이미 도착해 있소. 대회는 며칠 지나야 시작할 거요. 일단은 황천각이 마련해둔 처소에 가서 좀 쉽시다.”
초휴와 은령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모든 안내는 전부 육삼금에게 맡겼다.
대회 주최는 두 문파가 돌아가며 맡았다. 먼젓번은 황천각이었으니 이번에는 능소종이었다.
비록 두 문파 간의 갈등이 깊은 편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상대의 체면을 깔아뭉개려 들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능소종이 황천각 사람들을 위해 마련해 준 거처도 아주 훌륭했다. 커다란 대전을 통째로 내주었으니 말이다. 안에는 온통 황천각 무사들이었다.
문간을 지키던 황천각 무사는 육삼금을 보자 공손하게 대인이라 부르며 맞이했다.
“각주와 다른 분들은 안 오셨는가?”
육삼금이 묻자 문지기가 답했다.
“각주 대인은 다른 일이 있어 못 오셔서 종 대인을 대신 보내셨습니다.”
그 이름을 듣자 육삼금은 약간 낯빛이 변했다. 은령자는 주변을 둘러보느라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초휴는 그 표정을 보았다.
“육형, 왜 그러시오?”
육삼금은 가볍게 코웃음 쳤다.
“별 것 아니오.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서 말이오. 종추수(種秋水)는 우리 황천각의 부각주인데, 고집불통에 패도적인 성격이지. 이따 혹시 듣기 싫은 소리를 하더라도 초 형과 은령자 도형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구려. 그자도 동역 행주인 나를 어쩌지는 못할 테니.”
육삼금의 말을 듣자 초휴의 낯빛도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는 하계에서 내분과 암투로 많은 경험을 쌓은지라 그의 몇 마디 말만으로도 황천각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내부에 갈등이 있는 것이다.
사실 종문 내에 파벌이 전혀 없는 거야말로 더 이상한 일일 터였다. 초휴는 정말 상하가 한마음이 되어 일치단결하는 종문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던 그는 저도 모르게 은령자를 힐끔 보았다.
영보관은 줄곧 한마음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분 따위가 일어난 적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영보관은 사람 수가 세 자리를 넘어간 적이 없었다. 그 정도 인원으로도 내분이 일어난다면 참으로 난감하지 않겠는가.
종추수에 관해서는 사실 육삼금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문풍각의 기록에서 본 각종 정보 중에는 황천각 이야기도 적지 않게 있었으니까.
사실 그간 황천각에는 부각주라는 자리가 없었다. 각주가 있으면 그만이지 부각주가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말 한마디로 중대사를 결정하는 시원시원한 방식이야말로 황천각에 잘 어울렸다.
본래 황천각 무사 중에는 현 각주인 ‘천왕(天王)’ 이무상(李無相)과 부각주 ‘지존(地尊)’ 종추수가 쌍웅이라 할 만했다. 두 사람 앞에서는 능소종의 동급 무사들도 기가 죽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지막에 새 각주를 뽑을 무렵에는 두 사람 다 천지통현이었다. 그런데 이무상이 돌연히 무선에 올라 당당하게 황천각 각주가 되었다.
선대 노각주는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종추수에게 다른 자리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각주라는 자리를 새로 만들어 주었다.
그 후로 황천각에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본래 막역한 친구였던 두 사람이 늘 다툼을 일삼는다, 전혀 화목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초휴는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뭔가 곡절이 있다. 그러나 굳이 알아볼 마음이 들 정도로 그 문제에 큰 호기심이 생기진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육삼금은 초휴와 은령자를 데리고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대회 참석을 위해 황천각에서 온 무사 십여 명이 모두 모여 있었다. 두 명은 나이가 좀 많았고 그 외에는 모두 젊은 무사들로, 제일 약한 자도 진단경이었다.
밝은 노란색 예복을 입은 중년인이 한가운데 단정히 앉아 있었다. 마른 체구에 큰 키, 위엄 있는 생김새였다.
누구도 그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억지로 쳐다보려 해도 눈을 찌르는 듯한 금색 빛이 퍼져 나올 뿐이었다.
그 사람이 바로 황천각 부각주인 ‘지존’ 종추수였다. 들어서자마자 종추수가 싸늘하게 말했다.
“육삼금, 종문의 명령을 듣지 못했나? 양대 문파가 비무대회라는 중대사를 치르는데 뭐하고 꾸물거리다 이제야 오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