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54)
1054화 뜻밖의 습격
“지금 만족들의 동향은 어떤가?”
가찰이 답했다.
“폭동이 있고 나서 각주 대인이 친히 출수하셨습니다. 대형 부락 세 곳을 연이어 궤멸시키셨죠. 그 바람에 제라산맥 내 여러 부락이 한자리에 모여 용서를 구걸했으니 일단은 항복을 받은 셈입니다. 각주께서도 만족과 전쟁을 벌일 생각까지는 없으셨던지라 더는 공격하지 않으셨고요. 이렇게 일단락된 뒤로 만족들은 이전보다 훨씬 고분고분해지고 딱히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있습지요.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지는 모를 일입니다. 최근 몇 년간 저들은 늘 이런 식이었으니까요. 실력이 좀 강해졌다 싶으면 돌연 튀어나와 문제를 일으키죠. 그러다 된통 혼쭐이 난 다음에야 도로 얌전해지는 게 놈들 수법이거든요.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전형적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가찰은 말하는 내내 만족을 경멸하는 기색이 다분했다. 본인도 절반은 만족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모양이었다.
“좋다. 그러면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나와 함께 만족 부락 접경지로 가서 그곳 정황을 정탐토록 하세.”
초휴의 말에 가찰은 또 한 번 쓴웃음을 금치 못했다. 아무래도 자기가 이 대인 양반에게 된통 걸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절대복종을 맹세했으니 어쩌겠는가. 그러마 하고 응답할 수밖에.
* * *
다음 날 아침, 초휴는 수하들에게 이런저런 분부를 내린 후 가찰과 함께 성을 나섰다.
그 광경을 본 군수부 사람들은 다시 한번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아무리 사람이 제멋대로여도 그렇지, 어찌 된 게 부임 바로 다음 날, 다녀온다는 말만 남기고 훌쩍 사라진단 말인가. 안하무인도 이 정도면 불치병 수준일 듯했다.
사실 초휴가 지금 안하무인인 건 사실이었다. 그는 황천각을 위해 책략을 모색하고 이곳의 실력을 키우는 일 같은 것들은 하등 관심이 없었다.
성문을 지나면서 보니 어제와는 달리 황천각 무사 두 명이 지키는 게 보였다. 그들은 초휴를 보자 저승사자라도 만난 양 허겁지겁 예를 올렸다. 성문을 나선 후 가찰에게 길 안내를 맡기려던 순간, 초휴는 극도의 위기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이에 빛의 속도로 좌측 수십 장 너머로 몸을 날리자 거센 멸세의 화염에 휩싸인 칠흑빛 화살이 날아들었다. 놀랍게도 그건 멸삼련성전이었다.
하계도 아닌 대라천에서 멸삼련성전을 맞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그것은 멸삼련성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멸세지화 본연의 멸세 속성이 다소 약한 대신, 다른 속성의 힘이 얼마간 섞여들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구할 이상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화살이 허공을 가르면서 날아오자 그 궤적을 따라 패도적인 불길이 모든 힘을 증발시켜 버렸다. 그 기세만 보아도 화살을 쏜 자의 실력이 천지통현에 이르고도 남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요행히 첫번 화살을 피하기는 했으나, 아까 느꼈던 위기감은 여전히 가실 줄을 몰랐다. 해서 당장 천자망기술을 극한치까지 시전하자, 놀랍게도 그 화살은 허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멸세지화가 허공에 파동을 일으키긴 했으되, 정작 멸세지화의 실체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로 날아드는 화살은 불과 열 장 남짓한 거리를 앞두고 있었다! 이처럼 공포스러운 환술(幻術)은 난생처음이었다.
천하의 초휴도 이 순간만큼은 식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천자망기술을 수련한 뒤로 동급 경지의 무사들 가운데 감지력만은 최고임을 자부해왔으나 그런 그조차도 환술에 당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초휴에게 미흡한 구석이 있어 환술에 걸려들었다고 할 순 없었다. 그보다는, 출수한 자의 환술 실력이 허상과 실재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묘한 경지에 이른 때문이었다.
함께 있던 가찰은 물론, 성문을 지키던 황천각 무사들도 멸삼련성전을 보며 기함을 금치 못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초휴가 무색정대수인을 결하자, 찬란한 불광이 터지더니 공간이 일그러졌다.
멸삼련성전도 인법의 영향 아래 일그러지며 폭발해버렸다. 폭발과 함께 사면팔방으로 솟구친 힘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초휴의 몸은 십여 장도 넘게 밀려났다.
“또 천라보찰의 망할 이단 공법이로군. 역겨운 것들 같으니!”
허공에 은은히 파문이 일더니, 해괴한 부적문이 온통 수놓아진 검은 도포를 입은 음침한 화상 하나가 초휴 앞에 나타났다. 그를 화상이라 칭한 이유는 일단 민머리인 데다 몸에 칠흑빛 염주 꾸러미를 걸친 때문이었다.
그는 천지통현의 실력자였다. 일신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파동 역시 대단했다. 어림잡아도 상천량이나 능운자를 훨씬 능가할 것으로 보였다.
난데없는 천지통현 강자의 출현에 가찰과 경비병들은 허겁지겁 성문을 닫고 진법을 가동한 후 성벽 위로 숨었다. 그리고 즉시 성내 다른 황천각 무사들에게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초휴를 돕지 않으려는 악의에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실력으로 섣불리 돕겠다고 나서봐야 상대의 일장에 맞아 죽을 일밖에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초휴가 부임한 지 고작 이틀째가 아닌가. 게다가 그는 오자마자 수하 하나를 파리 때려잡듯 죽였다. 그런 자를 위해 목숨을 서슴없이 던질 정도로 충성심에 불탄다면 그거야말로 해괴한 일일 터였다.
하지만 초휴는 그들이 어쩌건 말건 간에 그 기괴한 화상에게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다.
“정체가 무엇이냐? 능소성에서 나를 엿보았던 자가 바로 네놈이렷다? 오는 길에 나를 훔쳐봤던 그 눈빛도 네놈의 것일 테고 말이지. 내가 언제 당신한테 밉보일 짓을 했다고 죽이려 드는가?”
그러자 화상은 괴이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나는 범교 비슈누전(毗濕奴殿) 산하 환혹천왕궁(幻惑天王宮)의 궁주인 마리가(摩利訶)다. 애송이! 나는 네 녀석이 어느 일맥의 고존 전인이던, 그건 상관치 않는다. 황천각 군수인지 나발인지도 알 바 아니다. 내 질문에만 답해라. 너의 멸세지화는 대관절 어디서 난 것이냐?”
상대가 범교를 들먹이자 초휴는 내심 ‘아뿔싸!’를 외쳤다. 자기가 경솔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사실 여기에 와서 사용하는 초휴 일신의 공법 중 문제 될 만한 건 없었다. 하계에서 수련한 공법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독고유아의 공법을 써먹어도 나름 내세울 만한 핑곗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조사가 지난날 독고유아와 교전을 치르다가 상대의 공법을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 그리고 그 공법을 오백년에 걸쳐 연구한 끝에 고스란히 재현해내게 된 거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니까. 자고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으니, 상대를 이기기 위해 상대의 공법을 수련했다는 설명은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범교 시바전 산하 대흑천신궁의 멸세지화를 익혔다는 건 문제가 될 소지가 컸다.
범교는 여전히 서역의 대파로, 대라천 전체로 봐도 최정상급 종문에 속했다. 사실 초휴는 구봉검종에서 읽어본 자료들만 믿다가 이 꼴이 난 셈이기도 했다.
그 자료에 쓰여 있길, 대라천 종문들의 강자는 쉽사리 남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되어있었다. 대라천이 워낙 광대한 때문이기도 하고, 상대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어서였다.
그러나 동역과 서역이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건만, 공교롭게도 범교 사람이 동역까지 행사 참관차 왔다가 하필 초휴가 멸세지화를 시전하는 광경을 본 것이다.
하지만 초휴는 애써 담담히 응수했다.
“처음부터 그리 물어볼 일이지, 대뜸 공격부터 할 건 뭐란 말인가? 당신들 범교의 방식은 왜 이 모양인가? 우리 일맥의 조사님은 상고 대겁난 이전부터 명망이 높으셨던 분이다. 수많은 강자와 교류하며 서로 공법을 공유하기도 했었지. 범교의 멸세지화를 할 줄 안다는 게 뭐 대수라고 이 난리인 것인가? 멸세지화는 당시 범교의 조사가 우리 조사님께 주신 것이다.”
그러자 마리가의 낯빛이 시커메지더니 욕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지랄염병 같은 소리 작작해라! 대흑천신궁은 우리 범교가 천라보찰의 화생각(化生閣)에 대항하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오천년 전에 세운 것이다. 멸세지화 역시 화생각의 정련불광(凈蓮佛光)을 억제하기 위해 창안해 공법이란 말이다. 네놈의 조사가 대겁난 이전 사람이라고 했겠다? 그러면 시공간을 뛰어넘은 게 아니고서야 어찌 지금부터 오천년 뒤에 나타나서 멸세지화를 배울 수 있단 말이냐?”
신랄한 추궁에 초휴는 할 말이 없어졌다. 대놓고 허를 찔리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리가는 계속 그를 몰아붙였다.
“어서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멸세지화를 대체 어디서 배웠느냔 말이다? 오백 년 전, 그러니까 대흑천신궁이 사라진 뒤로 멸세지화는 범교 내 극소수의 사람들한테만 전승되었다. 그러니 절대 외부로 유출되었을 리 없다. 말해라! 네놈이 대흑천신궁을 발견하기라도 한 거냐? 좋게 말할 때 순순히 부는 게 좋을 거다. 아니면 이 어르신이 네놈 무공을 폐한 후 환혹신경(幻惑神境)으로 끌어들여서 끝날 줄 모르는 연옥에 빠진 고통을 맛보여줄 테니까! 네놈이 고존 전인이고 황천각 군수라고 해서 내가 못 건드릴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 범교는 대흑천신궁의 종적을 오백 년 동안 추적해왔고, 이 몸이 그 일을 맡은 지는 백년이 지났다. 누구든 우리의 일을 방해하면 범교의 적으로 간주할 것이다. 무선이라고 해서 우리가 안 죽여 보았을 것 같으냐?”
지금으로부터 오백년 전, 대흑천신궁은 범교가 발견한 단서를 가지고 남역의 여러 대파를 거쳐 전설 속에서나 접해봤던 조상의 땅에 시험 삼아 들어갔다. 그 뒤로 돌아오지 못했을뿐더러 소식도 완전히 끊어졌던 것이다.
당시의 일과 관련해 범교 측에서 장장 오백 년에 걸쳐 조사해본 결과, 대흑천신궁은 남역 대파에게 궤멸당한 것도 아니고 만족에게 전멸당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조상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범교와 연락이 닿았으나, 그 뒤로는 감감무소식이 되었던 것이다.
과연 그들이 조상의 땅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는지, 아니면 무슨 의외의 불상사를 만났던 건지, 모든 게 오리무중이었다. 대흑천신궁은 범교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 중이었고 조상의 땅과 관련된 비밀 등도 알고 있을 터. 따라서 오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범교는 포기하지 않고 대흑천신궁의 종적을 찾고 있는 것이다.
범천전, 시바전, 비슈누전 산하의 궁주들은 하나같이 천지통현 강자들로, 서로 돌아가며 대흑천신궁 실종에 관한 단서를 추적해왔다. 범교가 천라보찰의 극한 압박 아래 놓여있던 그때, 전투력 최강의 시바전 강자들이 천라보찰의 정련불광에 맞서려고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낸 게 멸세지화였고, 이로써 대흑천신궁도 건립되었다.
따라서 범교 산하 모든 신궁을 통틀어 대흑천신궁의 실력이 가장 막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의 궁주는 무선 경지에 반보나마 걸쳐놓은 상태였고 그 밑으로 천지통현 수하를 다섯 명이나 거느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강자가 한 번 간 뒤로 돌아오지 못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된 데는 분명 무슨 내막이 있을 터였다. 마리가가 이 일을 맡은 지도 어언 백년이나 지났다. 동서남북 안 가본 곳이 없었으나, 여전히 실낱같은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여 이 임무를 다음 차례인 궁주에게 넘기기 위해 서역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능소종에 비무 참관차 갔던 건 그저 충동적으로 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멸세지화를 보았으니 그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대흑천신궁은 실종된 뒤로 다시는 재건되지 않았다. 궁주들도 멸세지화를 수련할 수는 있었으나, 자신의 수련을 보강하는 용도로나 쓸 뿐이었다.
이를 밖에서 단독으로 시전할 일도 없건만 외부로 새어나갈 일이 무에 있었겠는가. 따라서 초휴가 해명이랍시고 내놓은 답변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었다.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임무를 다른 이에게 넘기게 생겼건만, 때마침 단서를 찾아냈으니 이는 하늘이 자기한테 허락하신 기연이 틀림없지 않은가.
하여 마리가는 능소종에서부터 줄곧 초휴의 뒤를 밟아왔다. 하지만 황천각 사람들이 그의 곁에 붙어 있는지라 손쓸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섣불리 출수했다가는 황천각 강자들이 개입할지 모르니 이곳으로 오는 내내 꾹 참고 있다가, 초휴가 창오군에 당도한 후 황천각 강자들과 따로 있게 된 틈을 타 지금에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