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60)
1060화 신께서 말씀하시길……
동파강으로서는 상대가 말한 ‘특별한 능력’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력은 이미 기이하기 그지없는 상태에 빠진 다음인지라 경계심 또한 사라진 상태였다. 하여 그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이 말을 터뜨렸다.
“아닙니다. 당연히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당장 나를 너의 부락으로 데려가라. 가서 너희 부락의 결정권자를 만나볼 것이다.”
초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파강이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길로 초휴와 함께 산중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한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가찰도 이를 악물더니 초휴의 뒤를 따랐다. 일단 따라가긴 했지만, 초휴가 대체 무슨 꿍꿍이속인지 알 길이 없어 머릿속이 복잡했다.
만에 하나 흑라부 한복판에서 정체가 탄로 나는 날엔 흑라부 전체가 초휴와 자기를 죽이려 개떼처럼 달려들 게 뻔하지 않은가.
아니, 그 정도 선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웃 부락까지 끌어들여 협공해오면 목숨을 보전할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른 이상 퇴로는 사라진 것이다. 초휴를 따라 이번 도박판에 모든 것을 걸어볼 수밖에.
숲속 깊이 들어갈수록 길은 변변하게 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동파강 무리는 이정표 하나 없는 숲속을 이리저리 잘도 헤치며 나아갔다.
그들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장장 하루 남짓 걸어서야 여러 만족 부락이 모여 있는 지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직접 보는 흑라부는 나뭇더미를 대충 쌓아 만든 일종의 막사 같은 집들의 집합소에 지나지 않았다. 사방에 짙게 흐르는 야만적인 분위기는 원시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마을 주위로는 성벽이랍시고 큰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신기했던 점은 흑라부 입구를 전신이 새까만 표범 한 쌍이 지키는 광경이었다. 어찌나 몸체가 거대한지 그야말로 코끼리를 방불케 하는 것이, 몸뚱이에서 거칠고 사나운 기세가 흉흉하게 넘쳐흘렀다.
그런데 동파강은 흑라부 입구에 도착하자 정신이 번쩍 났다. 내가 대체 뭘 하려던 걸까? 처음 보는 외부인을 부락까지 데리고 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에서 이런 짓을 한 걸까?
그러나 동파강이 혼란한 정신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거래가 어땠나? 교활한 외족들이 치사한 수작을 하지는 않던가?”
얼굴이 온통 화염 모양 비슷한 문신으로 뒤덮인 전갑 차림의 거한이 입구에 서 있었다. 일신에서 뿜어 나오는 기세가 어찌나 강력했던지,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땅이 흔들리는 게 거대한 맹수가 지나가나 싶을 정도였다.
그자는 초휴와 가찰을 발견하자 낯빛이 확 바뀌었다. 가찰이야 누구인지 금세 알아보았고, 그가 여기 나타났다고 해서 정색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저 가면을 쓴 낯선 사내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겉만 봐서는 아리송했지만 일단 일신에서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도 그가 틀림없는 외족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가찰이 다급히 전음으로 초휴에게 알렸다.
“저자는 흑라부 족장인 흑걸(黑桀)이란 잡니다. 흑라부 제사장이 죽은 뒤로는 이곳의 최강자인 셈입니다.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는 구체적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흑라부 제사장처럼 천지통현 강자를 참살한 전적 같은 건 없으니까요. 그래도 저자의 손에 죽은 진화련신 무사들은 적지 않습니다. 적어도 소인의 실력 정도로는 저자의 삼 초도 막아내지 못할 겁니다.”
이때 흑걸의 입에서 천둥 같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고막이 찢어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우렁찬 소리였다.
“동파강!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외족 사람을 함부로 부락까지 데려오면 어쩌자는 거냐?”
이에 동파강이 우물쭈물 어찌할 바를 모르며 말을 이어갔다.
“아까 윤가기가 우리를 해치려 들었는데 그때 가찰이······, 아니, 저 외족 사람이 저희를 구해주었습니다. 우리 조상의 특별한 능력을 가져왔다면서, 그러니까 참된 신이······.”
“저자가 뭐라 지껄였건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
동파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횡설수설에 짜증이 난 흑걸이 윽박질렀다. 그러자 잠자코 지켜만 보던 초휴가 끼어들었다.
“족장, 그리 흥분할 필요 없다. 내가 흑라부에 특별히 큰 능력을 주려고 참된 신의 의지를 모셔왔으니까. 이 능력은 흑라부 조상들이 후손들을 위해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신께 받아낸 것이다. 그걸 받을지 안 받을지는 당신들 스스로가 결정하라!”
뇌리에 울려 퍼지는 그 음성에 흑걸은 다시 한번 크게 놀랐다. 눈앞의 저 외족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둘째 치고, 흑걸 자신의 정신력 방어막을 비웃기라도 하듯, 뚫고 들어오는 정신력의 막강함이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잠깐만! 나는 이런 일을 잘 모르니 가서 제사장을 데려오겠다.”
가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흑라부의 제사장은 이미 죽지 않았던가? 난데없이 어디서 제사장을 데려온다는 걸까?
잠시 후 족장의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젊은 여인 하나를 데려왔다. 그 여인은 검은 도포로 몸을 휘감고 있었으나, 그 굴곡진 몸매는 뚜렷이 드러났다.
피부도 여느 만족처럼 거무튀튀했지만, 이목구비가 오목조목 어여쁘고 또렷했다. 얼굴에도 다른 만족들처럼 많은 문신이 있는 게 아니라 미간에 별 하나를 찍어 장식한 게 전부였다. 용모만 봐서는 세상 어느 곳에 내놓아도 미인 소리를 들을 만한 절색이었다.
가찰이 뒤늦게야 그녀를 알아보았다.
“누군가 했더니 녹비(綠翡)였군. 저 여인은 죽은 제사장이 친히 가르친 제자이자 후계자입니다. 제사장이 죽었으니 저 여자가 다음 제사장이 되는 게 당연한 순서긴 하죠.”
녹비가 다가오자 흑걸이 정색하며 물었다.
“녹비······, 아니지, 제사장! 제사장이 보기에 저 외족인이 한 말이 진짜 같소, 아니면 가짜 같소?”
녹비가 초휴를 힐끗 보더니 청아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당연히 가짜요! 우리 일족은 오직 산신 대인만 모셔왔건만, 무슨 참된 신 타령이란 말인가? 외족인! 네놈은 감히 우리 흑라부 조상을 모독했다. 그리고 우리 흑라부의 신도 모독했다. 그러니 너는 오늘 여기서 죽어야 한다. 네 살과 피는 매의 먹이가 되고, 뼈는 개의 이빨에 으스러질 것이다!”
이때 초휴 뒤에 숨어 있던 가찰은 여간 후회가 되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 알았더라면 초휴의 하라는 대로 따르지 말 걸 그랬다 싶었다.
여기서 섣불리 신들린 행세를 하려다가 신은 고사하고 귀신이 될 판이 아닌가. 흑라부 무사들이 두 사람을 에워싸고 공격하려는 순간 초휴가 담담히 말했다.
“산신이라 했느냐? 산신이건, 해신이건 죄다 거짓 신이다. 진정한 신은 천지간에 오직 한 분뿐이다!”
녹비의 표정이 화들짝 변하더니 손을 내저어 무사들의 공격을 중지시켰다. 그리고 초휴와 마찬가지로 정신력을 통해 소리를 전달했다. 정신의 파동을 통해 격노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우리가 모시는 신이 거짓 신이라니? 그게 무슨 헛소리냐!”
초휴가 태연히 받아쳤다.
“당연히 거짓 신이지. 참된 신은 전지전능하시다. 너희들도 그분 손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다. 너희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말인가?”
초휴의 강력한 정신력이 퍼져나가자 흑라부 내 모든 사람은 그가 전하려는 뜻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너나없이 당혹한 표정이 되었다.
어떻게 자신들이 생겨났는지 아느냐고?
만족들은 늘 머릿속이 단순했다. 게다가 지나온 세월에 대해 기록하는 습관도 없는데 자기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따위를 알게 뭐란 말인가?
모든 이들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녹비를 향했다.
만족 부락 내에서 제사장의 위상은 상당히 높아서 더러는 족장보다 높을 정도였다. 흑라부 선대 제사장이 그랬듯이 말이다. 제사장이라는 존재는 곧 지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락 전체를 통틀어 지식이 가장 깊은 사람은 당연히 제사장인 것이다.
하지만 녹비의 표정 역시 부락민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녀의 사부조차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전혀 가르쳐 준 적이 없었으니 그녀 역시 알 리가 없었다.
“그럼 당신이 말해 보라. 우리 일족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
초휴가 가면을 쓰자 그의 눈동자에 빙글빙글 소용돌이가 맴도는 듯했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단 한 명도 예외는 없이 말이다.
초휴는 목소리를 조금씩 늘어뜨리며 말했다.
“자고로 인간은 모두 신이 창조한 존재다. 만족이건, 대라천 역인이건 간에 말이다. 태초에 이 세상은 혼돈에 빠진 하나의 알과도 같았다. 신이 알을 깨부수듯 그 세상을 쪼개자 발아래는 대지가 되고 머리 위는 하늘이 된 것이다.”
그가 손을 내뻗자 손 전체에 찬란한 광채가 응집되었다.
“신께서 빛이여, 생겨나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겨났도다!”
“신께서 또 말씀하셨다. 빛이 생겨났으니 어둠도 있어야겠구나. 하여 그 말씀대로 되었다.”
손에 어려있던 광망이 순식간에 밝음을 잃는가 싶더니 이내 칠흑 같은 어둠이 펼쳐졌다.
“신께서 말씀하시길, 이 세상에 흙과 바람, 물과 불도 있어야겠다 하시니 그대로 이루어졌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지 원기가 일순간 흙과 바람, 물과 불로 화하더니 그의 손가락 사이를 오가며 현묘한 변환을 일으켰다.
“신께서 말씀하시길, 이 세상에 온갖 식물과 흉수가 살 수 있도록 생기가 필요하겠구나 하시니 이 또한 이루어지도다!”
가찰은 입을 떡 벌린 채, 눈 앞에 펼쳐진 초휴의 장엄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 초휴가 파리를 때려잡듯 살인을 자행하는 광경을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정말 그가 속세에 강림한 신령의 화신인 줄 착각할 뻔했다. 이쯤 되자 녹비조차 참다못해 재촉하듯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초휴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깔리더니 부락민들의 마음속에 공명을 일으켰다. 엄숙하고 경건한 가운데 신성함마저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성숙한 존재란 말이지. 신께서는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선혈로 대라천 역인을 만드셨다. 그들로 하여금 천상에 살게 하셨기에, 그들은 당연히 너희들보다 아는 게 더 많은 것이다. 그다음으로 신께서는 자신의 장심(掌心)에 흐르는 선혈로 너희들을 만드셨다. 해서 너희들의 육신이 역인들보다 더 강한 것이다. 어린아이도 호랑이와 표범을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하지. 이렇듯 만물을 창조하신 신께서는 불가능한 게 없는 능력을 지니셨다. 반면, 너희들이 신이랍시고 떠받드는 그 잡것들은 신께서 제일 먼저 만들어내신 생령(生靈)에 불과한 존재다. 해서 그처럼 강력한 힘을 갖게 된 것이지. 하지만 그것들이 대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신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초휴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는 사이비 교주의 선동을 방불케 했다. 멀쩡한 외부 사람이 봤더라면 웃음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흑라부 사람들 눈에는 더없이 진실한 모습으로 보였다. 급기야 일전에 제사장이 그들 모두를 이끌고 산신에게 제를 지냈을 때보다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사실 범교와 천라보찰 같은 소수의 종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무림 세력은 신이나 부처 등의 신령한 존재를 믿지 않았다.
물론 머나먼 태고에는 그런 존재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그 존재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렸거나 상고 전설에나 등장하는 마신과 함께 소멸했다고 여겨졌다.
어쨌거나 지금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만족들은 달랐다. 그들은 줄곧 신이 자신들을 보호한다고 믿었다. 이미 세상을 뜬 조상의 영령도 자신들을 굽어살펴주고 있노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따라서 초휴의 이 신들린 듯한 모습은 가슴 깊이 와닿았고 전혀 의심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