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61)
1061화 신의 힘
사실 그간 그들이 신을 섬겨온 방식이라고 해봤자 흉수의 피와 살을 바친 후 제사장을 따라 ‘신이여, 저희를 보우하소서!’ 이런 종류의 말을 한바탕 읊고 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한마디로 상당히 허접한 것이었다.
제사장이 방금 초휴가 했듯이 신의 능력 및 신의 손을 통해 이 세상이 생겨난 유래에 대해 조리 있고 똑 부러지게 설명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엉켜있던 세상이 분리되어 천지가 되고 빛과 어둠이 생겨나는 광경이 그들의 머릿속에 무한대로 펼쳐졌다. 그 신성함과 웅대함의 극치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가슴이 뜨거워지며 피가 끓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초휴가 임엽으로 살았던 전생에서, 수천 년 역사에 걸쳐 종교가 차곡차곡 쌓아 올린 위력이었다.
허접한 기도문이나 읊어댈 뿐인 만족들이 진위를 분별할 수 있는 수준이 결코 아닌 것이다.
만족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다는 녹비조차 어느덧 초휴의 말에 빠져들었다. 그런 얘기들에 대해 여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외족이 제멋대로 지어낸 얘기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조차 들 수가 없었다.
뭘 조금이라도 알아야 의심도 할 수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부락의 제사장으로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당신은 누구요? 당신이 바로 참된 신이오?”
초휴가 고개를 내젓는가 싶더니 이내 또 끄덕였다.
“신께서는 선혈 한 방울로도 일개 종족을 만들어내는 분이시다. 이처럼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어디인들 존재하지 않으시겠는가? 신께서 어떤 생각을 떠올리시기만 해도 나는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나를 신의 의지가 구현된 화신, 즉 신의 사자(使者)라 생각하면 된다. 흑라부의 조상들은 살아생전 자손들을 위해 큰 고초를 겪었다. 죽어서도 곁에서 신을 모시며 큰 공을 세웠다. 이는 영령이 소멸할 위험을 감수하고 그들이 얻어낸 특별한 능력이니, 부디 신과 조상의 선물을 귀하게 여기길 바란다.”
그러자 녹비가 마지막까지 심중 깊숙이 남아있던 의혹을 삭이지 못하고 물었다.
“하지만 당신이 한 말이 죄다 참말이라고 어찌 믿소?”
초휴가 입가에 괴이쩍은 미소를 띠었다.
“신의 선물을 받고 나면 내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곧 알게 될 것이다.”
초휴가 흑라부 사람들 앞에서 연신 신들린 시늉을 하자 가찰은 긴장한 나머지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이곳 부락민들의 사고가 단순한 건 맞다. 신과 조상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어 의심치 않는 것도 분명했다.
하지만 사고가 단순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얕잡아 봐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초휴가 자신을 신의 사자라고 우긴다고 해서 저들이 곧이곧대로 믿어준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초휴가 제아무리 번드르르하게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한들, 저들이 믿게 만들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 결국 실패할 공산이 컸다.
물론 일반 부락민들은 초휴의 정신력에 휘둘려 그의 말에 이미 빠져든 눈치였다. 하지만 흑걸과 녹비처럼 지위가 높은 자들은 사고가 단순할지언정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만큼 섣불리 남의 말을 믿지는 않을 터였다.
녹비가 여전히 의혹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초휴에게 물었다.
“선물이라니? 우리한테 무슨 선물을 준다는 건가요?”
“원래 너희들 일족의 힘은 신께서 내리신 것이다. 너희들이 천지로부터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단 말이지. 이제 내가 주는 선물을 통해 너희는 더욱 강력한 힘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누가 제일 먼저 시험해보겠는가?”
녹비와 흑걸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흑걸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족장이니, 나부터 선물을 받겠소이다.”
사실 부락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족장이 아닌 제사장일 때도 있기 마련이다. 족장은 명망이 가장 높은 막강 전사에 불과하지만, 제사장은 부족 전체를 이끌며 그들의 생존을 책임질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초휴에게 길 안내를 해주었던 동파강이 돌연 나섰다.
“족장, 이들이 진짜이건 가짜이건 간에 제가 데려온 사람들이니, 제가 먼저 받아보겠습니다. 흑라부 전사는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노족장께서 늘 말씀하셨잖습니까.”
이에 초휴가 두어 마디 툭 던졌다.
“허 참, 쓸데없는 걱정을 자꾸 하는군. 신께서 하사하신 선물이 위험할 리 있겠는가.”
하지만 동파강은 여전히 불안감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더불어 방금 초휴가 시연해 보인 그 기막힌 광경 역시 좀체 잊히지 않았다.
잘은 몰라도, 신이라면 적어도 비열한 짓은 안 하지 않을까? 그의 무의식이 계속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윽고 초휴의 장심에서 금색과 은색이 섞인 불꽃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내력진화였다.
“자, 이제 신께서 내리시는 불의 온기를 느껴보아라. 이것이 바로 신의 선물이니라.”
동파강이 무엇에 홀린 양 내력진화에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골수 깊이 파고드는 정체 모를 끔찍한 통증에 그는 냅다 비명을 질렀다.
이를 본 흑걸과 녹비의 낯빛이 변해서 초휴와 동파강 사이를 떼놓으려 하자, 초휴가 불호령을 내렸다.
“정신을 집중해야지! 바로 이 느낌을 두고두고 기억하란 말이다! 너희에게 부여한 힘은 필요할 때 쓴 다음에 금방 사라지는 그런 하찮은 힘이 아니다. 이 힘을 너의 체내에 스며들게 해라. 피 한 방울, 뼈 한 조각까지 구석구석 스며들게 하란 말이다!”
초휴의 말에 동파강이 정신을 가다듬었다. 비록 입으로는 여전히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으나, 어느샌가 주위 천지 원기가 가닥가닥 자신의 체내로 스며들어 육신과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그의 몸이 폭발하듯 불어나더니 그의 기세가 끊임없이 증강되는 게 아닌가. 그 광경에 지켜보던 모든 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찰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파강은 흑라부의 노장으로 실력이 있는 축에 들었으나 나이도 많고 해서 그리 강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진단경 정도의 무사와 대등하게 싸우는 게 한계였다.
하지만 지금의 기세는 놀랍게도 부락 내 강하다고 소문난 전사들 못지않았다. 심지어 진화련신의 무사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가찰이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만족이 역인들의 수련 방식을 배워서 따라 하는 게 근본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역인들의 진기 내력 등을 흡수할 방법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휴는 이것을 보란 듯이 해낸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만족 무사의 실력을 한 층 더 끌어올린 것이다. 무슨 도깨비 장난도 아니고,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사실 초휴가 쓴 수법은 단순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진화연신법을 응용하여 동파강의 몸에 힘을 주입한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일전에 초휴는 가찰한테 만족에 관한 자료를 가져오게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만족의 힘을 직접 시연하게 했었다. 만족의 힘이라는 게 대체 어떤 건지 시험 삼아 느껴볼 목적에서였다.
가찰이 가져온 자료에는 만족의 힘에 관한 설명이 완벽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하계 사람들이 이곳에 온 지도 만년 가까이 흘렀으니, 그동안 저들에 관해 꽤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진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만족은 역인들의 무공을 수련할 수 없는데 그 원인은 간단했다. 그들은 무도가 무엇인지 그 개념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무도라는 것은 매우 복합적이고 난해해서, 피와 살, 경맥, 내력, 단전은 물론이고, 천지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비롯해 삼화취정이니 오기조원이니 등등 상당히 복잡한 체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따라서 무도 입문을 어린 시절에 하건 성인이 되어서 하건 간에, 무도의 전반적인 체계와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제대로 된 무공 수련이 가능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만족은 일단 언어와 문자에서부터 소통이 불가했다. 그러니 평생에 걸쳐 배우게 한들 애당초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다.
물론 가찰은 특수한 경우였다. 혈통의 절반은 만족이라 해도 어릴 적부터 역인들 틈에서 자라난지라, 그가 받은 교육 또한 여느 역인 무사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 역인들의 무도를 익히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만족들이 무도를 모른다고 해서 자기만의 힘을 가질 수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순전히 타고난 자질에 의해서 힘의 강도가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만족들 대부분은 엄청난 육신의 힘을 지닌지라 어린애조차 맹수를 때려잡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성인이 된 만족 전사는 천부적 자질이 양호할 경우, 천지의 힘에 감응까지 할 수도 있었다. 본능적으로 그 힘을 끌어들여 일부나마 빌려 쓰게 되는데, 이것은 천인합일 경지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래 봐야 제대로 무도를 익혀 천인합일에 이른 역인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만족들은 일평생 더는 위로 올라서지 못하고 그 경지에 머무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힘에 있어 역인 천인합일보다 수배나 더 강할지라도 말이다. 근본적으로 만족은 천지의 힘을 장악하여 움켜쥘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저 본능에 기대어 그 힘을 잠시 빌려 쓰는 게 고작이고, 그 힘을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을 몰랐다. 그러니 다 빌려 쓰면 그 힘은 도로 천지간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 힘이 조금이나마 체내에 잔류하긴 하지만 미미한 수준에 불과해서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 딱히 별 쓰임새가 없는 셈이었다.
그런 만족들을 상대로 지금 초휴는 광포하리만치 단순 무식한 방법을 쓰고 있었다. 저들로 하여금 일단 진화연신이 어떤 건지 맛보게 한 다음, 강제로나마 천지의 힘을 끌어들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억지로 쑤셔 넣다시피 저들의 체내에 그 힘을 주입해버리는 것이다.
저들이 이를 견뎌내기만 하면 그 힘을 오롯이 가지게 될 터였다. 따라서 이 방법은 원리 면에서 진화연신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동파강이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듯 보이자 초휴가 말했다.
“그쯤 했으면 되었다. 그대는 신의 힘을 더는 견디지 못할 듯하니 무리해서 받지 말라.”
동파강은 헝겊 인형처럼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몸 상태는 본인의 젊은 시절, 그러니까 한창 기량이 절정에 달했던 당시의 수준을 훨씬 능가함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심지어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던 늙수그레한 용모도 더 젊어진 듯 보였다. 그가 주먹을 불끈 쥐자 주먹에서 화염이 피어올랐다.
그 상태로 땅바닥을 향해 일권을 내지른 순간, 수십 장 크기의 거대한 구덩이가 불꽃의 작열과 함께 움푹 생겨났다.
급기야 지룡이 한바탕 몸을 뒤튼 것처럼 지면에 금이 쩍쩍 가더니 줄줄이 나무가 쓰러지고 나무집까지 무너졌다.
“이것이······, 정말 나의 힘이라고?”
동파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흑걸이 입을 실룩댔다.
“저 파인 땅은 자네가 메꿔놓아야 하네. 무너진 집들도 자네가 책임지고 다시 세워 놓고 말이지. 그런데 지금 기분이 어떤가? 뭐 이상한 건 없나?”
동파강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조금 아팠던 것 말고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되레 몸에 힘이 막 넘치는걸요. 아픈 거야 좀 쉬면 금세 멀쩡해질 것 같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흑라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초휴에게로 집중되었다. 이때 그들의 시선은 그야말로 신을 보는 듯했다.
그간 오랜 세월에 걸쳐 만족이 역인들의 공법을 배우려는 시도가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무공 비급까지도 강탈해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알 수 있는 건, 검은 건 글자요, 흰 건 백지라는 것뿐이니 말이다.
심지어 역인 무사를 납치도 해보았다. 하지만 말이 통하질 않아 가까스로 통변할 자를 구하긴 했으나, 통변을 거치고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겠는 건 마찬가지였다. 해서 그냥 포기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초휴만은 달랐다. 온갖 어려운 말로 횡설수설하는 대신, 직관적으로 천지의 힘을 그들에게 체험케 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이건 신의 강림에 의한 기적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