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71)
1071화 신통의 위력
초휴가 이에 질세라 잡혀있는 채로 도신을 내리치자 빙신 법상의 양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법상의 몸에서 각기 권법, 장법, 인법, 지법을 취한 팔 네 개가 뻗어 나왔다. 그리고 그 네 가지 절기는 동시에 초휴를 압박해왔다.
초휴는 도를 거둬들이는 대신 수인을 결했다. 그의 몸 뒤에서도 양면 법상이 떠올랐다. 좌측 대흑천마신은 흉악한 분노 속에 광대무변한 멸세지화를 내뿜었다.
우측 대일여래 법상의 장엄한 대광명인에서도 불광이 작열하여 세상을 환히 비추었다. 이윽고 전혀 다른 두 가지 속성의 강력한 불길이 하나로 합치더니 엽천청이 빚어낸 빙신 법상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순간 굉음과 함께 거대한 파동이 솟구쳤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발밑 대지가 타는 듯한 열기 속에 녹아들었다가 한빙한 힘에 얼어붙기를 반복했다.
몇 차례나 이런 과정이 반복되더니 지면이 온통 가루로 화하고 말았다. 땅바닥이 속속 이 꼴이 되자 맞붙어 싸우던 황천각과 한강성 사람들도 일제히 이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그들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수장들의 격전 모습에 다들 망연자실했다.
특히나 서봉산 무리의 놀라움은 더 컸다. 가찰 외 다른 이들은 아직 초휴가 전력을 다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손건성을 죽일 때야 워낙 한 방에 끝낸 탓에 보고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다. 마리가를 죽일 때도 몽환경이 사방을 뒤덮은 탓에 시야가 가렸었다. 하여 당시 결과만 보았을 뿐, 과정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에야 비로소 초휴의 진정한 실력을 본 것이다. 그건 한마디로 상대를 절망의 늪 속에 빠뜨리는 강력함 그 자체였다!
법상의 충돌에서 엽천청과 초휴 둘 다 전력을 퍼부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위를 점하지 못한 엽천청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진화련신인 하수, 그것도 자기보다 새카맣게 어린 후배와 힘을 겨룬 결과가 백중지세인 것이다. 비겼다고 해서 이게 영광스러울 일일까? 천만에 이것은 분명히 치욕이었다.
두 법상이 서서히 사라지자 엽천청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내가 확실히 너를 얕보았다. 황천각에서 너를 창오군 군수로 보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황천각에 인재가 없어 그런 줄로 알았다. 하지만 네가 능히 그 자리를 감당할 인물이었음을 알겠구나. 심지어 선대 황천각 군수들보다 더 강하다는 것까지 내 인정하지.”
초휴가 태연히 받아쳤다.
“그래서, 이제야 순순히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가?”
엽천청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물러가? 내가? 푸하하! 내 말인즉슨, 이제 네가 내 비장의 패를 맛볼 자격이 있음을 확인했다는 뜻이다!”
웬만한 사람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싸워도 정면 돌파가 어려우면 일단 퇴각을 생각했을 것이다. 좀 둘러 가더라도 남역을 통해 남만으로 진입하면 그만 아닌가? 굳이 초휴와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엽천청은 달랐다. 그는 한강성 엽가의 핏줄이자 성하산인 맹성하의 속가제자로서 동역 전체에 위명을 날리는 강자가 아닌가. 그런 그가 지금 초휴와의 일전을 이기지 못하고 퇴각을 선택한다면 그의 명성에 큰 타격이 될 게 분명했다.
기껏 공들여온 노낙부가 궤멸되는 건 그에게 한시적인 두통만 안겨주고 끝날 일이었다. 그간의 노고가 죄다 허사로 돌아가는 셈이니까.
하지만 지금 퇴각해서 명성에 타격을 입게 되는 거에 비하면 그깟 두통 정도가 대수겠는가. 버러지만도 못한 일개 만족 부락의 존망은 자신의 명성과 비교 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었다.
함께 온 한강성 무사들이라고 해서 그를 말릴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엽천청의 성격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런 일이 누가 말린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잖은가. 그가 한번 진지해지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말릴 방법이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초휴 측이 먼저 역부족을 느끼고 물러나 주길 바랄 뿐이었다. 아직 싸움이 끝난 게 아니니 이런 식으로 윗사람들이 격한 싸움을 이어가면 결국 아랫것들도 덩달아 죽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엽천청은 입고 있던 구름 문양 도포를 거칠게 찢었다. 얼핏 보기에도 꽤 값져 보이던 도포를 아낌없이 찢은 것이다. 그러자 몸에 찰싹 붙는 차가운 남색 전갑이 드러났다.
겉면에는 기이한 마문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는데, 이내 그 마문이 번뜩거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그의 얼굴에까지 마문이 번져갔다.
더불어 그가 풍기는 기질 또한 크게 변한 게 느껴졌다. 원래 선풍도골 기운이 다분했던 강자의 일신에서 섬뜩할 만큼 음험한 한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엽천청의 신형은 마치 쏘아낸 탄환처럼 초휴를 향해 돌진했다. 그가 속도의 여세를 몰아 일권을 내리치자, 초휴 주변의 수증기와 한기가 모조리 응결되더니 탄탄한 울타리처럼 초휴를 에워쌌다.
하지만 파진자가 휘둘러지자 빙정 대부분은 깨져나갔다. 엽천청이 거듭 일권을 내질러 파진자의 힘에 맞서자, 무수한 빙정들이 일으킨 폭풍에 초휴의 몸을 수십 장 밖으로 밀어내 버렸다.
“상고 마신의 전투방식인가?”
초휴가 눈썹을 치켜떴다. 지금 같은 상황은 난생처음이었다. 방금 엽천청이 보인 전투방식은 일견 육신의 수련에만 치중해온 강자들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육신은 초휴만큼 강하지 못했다. 그저 평범한 무사들보다 약간 더 강한 정도랄까.
하지만 그는 주위의 모든 음습하고 한랭한 힘과 수증기를 자신의 체내로 흡수해버렸다. 초휴가 그런 상태의 엽천청과 싸우는 것은, 결과적으로 천지의 힘을 상대로 싸우는 거나 진배없었다. 심지어 파진자가 실어낸 귀원의 힘 역시 그대로 흡수해버리는 게 아닌가.
“대라천에서 내가 ‘빙신갑(氷神甲)’을 쓸 수밖에 없게끔 몰아붙인 무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는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
그 말을 하는 엽천청의 두 눈에서 냉혈한 특유의 잔악함과 흉포함, 그리고 광기 어린 전의(戰意)가 느껴졌다. 폭력적인 감정에 휘말리지 않도록 본인이 사력을 다해 제어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그의 정신이 폭력성의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몸을 뒤덮은 전갑은 말 그대로 전갑인 동시에, 그가 수련한 무공의 일종이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그의 온몸에 걸친 피와 살, 그리고 경맥과 완전히 하나로 이어진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원래 상고 마신의 전갑 파편으로, 상고 마신이 지녔던 선천의 힘까지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사실 엽천청은 그것으로 병기를 만들려 했으나 어쩌다가 전갑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고, 피와 살로 제련한 끝에 상고 마신한테서 비롯된 강력한 힘을 전승받게 된 것이다.
상고 마신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존재인지라, 마신의 힘을 전승한 다음에 따로 수련할 필요가 없었다. 마신의 힘을 전승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천지의 화신이 된 거나 마찬가지니 천지의 힘도 자유자재로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엽천청이 빙신갑을 통해 이 정도 경지까지 이르면, 빙신갑에 잔류해있던 마신의 표지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여 매번 이를 운용할 때마다 극한의 의지력으로 자신의 정서를 제어해야 했던 것이다.
그가 여간해서는 빙신갑을 운용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러니 오늘 초휴를 상대로 빙신갑을 운용했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패를 다 내보였음을 의미였고 동시에 더는 남은 패가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엽천청의 잇따른 가격에 초휴는 맥을 못 추고 연신 후퇴를 거듭했다. 이미 천지와 한 몸처럼 융합된 상태의 엽천청을 당해낼 묘수가 없었다. 더없이 예리한 힘을 자랑하는 파자결 도의로도 지금의 난국은 타개하기 힘들었다.
싸우면 싸울수록 엽천청의 공세는 거칠어져 갔다. 마신의 표지에 잠식당한 탓인지, 언뜻언뜻 광기에 젖은 모습을 내비쳤다.
그의 두 눈도 이미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 상태로 수인을 결한 순간, 그를 중심으로 족히 천 장 반경 내 모든 것이 혹한의 기운 속에 갇히고 말았다.
놀랍게도 초휴의 일신에 흐르던 기혈마저 그 기운으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초휴가 당혹감을 감추며 혈마신공의 위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리자, 기혈이 다시 녹더니 이내 미친 듯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엽천청의 인법이 초휴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더 아래 경지의 다른 이들에게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황천각과 한강성 무사들은 싸움을 멈추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두 사람의 격전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구경꾼 노릇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약간의 수분기만 있어도 당장 얼려버릴 그 강력한 힘에 그들 역시 필사적으로 저항해야 했으니까.
한강성의 무사들이 너나없이 발을 구르며 탄식했다.
“대인께선 어찌 또 저 빙신인(氷神印)을 사용하시는 걸까? 저걸 사용해야 할 만큼 초휴가 대단하다는 말인가?”
그들 모두 엽천청의 심복이니만큼, 지금 자신들의 수장이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지금 엽천청은 자신의 힘을 극한까지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태로는 본인의 몸을 제어하는 게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였다. 지난날 한강성이 막 굴기하기 시작했을 무렵, 엽천청은 정벌전을 하러 쉴 새 없이 나섰었다.
그때도 수차례나 이런 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으나, 다행히도 당시에는 한강성 고수들과 함께 있은 덕분에 발작을 일으킨 즉시 제동을 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혼자뿐인 것이다. 달리 어떤 고수가 있어 제동을 걸어주겠느냔 말이다. 자칫 광기가 더 심해지면 자해할 위험까지 있었다.
이쯤 되자 초휴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찌 된 게, 대라천에는 천지통현 경지까지 수련한 자들치고 제정신인 인간이 하나도 없는 듯했다.
마리가에 비하면 엽천청이 정상인 것 같다고 생각했건만, 인제 보니 역시나 이만저만 미치광이가 아니질 않은가.
천지간에 녹아들어 천지를 장악하고 수분을 응결시키는 것도 일종의 천지자연의 규칙에 근간을 둔 힘이라고 봐야 했다. 이런 힘에 대적하려면 같은 힘으로 맞서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 외 힘은 죄다 무용지물인 것이다.
그때 ‘규칙’ 이 두 글자에 생각이 미친 초휴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방금 뇌리에 떠오른 그 초식을 지금 써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건 그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 때를 대비해 남겨둔 마지막 비장의 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나름 매우 심각한 위기 상황이기는 했다. 그 초식을 쓰지 않고서는 계속, 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압도당할 테니 결국 살아남기 어려울 터였다.
그는 일단 파자결 도의의 강력한 예봉으로 잠시나마 엽천청을 묶어 두었다. 곧이어 그의 일신에서 정순하기 짝이 없는 마기가 가닥가닥 피어올라 그의 몸 전체를 휘감는가 싶더니 주위의 힘이란 힘을 미친 듯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의 몸체가 급속도로 불어나 엄청난 높이까지 이르자, 마치 하늘을 이고 우뚝 선 진정한 마신의 강림을 연상케 했다. 그것은 바로 법천상지 신통의 위력이었다.
엽천청의 빙신갑은 그가 천지간에 융합되어 규칙의 힘으로 화할 수 있게 만든다. 반면 신통은 정통적인 규칙의 힘에서 갈라져 나온 일종의 진화된 힘이라고 봐야 했다.
규칙을 깰 수 있는 건 오직 규칙밖에 없다. 한마디로 신통은 빙신갑의 천적인 셈이었다.
‘법천상지’
이 신통 초식은 정두칠전을 상대할 때 딱 한 번 써본 적이 있었다.
신통은 굳이 학습할 필요 없이 뇌리에 각인시켜 놓기만 해도 금세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대개의 무예처럼 무슨 대성에 이르거나 소성에 그치는 따위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이곳 대라천에서는 아직 시전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신통을 한 번 사용하면 힘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소모되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마리가를 상대했을 때 그의 환술이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보여 힘으로 깰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 확신만 있었어도 신통을 써볼까도 싶었지만, 결국 쓰기도 전에 싸움이 끝났던 것이다.
일단 법천상지의 시전에 들어가자 그의 체내 모든 힘이 펄펄 끓어오르는 듯했다. 그 강력한 힘이 계속 그의 몸속에 가득 쌓여갔다.
속히 그 힘을 밖으로 분출하지 않으면 몸이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초휴는 그 힘을 고스란히 일권에 실어 내리쳤다.
천 장이 넘을 듯한 크기의 거대한 신형이 일권을 내리치니, 산을 쪼개고 바다를 갈랐던 상고 마신의 위용을 보는 듯했다.
이에 대항하려는 듯 엽천청의 온몸에 층층이 빙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초휴의 일권에 모조리 박살이 나버렸다. 그의 전신을 수놓았던 마신 전갑도 삽시간에 갈라지며 피범벅이 된 상체의 피부가 드러났다.
그의 입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치자 광기에 젖어있던 그의 눈동자가 청명함을 되찾았다. 대신, 광기가 사라진 그의 심중에는 절망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