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74)
1074화 하명하신 수급을 가져왔습니다! (2)
언변 하나는 흠잡을 데 없던 육삼금이 지금은 말이 매끄럽게 이어지질 않았다. 할 말이 무엇인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해야만 하는 말이었으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가 꺼려졌다. 보다 못한 임창해가 거칠게 끼어들었다.
“여러 말 필요 없네. 나는 그저 똑 부러진 대답만 들으면 되니까. 설마 사람을 죽여 놓고도 그 뒷일에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말할 생각은 아닐 테지?”
초휴가 냉소를 날리며 받아쳤다.
“내가 그 뒷일까지 신경을 써야 합니까? 임 장로님, 참 딱하기도 하십니다. 두 분이야 황천각 안에 편하게 들어앉아 심신 수련에만 정진하면 그만일 겁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군수 노릇을 해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이야 하루하루가 녹록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황천각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주야장천 노고를 쏟아야 하는지 알고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 하는 소립니다. 내가 새로이 창오군에 군수로 부임해서 완수해야 할 임무는 딱 두 가지였지요. 하나는 전임 군수의 사인을 규명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만족의 기세를 꺾어 누르는 것! 나는 그 두 가지를 이미 완수했습니다.”
“전임 군수의 죽음은 한강성이 어느 만족을 선동해 벌어진 일이었소. 한강성 측이 먼저 우리 측 천지통현 군수를 죽였으니 나도 저들의 천지통현 강자를 죽여 똑같이 갚아주었소이다. 받은 만큼 돌려준 것뿐인데 뭐가 잘못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만족 저들도 내가 이미 꽉 움켜잡았소. 내가 창오군에 버티고 있는 한 만족 오랑캐들은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할 거외다! 한마디로 나는 군수로서 해야 할 일은 물론이고, 다른 군수라면 하기를 꺼리는 일까지도 했단 말입니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내가 또 무얼 해야 하겠소이까?”
임창해의 표정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초휴처럼 한마디도 안 지고 또박또박 말대꾸하는 자들은 딱 질색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반박하기도 뭣했다. 자꾸 이번 일을 따져봤자 결국 황천각이 지지리도 못나서 그렇다는 결론밖에 더 되겠는가.
여하튼 황천각이 위세가 당당한 시기였다면 이번 일로 초휴는 대단한 공로를 세운 셈이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사고를 쳤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임창해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말꼬투리를 물고 늘어졌다.
“허풍도 정도껏 쳐대야지! 만족 놈들이 골치를 썩여온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일만 년이 지나도록 발본색원되지 않고 있는 일을, 그대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놈들의 기세를 제압했노라 큰소리를 친단 말인가?”
그러나 초휴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뭘 근거로 그걸 허풍이라 단정하시오? 그게 원래 창오군 군수가 맡은 소임이 아니었소이까? 내가 이곳을 책임진 이상, 당연히 소임을 완수해야지요. 임 장로께서 정녕 못 믿으시겠다면 증명해 보이면 될 게 아닙니까? 아무 부락이나 하나 지목하시지요. 그게 어느 부락이건 간에 내일 아침 해 뜨기 전, 그곳 족장과 제사장의 수급을 갖다 드릴 테니까요!”
임창해가 실소를 터뜨렸다.
“보자 보자 하니 갈수록 가관이구먼! 좋다. 내가 남만 이격부(伊格部)를 쓸어버리고 싶다면 그리할 수 있겠나?”
임창해도 남만에 가본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곳 여러 부족의 강자들과 대결을 한 적도 있었다.
그중 이격부는 남만에서도 존재감이 있는 대부락인 데다, 일전에 그가 남만 폭동을 진압할 당시 그곳 족장과 겨룬 적도 있어 잘 알았다. 그러자 초휴가 호쾌하게 소맷자락을 날리며 서봉산에게 지시했다.
“가서 가찰에게 내 명을 전하라. 내일 오시가 되기 전에 이격부 족장과 제사장의 머리통을 내 책상에 대령하라고 말이다!”
서봉산은 초휴가 어쩌자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분부를 내리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초휴와 가찰 사이에 모종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은 눈치채고 있었다. 초휴가 얼토당토않은 지시를 내릴 리는 없으니 일단 하라는 대로 명을 전했다.
가찰도 처음에는 왜 이런 지시를 하는 건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간 초휴의 의중에 따라 쓸어버린 부락이 한두 개가 아닌지라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다. 이격부가 그리 까다로운 강적도 아닌 만큼,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현재 흑라부는 초휴의 손에 쥐어진 한 자루의 도날과도 같았다. 그것도 서슬 퍼렇게 잘 벼려져서 예리하기가 말도 못 하는 도날 말이다.
웬만한 부락 하나쯤 쓸어버리는 거야, 그곳으로 가느라 길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짧게 끝낼 수 있었다. 가찰을 통해 초휴의 지시를 명받은 흑라부는 그 즉시 신성 모독죄를 물어 이격부를 궤멸할 준비에 착수했다.
지시사항이 빈틈없이 전달된 걸 확인한 초휴가 거만하게 말했다.
“일단 좀 쉬고 계시지요. 어차피 장로께서 원하신 수급은 내일이나 되어야 당도할 테니까요.”
임창해가 비아냥거렸다.
“노부는 여기서 꿈쩍 않고 기다리겠네. 그대가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똑똑히 지켜봐야 하니 말이지!”
초휴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차를 내오게 했다. 그러고는 느긋하게 무선 강자가 풀어 쓴 무도 해설집을 들쳐 보기 시작했다.
과연 임창해는 자기가 말한 대로 한쪽에 자리 잡고 앉은 채 꼬박 하루를 기다렸다. 육삼금도 마지못해 두 사람의 기 싸움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이튿날 오시 무렵이 다가왔다. 임창해가 보란 듯이 코웃음을 치며 잔뜩 별러 두었던 독설을 내뱉으려던 순간이었다.
가찰이 커다란 함 한 개를 끌어안은 채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함에서 만족의 수급 두 개를 꺼내 보이며 숨이 넘어갈세라 간신히 말을 이었다.
“대인! 하명하신 수급을······, 가져왔습니다.”
가찰도 처음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격부가 대관절 무얼 밉보였길래 초대인이 당장 내일 오시까지 족장과 제사장의 수급을 갖고 오라는 지시를 한 건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빠듯한지라 흑라부에만 맡기지 않고 본인도 직접 나서 이격부를 공격했다. 그리고 피가 뚝뚝 흐르는 수급을 가지고 일각도 지체하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었다.
가찰은 창오군 무사들 가운데 초휴와 함께 한 시간이 가장 많은 사람인지라. 겪으면 겪을수록 그에 대한 두려움도 덩달아 커져 갔다. 따라서 초휴의 명이라면 반 푼어치라도 허술히 취급할 수 없었다.
오시가 되기 전에 수급을 가져오라 했으니, 무조건 시간에 맞추어야만 하는 것이다. 초휴가 명한 물건을 무사히 전달한 그제야 가찰의 시야에 육삼금과 임창해의 모습이 들어왔다.
가찰이 임창해는 누군지 몰랐으나 그래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천지통현 강자가 여기에 어쩐 일로 와 있단 말인가.
임창해는 입이 떡 벌어져서 함 속의 수급 두 개를 내려다보았다. 이격부 족장과는 직접 겨뤄본 적도 있는 만큼, 당연히 그의 수급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이건 정말 놀라 까무러칠 일이 아닌가.
이 수급의 주인은 역인 천지통현에 비견될 만한 강자로서 남만 대부락의 족장이기까지 한 인물이다. 그런데 어제 자신이 반쯤은 장난삼아 내뱉은 말에 이 꼴이 되어 나타났으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더니 초휴를 향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대체 뭘 어찌한 건가?”
초휴는 여전히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여하튼 이제는 내가 얼마나 소임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아시겠소이까? 그간 나만큼 이일, 저일 다 잘 해낸 군수가 있었으면 나와 보라 하시구려. 그런데도 그깟 엽천청 하나 죽인 것 때문에 황천각은 나를 탓하며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군. 이런, 제기랄! 이놈의 객경 노릇도 슬슬 염증이 나려 하는군요. 까짓것 나 살던 곳으로 돌아가서 수련이나 하며 지내면 그만이니, 나한테 그 책임을 다 떠넘기면 되겠구려. 이 정도면 책임지는 셈이 되는 거요?”
임창해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초 대인, 잠시만 고정하구려. 나는 그런 뜻이 결코 아니었소. 다만 작금의 황천각 사정이 워낙 여의치가 못하니, 우리도 어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해서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었던 거요. 염려 마시오. 그대가 창오군에서 행한 모든 업적을 낱낱이 상부에 보고하여 결코 억울해질 일이 없게 해줄 테니까. 암, 내가 그리하고말고.”
그 말을 끝으로 임창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자칫 또 초휴의 입에서 황천각을 떠나겠다는 둥 하는 소리가 나올까 봐서였다.
임창해는 성격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을 뿐이지,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별하지 못하는 바보 둔치는 아니었다. 이 남만 땅에서 명령 한마디로 대부락의 존망을 결정할 수 있는 자가 초휴 말고 황천각에 또 누가 있다고 그를 박대한단 말인가. 이건 역대 황천각 각주들도 쉽사리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다.
대관절 초휴가 무슨 재주를 부렸기에 대부락 하나를 손바닥 뒤집듯 가뿐히 끝장 낸 건지 모를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지금까지 초휴가 일궈낸 공적으로 보건대 지금 그를 핍박하여 떠나게 만들면, 자신이 황천각으로 복귀해서 수고에 대한 치하를 받기는커녕, 질책을 면치 못할 거라는 사실이다.
임창해는 갔으나 육삼금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초휴를 바라보았다.
“초 형, 이거 참 면목 없게 되었네. 내가 봐도 이번엔 각주님의 처사는 좀 심한 감이 없지 않으니 말이지.”
이에 초휴가 고개를 저었다.
“각주가 한 일 때문에 자네가 내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지. 그보다도 내가 궁금한 건 따로 있네. 현재의 황천각 수뇌부는 정말 그 정도로 형편없어진 건가? 한강성과 한판 붙어볼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실력이 없는 상태인가 말이지?”
육삼금이 씁쓸히 웃었다.
“예전에야 그럴 실력이 되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봐야지. 노각주는 이미 오백 살에 가깝기도 하니 말이네. 지금 본인의 실력이라고 해봤자 종추수보다도 못할 거라고 내게 말씀하신 적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황천각 전체를 통틀어 실제로 출수할 만한 무선은 이제 각주가 유일한 셈이지.”
“한강성에는 무선이 몇 명이나 있나?”
“거기도 엽유공 한 명뿐일세.”
“그러면, 왕년에 황천각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도 엽유공 하나를 당해내지 못했단 말인가?”
초휴가 어이없어하자 육삼금이 마지못해 털어놓았다.
“그렇긴 한데 엽유공 그자는 단순한 무선은 아니야. 절정 기량을 뽐내던 시절에는 칠중천(七重天)에 근접하기도 했으니까. 지금 노각주가 장년의 나이라 할지라도 그의 적수가 될 수는 없어. 게다가 그자의 배후에는 맹성하까지 버티고 있잖은가. 두 사람은 생사고락을 같이해온 형제와도 같은 사이라네. 지금이야 맹성하가 은거에 들어갔다지만, 언제 다시 산에서 내려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초휴는 이미 여러 자료를 통해 무선이라는 경지에 대한 이해를 마친 상태였다. 창오군에는 전임 군수가 남긴 무선 강자들의 무도 해설집 같은 자료들이 많았다.
물론 하나같이 일상적인 무도에 관한 것이었으나, 적어도 이를 통해 초휴는 한층 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천지통현 경지는, 하계이건 대라천이건 간에 모호하게나마 이를 여러 단계로 구분해 놓았다.
통상적으로 초기, 중기, 완성기, 절정기, 대충 이런 식의 표현을 쓴 것이다. 실력이 강해도 너무 강할 때는 ‘절반의 무선’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이는 전투력을 지칭한 것일 뿐, 경지와는 무관했다.
그리고 무선의 경지에 이른 후에는 이것이 무도의 최고 단계일 수도 있기에, 대라천에서는 이를 촘촘히 세분했다. 총 아홉 개의 하늘, 즉 일중천에서 구중천까지로 나눈 것이다.
무도가 궁극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은 하늘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니 한 단계당 하늘이 하나씩 높아지는 셈이었다. 숫자 아홉은 꽉 찬 것, 다시 말해 궁극을 의미한다.
구중천을 초월하면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무상(無上)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대라천의 대표적인 지존급 강자들이 구체적으로 몇 중천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자료가 없다는 것이었다.
초휴가 보기에 이 구중천의 구분은 너무 심하게 세분화 한 감이 없지 않았다. 솔직히 무슨 비장의 패를 살짝 쓰는 것만으로도 일중천을 능가하는 전투력을 갖게 될 터였다.
여하튼 원래의 자기 실력이건, 아니면 비장의 패를 운용한 결과이건 간에 전투력이 칠중천에 가깝다는 건, 무선 중에서도 막강한 고수라는 의미였다.
갓 무선경에 올랐기 때문에 일중천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무선 강자들은 이중천에서 오중천 사이에 걸쳐있었다. 따라서 칠중천에 가깝다는 엽유공의 실력에 황천각이 압박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순간 초휴의 뇌리에 독고유아가 스치고 지나갔다.
‘독고유아는 몇 중천일까? 구중천? 아니면 전설 속 무상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