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80)
1080화 쌍도(雙刀)가 불타를 참하다
종현이 슬며시 두 눈을 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눈앞이 온통 두 가지 색뿐이었다. 금색 찬란한 불광과 회백색의 힘.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힘이었다.
그것이 말로만 듣던 천지통현의 힘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이제 그는 이 힘으로 상천량과 당당히 일전을 치를 수 있게 되었으며, 대광명사를 수호할 자격도 생긴 것이다.
그가 재차 명왕인을 내리치자 태산이 무너지고 하늘도 기울 듯한 위력이 터져 나왔다. 명왕의 허영이 천변만화하기 시작했다.
대위덕명왕, 진옥명왕(鎭獄明王), 그리고 부동명왕 등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명왕의 허영들이 최후에는 하나로 합체되었다. 그 존엄한 분노는 삿된 기운을 누르고 악마를 응징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했다.
상천량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상대의 힘은 이미 천지통현을 넘어서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그가 성쇠 반전의 일권을 거듭 내리치자, 시간의 법칙을 초월한 힘이 종현의 명왕인과 정통으로 부딪혔고, 일순간 말을 잊게 만드는 거대한 파동이 터져 나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허자의 수중에는 항마저(降魔杵)가 들려 있었다. 그것으로 초휴의 일도를 맞받아친 그가 차갑게 내뱉었다.
“만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 대광명사를 멸하겠다고 달려든 자들은 부지기수였다. 초휴 네놈이 처음이 아닐뿐더러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광명사는 변함없이 북지의 고봉 위에 우뚝 서 있을 것이다!”
초휴가 눈썹을 치켜뜨며 받아쳤다.
“거 참 멋진 말씀이군요. 대광명사가 만 년 세월에 걸쳐 비축해온 저력은 과연 놀랍소이다. 그러나 방장, 이 점을 아셔야지요. 세상에 절대적인 게 어디 있답디까?”
대라천에서 돌아온 이후 초휴는 비단 실력만 성장한 게 아니었다. 시야의 확장을 이룬 게 더 괄목할 만했다.
대라천에서는 무선 강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적어도 내로라하는 대파들이라면 어김없이 하나씩은 버티고 있었으니까.
초휴는 거기서 무선을 고작 한 명만 접해본 게 아니고, 천지통현 강자를 한 명만 죽여본 것도 아니었다. 그 결과, 초휴는 시야가 한층 더 넓어져서 하계에 돌아온 것이다.
지금 대광명사가 연이어 선보이는 비장의 패들은 예전의 초휴를 당황케 하기에는 충분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심지어, 그 패들에게서 뚫린 구멍을 발견하듯 허점마저 간파해냈다. 초휴는 상천량을 향해 진지하게 당부했다.
“상 성주, 어떻게든 버티시오. 저 노승들은 오래 싸우지 못할 겁니다. 저들이 길게 버티면 버틸수록 하나씩 죽어 나갈 테고, 그럴 때마다 저들의 힘은 그만큼 약해질 거요.”
지금 상천량은 종현과 격전을 치르느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의 실력이 종현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종현이 워낙 죽자사자 달려드는 때문이었다.
종현은 자신의 힘이 아닐지라도 반작용 따위를 걱정할 정신도 없이 출수하고 있었다. 당장 종문이 망하게 생겼는데 지금 힘을 다 쏟지 않고 남겨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싸움에 임하는 마음가짐부터가 다른지라, 어느덧 상천량은 수세에 몰리고 말았다. 그런 그의 귀에 초휴의 당부가 달갑게만 들릴 리는 없었다.
“버텨야 하는 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저들이 내게 버틸 기회를 전혀 안 줄 성싶으니 문제 아닌가!”
보리림 노승들 가운데 더러는 자신의 힘이 빠르게 소진되는 것을 감지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힘을 빼기는커녕, 기혈과 원신을 태우는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자신의 최대 위력을 종현에게 실어주고 있었다.
그러니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힘은 오히려 더 강해져 가기만 했다. 상천량은 꽁무니라도 빼야 할 처지에 놓였다.
위서애도 진법을 상대로 한창 씨름 중이었다. 초휴는 그에게도 충고의 말을 잊지 않았다.
“위 선배님, 허정이 지키는 남서쪽을 노리세요. 지금 저들이 한 몸인 것처럼 힘을 합쳐 진법을 제어하고 있지만, 허정은 천기 추산에나 능할 뿐, 힘은 저들 중 가장 약합니다. 그러니 그가 있는 쪽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진법의 힘은 균형을 잃을 겁니다!”
위서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정을 향해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초휴가 다른 두 사람에게 당부하는 말을 허자도 다 들었다. 대번에 자신들의 허점을 매의 눈으로 간파해내자 허자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실 이 세상 그 어떤 절기도, 그 어떤 존재도 완전무결할 수는 없고 약점이 있기 마련인 법이다. 대광명사가 내놓은 비장의 패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 어떤 약점도 발견 못 한다면 그게 되레 이상할 일일 터였다. 하지만 초휴처럼 이렇게 빨리 약점을 간파했다는 것은, 전투에 임하는 데 있어 그의 직감이 무서울 만큼 예리하다는 말이었다.
허자는 더는 시간을 끌 수 없게 되었다. 그가 항마저 끝으로 초휴를 겨냥해 극강의 불광을 뿜어냈다.
이에 초휴도 도를 내리쳐 응수하니, 파자결 도의가 표묘참과 합일을 이루었다. 그가 내리친 일도는 조금의 예외도 없이 전력을 실어냈다.
강대한 천지 원기가 폭풍처럼 휘돌아 그의 몸을 감싸니, 그로 인한 압박감에 하자는 고개를 제대로 못 들 지경이었다. 대라천에서 보낸 일년이 초휴에게 천지통현 강자와도 맞먹을 저력을 안겨준 것이다.
초휴가 수인을 결하자 등 뒤에서 마불 법상이 떠올랐다. 늘 그렇듯이 우측엔 대흑천마신이, 좌측엔 대일여래의 모습이 보였다.
양자가 합일을 이루니, 가없는 불광과 멸세지화가 동시에 솟구쳐 허자를 삼키려 들었다. 대라천에서 천라보찰의 출수를 보지는 못했으나 대광명사의 전승이 대라천 천라보찰 일맥에서 비롯되었다는 확신은 있었다.
범교와 천라보찰은 상고 이전부터 치열하게 대립해왔다. 대라천에서 싸운 세월만 따져도 장장 만년에 달하는 것이다.
대흑천신궁 일맥은 지난날 범교가 천라보찰에 대항하려고 창설된 지라, 그들의 공법에는 상대를 제압하는 효과가 탁월했다. 따라서 허자가 수련한 대광명사 무공은 멸세의 불길 앞에 제 위력을 잃어버렸다.
무엇보다도 초휴가 불문 공법에 통달했다는 점도 한몫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는가.
상대의 불문 무공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고 있으니 허자가 맥을 못 출 수밖에 없었다. 허자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시금 온갖 불타가 떠오르며 극락정토가 펼쳐졌다. 그리고 불광이건 멸세지화건 간에 모조리 집어삼키며 무력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서 마불 법상에서도 강력한 빛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파진자가 온 세상을 갈라버릴 듯한 기세로 허자를 내리쳤다. 동시에 극강의 절기 두 가지가 시전된 것이다.
이것 역시 초휴가 대라천에서 단련한 결과물로, 그만큼 무도에 대한 장악력이 배가되었기에 가능했다. 허자가 놀라 멈칫한 것도 잠시. 이내 항마저를 쥔 양손에 힘을 주며 일신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금강이 노한 눈을 부릅뜨고 불타가 악마를 응징하도다!
항마저가 파진자의 도날을 받아낸 순간,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충돌음이 고막을 때렸다. 그러나 허자는 무언가 싸한 느낌에 휩싸였다.
이미 초휴와 정통으로 몇 수를 세게 주고받은 다음이었기에 파진자의 힘을 받아냈던 느낌은 손끝에 선연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무사 특유의 직감 상, 왠지 모르게 이번 충돌은 이전 느낌과는 꽤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다음 순간, 허자의 두 눈에 강렬한 불광이 번뜩였다. 방금 항마저와 충돌했던 병기가 어디로 봐서 파진자란 말인가. 자세히 보니 곳곳에 이가 나간 보름달 모양의 만도였다.
‘환술이었단 말인가!’
허자는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부지불식간에 초휴의 환술에 걸려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사실 방금의 환술은 초휴가 마리가를 보고 배운 게 확실했으니, 허자의 짐작이 맞은 셈이었다. 그간 초휴가 전투 과정에서 보여 온 천부적 자질과 강한 예기는 두려움을 자아낼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마리가의 환술은 초휴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허자로서도 새삼 심장이 떨릴 만큼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한순간의 실수로 판세가 뒤집힐 뻔했으니 말이다.
당시 환술의 위력을 단단히 체감한 초휴는 후에 따로 시간을 내어 마리가의 환술을 연구했다. 원래 정신력이 약하지 않았으니 환술까지 익힌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물론 현실 세계와 전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완벽한 환상을 빚어냈던 마리가의 실력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강력한 정신력을 이용해 잠깐이나마 감쪽같이 상대의 눈을 속이는 것은 가능했다. 격전을 치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환상 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원래 이 환술 공법을 무어라 불렀는지 모르는지라 일단 이를 ‘환진결(幻眞訣)’이라 명명했다. 하루가 다르게 천변만화하고 거품과 그림자가 잔뜩 낀 세상이건만,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누가 확실히 알겠는가.
허자는 실체를 드러낸 눈앞의 만도를 본 순간 놀라는 걸 넘어서 극도의 공포감에 몸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만도의 형상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갔다. 그 칼은 독고유아가 휘둘러 강호를 벌벌 떨게 했던 바로 마도, 청춘우가 아닌가.
놀랍게도 초휴의 수중에 마도 청춘우가 들려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독고유아와 영현기가 교전했던 지점을 발견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온갖 뒤숭숭한 잡념들이 그의 뇌리에서 사납게 날뛰었다. 곧이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위기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어왔다.
그러다 불현듯 정신이 번쩍 났다. 초휴가 환술 중에 휘두른 도가 언제 청춘우로 바뀌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파진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대목에 생각이 미치자 허자의 일신에서 강대한 불광이 화산처럼 폭발하더니, 무수한 범문들이 그를 중심으로 휘돌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초휴 쪽에서도 무섭게 타오르는 멸세의 불길을 뚫고 파진자가 도신을 드러냈다. 그리고 청춘우와 도날을 나란히 하며 허자에게 일격을 날렸다.
허자가 허공에 붕 뜨면서 놓쳐버린 항마저는 이미 한가운데가 잘려 두 동강이 나 있었다.
허자가 들고 있던 항마저는 수천년이 넘게 명맥을 이어온 대광명사의 비전 신병이었다. 이런 진귀한 보물이 파진자의 일격에 두 동강이 난 것이다.
허자는 몸이 튕겨 나가는 와중에도 정신을 바짝 차려서 방어 태세를 갖췄다. 그러나 이미 한발 늦은 감이 있었다.
어느새 예리한 도망이 그의 체내로 파고들어 전신 경맥을 헤집어 댔기 때문이다. 그의 낯빛은 점점 핏기를 잃어갔다.
초휴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허자 대사의 실력은 과연 알아줘야겠구려. 이런 상황에서조차 정신을 놓지 않고 있으니 말이외다.”
그의 말은 상대를 조롱하려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거였다. 방금 그가 펼친 일련의 공세는 한마디로 말해서 한 걸음이 열 걸음에 맞먹는 위력의 것이었다.
허자가 빠르게 청춘우를 알아보았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파진자의 습격에 이미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물론 빨리 알아보았어도 결국 부상을 면치 못한 건 마찬가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 정신이 흐트러진 탓이었다.
그러나 허자는 탄복을 자아낼 정도로 금세 정신 상태를 원상복구 해냈다. 정신이 흐트러지기가 무섭게 놀라운 의지력으로 안정시켰으니, 과연 대광명사의 방장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었다.
애써 몸의 상처를 억누르며 초휴를 바라보는 허자의 동공은 두려움에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연속해서 이어진 초휴의 공세는 그야말로 위험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