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96)
1096화 대담한 생각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강성과의 일을 쭉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이번 일은 어떻게 보면 운명이 장난을 치는 것 같은 사태였다. 한강성과 원수지간인 것은 황천각이지 초휴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하필이면 한강성이 그의 한계를 건드렸고 초휴로서도 그것은 묵과할 수 없었다. 남만 땅은 하계를 오갈 수 있는 통로가 아닌가. 설령 한강성이 아니라 황천각에서 그의 군수 직위를 회수하고 새 군수를 임명한다고 해도 황천각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위서애 역시 수염을 쓰다듬었다. 아주 골치 아픈 문제였다. 무선 강자가 찾아와 시비를 걸지도 모른다는데 골치가 안 아프기는 불가능했다.
한참 생각했으나 위서애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한강성의 행태를 보면 아마 황천각의 뭔가를 꺼리는 것일 게다. 그래서 당장은 출수를 못 하는 거겠지. 황천각은 상고 시대부터 이어져 온 대문파라면서? 대라천에서만도 일만 년이 지났으니 필경 남이 두려워할 만한 비장의 패가 있을 게다. 그러나 그것은 황천각 이야기일 뿐, 너와는 무관하다. 그 정도 되는 강자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우리는 짐작할 수도 없고 알아볼 방법도 없지.”
“네가 고존의 전인으로 가장했다만, 무선도 구중천이니 강약의 차이가 있을 테지. 게다가 엽유공은 성격이 강경하고 패도적이라지? 고존의 전인이건, 말건 신경을 안 쓸지도 모른다. 고존 본인이 나선다면 또 모를까. 하계가 아닌 게 애석하군. 하계였다면 내가 무근성화의 힘이라도 써서 어떻게 위협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위서애가 무근성화를 언급하자, 초휴의 뇌리에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절정급 대문파라면 어디나 비장의 패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초휴는 곤륜마교에도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는데, 그것은 위서애가 말한 무근성화였다.
위서애는 무근성화 가까이에만 있으면 그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었다. 아마 수보리보수의 힘을 쓰던 나마보다도 강할 것이다.
수보리보수는 나마에게 속한 존재가 아니었다. 나마는 정혈과 원신까지 불살라 강대한 힘을 끌어내고서야 수보리보수를 억지로 발동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위서애는 달랐다. 천곡마존의 지존신단에 무근성화 근원의 힘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지존신단을 소화해 낸 위서애는 무근성화와 근원이 같은 존재가 된 셈이었다. 그러니 아무 제한 없이 무근성화의 힘을 빌려 쓸 수 있었다.
물론 힘을 쓰려면 무근성화 가까이에 있어야 했고, 무근성화의 힘이 가져오는 부담을 버티는 것도 가능해야 했지만.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위 선배님, 만일 무근성화를 조종한다면 잠깐이라도 무선과 비견할 만한 힘의 파동을 만들어내실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 문제가 안 되지. 무근성화의 힘을 얕보면 곤란해. 용맥에서 저절로 생겨난 신물이 아니냐. 설사 무선이라 해도 그것을 없애 버리는 것은 불가능해. 봉인할 수 있을 뿐이지.”
그렇게 말한 위서애는 짚이는 게 있는지 초휴를 바라보았다.
“혹시 무근성화를 이용해 나더러 무선인 것처럼 허장성세를 부리라는 것이냐? 꽤 좋은 생각이지만, 안 될 것 같구나. 나는 무근성화 근처에 있어야만 그 힘을 조종할 수 있다. 하지만 무근성화는 곤륜산조차 벗어나지 못하는데 무슨 수로 대라천에 가져오겠느냐?”
초휴가 나직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든 사람이 하기에 달린 게 아닙니까. 해보지 않고 어찌 알겠습니까? 하계에서 우리 성교의 힘은 이미 절정에 달한 셈입니다. 정도 종문 전체가 연합해 공격하거나 천문이 나서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든 버텨낼 수 있어요. 하지만 대라천에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무선이 버티고 있지 않은 종문은 개미 떼 같아서 손쉽게 멸문할 수 있습니다. 고존의 전인이라는 제 신분은 사실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것에 불과합니다. 웬만한 자들한테야 겁을 좀 줄 수 있겠지만 진정한 무선 강자에게는 소용이 없어요. 그러니 그들에게 제 ‘사부님’을 보여주려는 겁니다. 제자만 싸고도는 팔불출에, 말이 전혀 안 통하는 ‘무선’ 강자인 사부를 말이죠. 그러면 앞으로는 아주 일이 편해질 겁니다.”
가끔 초휴는 퍽 대담한 발상을 할 때가 있었다. 위서애는 그 발상이 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능할지 아닐지는 해 봐야 알 일지 않겠는가.
그래서 초휴와 위서애는 곧장 남만으로 떠났다. 군수부에는 상천량과 초휴 휘하의 다른 강자들이 남아 있었으니 말썽이 생겨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초휴가 따로 명령을 내릴 것조차 없이 하계에서 일하던 대로 하면 될 터였다.
원길은 남만 땅의 통로에서 한창 득의양양한 얼굴로 진법을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그는 초휴가 지독한 난제를 안겼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간단했다. 두 개의 세계라지만 그 둘이 한데 겹쳐져 있지 않은가.
거리만 놓고 보면 아주 가까웠다. 사실상 거의 붙어 있다고 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별도의 공간이니만큼 어느 정도는 공간 간섭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전달하면 중간에 사라질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그리 엄청난 문제는 못 되었다. 천곡마존의 진법 전승은 거의 온전히 남아 있었는데, 개중에는 공간 문제와 관련된 것도 적지 않았다. 이제 진법의 배치도 거의 다 끝났고 완성은 시간문제였다.
그래서 초휴가 왔을 때 원길은 신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대인, 이제 열흘만 더 주시면 진법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초휴는 고개를 끄덕이며 격려했다.
“잘했군. 훌륭하오.”
그러나 원길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그는 난데없는 소리를 했다.
“참,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무근성화를 대라천으로 연결해 오고 싶은데 가능하겠소?”
원길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무 발상이나 생각나는 대로 툭 던지면 다인 줄 아나? 그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눈을 부릅뜨고 위협의 빛을 발하는 초휴의 눈앞에서는 그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진법은 천지 법칙의 운행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무근성화 역시 천지 법칙이 구현된 것이니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겠지요. 그러나 제 실력이 미약하여 그런 진법은 도저히 못 만들 것 같습니다. 사실은 옛날 천곡마존이 다시 살아온다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초휴는 아래턱을 만지작거렸다.
“어느 부분이 어렵지?”
원길은 즉각 답했다.
“문제는 무근성화를 무슨 방법으로 곤륜산에서 끌어오느냐는 겁니다. 사실 두 세계를 오가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여기는 두 세계가 겹쳐진 곳이고, 이미 공간에 영향을 줄 요소도 모조리 제거했으니까요. 무근성화를 끌어올 수만 있다면, 같은 방식을 써서 무근성화를 이 세계로 불러오는 것도 가능하지요. 하지만 지금 무근성화는 이쪽 세계로 옮겨오기는커녕 곤륜산 꼭대기에서 산기슭으로 옮기는 것조차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육도부도왕생대진 같은 진법으로 무근성화를 봉인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런 진법도 위치를 옮기는 데는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초휴가 힘주어 말했다.
“당신이 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은 어떻소? 지금 강호에 그런 진법을 만들 수 있는 자가 없는지 말이지. 잊지 마시오. 지금 우리 성교의 위세는 온 강호를 뒤덮고 있소. 원하는 사람은 그 누구든 데려다줄 수 있단 말이오. 필요한 재료도 물론 얼마든지 갖다 주고.”
사실 원길의 장기는 점술이었다. 진법에 관해서는 제법 조예가 있다고 할 수준에 불과했다.
초휴가 천곡마존의 진법 전승을 그에게 넘겨주자 날아오를 기세로 실력이 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법 실력은 여전히 최절정에는 못 미쳤다.
원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혼자서 이런 진법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은 강호를 통틀어 한 명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여럿이라면 해볼 만하죠. 지금 진법에 조예가 있는 사람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나고, 특히 이런 종류의 진법에 능한 사람은 두 명 있습니다.”
“하나는 진무교 자미전(紫微殿) 전주(殿主)인 ‘법원진인(法源眞人)’ 제갈청산(諸葛靑山)입니다. 이 사람은 진무교 진법의 제일인이라 할 만합니다. 심지어 진법에 관해서는 장문 육장류도 가르침을 구할 정도니까요. 진무교 전체의 진법 구 할이 그의 손에서 나왔고, 옛날부터 전승되어 온 진법도 그가 보강한 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의 장기는 도문 진법에서 말하는 차세(借勢)인데, 천지의 위세를 빌려서 진법의 힘으로 바꾸는 것이지요. 진법을 펼치기만 하면 외부에서 힘을 가할 필요 없이 순전히 천지의 힘, 혹은 특수한 지형의 힘만으로 운행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동제 황실 공봉당의 진법 대종사인 ‘진귀왕(陳鬼王)’ 조황(晁恍)입니다. 그의 진법은 상궤를 벗어난 것이 태반입니다. 그의 머리에서는 온갖 기묘한 발상이 끝도 없이 나오니까요. 다만 수단이 좀 사악합니다. 사람의 목숨으로 제를 올려 진법을 치는 일도 허다하고요. 그래서 진귀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죠. 하지만 진법의 조예로 보면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예전에 그의 진법을 연구해 본 적이 있는데, 그 정묘함이며 기상천외한 발상에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원길은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레 초휴의 눈치를 보았다. 그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자신이 언급한 두 사람 다 데려오기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진무교는 말할 것도 없다. 삼대 도문 중 하나고, 도문은 곤륜마교의 적이 아닌가. 도와주려 할 턱이 없었다.
‘진귀왕’ 조황이야 정도 무사라 볼 수 없으니 충분한 대가만 주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동제 황실 공봉당 소속이었고 동제 조정의 진법 절반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바꾸어 말해 조황이 다른 세력에 넘어가면 동제 조정의 진법 절반은 쓸 수 없게 되는 셈이었다. 진법을 깨는 수단이 조황의 입에서 흘러나갈 수도 있으니, 그것은 동제 조정으로서는 엄청난 재앙일 터였다.
원길의 생각에는 어느 쪽이든 데려오기가 매우 곤란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초휴는 이야기를 듣더니 손을 휙 저었다.
“알겠소. 그건 내게 맡기고, 얼른 이곳의 진법을 완성하시오. 무근성화와 연결할 준비도 해 두고.”
그렇게 말한 초휴는 통로를 통해 돌아갔다. 혹시 모르니 위서애 역시 함께였다. 지금 하계는 텅 비어 있고 초휴의 진정한 심복은 대부분 대라천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계에 돌아오니 저무기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초휴와 위서애를 본 그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벌써 다녀오셨습니까?”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데려올 사람이 좀 있어서요.”
상황 설명을 들은 저무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나도 함께 가지. 조황 그 녀석과는 교분이 좀 있어서 말이지. 나도 한번 권해 보겠네.”
“조황도 마도 무사였습니까?”
저무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세. 원래 내 고국이었던 위국(魏國)은 동제를 모셨잖나. 동제가 위국의 진법 배치를 도와주러 사람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게 조황이었어. 기인이라고 할까, 성격이 좀 괴상하지. 그자를 쓰려면 그 성격을 감당해야 하네. 좀 화가 난다고 죽여 버리면 곤란하네.”
초휴는 끄덕였다.
“그거야 저도 잘 알죠. 그런 말씀을 뭐 하려 하세요? 제가 뭐 그렇게 사람을 막 죽일 것처럼 보이십니까?”
초휴가 뻔뻔한 얼굴로 말하자 저무기는 가타부타 대꾸하지 않고 입만 삐죽거렸다.
* * *
동제 진무교에서는 향불이 가득 타오르고 있었다. 전보다도 더 많아 보였다.
초휴가 연달아 대광명사와 수보리선원을 멸문했고, 북연에서는 불문 신앙을 금지했다. 불종의 위세는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급전직하한 셈이었다.
그 여파는 동제까지 미쳤다. 동제 영토 내의 적잖은 승려들이 사찰 문을 닫고 환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서 절할 곳이 없어진 백성들은 도관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도조(道祖, 도교의 시조)나 부처나 머리카락이 있고, 없고를 빼면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아무한테나 가서 절하며 자식, 재물, 혼인이 잘 되게 해 주십사 기도하면 그만이었다. 효과가 있으면 좋고, 효과가 없으면 다른 곳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진무교에 온 초휴는 그 번화한 광경을 보고 혀를 쯧쯧 차며 중얼거렸다.
“진무교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내 덕분 아닌가. 결국 나한테 크게 빚을 진 셈이군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