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97)
1097화 선택
육장류와 진무교 무사들은 진무교 대전에 모여 수행 중이었다.
진무교 대전에 있는 도존의 상에는 옛날 도존이 남겨둔 도온이 들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졌다. 그 아래에서 수행하면 도온의 영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때 육장류가 눈을 떴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뒤숭숭하군.”
다른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그를 쳐다보았다. 육장류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 진무교는 한창 향불이 타오르고, 도문의 위세는 완전히 불종을 압도하고 있지 않은가. 장문이 걱정할만한 일은 없을 듯한데?
그때 진무교 제자 하나가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더듬거리며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진정해라. 하늘이 무너진 것도 아닌데 웬 소란이냐!”
육장류가 힘주어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을 진정시키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제야 제자는 다소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초휴입니다!”
그 한 마디에 진무교 사람들의 낯빛이 일제히 변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그 말보다는 나을 듯했다. 방금 대광명사와 수보리선원을 무너뜨린 초휴가 진무교에는 왜 왔단 말인가?
설마 진무교도 멸문할 생각일까?
그들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초휴 일행이 대전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여러분, 나더러 무례하다고 탓하지는 마시오. 당신네 제자가 성질이 어찌나 급한지, 내가 이름을 대자 놀라서 꽁무니를 빼지 뭐요. 제대로 말도 하지 않고 말이오. 이 초휴가 그렇게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를 잡아먹기라도 할 줄 알았나 보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육장류는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문하 제자가 아직 철이 없어 무례를 범했구려. 초 교주가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오.”
초휴가 대광명사와 수보리선원을 없애버리기 전에는 정도 무림에서도 그를 독고유아와 비교하려 드는 사람은 없었다. 마교 교주의 자리는 영원히 독고유아의 것이었고, 초휴는 곤륜마교의 주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초휴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명실상부한 곤륜마교의 교주가 아닌가.
초휴는 손을 내저었다.
“그건 사소한 일이고, 철모르는 사람에게 따질 생각도 전혀 없소. 사실은 사람을 좀 찾으러 왔소이다.”
그렇게 말하는 초휴의 눈이 그 자리의 사람들을 한 바퀴 훑었다.
“외람되오만, 자미전 전주 ‘법원진인’ 제갈청산이 뉘시오?”
그 말에 수많은 도사 중 훌쩍 마르고 키가 커서, 선풍도골의 느낌을 주는 노도사 하나가 흠칫 놀라며 무의식중에 몸을 움츠렸다. 초휴처럼 악명이 자자한 마교 교주의 시선을 받는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육장류가 얼른 말했다.
“초 교주, 제갈 사제가 초 교주나 곤륜마교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소? 잘은 몰라도 분명 오해가 있을 것이오. 내가 알기로 근래 제갈 사제는 진무교에서 한 발짝도 나간 일이 없으니 말이지. 진법을 연구하느라 정신이 없었소.”
초휴는 담담했다.
“육 장문, 그리 놀라실 거 없소이다. 제갈 도장의 진법은 천하 무쌍이라지요. 나도 그 명성은 익히 들었소. 그래서 제갈 도장에게 진법을 하나 만들어 주십사 청을 드리고 싶다는 말이오. 즉, 시비를 걸러 온 게 아니고 그를 모셔가러 왔소.”
초휴가 그렇게 말하자 다들 멍하니 굳었다. 이건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초휴가 진무교를 찾아와 진법 설치를 도와 달라고 할 줄이야.
사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대문파끼리 진법 대사가 오가는 일은 아주 흔했다.
도문에서 제갈청산의 진법이 대단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순양도문이나 천사부에서도 제갈청산을 모셔갔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일이 끝나면 성의 표시로 보수도 챙겨 주었다.
하지만 초휴의 부탁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은가.
초휴가 누구인가? 곤륜마교 교주이자 바로 얼마 전에 수보리선원과 대광명사를 멸문한 자다. 강호에서 악명이 자자하여 어린아이도 울음을 그치게 하는 대마두 아닌가. 이런 때에 진무교 사람이 초휴를 도와 곤륜마교의 진법을 펼쳐 준다면 정도 무림 전체의 비난이 쏟아질 게 뻔했다.
그래서 육장류를 비롯한 진무교 사람들은 침묵에 빠졌다. 거절해야 할지 승낙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초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냉랭하게 말했다.
“왜, 내 청을 받아들이기 싫으시오? 아니면 보수를 받지 못할까 봐 그러시는 거요?”
육장류는 힘없이 말했다.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럼 뭐요?”
초휴는 한 발짝 나아가 싸늘하게 말했다.
“육 장문, 뭘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소. 나를 도와주면 정도 무림에서 이러쿵저러쿵 험한 말들이 나올까 봐 그러는 것 아닙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제멋대로 지껄이는 자가 있으면 내가 즉각 사람들을 보내서 없애 버릴 테니까.”
육장류는 깜짝 놀라서 얼른 말했다.
“아니, 아니오! 그럴 필요는 없소!”
사실 크게 심각한 일도 아닌데, 초휴가 정말 그렇게 했다가는 진무교는 정말로 마교와 한통속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초휴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육 장문, 솔직히 말해 나는 진무교에 해를 끼치려고 온 게 아닙니다. 정말로 제갈 도장에게 부탁을 하러 왔단 말이오. 좀 듣기 싫은 말을 하자면, 지금 우리 곤륜마교의 실력으로 진무교를 멸문하는 것은 일도 아니오. 그러나 남이 나를 일 척 높여주면, 나는 그를 일 장만큼 높여줄 거요. 그게 나 초휴의 원칙이오. 그간 진무교와 마찰이나 충돌이 있었지만, 진영 간에 견해가 달라 벌어진 일이니 나도 마음에 담고 있지는 않소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규칙대로 합시다.”
그렇게 말하며 초휴는 책을 하나 꺼냈다.
“상고 시대 도문의 기록이오. 아마 지금 강호에는 실전되고 없을 거요. 이것을 드리고 제갈 도장의 도움을 받고 싶소. 이걸로 나는 진무교에 예를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하오. 열 배로 갚아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소. 그저 규칙대로 받은 만큼 돌려주시면 족합니다. 선택은 육 장문에게 달렸소.”
이 책은 정말로 도문의 비전이었다. 초휴가 창오군의 황천각 장서 중에서 베껴온 것이었지만 말이다. 대단히 진귀한 것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어쨌든 하계에서는 실전된 비전이 분명했다.
육장류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는 손을 내밀어 책을 받았다.
“제갈 사제는 진무교 밖으로 나간 적이 거의 없소.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상 물정에 어둡소이다. 혹시 초 대인께 무슨 무례를 저지르더라도 너그러이 넘겨주셨으면 하오.”
초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육장류가 결국 타협한 것이다.
그는 초휴의 말하는 뜻을 알아들었다. 사람을 내주지 않으면 진무교를 없애버리겠다는 소리 아닌가. 적나라하기 짝이 없는 협박이었다.
초휴는 남이 잘해주면 자신은 열 배로 갚는다고 장담했다. 일단은 초휴가 진무교를 대접해 주었다. 그러니 진무교가 열 배로 갚지 않으려 하면 아마 좋은 꼴은 못 볼 터였다.
제갈청산은 멍한 얼굴로 육장류를 바라보았다. 장문이 지금 나를 초휴한테 판 거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육장류는 힘없이 미소짓더니,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전음으로 말했다.
“제갈 사제, 초휴의 성격으로 보건대 뭔가 다른 속셈이 있었으면 진작 손을 썼을 걸세. 우리 진무교는 초휴와 맞설 힘이 없네. 저자가 직접 찾아와 이 정도로 ‘예의’ 있게 말하는 이상, 진법 때문에 도움을 청한다는 말은 필경 사실일 걸세. 그러니 다른 생각은 말게.”
제갈청산은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잘 알았다. 지금 진무교의 실력으로는 초휴와 대적할 방법이 없었다. 초휴가 무슨 말을 하건 받아들이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초휴가 제갈청산을 데리고 떠나는 것을 보며 육장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엄청난 좌절감이 담긴 한숨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육장류는 사람 좋은 노인으로 살아왔다. 별로 힘을 추구하지 않았고 중시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힘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물론 힘이 있다고 해서 마음 내키는 대로 그 어떤 일이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싫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자신이 생기는 것이다.
* * *
초휴는 제갈청산을 데리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동제로 향했다.
강호에는 풍운이 일고 있었다. 북연과 서초 황실은 이미 천하대세에 끼어들어 논할 발언권조차 잃었다. 동제만은 아직 어느 정도 힘을 유지하고 있어 어느 정도는 강호와 실력으로 맞설 엄두를 낼 수 있었다.
그간 정도와 마도는 서로 죽고 죽이며 싸워왔다. 반면 동제 황실은 북연과 한 번 싸운 것 외에는 별다른 손실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도 저력이 적잖게 보존되어 있었다.
곤륜의 초휴라는 이름은 이미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초휴가 이름을 대자 황궁 수비병은 귀신을 본 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동제와 곤륜마교는 그간 별로 충돌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놀라기는 했어도 진무교 제자처럼 반응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 초휴는 대전으로 안내받았다.
그러자 그 짧은 시간에 동제 황궁은 그야말로 천지가 뒤집힌 듯했다. 황실 공봉당의 강자, 동제 황족 중의 강자, 그리고 백호당처럼 동제에 투신한 강호 세력까지 일제히 모여들었다. 대전에만 진화련신이 열 명 가까이 집결한 것이다.
그들이 초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만했다. 하계는 대라천과 달라서 진화련신 무사 열 명을 일시에 동원할 수 있는 종문은 아주 드물었다.
본래 체구가 푸짐했던 여호창은 한참 못 본 사이에 삐쩍 말라 있었다. 노쇠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봐서 오래 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도 퍽 잘난 인물이기는 했다. 바로 얼마 전에도 후궁을 몇 명이나 새로 들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방탕하게 살면서 지금까지 버틴 것만도 대단했다. 그의 아들들이 그보다 먼저 늙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초휴를 마주한 여호창은 억지로 기운을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그는 애써 미소지으며 말했다.
“초 교주, 무슨 일로 동제까지 찾아오셨소?”
초휴는 손을 휘휘 내젓고는 말을 돌리지 않고 곧장 내뱉었다.
“폐하 휘하에서 사람을 하나 빌려 가려고 왔습니다. 동제 황실 공봉당의 진법 대종사 ‘진귀왕’ 조황이라는 자가 있지요. 제게 좀 빌려주시지요. 보수는 달라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호창의 미소는 굳어 버렸다.
조황은 동제의 진법을 절반 가까이 장악한 인물이다. 그가 남의 손에 넘어가면 후환이 무궁무진할 게 아닌가.
여호창은 헛기침을 했다.
“초 교주, 미안하오만, 조황은 요즘 바빠서 몸을 뺄 수가 없소. 만들고 싶은 진법이 있거든 재료를 여기로 가지고 오시오. 내가 조황에게 만들라고 명할 테니까.”
초휴는 굳이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도 귀찮았다. 그의 몸에서 살벌한 기운이 흩어져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는 싸늘하게 말했다.
“빌려주기 싫으신가 보군요. 하지만 내가 꼭 빌려 가야겠다면 어쩌시렵니까?”
수많은 사람 앞에서 대놓고 일국의 군주를 위협하다니. 지금 강호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자는 초휴뿐이리라.
동제 무사들의 낯빛이 일제히 어두워졌다. 중원 제일의 대국이 이런 협박을 당하는데 분노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동제 사람들의 태도를 본 초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기 전에 짐작했던 대로였다.
진무교는 그가 강경한 태도로 위협하면 승낙할 확률이 구 할쯤 되리라 생각했다. 진무교는 그와 한두 번 얽혔던 것이 아니므로 초휴의 공포도, 그의 성격도 잘 알았다.
그러나 동제는 달랐다. 북연을 공격했을 때를 제외하면 동제는 초휴와 얽힌 적이 거의 없었다. 그 때문에 동제 사람들은 초휴의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은 초휴로서는 당연히 좋은 일이 못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