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00)
1100화 강호의 수레바퀴
성 머리에 오르니 큰길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인마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마라고 할 수가 없었다. 말이 아니라 거대한 백호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 아래에 당도하자 초휴가 외쳤다.
“한강성 엽 성주께서 창오군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아시겠지만 여기는 우리 황천각의 구역이외다. 성주께서 여기까지 오시는 것이 적절한 일이오?”
엽유공은 초휴를 훑어보았다. 초휴의 실력이 어느 정도 가늠되자, 그로서도 경악의 기색을 감추기 어려웠다.
기무한은 초휴가 아주 대단한 인물인 것처럼 말한지라, 그는 내심 기무한의 과장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장이 아니지 않은가. 저 나이로 천지통현에 반 발짝을 걸친 수준까지 오다니 정말로 놀라웠다.
그리고 기무한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초휴의 실력은 전에 싸웠을 때보다 배 이상 강해져 있었다. 수련 속도가 저토록 빠를 수가 있단 말인가?
엽유공은 초휴를 쓱 훑어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말해 부적절하지. 하지만 왔네.”
은연중에 어마어마한 자부심과 패기가 묻어나는 어조였다.
부적절하면 어쩔 텐가? 이 엽유공이 왔다고 황천각에서 감히 이래라저래라 할 수나 있고?
“그리고 한마디 더 하자면, 나는 누가 높은 곳에서 날 내려다보고 이야기하는 걸 아주 싫어한다네.”
엽유공이 한 손으로 인결을 맺자 가득히 휘날리던 눈보라가 거대한 용으로 변했다. 그 용은 창남부 성벽에 엉겨 붙어 성벽을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성벽에 펼쳐져 있던 진법은 버티지 못하고 굉음을 울리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웅장하던 성벽은 얼음과 서리로 된 용이 당기는 힘에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힘이 그 위에 섰던 사람 모두를 감싸더니 땅바닥으로 끌어 내리려 했다.
이건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엽유공은 동역, 심지어 대라천 전체에서도 내로라하는 강자가 아닌가. 그런 인물이 자기보다 훨씬 약한 후배를 상대로 다짜고짜 출수한단 말인가?
그러나 옆에 있던 기무한은 매우 기분이 상쾌했다. 전에 초휴도 그에게 똑같은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때는 초휴를 혼쭐내 주기는커녕 기무한 자신만 톡톡히 당했다. 이제는 그때 자신이 당한 기분을 초휴가 맛볼 차례인 것이다.
무선의 힘은 애초에 맞서는 게 불가능했다. 초휴 쪽은 채 반응할 겨를도 없었지만, 미리 알고 반응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일순간 초휴의 몸에서 마기가 거세게 일더니 미친 듯이 천지 원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법천상지였다. 엄청난 크기에 달하는 마신의 몸이 잡아당기는 용의 힘을 벗어나더니 그것을 깨부쉈다.
강기의 폭풍에 눈보라가 섞여 날렸다. 태풍 같은 바람에 창남부 앞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아주 잠깐 법천상지를 시전했을 뿐이지만, 초휴의 낯빛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
엽유공의 얼굴에 다시 한번 경악의 빛이 스쳤다.
“신통? 아직 정식으로 천지통현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신통을 쓴다고? 허! 엽천청이 그리 억울하게 죽은 건 아니었군.”
무선인 엽유공은 당연히 신통을 알고 있었다. 쓸 수 있는 신통의 숫자도 꽤 있었다. 그러나 천지통현의 강자라도 신통을 완벽하게 다루기는 어렵다. 그러니 초휴가 신통을 펼쳐 보인 것 자체만도 놀라운 일이었다.
엽유공은 손을 휙 내저었다.
“아주 훌륭하군. 제법이야. 무한 자네가 아주 대단하다고 이야기할 때 솔직히 믿지 않았네. 하지만 실제로 보니 그런 평가를 받을 만도 하군. 황천각 늙은이가 찾아왔을 때, 자네가 엽천청을 죽인 일은 더 추궁하지 않겠노라 약속했네. 하지만 동역 사람이면 다 아는 일이지. 이 엽유공이 별로 마음이 넓은 인물이 아니란 사실을. 한동안 참아 보려 했으나 화가 가라앉기는커녕 생각할수록 성질이 나더란 말일세. 엽천청은 나의 후배이자 오른팔 같은 사람이었네. 자네가 그를 죽였으니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나? 그렇지 않으면 동역과 대라천에서 우리 한강성이 ‘옛날의 패기를 잃었다’, ‘엽유공도 이제는 겁을 먹었다’ 하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말이야. 그러나 이미 한 약속을 무를 수는 없으니 자네의 목숨은 거두지 않겠네. 하지만 내 오른팔을 죽여 없앴으니 자네의 오른팔을 받아가는 것으로 계산을 끝내기로 하지!”
서봉산 등은 낯빛이 변했다. 엽유공이 행패를 부리러 올 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노각주와 이야기를 끝내서고도, 이렇게까지 물고 늘어진단 말인가? 팔을 가져가겠다니, 무공을 폐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엽유공이 강경 일변도에 제멋대로 굴기 일쑤이며 티끌 같은 원한조차 갚고야 만다는 말은 옛날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한강성이 막 굴기하던 때였다. 엽유공은 홀로 사방의 적과 맞서 싸우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강경하게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한강성은 동역의 대문파로 우뚝 섰고 엽유공 자신도 무선의 지존 강자 아닌가. 그런데도 한참 후배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러나 작정하고 몰염치하게 구는 무선 강자를 상대로 초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때 창남부 성안에서 금은색의 화염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쳤다. 천지를 녹여 버릴 듯 강대한 기운에 엽유공마저 시선을 돌렸다.
기이하고도 강력한 화염 속에서 인영이 하나 나타나더니, 노쇠한 목소리가 담담히 말했다.
“엽 성주, 후배 간의 다툼은 후배끼리 해결하게 두시오. 이런 일까지 무선이 직접 나서는 것은 지나치지 않소?”
엽유공은 미간을 찡그렸다.
“이자의 사부 되시오? 참으로 기이한 불꽃이로군. 당신 일맥의 무도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듯한데?”
엽유공의 의문에도 화염 속 그림자는 태연했다.
“우리 일맥은 제라산맥 깊은 곳에 은거해 왔소이다. 강호에 나서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 엽 성주가 모르는 게 당연하지.”
엽유공이 문득 웃었다.
“전인이 강호에 발을 디딘 이상, 고존은 문하 제자의 시련에 끼어들 수 없는 법이잖소. 나도 고존에 관해서는 아주 잘 알지. 당신은 지금 일맥의 법도를 어기고 있는 셈이오.”
화염 속 그림자가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다르오. 내 제자는 자질도 우수하지만, 우리 일맥을 계승할 자격을 지녔소. 그러니 진화련신인 제자가 무선을 상대하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뛰어난 제자 하나를 잃지 않겠소? 그리고 엽 성주, 그대 같은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 역시 법도에 맞는 일은 아니잖소?”
엽유공은 담담했다.
“제자를 위해 나서는 고존은 정말 처음 보는 것 같군. 당신 제자 때문에 우리 한강성을 적으로 돌려도 좋소?”
그림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한강성을 적대할 뜻이 없고, 우리 일맥도 강호에 나설 생각은 없소. 내 제자가 황천각 객경 노릇을 하는 것 역시 한때일 뿐, 한평생일 수는 없소. 그러니 나야말로 묻겠소. 엽 성주는 고작 일순간의 화풀이를 하려고 무선과 원수지간이 돼도 좋겠소?”
두 사람이 질문을 주고받는 순간 엄청난 기세가 맞부딪쳤다. 창남부 전체가, 심지어 공기마저 그대로 굳어 버리는 듯했다.
한편에서는 타오르는 무근성화의 불기둥이 하늘까지 치솟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싸늘한 찬바람이 창오군의 작렬하는 햇빛 아래 눈보라를 일으켰다. 두 기운이 얽히는 순간 사람들은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무근성화를 휘감은 위서애의 표정은 담담했고 속마음도 태연자약했다.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은마 권 무사들이 보기에 위 옹은 느릿하고 침착한 노인이었다. 명망이야 대단해도 서슬 퍼런 예기는 없어 보였다.
그들은 위서애가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일을 수없이 겪어왔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옛날 구천산 오대천마가 활약하던 시절은 마도의 힘이 바닥을 치던 때였다. 그러나 그들은 강호 전체와 적이 되어 싸웠다.
구사일생(九死一生) 정도가 아니라 십사무생(十死無生)의 형국이었는데도 그렇게 했다. 그 과감함과 대담함은 온 강호를 경탄케 했었다.
위서애는 은마권 전체가 사분오열할 때도 혼자 힘으로 은마의 깃발을 지켜냈다. 그 뒤에는 초휴와 함께 수차례 정마대전을 치렀다.
늘 위험이 꼬리를 물고 그에게 들이닥쳤다. 그러니 이번 일은 그에게 있어 소소한 재밋거리에 불과했다.
엽유공 역시 무근성화에 둘러싸인 위서애를 응시하고 있었다. 상대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그 목소리에서 자신감과 담대함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자였다.
기이한 불꽃 때문에 엽유공은 상대의 진짜 실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의문이 들었다. 대체 어느 일맥의 고존이기에 이토록 강대한 불꽃을 다루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는 맹성하와 가까웠기 때문에 고존 일맥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쌍방은 그렇게 한참을 대치했다.
옆에 서 있던 기무한은 긴장하여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는 초휴를 위험인물이라고 생각해서 미리 싹을 자르자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초휴의 뒷배인 고존이 법도를 깨면서 제자를 싸고돌다니, 이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제는 한강성으로서도 일을 크게 벌이기가 쉽지 않았다. 누가 봐도 초휴보다는 무선 강자의 위협이 더 심각했다.
한강성이 황천각과 결사의 전투를 벌인다면 어느 정도 이익을 거둘 것이다. 그러나 고존 상대로는 죽기로 싸워 봐야 생길 이익이 없지 않은가.
잠시 후 엽유공이 손짓하더니 담담히 말했다.
“물러난다.”
엽유공의 말을 듣고 기무한 역시 한숨 돌렸다.
지금 같은 때에 무선 강자와 사투를 벌이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엽유공이 강경하고 패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인물이었다.
엽유공이 떠나자 초휴도 즉각 군수부로 돌아갔다.
서봉산 등은 부러워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선 강자를 뒷배로 둔 고존의 전인이니 그렇게 자신감이 넘쳤던 거구나 싶었다. 저 정도면 한강성 성주라 해도 함부로 초휴에게 손을 대진 못할 게 아닌가.
군수부 밀실에 있던 위서애의 낯빛은 창백했다.
“위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초휴가 다급히 묻자 위서애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몸을 부딪치며 싸운 것도 아니잖으냐. 그냥 무근성화만 조종한 정도니까 버틸 만하다. 어쨌든 무선이란 정말 두려운 존재로구나. 사실 나는 엽유공이 출수해도 무근성화의 힘을 빌리면 몇 합 정도는 겨룰 수 있을 줄 알았다. 저자가 그냥 물러났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출수했다면 내 정체는 금세 들통났을 게다.”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천각 자료에 의하면 엽유공의 실력은 무선중에서도 매우 강한 축에 속했다. 최소한 황천각 노각주나 이무상은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위서애는 한숨을 쉬었다.
“하계에 있을 때는,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제 더 위로 올라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수련을 소홀히 했던 게 사실이야. 그런데 대라천에 와보니 강자 중에도 강자가 있다는 말뜻을 이해하게 될 것 같구나. 대라천 같은 곳이라면 나도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엽유공은 심계가 매우 깊은 자야. 의심도 많고 걱정도 많지. 일단 물러난 이상, 네가 한강성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당분간 먼저 출수할 일은 없을 게다. 원길더러 얼른 진법을 완성하라고 해라. 무근성화를 대라천에 끌어와 장기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면 우리로서도 비장의 패 하나는 생기는 셈이 아니냐. 한동안은 좀 조용할 테니 이 늙은이도 폐관에 들어야겠다. 명이 다하기 전에 무선경의 신묘함을 맛볼 수 있을지 시험해 보아야지.”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 선배님의 실력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위서애는 실소했다.
“글쎄다. 나는 나 자신에게 그리 자신이 없다만.”
“저는 사실을 말한 겁니다.”
초휴는 위서애를 추켜세우려고 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이었다.
위서애가 처해 있던 상황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좋지 못했다. 그는 굳은 집념으로 의형들의 무도를 자신의 무도에 억지로 융합시켰다. 그 때문에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던 것이다.
초휴처럼 잡다하게 배울수록 더 강해지는 사람은 극히 드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간은 은마 역시 가장 힘겨운 시절이라 할 수 있었다. 위서애는 줄곧 숙이고 참아야 했고, 한편으로는 은마의 실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야말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을 고스란히 바친 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도 여유롭고 자원도 넉넉하고 시간도 있지 않은가. 위서애가 무선에 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