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07)
1107화 황천각의 변고
초휴가 황천각 총단 대전으로 들어서자 황천각 군수와 장로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초휴가 들어서자 군수 대부분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의 실력을 가늠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황천각 장로들은 이미 초휴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각지의 군수 중 초휴가 아는 사람은 해영종 하나뿐이었고, 다른 군수들은 초휴를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이었다.
초휴가 들어오자 이무상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으나, 좀 냉담한 표정이었다. 먼젓번에 초휴가 거절한 일을 아직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해영종은 이무상의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초휴에게 웃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노각주의 사람이었고 먼젓번에는 초휴의 도움을 받았으니 신세를 진 셈이기도 했다.
육삼금이 빨개진 눈으로 다가왔다. 그는 초휴에게 하얀 비단옷을 건네며 나직하게 말했다.
“초 형, 일단 좀 쉬고 있게. 노각주의 장례는 내일 치러질 걸세.”
그곳에 있는 사람 중 가장 애통해하는 인물은 육삼금이었다.
그에게 노각주는 아버지이자 스승 같은 사람이었다. 순전히 노각주가 밀어준 덕에 오늘날 이 자리에 앉은 것이니까.
초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낮은 소리로 물었소.
“노각주는 어쩌다 돌아가셨나?”
“심혈을 너무 소모하셨어.”
육삼금은 비통하게 말했다.
“노각주는 안 그래도 연세가 높으셨건만, 황천각이 위태로우니 편안히 쉬고 계실 수가 없었던 거야. 매일같이 무도를 연구하며 한강성의 빙백신공을 제압할 만한 무공을 만들어내려 하셨지. 무공 연구가 반쯤 진척 되었을 때 고비에 맞닥뜨리셨다네. 그것을 억지로 뚫으려다 주화입마에 가까워지고 결국은 심혈을 다 소모하시고 말았다네.”
그 말에 초휴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듣고 보니 노각주의 죽음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주화입마에 쉽게 빠지는 거야 하급 무사들한테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닌가.
노각주 같은 무사가 주화입마라니, 본래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을 평안히 먹고 정양했더라면 노각주의 실력과 경지로 보건대 십년은 너끈히 더 살았을 터였다.
그때 이무상이 말했다.
“모두 모였으니 장례는 예정대로 내일 거행하겠소. 다들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시오.”
그때 종추수가 느닷없이 물었다.
“노각주를 어디에 모실 겁니까?”
이무상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야 당연히 원공경(元空境)이지. 역대 황천각 각주는 모두 거기에 모셨잖소?”
종추수가 담담히 말했다.
“물론 다른 역대 각주들이야 원공경에 모셨지요. 하지만 노각주께서 황천각에 얼마나 큰 공헌을 하셨는지는 모두가 다 알지 않습니까. 저는 노각주를 원황경(元皇境)에 모셨으면 합니다.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한 분이니까요.”
그 말을 듣자 사람들은 저마다 수런대기 시작했다.
황천각에는 동천복지가 여러 군데 있었는데 원황경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그곳에 황천각 몇몇 선조의 위패를 모셨는데, 황천각에 막대한 공로를 세운 각주만이 원황경에 안장될 수 있었다. 그리고 황천각 비장의 패가 여럿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따로 있었다. 원황경 자체는 아주 작아서 겨우 방 한 칸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안의 천지 원기는 가공할 정도로 짙었다.
황천각 각주 한 사람만이 원황경에 들어가 수련할 수 있었다. 원기를 축적하기 위해 원황경은 몇 년에 한 번만 열었다. 일단 열어 놓으면 그 속의 천지 원기도 흩어졌기 때문이다.
이무상이 마지막으로 원황경에 들어간 지 몇 년이 흘렀다. 한동안 기다리면 원황경을 다시 열 수 있었다. 그러나 종추수는 내일 당장 원황경을 열자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이무상의 수련을 방해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무상은 목소리를 낮추어 일갈했다.
“종추수! 노각주를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는 일마저 그따위 하잘것없는 간계를 부릴 작정인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종추수는 이무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홀연히 그의 얼굴에 조롱이 담긴 웃음이 떠올랐다.
“지금 내가 널 괴롭히려고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하는군그래?”
다음 순간 종추수의 얼굴이 험악하기 이를 데 없게 변했다.
“이무상! 잊지 마라. 본래 나는 길거리에서 굴러먹던 잡배에 불과했다. 어쩌다 대문파 제자를 건드리는 바람에 당시 두목이 나를 산 채로 포를 떠서 그 문파의 분을 풀어주려 했었지. 그때 나를 구해 주신 분이 노각주다. 나는 노각주께 목숨을 빚졌단 말이다! 그 후로 나는 줄곧 황천각에 심혈을 기울였고, 늘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왜 그랬는지 아나? 노각주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서 그랬단 말이다! 네가 각주 자리에 앉는다고 했을 때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았고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노각주께서 나보다 네가 더 적합하다고 말씀하셨기에 양보한 것이다. 내가 그간 너와 사이가 나빴던 건 사실이지. 그러나 노각주께서 양보하라고 내게 말씀하셨을 때, 한 번이라도 어긴 적이 있었나? 너의 각주 지위를 안정시키려고 노각주께서 얼마만 한 대가를 치르셨는지 알기나 해? 네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봐라. 역대 황천각 각주를 하나하나 살펴보란 말이다. 노각주께서 정말 원황경에 들어가실 자격이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나? 지금 내가 널 해코지하려고 이러는 줄 알아? 이무상, 어찌 그리 속이 음험한가? 나는 그저 노각주를 그분이 응당 계셔야 할 곳에 모시고 싶을 뿐이야!”
“그만해라!”
이무상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라고 노각주를 원황경에 모시고 싶지 않은 줄 아나? 하지만 노각주께서 떠나신 이상, 한강성은 소식을 듣는 대로 즉각 손을 쓸 것이다. 원황경을 이용해서 나의 힘을 키운다면 그들의 출수에 대처하는 게, 보다 수월해질 거란 말이다. 그게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어디까지나 황천각을 위한 일이란 말이다!”
종추수가 비웃었다.
“원황경에 백 번을 들어간들 너는 엽유공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데 그런 쓸데없는 말을 왜 한단 말인가? 너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고?”
이무상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힘주어 말했다.
“종추수, 그만해라.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 각주는 나다.”
“그래. 각주는 너지. ‘천왕’ 이무상, 참 위풍당당하군! 황천각 각주답게 아주 패기만만해!”
종추수는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 뒤돌아 나가 버렸다. 수많은 장로와 군수들은 하나같이 눈을 내리깐 채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무상과 종추수 둘의 갈등이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크게 싸운 것은 처음이었다. 이건 아예 공공연히 갈라선 수준이 아닌가.
그것도 하필 노각주의 장례 문제를 두고 이렇게 갈등이 첨예화하다니. 이 난감한 사태에 아무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무상은 침울한 낯빛으로 말했다.
“다들 물러가시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흩어졌다.
초휴는 육삼금을 따라 밖으로 나온 뒤에야 낮은 소리로 물었다.
“지금 있었던 일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육삼금의 얼굴에는 무력한 기색이 떠올랐다.
“두 분 사이의 복잡한 은원은 나도 진작 알고 있었어. 그리고 노각주가 돌아가시면 난리가 날 것도 짐작했지. 하지만 이리 크게 싸울 줄은 몰랐군. 이제는 그저 노각주의 장례를 평안히 치렀으면 하는 마음뿐이네.”
그렇게 말한 육삼금도 어두운 얼굴로 떠났다. 이무상과 종추수 두 사람에게 너무나 실망한 기색이었다.
* * *
그날 밤 초휴는 황천각에서 마련해 준 거처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가 문득 눈을 뜬 순간, 문이 열리더니 종추수가 들어왔다.
종추수가 난데없이 찾아왔는데도 초휴는 몹시 태연했다. 그는 손을 쓱 저어 강기로 의자를 들어 올려 종추수 앞에 놓아 주기까지 했다.
초휴의 태도를 본 종추수가 오히려 의문에 차서 물었다.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나?”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꼭 오실지 어떨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누군가 찾아온다면 필경 부각주일 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종추수의 얼굴에 재미있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어째서인가? 내가 왜 찾아왔는지도 아는가?”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부각주는 이무상에게 대놓고 반기를 드실 작정이 아닙니까. 그러니 끌어모을 수 있는 힘은 다 모아야 할 테니까요.”
그렇게 말한 초휴는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그리고 나 초휴의 가치는 퍽 크죠. 부각주께서 친히 찾아와 끌어들이려 할 만큼 말입니다.”
종추수는 경악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초휴는 일반적인 상식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미리 준비한 말은 한마디도 할 기회가 없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직하게 물었다.
“내가 포섭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면, 제안을 받아들일 마음도 있는가?”
초휴는 담담했다.
“내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면야 다음은 부각주께서 어떤 조건을 내거는지 봐야겠지요.”
종추수는 손을 휙 저었다.
“무엇이든 말만 하게. 그리고 자네도 이제는 알았을 게 아닌가. 이무상이 어떤 인간인지 말이야. 그는 사리사욕만 쫓는 위군자에 불과하네!”
그는 코웃음을 쳤다.
“당시 나와 이무상은 모두 무선에 반 발짝 걸친 상태였지. 우리는 약조를 했네. 공평하게 경쟁해서, 먼저 무선에 드는 사람이 각주가 되고 패자는 진심으로 승복하자고 말일세. 만일 이무상이 자기 능력으로 각주가 되었다면, 나 종추수는 기꺼이 승복했을 걸세. 결코,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가 정말 자기 실력으로 무선에 오른 줄 아나? 그자는 노각주한테 가서 나를 비방했지. 나처럼 과격한 인물이 각주가 되면 황천각이 위기에 빠지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결국 노각주는 그가 수련할 수 있도록 원황경을 개방해 주셨네. 이무상은 몇 년이나 축적된 원황경의 강대한 원기를 이용해서 무선이 되었지. 사실 이무상의 말이 틀린 건 아냐. 내가 고집 세고 과격한 사람인 건 사실이니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 등 뒤에서 칼을 꽂는 짓을 어찌 용납하겠나! 각주가 되고 싶다고 내게 터놓고 말했으면 나는 양보했을 걸세. 그냥 각주 자리 아닌가. 노각주께서 나는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이상 내가 빼앗으러 나설 일은 없네. 하지만 이무상은 내 면전에선 공정히 경쟁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노각주께 나를 비방해댔다는 말이지. 이게 위군자가 아니고 뭔가?”
“내가 어떻게 부각주가 되었는지 아는가? 노각주께서는 내게 미안한 마음에 억지로 떠넘기신 걸세. 그렇지 않았으면 이무상 그놈은 나한테 군수 자리조차 주지 않았을 거야. 나는 이무상과 백년 넘게 친구로 지내왔네. 그가 그런 짓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지. 자 그러니 알조 아닌가. 내게도 그렇게 대한 자가 하물며 자네한테는 어떨 것 같나?”
종추수가 옛일을 하나하나 말하는 것을 듣고 있던 초휴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이무상과 종추수가 각주 자리를 놓고 다퉜으리라 생각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무상이 그렇게 지저분한 수법을 썼을 줄은 몰랐다. 뒤에서 고자질한 데다 일을 저지른 후에야 알리다니.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그 시절 종추수가 얼마나 과격하고 극단적이었는지도 알 만했다.
노각주는 뒤에서 고자질하는 이무상에게 각주 자리를 물려줄지언정 종추수에게는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종추수에게 각주 자리를 맡기면 황천각의 앞날이 더 처참해질 거라고 생각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겉으로 공정하고 위엄 있어 보이는 이무상이 사실은 위군자다? 그 말은 부각주는 진짜 군자다 이겁니까?”
종추수는 손을 내저었다.
“나는 군자가 아닐세. 정반대로 소인이지. 진짜배기 소인 말이네. 황천각에서 나를 적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을 걸세. 하지만 나는 대놓고 적대하지,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까지는 않아. 자네가 처음 황천각에 들어왔을 때를 생각해 보게. 자네는 육삼금이 데려온 사람이었던지라 나는 자네를 이무상 사람으로 생각하고 잘 대해주지 않았지. 하지만 그 후로 내가 자네를 적대하거나 해코지하려 든 적이 있나? 정말 자네를 해치려 했던 건 오히려 자네의 윗사람인 이무상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