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13)
1113화 시키는 대로만 하면 죽지 않는다
이번 임무의 목표인 통천 열쇠는 진작 발견했다. 하지만 혈무려는 굳이 그것을 서둘러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느긋하게 즐기면서 목표를 쫓고 있었다. 마치 쥐를 사냥하는 고양이처럼 말이다.
대로 옆의 누추한 정자에는 삿갓을 쓴 남자가 비를 피하고 있었다. 품에는 커다란 상자를 안고 있었는데 표정이 매우 수상쩍었다.
혈무려가 정자로 들어서자 그는 기겁하고 놀랐으나, 상대가 자신을 추적하는 자들이 아닌 것을 확인하자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혈무려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당문(唐門)에서 쫓겨난 당전(唐展) 맞지?”
당전은 놀라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당신은 누구요?”
혈무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걱정할 것 없다. 나는 당문에서 널 죽이라고 보낸 사람이 아니니까.”
당전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혈무려는 또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네게 있는 물건이 필요하다. 네가 그것의 가치를 모른다면 괜찮았겠지만, 지금쯤이면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너도 알게 되었을 테지. 그러니 너를 살려 둘 수 없다. 쯧쯧, 살인멸구라는 걸 나도 하게 될 줄이야. 경험이 없긴 하다만 안심해라. 그리 아프지 않게 손을 쓸 테니까.”
혈무려가 한참을 주절대는 동안 당전은 과감하게 상자를 들어 올렸다. 다음 순간 무수한 암기가 폭우처럼 혈무려를 향해 쏟아졌다.
경탄할만한 광경이었으나, 곧이어 벌어진 상황에 당전은 거의 미칠 것 같았다. 그의 걸작이었던 각양각색의 암기, 온 정성을 기울여 만들어낸 암기들은 혈무려한테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단 하나도 혈무려의 호체강기를 뚫지 못하고 뎅그렁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당전은 고작 천인합일이었다. 그는 이제야 제대로 깨달았다. 상대와 자신의 실력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는 것을.
그러나 혈무려가 막 당전의 목을 틀어쥐려는 순간,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천문 신장 혈무려인가?”
막 뻗어 나가던 혈무려의 손이 움츠러들었다. 그의 눈에 경악의 기색이 비쳤다. 상대가 이렇게 가까이 접근하도록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혈무려의 등 뒤에 초휴가 서 있었다. 빗방울은 강기에 튕겨 나가지 않고 기이하게도 몸으로 녹아들어 흘러서 발아래 작은 개울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그의 존재 자체가 이 천지자연의 일부인 듯했다.
육강하는 손에 기름종이로 싼 것을 들고 있었다. 파촉 지방의 간식인 돼지고기 튀김이었다. 그는 간식을 주섬주섬 먹으며 구경거리를 보듯 혈무려를 훑어보았다.
천문 신장이라지만 고작 진화련신 무사를 상대로 초휴가 나서는 것은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정도로 쉽지 않겠는가. 그러니 자신까지 출수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초······ 초휴!”
담담하고 편안해 보이던 혈무려의 눈은 순식간에 충격으로 가득 찼다.
마주 초휴, 천문 신장을 둘이나 죽인 초휴, 바로 얼마 전에 남북 불종을 멸문한 그 초휴 아닌가.
혈무려는 자부심도 강했고 천문 무사 특유의 오만함도 지녔다. 그러나 초휴 앞에서 그런 오만 따위는 모두 공포로 변해버렸다. 초휴를 공격할 배짱 같은 게 있을 턱이 없었다.
다음 순간 혈무려의 몸에서 혈무가 확 폭발하더니 빗방울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는 거의 순식간에 백 장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공기 중에는 흐릿한 피안개의 흔적만 남았다.
퍽 과감하다고 평할 만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혈둔비법을 써서 도망친 것이다.
“어딜 가려고?”
혈무려는 깜짝 놀라 앞을 바라보았다. 초휴의 움직임을 전혀 느끼지 못했건만 벌써 자신의 앞에 와 있지 않은가. 그는 다시 방향을 틀려 했으나 미처 움직이기도 전, 시선이 닿는 곳에는 초휴가 이미 서 있었다.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 다들 나만 보면 질겁을 하며 달아나는군그래.”
혈무려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사면팔방이 온통 초휴의 그림자였다. 정신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도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 다 죽어라!”
혈무려는 미친 사람처럼 노호했다. 일권을 내찌르자 무한한 혈무가 주변의 빗방울과 섞여들더니, 광포한 힘과 강기를 담은 빗방울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흉포한 강기가 진동하며 폭발했다. 대로까지 터져 나가 엉망이 되었다. 사방에 있던 초휴의 그림자도 드디어 사라졌다.
혈무려가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찾나?”
그가 다급히 고개를 돌리자 초휴는 아무렇지도 않게 혈무려의 호체강기를 찢어발기고 그의 목을 틀어쥐었다. 엄청난 강기가 혈무려의 몸으로 흘러들더니 순식간에 전신의 경맥을 봉해 버렸다.
“순순히 시키는 대로 하면 죽지 않는다.”
육강하는 어느 틈에 벌써 정자에 앉아 있었다. 초휴가 병아리 집어 들듯 혈무려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본 그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어린 것이 불쌍하군그래.”
당전은 눈을 부릅뜨고 넋이 나간 채로 보고 있었다.
“한 조각 줄까?”
육강하는 그에게 튀김을 하나 건넸다.
“어이, 조금 전에 발사한 그 암기는 직접 만든 건가? 꽤 흥미롭긴 하지만 약하더군. 하지만 좀 더 좋은 재료를 쓰고 진법을 새겨넣으면 진단경이나 진화련신도 죽일 수 있겠더라고. 참, 내가 아는 녀석 중에도 암기를 다루는 놈이 있는데. 그놈도 성이 당씨란 말이지. 당아라고 하는데 혹시 모르나?”
당전은 무의식중에 그 튀김을 받아들었다. 입에 넣기는 했으나 씹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조금 전부터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이 그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세상을 무너뜨린 탓이었다.
그는 혈무려의 막강한 힘 앞에서 도저히 맞설 수 없었다. 사람을 절망하게 할 정도로 강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혈무려가 지금 누군가의 손아귀에 잡혀서 벌벌 떨고 있지 않은가. 당전으로서는 전율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사실 혈무려는 당전의 생각처럼 겁을 먹고 벌벌 떠는 게 아니었다. 몸이 떨리기는 했지만 그건 초휴가 경맥을 봉한 탓이었다. 강기가 체내에서 억지로 운행되느라 몸이 떨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갓 천문 신장이 되었지만 그래도 진화련신의 강자였다. 어려서부터 무수한 살육과 전투를 겪으며 살아온지라 그 정도로 근성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혈무려의 눈에도 절망의 기색이 가득했다.
그는 초휴와 천문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제천효한테서 저번에 군무신이 정두칠전으로 초휴를 죽이려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사실을 다 아니까 절망한 것이었다. 천문의 철천지원수인 초휴 손에 잡혔으니 살아남으리라는 한 가닥 희망조차 품기 힘들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는 나신군을 죽인 초휴가 고맙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덕분에 자신이 신장이 되지 않았는가.
이제 초휴가 그를 죽이면 천문의 다른 누군가가 초휴한테 고마워할 판이었다. 그 역시 기회를 잡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한 혈무려는 이를 악물었다.
“초휴, 네가 진정 곤륜마교의 주인이요, 마도 거물이자 강호의 지존이라면 단숨에 나를 죽여라!”
초휴는 담담했다.
“누가 죽인다고 했나? 말했잖나. 시키는 대로 하면 살려준다니까.”
다음 순간 초휴는 몸을 휙 날려 정자로 돌아왔다. 그는 당전을 슬쩍 보더니 물었다.
“날 아시오?”
당전은 부들부들 떨다가 그제야 정신이 든 것처럼 초휴에게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소인은 당가보에서 쫓겨난 당전이라 합니다. 초 교주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당가의 평범한 암기 장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초휴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당신의 복잡다단한 신상 내력에는 관심 없소. 오늘 당신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단 말이지. 원칙대로라면 나는 살인멸구를 해야 하거든. 하지만 당신도 죽기는 싫을 거 아닌가. 그러니 내게 이유를 하나 제시하구려. 뭘 할 수 있지? 내 손에서 목숨을 부지할 만한 것을 뭔가 가지고 있나?”
당전은 겁에 질려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머리도 완전히 텅텅 비어 버렸다. 그는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래고래 외쳤다.
“저는 당가보 비전의 암기 설계도에 근거해서, 천 가지가 넘는 암기 기술과 기관장치를 한데 모은 천기변(千機變)을 만들었습니다! 재료만 충분하다면, 그리고 암기에 강한 위력의 진법을 새기면 진단경이나 진화련신 강자도 죽일 수 있는 물건입니다. 천기변은 설계도는 따로 남겨두지 않았으니 천기변을 만들 방도는 오직 제 머릿속에만 있습니다. 강호에서 그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제가 유일합니다!”
육강하가 옆에서 입을 삐죽거렸다. 자신이 방금 가르쳐준 걸 빨리도 써먹는구나 싶었던 것이다.
초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괜찮군. 이제 당신은 우리 성교 사람이오. 앞으로 성교에서 쓸 암기, 그리고 당신이 말한 천기변을 책임지고 만들도록.”
당전이 막 한숨 돌리려는데 초휴가 또 말했다.
“그리고 거기 쥐고 있는 것을 내놓으시오. 그건 좋은 물건이 못 되는지라 지니고 있어 봐야 목숨을 잃는 재앙을 부를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초휴는 손을 쓱 휘저었다.
비단으로 쌓인 함이 당전의 품에서 둥실 날아오르더니 뚜껑이 열렸다. 거기 들어 있는 것은 통천 열쇠였다.
당전이 지니고 있던 통천 열쇠를 챙긴 초휴는 그게 어디서 생겼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저 그에게 영패를 하나 주고, 알아서 곤륜마교의 남만 분당으로 찾아가라고 보냈다.
어차피 당전의 실력이면 딴 속셈을 품지도 못할 터였다. 목숨을 보전하게 된 것만으로도 하늘과 땅에 감사해야 할 게 아닌가.
그는 통천 열쇠를 바라보았다. 사실 지금의 초휴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물건이었다. 천문이 조심스레 수집해 온 통천 열쇠는 초휴에게 아무런 신비감도 주지 못했다.
“이게 필요한가?”
초휴는 통천 열쇠를 혈무려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혈무려는 코웃음을 쳤다.
“죽이려면 빨리 죽이면 될 거 아닌가! 당신 같은 거물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모욕하면 재미있소?”
초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만 잘 들으면 죽이지 않는대도 그러는군. 정말 죽일 작정이었으면 내가 직접 나서지도 않았을 걸세.”
그 말에 혈무려는 한쪽에서 튀김을 먹어가며 구경 중인 육강하를 힐끗 쳐다보았다. 육강하 혼자만으로도 자신을 꼼짝 못 하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그들의 무공은 좀 비슷한 데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실력은 오백년 전 혈마당 당주보다 한참 아래였다.
“그러면 날 붙들고 대체 뭘 하려는 거요?”
초휴를 바라보는 혈무려의 눈에 다소 의혹이 섞였다. 초휴가 말한 대로 그에게는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는 듯하지 않은가.
초휴는 통천 열쇠를 앞에 내려놓더니 말했다.
“천문 신장이 뭐 그리 대단하지? 늘 폐관 수련을 하지 않으면 이런 걸 모으러 다니는 자리 아닌가. 심지어 이게 강호에 나타났다는 정보가 들어오지 않으면 천문 밖으로 나오는 것도 불가능하고 말이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번 기회에 주인을 바꿔보면 어떻겠나? 우리 성교 당주들은 수하에 수천수만의 마도 고수를 거느리고 위세를 떨친다네. 대문파 장문이라도 그 앞에서는 허리 숙여 예를 갖춰야 한단 말이지. 외톨이처럼 다니는 천문 신장보다 훨씬 나을걸세.”
그렇게 말하며 초휴는 육강하를 가리켰다.
“온종일 먹는 것밖에 모르는 자도 혈마당 당주를 연임하고 있는데, 내가 네게 기회를 주면 저 사람보다는 잘할 것 같지 않나?”
육강하는 순간 인상을 썼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시비야? 간식 좀 먹는 것도 안 되나?
정작 혈무려는 초휴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말 상상조차 못 한 소리였다. 초휴가 자신을 포섭하려 하다니. 무려 천문 신장을 말이다.
혈무려는 바보가 아니었으며 정반대로 아주 총명했다. 신장 선발에서 뽑히려면 실력이 있든가 머리가 좋아야 한다. 둘 다 아니면 남의 디딤돌이 될 뿐이다. 초휴와 천문의 관계를 떠올린 순간 그는 대번에 초휴의 말뜻을 이해했다.
“나를 천문에서 활약하는 곤륜마교의 간자로 만들 셈이구려?”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한 사람과 이야기하면 이래서 좋다니까. 대번에 내 뜻을 파악하니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단 말이지. 네가 수련한 무공도 기혈과 관련된 것이니 혈신마공의 이름은 들어보았겠지. 육강하를 시켜 네 몸에 혈신마공의 혈신인(血神印)을 남길 거야. 물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혈신인이 터질 일은 없다. 나중에 네가 우리 성교의 당주가 되면 혈신인도 자연히 풀릴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