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17)
1116화 사방에서 노리다
일행은 능소종이 마련해 준 처소에서 닷새를 묵었다. 괜히 사고에 휘말릴까 봐 닷새 동안 외출도 하지 않았다. 닷새 후 능소종의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창건 기념식이 거행되는 곳은 먼젓번에 능소종과 황천각이 비무를 벌였던 그 장소였다. 그러나 오늘은 무대 주변에 좌석이 빙 둘러 놓여 있었다.
능소종의 삼대 무선도 모두 나섰다. 선대 종주 진백원, 능소문을 지키는 ‘투전신군’ 영호선산, 그리고 능소종의 현 종주인 ‘구룡신군(九龍神君)’ 방응룡(方應龍)이었다.
방응룡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우아한 중년인으로, 글이나 가르치는 서생 같았다. 물론 아홉 마리 용이 수 놓인 은빛 비단 도포를 도외시할 때의 이야기였지만.
초휴는 방응룡에 관한 자료를 본 적이 있었는데, 퍽 독한 인물로 기록되어있었다. 현 동역 제일의 강자라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엽유공의 실력도 아마 무선 칠중천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방응룡은 이미 팔중천까지 오른 지존 강자였다. 방응룡이 있는 한 능소종은 지금의 지위를 지킬 수 있을 터였다.
창건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서역, 남역, 북역 여러 문파가 직접 오지는 않았어도 선물을 보내왔다. 황천각이나 한강성처럼 평소 능소종과 다소 마찰이나 충돌이 있던 종문도 얌전히 참관하러 왔다.
육삼금을 힐끔 쳐다보던 초휴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지금 황천각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능소종은 실력이 강했다. 진백원은 늙었지만 영호선산과 방응룡은 아직 장년이라 기혈이 쇠하려면 멀었다. 다음 후계자가 성장할 때까지, 한 세대 동안은 능소종을 아무 문제 없이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강성에는 엽유공이라는 강자가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본래 세력 범위가 협소했던 만큼 강경하게 나서서 싸우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문하 제자들 역시 약하지 않았다.
반면 황천각은 내세울 만한 인물이 종추수 하나뿐이었다. 육삼금이나 초휴는 말할 것도 없고, 황천각의 집사 장로나 군수 중에도 이렇다 할 강자는 거의 없었다.
순전히 옛 저력에 기대어 버티는 셈이었다. 이대로 가다가 아주 조그마한 사건이 불씨가 되어 황천각 전체가 무너질지 모르는 것이다.
초휴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동안 능소종의 창건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기실 새로울 것도 재미날 것도 없는 의식이었다. 그간 세월이 얼마였던가. 모든 절차를 물 흐르듯 하게 된 지 오래였다.
종주 방응룡이 나와서 몇 마디 하고, 선조들께 절을 올리고, 잡다한 제의를 거행한다. 그렇게 한 시진을 보내자 가희와 무희들이 한 무리 올라와서 공연을 시작했다. 식사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절차가 계속 진행되자 벌써 저녁이 되었다. 육강하와 육삼금은 말이 꽤 잘 통했다. 둘은 사방팔방 가리키며 어느 무희의 자태가 어떻고 미모가 어떻다는 둥 떠들어댔다. 그러나 초휴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식사가 거의 다 끝나가자 진백원이 허허 웃었다.
“여러 문파의 영재와 준걸께서 이리 많이 참석하셨는데, 우리 능소종에서는 준비한 것이 없구려. 그냥 하던 대로 합시다. 내기 시합을 벌이는 것이지요. 참가하는 무사에게는 승패를 막론하고 우리 능소종이 준비한 선물을 드리겠소. 어느 분에게도 손해는 안 될 거외다.”
능소종의 내기 시합에 대해서는 육삼금이 오는 길에 설명해 주었다. 각 문파 간의 각종 갈등과 충돌을 너무 격렬하지 않게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만들어진 자리는 것이었다. 까놓고 말해, 여러 대문파가 무력을 뽐내는 자리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내기 시합에 불과하니 참가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냥 체면이나 좀 구길 뿐인 것이다.
육삼금이 초휴를 데려온 것도 사실은 그런 상황에 대비할 목적에서였다. 적어도 너무 형편없이 참패하는 건 피해야 했으니까.
진백원이 손뼉을 치자 즉각 제자들이 물건을 한가득 날라오더니 하나하나 열어젖혔다. 그러자 온갖 휘황찬란한 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능소종은 동역 제일의 대문파답게 격식을 꽤 따지는지라 상품으로 내건 보물은 하나같이 적잖은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내기에 참여하기만 하면 승패와 상관없이 받아갈 수 있었다.
진백원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여러분은 우리 동역, 혹은 대라천 전체에서 가장 빼어난 분들 아니겠소. 누구든 무도에 대해 논하고 싶은 분은 올라가셔도 좋소. 다만 작은 내기는 정을 돈독하게 하지만, 큰 내기는 다치기에 십상이라는 말이 있지요. 무도로써 겨룬다고 하나 내기는 내기일 뿐이니, 적당히 겨루는 선에서 끝내면 족하오. 전력으로 임하여 화기를 상하게 하는 불상사가 없기를 당부합니다.”
한강성 쪽에서 기무한이 크게 웃더니 일어섰다.
“우리 한강성이 황천각 여러분께 한 판 청하고 싶소. 황천각에서는 누가 올라오시겠소?”
기무한이 당당하게 떠벌리는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한강성과 황천각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사실 쌍방은 이제 생사존망이 걸린 싸움 정도만 남겨둔 상태였다. 그러나 한강성은 아직 확고한 자신이 없었고, 황천각이야 당연히 먼저 나서기 껄끄러운 상황이었다.
지금 기무한이 대뜸 황천각을 호명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기무한은 나이도 그리 많지 않았고 이런 내기 시합은 규정이 엄격하지 않은지라, 한참 윗세대의 무선 강자만 아니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황천각 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동정이 섞여 있었다. 여기 있는 황천각 무사 중 천지통현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초휴가 기무한을 물러나게 했었다지만, 당시의 자세한 상황은 한강성과 황천각 양측만 알고 있었다. 아무도 밖에 이야기한 적이 없었으니 초휴의 구체적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외부인들이 알 턱이 없었다.
황천각에서 답하기도 전에 기무한 옆에 앉은 우문복이 담담히 말했다.
“거기 초휴라는 자, 당신도 고존의 전인이라면서? 의뭉스레 숨기는 것만 많고 자신의 전승도 제대로 밝히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군. 천지통현 강자를 죽인 적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와 한번 겨뤄 보세. 대체 얼마나 강한 고존의 제자인지 구경 좀 하자는 말이다!”
능천검존 일맥의 전인 우문복이 꽤 유명한 인물인지라, 그의 도발을 보는 사람들은 재미난 구경을 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때 능소종에서 헌원무쌍이 느닷없이 일어서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다시 한번 초휴에게 도전하고 싶소!”
그는 먼젓번 초휴에게 참패한 일이 너무나 원통했다.
헌원무쌍은 그야말로 영문도 모르고 패했던 것이다. 자신이 불러온 전혼은 어째서인지 효력을 잃었고, 심지어 반작용까지 일으켰다.
자신의 본 실력과 비장의 패를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졌던 것이다. 치욕 그 자체였다. 그래서 초휴를 다시 보게 되자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진백원이 미간을 찡그렸다.
“무쌍, 넌 가만히 있거라!”
보통 능소종은 창건 기념식 후의 내기 시합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냥 시합을 주최하는 역할인 것이다. 이겨 봐야 원래 자신들이 내건 상품을 가지게 되는 꼴밖에 안 되지 않는가.
그리고 여기는 그들의 본거지이니만큼 능소종 사람이 당연히 제일 많았다. 그러니 능소종이 참가하면 법도를 어기고 남을 괴롭히는 모양새가 되기 쉬웠다.
그럼에도 헌원무쌍은 고집스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종주님, 능소종이 시합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지 않습니까? 제가 참가하되 상품을 받지 않으면 될 게 아닙니까.”
헌원무쌍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누군가 크게 웃어젖혔다.
“황천각에 도전하려는 사람이 이리 많다고? 인기가 참으로 대단하군그래. 혹시 나도 참가할 수 있겠소? 나 역시 황천각의 여러 고수를 흠모해 온 지 오래라서 말이요.”
일어선 사람은 핏빛 장포를 입었는데 나이는 삼사십쯤 되어 보였다.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기괴하게 음침한 얼굴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누구 할 것 없이 경악하고 말았다. 황천각은 도대체 얼마나 미움을 산 것일까? 왜 너나 할 것 없이 황천각을 노리지?
육강하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저놈은 또 누구야? 당신네 황천각도 적이 꽤 많은 모양이군그래.”
육삼금이 그의 말을 고쳐주었다.
“당신네 황천각이 아니라 우리 황천각이겠지. 지금은 다 같은 편이잖소.”
그렇게 말한 육삼금은 핏빛 장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자는 동역 혈하교(血河敎) 교주인 혈하노조(血河老祖)의 제자 음혈려(陰血厲)요. 혈하노조는 무선이 아니지만 반 발짝 정도는 걸쳤지. 그래서 혈하교 역시 동역에서는 절정급 대문파에 버금가는 종문이오. 듣기로 옛날 혈하노조가 한강성에 시비를 걸었다가 엽유공에게 톡톡히 혼쭐이 났다더군. 그 뒤로 한강성에 굽신거린다고 들었소. 한마디로 줏대가 없는 놈들이지. 음혈려가 배짱 좋게 우리 황천각에 시비를 거는 것도 한강성 측이 사주한 때문인 게 분명하오. 죽일 놈 같으니! 간덩어리가 부어도 유분수지, 한강성에 아부하려고 감히 우리 황천각을 해코지하려 들어!”
본래 내기 시합 같은 판이 벌어지면 모두가 제각각 맞붙어 무력을 뽐내고 상품도 받아가려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판이 벌어지기도 전에 창끝을 황천각에 겨눈 세력이 너무 많았다. 자연히 분위기가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육삼금은 초휴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려는 것이었다. 상대가 한강성 하나라면 그래도 맞서볼 만하다. 하지만 개나 소나 마구 끼어드니 무슨 수로 싸우겠는가?
그러나 육삼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초휴가 벌떡 일어섰다.
“다들 황천각에 도전하겠다고? 우리 황천각의 인기가 이렇게 좋은 줄은 몰랐구려. 좋소. 내가 모든 도전을 받아들이겠소.”
초휴의 말에 그곳에 모인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천지통현이 셋이고, 나머지 하나도 천지통현에 뒤지지 않는 데다 대라천에 명성이 자자한 헌원무쌍이었다. 그런데 도전을 다 받겠다니 정신이 나갔나?
육삼금 역시 경악한 얼굴로 초휴를 바라보았다. 물론 황천각을 대표해서 싸워 달라고 초휴를 데려온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강경한 자세로 맞대응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뭘 어떻게 싸우려고?
잠시 아무 말이 없던 초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황천각이 이렇게 많은 도전을 받게 되었는데도 보상이 그대로라면 좀 그렇다 싶군요, 혹시 능소종에서 상품을 더 얹어 주실 수 있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진백원은 미간을 찡그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더 받고 싶은가?”
먼젓번 헌원무쌍과의 교전 때문에 초휴에 대한 진백원의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물론 살초를 쓴 헌원무쌍이 먼저 규칙을 어긴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헌원무쌍은 자기네 능소종 제자였고,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초휴가 곱게 보인다면 성인일 터였다.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별 것 아닙니다. 능소종의 동천복지 중 영소경의 천지 원기가 풍부하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기면 영소경에 며칠 머무르며 수련을 하고 싶습니다만, 괜찮을는지요?”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능소종 같은 절정급 대문파는 적잖은 동천복지를 보유하고 있기 마련이다.
능소종에서 가장 중요한 동천복지는 능소문이었다. 능소종의 진정한 기원이자 장경각이 있는 곳이었고, 각종 비장의 패 또한 그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 정도로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영호선산 같은 강자가 직접 지키는 것이기도 했다.
영소경의 이름도 들어 본 적은 있었다. 아마 능소종에서 비교적 중히 여기는 동천복지 중 하나일 것이다. 내기 시합의 상품으로 내걸기에 딱 적당하지 않은가.
그러나 진백원은 슬쩍 미간을 찡그렸다. 그런 것을 요구할 줄이야.
초휴를 능소종의 동천복지에 들여보내 며칠 수련하게 해 주는 거야 별일 아니었다. 그러나 진백원은 능소종 선조들의 당부를 유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