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22)
1122화 드디어 왔구나!
이 광경을 보는 은령자가 놀람을 금치 못하며 혼잣말을 토해냈다.
“저건 황천보체(皇天寶體)가 아닌가! 과연 육 형이 수련에 공을 들였던 게 바로 황천보체였어. 정말, 육 형은 보기보다 대담한 사람이로군!”
초휴는 천자망기술을 수련한 덕에 감지력이 극도로 발달했다. 따라서 육삼금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일신에서 무언가 특별한 기운이 감도는 걸 느꼈었다.
절대 범상한 실력의 소유자가 아님을 대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육삼금의 몸이 이렇게까지 거친 힘을 토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기무한마저 막아내지 못할 만큼 웅혼한 저력이라니.
물론 엄밀히 따지면 기무한에게 막아낼 실력이 없었다기보다는, 육삼금의 전신을 뒤덮었던 괴이한 황금빛 마문이 기무한의 영역과 강기를 완전히 차단한 때문이었다.
초휴가 은령자에게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은령자 도형, 육 형이 방금 시전한 게 뭔지 혹시 아시오?”
이에 은령자가 되레 의아하다는 듯 초휴를 힐끗 쳐다보았다. 황천각 사람이 자기 종문의 대표격 공법도 몰라본단 말인가? 하지만 의혹을 잠시 거두고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황천보체는 황천각의 최강 비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황천각의 가장 핵심 비법이기도 하고 말이오. 듣자니 상고 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더군요. 황천각 선조가 상고 마신의 유체(遺體)를 찾아내서 그 몸에 있던 마문을 그대로 옮겨다 자기 체내에 녹여냈다지요. 그리해서 황천보체가 형성된 겁니다. 마문이 가동되면 가장 기본적인 육신의 힘을 제외한, 상대의 모든 힘을 차단함으로써 위력의 정점을 찍게 되지요. 천하무적의 완벽한 공법이라고까진 말 못 해도 대부분 공법보다 우위에 있는 건 사실입니다. 다만 이 공법이 후대에 와서 실전되었다는 게 좀 아쉽지요.”
그 말에 초휴가 육삼금을 가리키며 의문을 제기했다.
“방금 육 형이 황천보체를 수련했다 하지 않았소? 게다가 황천각의 핵심 공법이라면서 실전이 되었다니,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구려.”
그러자 은령자가 부연설명에 들어갔다.
“사실 육 형은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수련을 강행한 겁니다. 상고 마신의 물건은 상고 마신의 전유물일 뿐, 인간이 마음대로 수련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자칫하면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단 말이지요. 해서 황천각 선조들은 수 대에 걸쳐서 황천보체의 반작용을 감당할 수 있는 육신을 빚어낼 연체 비법을 연구했더랬지요. 하지만 상고 대겁난 이전에 황천각은 한 차례 대위기를 맞게 됩니다. 종국에 가서는 성공리에 위기를 극복했지만, 당시 난리 통에 그 연체 비법이 실전되고 말았지요. 그 뒤로 황천각 내에서 황천보체를 수련하는 사람의 수는 갈수록 줄어만 갔습니다. 설령 수련한다 해도 이를 뒷받침할 연체 비법 없이는 정상적으로 써먹을 수가 없으니까요. 마문의 반작용을 그대로 맞았다가는 몇 번 운용해보기도 전에 폐인이 되고 말 겁니다. 다행히도 황천각은 워낙 다양한 공법들이 많은지라 보니, 황천보체 없이도 성장하기에 별 무리가 없었지요. 그러니 누가 굳이 그걸 수련하려 들겠소이까? 꽤 오랜 세월 강호에 나타난 적이 없었던 황천보체를 육 형이 오늘 선보인 셈이지요. 보아하니 육 형은 이미 수련을 대성한 모양입니다. 그간 얼마나 고통이 컸을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자칫 한 번의 실수로도 사람 자체가 하루아침에 끝장날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초휴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령자의 설명을 다 듣고 보니 육삼금이 생각보다 꽤 독한 사람인 걸 알 듯했다.
그리고 이번 대결에 결사의 각오로 임했음도 역시 알 것 같았다. 황천보체인지 뭔지의 반작용이 신통의 반작용보다 절대 약하지 않은 듯 보였으니 말이다.
방금 육삼금은 백 호흡도 채 경과하지 않은 시간 동안, 겨우 수차례 일권을 내질렀을 뿐이다. 그런데도 전신의 마문이 사라짐과 동시에 기력이 삽시간에 바닥이 난 것이다.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때 기무한도 비무대 밖에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울컥 피를 토했다. 무방비 중에 황천보체에 당하면서 튕겨 나간 충격이 고스란히 부상으로 남은 탓이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할 정도로 탈진한 육삼금에 비하면 그래도 얼마간의 전투력은 남아 있었다.
기진맥진한 육삼금의 몸 상태를 눈치챈 기무한이 험상궂은 표정을 짓더니 비무대로 올라가 대결을 속행하려 했다.
그러자 초휴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언성을 높였다.
“그저 무도나 겨뤄보자고 마련된 자리에서 한사코 끝장을 봐야겠나? 비무대 밖으로 튕겨 나갔으면 그걸로 패한 게 아닌가! 그런데도 승복 못 하겠다면 어디 판돈을 좀 더 걸어보시지. 다음 판에서는 이 몸이 놀아줄 테니까!”
이때 진백원이 헛기침과 함께 끼어들었다.
“자, 자, 그만들 하시게. 오늘은 우리 능소종에게 더없이 경사스러운 날이 아닌가. 굳이 이런 날 여기서 피를 볼 필요가 무에 있단 말인가. 기무한, 이쯤 해서 한강성의 패배를 인정해야 하지 않겠나?”
진백원까지 이렇게 나오는 이상 기무한도 별수 없었다. 냉랭히 콧방귀를 날린 후 자리로 돌아온 그는 내심 자기가 상대를 너무 얕보았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황천각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동역 행주가 그토록 위험한 공법을 수련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 얼토당토않은 일이었다. 어쨌든 그의 숨통을 끊어놓을 절호의 기회를 놓쳤으니 아쉽게 되고 말았다.
초휴가 사람을 시켜 숨만 간당간당 붙어있는 육삼금을 부축해 내려오게 했다. 육강하와 여봉선에게 그를 돌보라 이른 다음 진백원 앞으로 나가서 예를 갖추었다.
“보시다시피 이번 일전도 우리 측이 이겼습니다. 맞지요?”
진백원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좌중을 향해 물었다.
“무도를 겨루고 싶은 분이 또 계시오?”
사람들은 서로 눈치만 슬슬 볼 뿐 찍소리도 내지 않았다.
사실 예년에야 비무대에 서고자 하는 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비무대에 한 번 오르는 것만으로도 두둑하게 상품을 챙길 수 있으니 누가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올해의 비무대는 유난히도 피비린내가 짙었다. 내로라하는 대파마다 하나같이 진검승부를 불사하니 섣불리 나서기가 꺼려졌다. 더는 참가자가 없는 걸 확인한 진백원은 상투적인 인사말 몇 마디를 끝으로 행사가 끝났음을 선포했다.
그러자 곧바로 자리를 뜨는 종문들이 있는 반면, 쓸데없이 얼쩡대며 조금이라도 능소종에 빌붙어 보려는 종문들도 있었다.
* * *
아무래도 육삼금의 상세가 가볍지 않은 듯하자, 육강하와 여봉선이 그를 안정시키기 위해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들 셋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초휴는 진백원을 따라 영소경으로 향했다. 그간 독고유아에게 이렇게까지 가까이 다가간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와의 거리가 좁혀져 간다고 느낄수록 가슴이 떨려왔다.
시공을 초월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많은 난제와 맞닥뜨려야 했다. 그 모든 수수께끼가 어쩌면 오늘 한 방에 풀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심신 수련이 꽤 높은 경지에 이른 그일지라도, 이번만큼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가슴이 설레다 못해 벅차올랐다.
이윽고 진백원이 초휴를 대동한 채 출입문에 연결된 진법을 차례차례 해제했다.
초휴도 위압감을 느낄 정도로 강력한 진법이 겹겹이 구축되어 있는지라 해제에 시간이 걸렸다. 이것만 봐도, 이곳의 수비와 경계가 얼마나 삼엄한지 알 만했다.
마침내 마지막 진법을 해제하자 초휴의 눈앞에 공간으로 들어갈 문이 하나 나타났다.
진백원이 당부를 잊지 않았다.
“잠시 후 내가 진법을 해제하면 저 문 안으로 들어가면 되네. 그러나 이레밖에 머물 수 없음을 반드시 명심하게. 우리 능소종이 야박해서 그러는 게 아니니 오해는 하면 곤란하네. 일단 문이 한 번 열렸다 하면, 이레 내로 그간 영소경 내 축적되어 있던 원기가 완전히 흩어져 사라지기 때문에 그러는 거니까. 만약 이레가 지나도록 출입문을 다시 봉쇄하지 않으면 더 많은 천지 원기를 잃게 될 테고, 결국 이 동천복지(洞天福地)의 본원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단 말이지.”
초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온 이유가 수련이 아닌 해답을 찾기 위함이니, 이레라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진백원이 돌연 정색하며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네. 영소종은 단순히 능소종 내에서 천지 원기가 가장 풍족한 곳이기만 한 건 아니네. 저 안에 극악하기 그지없는 존재가 갇혀있기도 하니까. 지금이야 봉인된 처지라서 별일 없겠지만, 그래도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아무도 알 수 없지. 내 말인즉슨, 여기서 수련하는 자체는 문제 될 게 없으나, 그 존재가 있는 곳으로부터 무조건 백 장 이상 떨어져 있으란 얘기야. 절대 깊숙이 들어가진 말란 말이지. 내 당부를 허투루 여겼다가 저 안에서 예기치 못한 일로 죽기라도 하는 날엔, 그대의 고존 사부이건 황천각이건 간에 나한테 따지러 와봐야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걸세.”
초휴는 절대 명심하겠노라 단단히 약속했다.
마침내 진백원이 마지막 진법을 해제하자 초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들어갔다.
* * *
영소경에 발을 들인 순간, 초휴의 몸은 삽시간에 짙은 안개로 뒤덮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짙은 안개가 아니라, 액상의 연무로 보일 만큼 짙디짙은 천지 원기였다.
이처럼 천지 원기가 풍족한 환경에서 수련한다면 들숨과 날숨을 거듭할 때마다 족히 칠급 혹은 팔급 단약을 한 알씩 먹는 것과 맞먹는 효과를 볼 수 있을 터였다.
예전 같았으면 한시라도 시간을 허비할세라 곧장 수련에 들어갔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이미 마음이 저만치 콩밭으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그의 심장이 또 격렬히 뛰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가 바라마지않아 왔던 무언가가 눈앞에 있을 때 느낄 법한 감정이랄까. 그랬다. ‘그’가 틀림없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초휴의 발걸음은 자신의 직감이 인도하는 대로 거침없이 옮겨졌다.
진백원이 절대 깊숙이는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건만, 그런 말 따위는 일찌감치 달나라로 던져버린 지 오래였다.
이때 그는 자신의 직감에 이끌려서 걷는 와중에도 정신력만은 최고조로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이라고 감히 긴장을 늦추겠는가.
앞으로 나갈수록 안개도 점점 더 짙어졌다. 그저 자신의 발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려올 뿐, 주위 천지에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마치 가없이 펼쳐진 허공을 혼자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바로 이때 그의 귓가에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드디어 왔구나. 그것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말이다!”
순간 초휴는 흠칫 놀랐다. 마음이 급해진 만큼 발걸음도 빨라졌다. 앞으로 몇 걸음 더 나아가자 눈앞의 안개가 점차 옅어지더니 곧이어 대진(大陣)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도 멀게 할 찬란한 광채를 뿜어내는 대진이었다. 대진 중앙에 거대한 청동 기둥 여덟 개가 무언가를 빙 둘러싼 채 줄줄이 세워져 있었다. 기둥마다 진법의 힘을 머금은 복잡한 문양들이 잔뜩 새겨져 있고, 거기서 사슬이 한 가닥씩 뻗어 나와 진법 중앙에 연결되어 있었다.
여덟 기둥의 한가운데에도 같은 모양의 청동 기둥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다른 기둥들과 다른 점은, 거기에는 흑포 차림의 누군가가 쇠사슬로 결박당해 있었다.
뇌정으로 화한 강기와 더불어 땅, 바람, 물, 불 등과 같은 온갖 자연의 힘이 끊임없이 그의 몸을 가격하고 있었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토록 쉴 새 없이 타격을 당하면서도 용케 몸이 부서지진 않았다.
초휴가 다가온 걸 감지했는지 그가 고개를 들어 도날로 깎은 듯한 이목구비를 드러냈다. 그다지 젊지도, 늙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동굴처럼 칠흑빛을 띤 눈동자에서는 마기가 거칠게 솟구쳤다.
지난날 초휴가 환상 속에서 본 적 있는 독고유아의 모습과 그야말로 판박이였다. 과연 독고유아는 바로 여기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초휴가 다가서자 독고유아의 얼굴에 한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그 어떤 감정도 엿볼 수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미소였다.
눈앞의 존재에게 퍼붓고 싶은 질문이 한가득했건만, 결국 초휴는 이 질문밖에 하지 못했다.
“당신이 독고유아인가? 그럼 나는, 나는 도대체 누군가?”
독고유아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저었다.
“나는 독고유아가 아니다. 너 역시 독고유아가 아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일 뿐이다. 너와 나, 그리고 ‘그’까지 셋이 합쳐져야 비로소 독고유아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