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24)
1124화 초휴의 미래
여기까지 말한 천혼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져갔다.
“처음에야 나는 독고유아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자그마치 오백년이나 희생양 노릇을 해왔다. 그간의 고통과 외로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겠는가! 이만하면 내 할 도리는 다했으니, 이로써 나와 독고유아 간의 인과는 청산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독고유아도 아니고 천혼도 아니다. 대라천 강자들에게 오백년이나 봉인되어있었던 ‘대마독고(大魔獨孤)’일 뿐이다!”
천혼, 그러니까 대마독고의 말소리가 초휴의 뇌리에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그랬다. 자신은 엄연히 초휴다. 예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이제는 인과가 청산되었다고 선언한 천혼과는 달리, 초휴의 마음가짐은 냉정하고 좀 더 야멸찼다.
그는 자신이 누구의 손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은 시종일관 뼛속까지 초휴일 뿐인 것이다. 오로지 그게 전부인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머릿속에는 독고유아와 관련된 기억이라곤 하나도 없지 않은가.
천혼의 한풀이가 다 끝난 듯하자 초휴가 물었다.
“그러면 이제 어쩔 생각인가? 나야 이제 막 진상을 알게 되었지만, 당신은 지난 세월 내내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잖아. 그러면 무슨 계획을 이미 세워두었을 게 아닌가?”
천혼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물론 세워두었다. 너와 나 모두 독고유아의 몸에서 분화되어 나왔으니 설령 자기만의 의식이 생겼고 각자만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해도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흡사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우선 철저히 계획을 세운 다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선호한다. 아마 너도 그럴 테지?”
초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천혼이 짓고 있는 표정만 봐도, 초휴 자신이 평소 누군가를 해칠 궁리에 들어갔을 때 짓는 표정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천혼과 접한 이 짧은 시간만 가지고도 초휴는 그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평소 초휴의 성격은 음험하고 냉정하여 웬만해서는 잡념이나 낯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반면, 천혼은 좀 더 거칠고 패도적이며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했다. 그러니 더러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는 데 실패할 것으로 보였다.
하긴 이해가 안 되는 일도 아닌 것이, 자그마치 오백년 동안을 여기에 혼자 갇혀있지 않았던가. 묵은 상처를 들추려니 새삼 감정이 북받치는 것은 당연할 터였다.
초휴야 이제 막 진상을 알았기에 순간 욱하긴 했어도 금세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가능했다. 적어도 가슴에 품었던 감정을 여과 없이 밖으로 쏟아내진 않았다. 그렇다면 독고유아의 진신과 함께 있는 명혼은 어떤 성향의 인물일까?
순간 초휴의 뇌리에, 망망 혈해 중의 무수한 악귀들을 짓밟은 채 백골 왕좌에 앉아 있던 신형이 떠올랐다. 당시의 그는 강했다. 말도 못 하게 강했다!
적어도 지금 초휴의 뇌리에 떠오르는 어휘는 이게 다였다. 이때 천혼이 입을 열었다.
“세 혼은 분립해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고유아의 입장에서 볼 때 너와 나는 배신자일 테지. 그가 우리를 용납할 리가 없다. 따라서 어떻게든 황천천을 벗어나면 반드시 우리를 흡수하려 들 거다. 그 흡수라는 게 무얼 뜻하는지는 너도 알 테지? 말 그대로 명혼에 먹히는 셈이다. 그런 다음 우리 뇌리에 남아 있는 기억과 자아의식을 철저히 말살하겠지. 따라서 그가 오기 전에 그에게 대항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키워야만 한다. 그렇지. 너는 하계에서 이미 마도 본원을 차지하지 않았던가?”
초휴는 얼핏 심중에 짐작 가는 바가 있었으나, 일단 강하게 부정했다.
“아니, 당신이 알려주지 않았으면 나는 본원이 뭔지 조차 몰랐을 거야.”
“그런가?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네가 아직 마도 본원을 차지하기 전이라면 독고유아도 잠시나마 너를 건드리진 않을 테지. 아직 효용 가치가 있다는 말이니까.”
초휴가 정색하며 물었다.
“그럼 혹시······, 내가 당신을 풀어주길 바라는 건가?”
천혼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 봐라.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지금이야 각자의 자아의식이 생겨 별개의 존재가 되었지만 원래 너와 나는 하나였다고. 그러니 더러는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우리 둘 다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성격은 아니지. 다만 너는 여전히 나를 경계하는군그래. 나는 그걸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상관치 않겠다. 너로서는 그럴 만하니까. 그런 경계심 덕분에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대라천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물론 독고유아가 네가 비약적인 실력 향상을 이루도록 적지 않은 포석을 깔아놓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결론만 말하지. 너는 날 도울 필요가 없다. 돕고자 한들 도울 수도 없지만.”
“내 주위를 둘러싼 저 청동 기둥들이 보이지? 능소종, 황천각, 현천경, 삼청전, 천라보찰, 범교, 천하검종 등등, 당대 아홉 개 정상급 대파들이 힘을 합쳐 만든 것들이다. 오백년 전, 그들 구대 문파는 각자 비장의 패를 내놓아 진법의 가동을 지속시키는 힘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 덕분에 저 진법은 오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기세를 유지하고 있지. 조금도 힘이 약해지지 않았단 말이다. 비축된 힘까지 감안하면 앞으로도 천년은 족히 버틸 수 있을 거야. 지금의 네 알량한 실력으로는 저 진법을 건드릴 수조차 없다. 그러니 어떻게 나를 구한단 말인가? 설령 칠중천 이상의 무선이 온다 해도 불가능할 텐데.”
천혼의 설명에 초휴는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오백년 전 대관절 독고유아가 여기서 얼마나 독하게 설쳤길래 대라천 무사들이 그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을 만큼 격노했다는 말인가.
이건 그야말로 대라천의 모든 힘을 총동원하여 그를 영구적으로 가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당시 독고유아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만 말하기도 어려웠다. 천혼을 미끼 삼아 대라천 무사들의 시선을 돌린 후, 잠시 물러나서 후일을 도모하는 건 당시 상황으로는 최상의 선택지였을 것이다.
독고유아가 무선을 뛰어넘은 존재라고는 하나, 그도 염연히 신은 아니지 않은가. 인간 혼자만의 힘으로 대라천 전체를 어찌 상대할 수 있었겠는가.
천혼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 당분간 너는 나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너나, 나나 독고유아에게 흡수되지 않으려면 그 해답을 우리 자신에게서 찾는 수밖에 없다. 천·지·명, 세 혼 가운데 독고유아의 진정한 의식이 존재하는 명혼이야말로 가장 강하다고 볼 수 있지. 오백년이 지났으니 이미 몸도 복원하고 황천천의 마도 본원도 손에 넣었을 거다. 더욱이 그간 황천천의 힘을 통째로 빌려 수련에만 매진해왔을 테니, 지금쯤 그의 실력은 십중팔구, 오백년 전 대라천 강자들과 맞섰던 당시보다 더 강해졌을 게 분명하다.”
“천혼과 지혼이 없는 상태에서는 독고유아도 분혼술의 효력을 잃고 만다. 그런 온전치 못한 몸으로는 궁극적으로 초탈에도 문제가 생기겠지. 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그의 실력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보다시피······. 여기 갇힌 신세인 나는 이미 폐인이나 다름없다. 설령 지금 탈출에 성공해도, 그래서 몸을 복구한 후 왕년의 기량을 최고치까지 완전히 회복한다 해도, 기껏해야 오백년 전 독고유아의 실력과 동등한 수준밖에 이르지 못한다. 그런 실력으로는 그에게 참담히 패할 게 뻔하다. 탈출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지혼인 너, 초휴는 다르다. 지난날 독고유아는 하계에서 마도 본원을 찾는 데 실패했다. 그는 그 이유를 인과에서 찾았다. 인과에 의해 자신이 그것을 차지할 수 없도록 운명지어졌다고 믿었단 말이다. 그래서 대신 너의 정신을 시공을 초월한 윤회 속에 던져넣은 것이다. 당시 그는 너에게서 독고유아의 표지를 지워버렸다. 인과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려는 생각에서였지. 자신이 깔아놓은 포석대로 네가 차근차근 성장하여 마침내 마도 본원을 찾아내는 것, 그게 바로 그가 설정한 너의 역할이다. 따라서 너야말로 독고유아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존재인 셈이다. 더욱이 새로이 태어나기까지 한 너는 나보다 훨씬 더 완전한 존재인 동시에 나보다 훨씬 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천혼이 초휴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너보다 많이 가진 거라고 해봐야 독고유아의 기억뿐이다. 이 기억들을 통해 네가 좀 더 빨리 강해질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겠다. 앞으로 이어질 경지 돌파의 난관들도 좀 더 수월하게 뚫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 당장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는 온전히 너 하기에 달렸다. 너의 실력이 독고유아에 필적할 만한 수준에 이르면. 그래서 그와는 완전히 판이한 독립 노선을 걷게 되면, 그때 가서 나를 구해다오. 그때가 오면 우리 둘이 힘을 합쳐 독고유아를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그가 죽어야만 너와 내가 진정한 독립체로 거듭날 수 있다. 언제고 그에게 흡수당할 염려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말이다.”
초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혼은 확실히 그를 잘 이해했고 상황 판단도 예리했다. 지금 당장 천혼을 구출해내는 건 확실히 불가능했으니까.
초휴는 줄곧 아무도 믿지 않고 살아왔다. 매사를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범주 내로 제어하여 본인의 힘으로 해결하는 편을 선호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천혼을 구하지도 못할뿐더러, 설령 구한다 해도 자유를 얻은 천혼을 제어할 자신도 없었다.
어차피 천혼을 구하기가 꺼려지던 차에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장차 자신이 모든 걸 장악하는 게 가능해졌을 때, 바로 그때가 돼서 천혼을 풀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차후에 당신과는 어떻게 연락을 취하지? 나는 지금 대라천의 다른 종문에 몸을 담은 처지라서 능소종에 가입하는 건 불가능해. 그래서 능소종도 이번 한 번만 나를 여기에 들여 보내준 것이고. 능소종을 궤멸시켜버리지 않는 이상, 다시는 여기에 들어올 기회가 없을 거란 말이지.”
“그야 간단하지. 저 진법이 내 육신을 봉인하고, 심지어 원신에도 일정 부분 제약을 가하고 있지만, 근자에 들어 나의 원신이 좀 더 증강되었으니 비법을 통해 외부세계와 소통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말을 맺은 천혼은 맞바로 금빛 원신 광채로 인법을 결해 보였다.
“이 인결을 기억해라. 내가 필요할 때면 가장 단순한 원신의 힘으로 이 인결을 맺으면 된다. 그러면 내가 즉시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긴 시간 동안은 곤란해. 원신으로 소통하는 인법은 원신의 힘을 많이 소모하니까.”
그 인법을 단단히 기억한 다음 초휴는 사적인 얘기를 꺼냈다.
“나는 영소경에 이레 동안 머물 수 있어. 하지만 마침 경지 돌파에 곤란을 겪고 있단 말이지. 실제로는 이미 천지통현경에 올랐다고 생각되지만, 시종일관 영역을 응집해내지 못하고 있거든.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아직 완벽한 천지통현에 들지 못한 셈이지.”
기왕에 둘이 손잡자는 말이 천혼의 입에서 나온 이상, 초휴도 더는 체면 차릴 이유가 없었다.
천혼의 뇌리에는 오백년 전 독고유아의 모든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가. 분명 무도의 조예에 있어 초휴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도 남을 터였다. 오랫동안 초휴를 괴롭혀왔던 난제가 어쩌면 천혼의 눈에는 식은 죽 먹기로 보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야 간단하지. 먼저 너 자신의 무도에 대해 쭉 얘기해 봐라. 내 비록 원신을 통해 네 일신의 정보를 적잖이 읽을 수는 있으나, 무도 같은 건 세세하게 파악하기가 힘드니까.”
이에 초휴가 자신의 무도에 대해 대략 설명을 마치자 천혼이 잠시 고심 끝에 말했다.
“보아하니 독고유아가 하계에 남겨둔 그 포석들을 네가 적잖이 활용한 듯하군.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군그래. 영역이란 무엇인가. 그건 네가 규칙을 장악한 후 구축해내는 하나의 세계다. 따라서 불에 있어 궁극의 깨우침을 얻은 자는 불의 영역을 만들어내고, 얼음에 있어 궁극의 깨우침을 얻은 자는 얼음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하지만 너는 좀 다르다. 그런 범속한 영역들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네 비록 잡다하게 익히기는 했다마는, 각종 무도를 궁극의 경지까지 대성한 다음, 한데 융합해내기까지 했잖은가. 바로 살육과 전투의 무도 말이다! 굳이 어떤 특정의 힘을 선택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 어떤 힘에 있어서도 너는 최고니까. 영역 안에서는 나 자신이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져라! 그것이야말로 네가 장악해야 할 영역이다.”
천혼의 말이 끝나자 그의 원신이 맞바로 금빛 광채로 화하더니 허공에 온갖 다양한 규칙 변화를 그려냈다. 이처럼 직관적인 방식이야말로 말로 하는 그 어떤 가르침보다 유용한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