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26)
1126화 범교에서 온 손님
천혼이 본원을 언급할 때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본원의 중요성은 아무리 언급해도 부족하다는 듯 수차례나 그 얘기를 꺼냈다. 그러니 그 본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만했다.
본원을 세 가지 획득하면 장생천에 들어갈 자격을 갖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 본원을 그보다 더 많이 확보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게 궁금했지만 초휴는 굳이 묻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놓기로 했다.
그간 품어왔던 의혹들은 전부 천혼의 입을 통해 해답을 얻었다. 그러나 마음이 홀가분해지기는커녕, 되레 묵직한 족쇄가 하나 더 자신의 몸에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초휴는 지금까지 자신이 독고유아와 일정한 관계로 묶여있음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관계라는 게 무엇인지 몰라 답답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관계의 실체를 알게 된 지금, 종전보다 더 큰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독고유아의 입장에서야 천혼이나 초휴나 각기 임무를 띠고 자신의 혼백에서 떨어져 나온 분신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나 분신 둘이서 임무 수행은 뒷전이고 자아의식마저 생겨버렸으니, 독고유아가 이를 용인할 리 만무했다.
원래 자신의 것인 소유물을 회수하는 건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더군다나 천혼은 적어도 오백년 전까지 독고유아와 기억을 공유하기라도 했지만 초휴에게는 그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누군가가 뜬금없이, 사실 너는 타인의 일부일 뿐이고, 네가 주어진 소임을 다 마치는 즉시 그에게 흡수되어 소멸한다는 걸 알려주면 누군들 기분이 좋겠는가.
초휴에게는 당연히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었다. 황천천에 은신해 있다는 독고유아가 언제가 되어야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어쨌거나 그때가 오면, 그는 오백년 전 대라천 전체를 상대했던 독고유아보다 훨씬 더 가공할 존재가 되어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초휴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남은 시간 동안 천혼은 촌음을 아껴가며 현재 초휴의 경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무도란 무도는 죄다 그의 뇌리에 주입했다. 그가 천지통현 경지에 오른 뒤에 봉착하게 될지 모를 난관들을 조금이라도 더 줄여주기 위해서였다.
* * *
마침내 이레 후, 영소경 문이 다시 열렸다.
육삼금 일행은 이미 영소경 밖에서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휴가 일신에서 천지통현 기세를 사정없이 내뿜으며 당당히 걸어 나오자, 육삼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 형, 드디어 천지통현 경지에 오른 건가?”
“왜, 뭐 이상한 거라도 있나?”
초휴의 질문에 육삼금이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답했다.
“그럴 리가. 당연히 이상할 건 전혀 없지.”
영소경에 들어가기 직전 초휴의 실력을 상기해보면 그가 천지통현이 되어 나온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다만, 진화련신일 때에도 엄청난 전투력을 보였는데, 천지통현에 오른 지금은 또 얼마나 강해졌을지를 생각하니 절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줄곧 희희낙락하던 육강하도 이때만큼은 불쑥 고개를 쳐든 열패감에 입속 침 맛이 소태처럼 쓰디쓰게 느껴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진백원이 퉁명스레 끼어들었다.
“자, 자! 사적인 한담을 나눌 거면 밖에 나가서 하시게. 다들 이제 우리 능소종에 볼일은 끝난 것 같은데? 내 멀리 배웅은 나가지 않겠네.”
육강하가 입을 삐죽거렸다.
진백원 저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위인이 아무래도 초휴가 천지통현경에 오른 걸 보고 심사가 뒤틀린 모양이 아닌가.
* * *
다 함께 능소종을 벗어난 그제야 초휴가 물었다.
“내가 영소경에 들어가 있는 동안 한강성 놈들이 시비를 걸어 오지는 않았나?”
육삼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능소종 내에서는 한강성 놈들이라도 감히 그럴 수는 없지.”
초휴의 표정이 부쩍 심각해졌다.
“육 형, 돌아가거든 각주님께 꼭 당부해드리게. 단단히 방비를 갖춰야 한다고 말이야. 기무한이 자네와 일전을 치를 때, 능소종 종주 앞인데도 감히 살기를 드러내더라고. 그것만 봐도 이제 황천각과 한강성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게 분명해. 앞으로도 회복될 여지가 전혀 없다는 뜻이지.”
사실 초휴에게 있어 황천각의 존망 자체가 중대한 일은 아니지만, 황천각이 쓰러지면 그가 대라천에 비빌 언덕이 사라진다는 게 문제였다. 지금까지 남만 땅에 쌓아둔 그 알량한 기반도 황천각의 위세와 실력을 빌려 일궈낸 것이 아닌가.
황천각이 잘못되기는 날엔 초휴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니 황천각이 망하는 건 곤란했다. 최소한 당분간은 망하지 않고 버텨주어야 하는 것이다.
* * *
창오군으로 돌아오자 초휴는 실력 향상에 대한 압박감을 더 심하게 느꼈다. 그는 급한 마음에 매경령부터 불러 물었다.
“근자에 우리 성교 무사들의 대라천 내 수련 상황이 어떻소?”
매경령이 감탄을 금치 못하며 답했다.
“그야말로 일취월장이에요! 수련 속도가 하계에 있을 때보다 족히 열 배 이상은 빠를 정도니까요.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비약적으로 저력이 축적되고 있구요.”
“그것참 잘 되었군. 그럼 앞으로도 가급적 많은 성교 제자들이 대라천에 와서 수련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보시구려.”
초휴의 지시에 매경령이 당혹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리되면 대라천의 존재가 하계에 노출될 위험이 크지 않을까요?”
그녀는 일전에 초휴가 당부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라천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도록 성교 제자들을 조금씩 무리 지어 대라천에 들이라는 당부였다.
심복들 또는 그 외 정예 무사들에게 우선권을 주되, 다른 세력이 눈치 못 채게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한다는 경고도 했었다. 그랬던 그가 돌연 웬 변덕이람?
하지만 초휴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사안이 워낙 다급해서 그럽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요.”
초휴가 내놓은 해명은 그녀의 의혹만 키울 뿐이었다. 당금의 하계에서 곤륜마교를 강호의 패자라고 부르기엔 시기상조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힘에 있어 아무도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된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뭐가 저리도 급하단 말인가? 설마 이번에는 대라천 강호를 평정할 결심이라도 굳힌 것일까?
매경령의 질문이 이어지기도 전에 초휴가 선수를 쳤다.
“나머지 일들은 그대가 알아서 적절히 처리해주시오. 일단 나는 한동안 폐관에 들 것이니, 대단히 중대한 일이 아닌 한은 방해하지 마시구려. 그럭저럭 중대한 일이면 우선 위 선배님께 조언을 청하고, 위 선배님 선에서도 어쩌지 못할 것 같으면 그때나 내게 알리시오.”
모든 분부를 마친 초휴는 즉시 폐관에 들어갔다. 뒤에 남겨진 매경령은 영문을 알 수 없어 연신 눈만 끔벅거렸다.
확실히 초휴는 능소성에 다녀온 뒤로 분위기가 꽤 달라졌다. 부쩍 무언가에 쫓기는 인상을 풍기는 것이, 그답지 않게 얼굴에 초조함이 가득 묻어났다. 무슨 엄청난 위기를 감지한 사람처럼 말이다.
하지만 능소성까지 동행했던 육강하와 여봉선에게 물어봐도 딱히 무슨 일이 있었다는 대답은 없었다. 되레 그들은 이번 여정이 매우 순조롭고 운이 좋았노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무도 대결에서는 보란 듯이 한강성 놈을 때려눕혔고, 급기야 이번 기회를 빌려 천지통현에도 올랐으니 말이다.
매경령은 괜히 물었다가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그래서 복잡한 생각을 하는 건 집어치우고 초휴가 지시한 일들을 처리하러 갔다. 초휴야 지시만 내리면 그걸로 끝이라지만, 그녀는 자기 머리 아프답시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처지가 아닌가.
초휴가 자신의 본거지에서 폐관에 전념하고 있을 무렵, 능소종에는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 영호선산을 만나러 온 그 인물은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승려였다.
금색 승복 차림에 깊이 들어간 눈매, 그리고 우뚝 솟은 콧대가 중원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꽤 영준한 축에 드는 인물로, 도날로 깎아낸 듯 날 선 얼굴 윤곽이 매우 강인한 인상을 풍겼다.
목에는 거대한 염주 꾸러미가 걸려있었는데, 알알이 주먹 크기만 한 염주알은 타는 듯한 금빛 광채를 내뿜었다.
잠시 후 접객용으로 마련된 대전에 들어서는 영호선산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그를 반겼다.
“누구신가 했더니 신가라, 신 형이셨구먼. 범교 제자들은 웬만해선 서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이 먼 곳까지 어떻게 오셨나?”
기괴한 행색을 한 이 승려는 다름 아닌 범교, 비슈누전 산하 태양신궁의 궁주, 신가라(辛伽羅)였다.
지난 시절, 영호선산은 서역에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리고 당시 관례대로 현지 대문파인 범교와 천라보찰을 정식 예방한 적이 있었다.
융통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이 고지식해 빠진 천라보찰 화상들보다는 범교 사람들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
해서 그는 자연히 범교에 친구를 많이 두게 되었다. 일전에 초휴에게 죽은 환혹천왕궁 궁주, 마리가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신가라가 한숨부터 내쉬었다.
“거 참, 나는 신씨(辛氏)가 아니라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얘기해줘도 못 알아듣는군그래.”
그러자 영호선산이 별 걸 다 따진다는 듯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입에 붙어버려서 그런 걸 어쩌겠나. 그나저나 신 형이 내게는 무슨 볼일인가? 듣자니 곧 있으면 비슈누전 전주 자리를 물려받게 될 거라던데 그건 사실인가?”
신가라는 별수 없이 그냥 신씨가 되기로 했다. 그래도 영호선산의 질문에는 반짝 화색을 띠었다.
“거의 그런 셈이네. 하지만 내가 아직 무선에 이르질 못해서 아직 전주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있네. 노전주께서 내가 정식으로 무선에 오르길 기다리고 계시네. 그때가 되면 퇴위하시면서 내게 자리를 물려주실 예정이라네.”
영호선산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나 경사스러운 일이 있나! 무선을 돌파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 아닌가. 이로써 신 형의 탁월한 영도 아래 태양신궁이 비슈누전의 제일 신궁이 되는 셈이로군. 차기 전주 자리야 경쟁자도 없는 신 형이 떼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을 테지. 감히 누가 그대와 자리다툼을 벌이려 들겠는가. 이제 맘 편히 전주 자리를 이어받을 준비나 하면 되겠군그래.”
신가라가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좋기만 한 건 아니네. 내가 전주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으니 나와는 상관도 없는 남의 골치 아픈 일들까지 줄줄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단 말일세. 내 솔직히 말하지. 이번에 동역까지 오게 된 것은 사실 누굴 좀 찾기 위해서라네.”
“찾다니, 누굴?”
“환혹천왕궁 궁주, 마리가를 말하는 거네.”
대흑천신궁 사람들의 행적을 추적하는 일은 범교 궁주들이 돌아가며 맡고 있었다. 이제 마리가가 다음 순번의 궁주에게 그 일을 넘길 때도 되었건만, 여태 범교로 복귀하지 않고 있었다.
범교 측은 이제야 이상하게 느끼고 그와의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이 비법까지 동원했음에도 시종일관 그와 연락이 안 되는 게 아닌가. 해서 다 같은 비슈누전 산하이자 차기 전주로 내정된 신가라가 직접 그를 찾으러 나선 것이었다.
영호선산이 자기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마리가? 그러고 보니 일전에 황천각 연무장에서 만난 적이 있었군그래. 그와 잠시 대화도 나눴었는데 말이야.”
신가라가 황급히 물었다.
“그런 다음에는 어찌 되었나? 마리가가 어디로 갔는지 혹시 아는가?”
영호선산이 손사래를 쳤다.
“그야 나는 모르지. 워낙 신비인처럼 행세하는 인물이 아닌가. 동역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는 내 물음에 대답도 안 하더니, 어느샌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없더라고.”
신가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곳 현지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영호선산도 모른다면 다른 방법이 전혀 없지 않은가. 이때 영호선산이 말을 이어갔다.
“어허, 마리가를 찾지 못한 건가? 이런 말 하면 좀 그렇긴 하네만, 천지통현 강자에다 환술 실력도 그리 뛰어난 자가 한번 비밀스레 다니기로 작심하면 누가 찾아낼 수 있겠나? 하지만 그래봤자 사람이 하늘로 솟았겠나, 땅으로 꺼졌겠나. 무슨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겠지. 무탈할 테니 너무 염려 마시게. 그렇지 않아도 내가 그대한테 알려줄 말이 있긴 했네. 당시 어떤 자가 마리가의 환술을 썼지 뭔가. 우리 동역에 와있는 범교 제자도 아닌데 말이지. 마리가를 찾거든 따끔하게 한마디 해 주게. 동역까지 와서 범교의 포교를 하고 다니는 건 금기 중에서도 금기라고 말이지. 그러다 자칫 사달이라도 나는 날엔 나도 어쩔 수 없다고. 그때는 봐주고 자시고 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네.”
“뭐라고?! 누가 마리가의 환술을 썼다고? 그게 대체 누군가?”
“황천각에 객경으로 와 있는 고존 전인이네. 창오군 군수이기도 하지. 이름은 초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