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28)
1128화 범교의 고민
위서애가 무근성화를 동원한 덕분에 간신히 신가라를 격퇴했으나, 초휴는 홀가분한 표정이 아니었다.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줄줄이 골칫거리들이 들이닥칠 게 틀림없었다.
이때 상천량과 위서애가 다가와 물었다.
“방금 그자는 누구인가?”
“아무래도 범교에서 온 사람 같습니다. 일전에 제가 범교의 마리가라는 자를 죽인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꼬투리가 잡힌 듯합니다. 좀 골치 아프게 될 것 같습니다.”
위서애도 대라천에서 한동안 지낸지라 대라천 세력들에 대한 걸 대략 파악한 상태였다. 하여 그의 표정도 부쩍 굳어졌다.
“그렇다면 이거 여간 난감한 문제가 아니로군. 황천각은 범교의 상대가 못 되지 않으냐. 범교에서 무사들을 대거 보내온다면 우리는 버티지 못할 것이야.”
이에 초휴가 고개를 저었다.
“범교에서 대거 쳐들어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일단 대라천에는 세력들 간에 지켜야 할 규칙들이 하계보다 훨씬 잡다하게 많거든요. 그리고 어느 대문파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평안 무사하게 지낸 세월이 워낙 길었던지라, 충돌의 빌미를 만들까 봐서라도 웬만하면 남의 지역에 얼쩡대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군 출동이야 더더욱 극도로 신중히 이루어질 수밖에 없죠. 그리고 서역과 동역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범교가 동서를 가로질러 쳐들어오려면 필히 대라천 한가운데 있는 대라신궁을 지나야만 하지요. 그렇게 되면 모든 대라천 종문에 죄를 짓게 되는 셈입니다.”
“따라서 저들은 남역이나 북역으로 우회해서 와야만 합니다. 물론 이러한 경우에도 두 지역 현지 종문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구요. 이래저래 번거로워집니다. 게다가 범교는 지금 절대로 팔자가 늘어진 상황이 아닙니다. 실력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대라천에서 천라보찰과 갈등을 겪어온 세월이 무려 만년이니까요. 그러니 만에 하나 범교가 우리를 대거 공격해오면, 천라보찰이 범교의 전력에 공백이 생긴 틈을 노려 그들을 칠 게 뻔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범교는 섣불리 대군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거죠.”
초휴의 설명을 들은 위서애는 다소 마음이 놓였다. 이런 종류의 사태에서 초휴는 늘 예리한 안목을 보여 왔다. 하계에서도 툭하면 세력들 간의 다툼을 이용해 곤경을 헤쳐나가지 않았던가.
범교에서 대거 쳐들어올 염려는 없다고 초휴가 단언한 이상, 그의 판단이 백번이라도 맞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휴의 표정이 밝아진 건 아니었다.
“저들이 대거 쳐들어오는 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 쳐들어와도 우리에게 충분히 타격을 입힐 수는 있습니다. 범교에는 고수와 강자들이 지천으로 널렸으니까요. 이번에야 다행히 무선이 아니었지만, 범교 내에는 전주 세 사람만 해도 무선입니다. 그러니 범교 교주의 실력이야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듣자니 무선 중에서도 구중천의 절대 강자라더군요.”
오늘 범교 사람이 침입한 것을 초휴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범교의 실력이라면 그런 침입자를 며칠이 멀다 하고 보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초휴로선 대단히 힘들어질 터였다.
하지만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저 최대한 방어와 경계를 강화하고 상황을 봐가며 그때그때 적절히 대처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제자들에게도 경계경비를 강화하라는 분부를 내린 초휴는 원길을 불러들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려고 군수부 전역에 걸쳐 진법을 겹겹이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리기 위해서였다.
* * *
그 무렵, 창오군을 벗어난 신가라는 불탄 흔적이 선연히 남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방금 자신을 공격했던 화염의 힘은 여간 삿된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듯했으나, 어쨌든 천지에 근원을 둔 화염인 게 분명했다. 자기도 막아내지 못했을 정도니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힘이란 말인가.
창오군은 황천각 소속의 일개 군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낙후된 변경 지대와 인접한지라 별로 중시되지도 않던 곳이 아닌가.
그런데 군수부 내에 저렇듯 많은 강자가 버티고 있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무선만 없다뿐이지, 총체적으로 황천각 총단과도 맞먹을 정도의 전력이었다.
신가라 역시 초휴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매우 불편했다.
초휴가 언급했던 것처럼, 범교가 타 지역을 가로지르면서까지 대규모 병력을 이동시켜 창오군을 포위 공격하려면 미리 잘 풀어야 할 일이 한두 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해도 막상 종문에 가면 병력을 내어달라는 말이 쉽사리 나올 성싶지가 않았다. 그는 현재 전주 직의 승계가 예정된 몸이라는 게 문제였다.
이번 임무가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의 명성과 직결된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 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종문에까지 지원요청을 하면 그다음 일은 어찌 되겠는가.
설령 종문에서 병력을 지원받아 임무를 완수한다 해도 그 공로는 오롯이 종문의 몫으로 돌아갈 터였다. 그리고 너는 한 게 뭐가 있느냐며 비난과 질책의 화살이 날아들 게 뻔했다.
따라서 종문에까지 손을 벌리는 건 자신의 얼굴에 침 뱉는 격으로, 하책 중에서도 하책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으로서는 초휴가 마리가의 실종과 관련이 있다는 그 어떤 물증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신가라는 초휴가 환술을 시전하는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그러니 그것이 정말로 마리가의 환술이 맞는지 뒤늦게라도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혼자서 초휴를 잡아들이자니, 그것도 안 될 일이었다. 방금만 해도 보기 좋게 실패하지 않았는가. 그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 멀리 남만 밀림으로 향했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남만? 저들의 힘을 좀 빌려야겠군.”
그의 발걸음은 뭐에라도 홀린 듯 밀림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맞바로 그곳을 관통하여 남역으로 진입할 생각이었다.
종문의 힘을 동원하긴 글렀으니 다른 데서 힘을 빌릴 생각을 해봐야 할 터였다. 남역과 남만은 밀림 하나를 경계 삼아 이웃해있을 만큼 가까웠다.
따라서 기후 및 지형으로 볼 때, 남역 땅은 동역과는 달리 비가 많이 와 습하고 도처에 산림과 계곡이 분포해 평야 지대가 드물었다.
심지어 절벽 위에 세워진 주부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깊은 숲속이라고 해서 번듯한 강호 세력이 전무할 리는 없었다.
무덥고 축축한 밀림 속을 신가라는 오로지 앞만 보고 나아갔다. 그의 온몸을 강기가 작열하며 휘감자, 그가 지나는 족족 수증기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앞으로 나갈수록 보이는 풍경이 점점 더 괴이해져 갔다. 핏빛 선연한 아름드리나무에는 사람 해골과 온갖 뼈다귀, 심지어 아직 부패하기도 전인 수급 따위가 잔뜩 걸려있었다.
중간이 끊긴 다리도 있었는데, 그 아래로 핏빛 낭자한 계곡물이 흘렀다. 알고 보니 그건 다리가 아니라, 어느 거대 생명체의 늑골이었다.
그 밖에도 가는 길 내내 온갖 기괴한 형상의 석상들과 마주쳐야 했다. 하나같이 혀를 내두를 만큼 기괴한지라 신가라는 절로 오만상이 찌푸려졌다.
‘극락마궁(極樂魔宮) 놈들, 심미관 수준 하고는!’
그러고도 수 리 남짓을 더 가자 눈앞에 그나마 정상적인 외양의 궁전들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전체가 음침한 칠흑색인 데다 짙은 마기가 거침없이 사방으로 뿜어나오는지라 보기만 해도 으스스했다.
여러 궁전이 모여 있는 그 일대에는 짐승들도 씨가 말랐는지 숨 막힐 듯 고요하기만 했다. 이곳은 바로 극락마궁이란 곳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극락마궁이 남만 변경에 세워둔 분전(分殿)인 셈이었다. 여기서는 남만 밀림 깊숙이까지 들어가 흉수를 포획하거나, 심지어 만족을 잡아다 극락마궁의 연구용으로 제공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범교 신가라가 뵙기를 청하오!”
잠시 후 그는 매우 정중히 극락마궁 내부로 안내되었다. 이윽고 검은 전갑 차림에다 음험하게 생긴 중년인이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그를 환대했다.
“이게 누구신가! 듣자니 신 형이 비슈누전의 전주가 되었다지요? 진심으로 축하드리는 바외다!”
신가라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신가가 아니라고 전에도 말했는데 그러시는군. 그리고 아직은 전주도 아니오. 비슈누전의 전주는 오직 무선만이 맡을 수 있게 되어있소.”
눈앞의 사내는 극락마궁 분전의 전주, ‘구유귀마(九幽鬼魔)’ 명현우(明玄羽)였다. 아직 무선은 아니지만, 신가라와 마찬가지로 무선 돌파를 목전에 앞둔 인물로, 천지통현 중에서는 정상급 실력자였다.
“그거나 저거나 매한가지 아니오? 전주가 되는 거야 시간문제면서 뭘 그러시오.”
그러면서 명현우는 수정 단지를 내어오게 했다. 그 안에는 선혈처럼 보이는 끈적끈적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신 형도 맛 좀 보시구려. 이건 내가 최근에 막 연구해낸 기가 막힌 명물이오. 다양한 흉수들의 심장 피에다가 기혈이 강성한 만족 족장의 가슴을 산 채로 갈라서 뽑아낸 심장 피를 섞어 만든 것이지. 한 모금만 마셔도 기혈이 펄펄 끓어오르면서 육신이 단련되는 효과가 탁월하다오.”
그러나 신가라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단지를 밀어냈다.
“관두시구려. 우리는 육식을 하지 않소!”
극라마궁 사람들은 늘 해괴망측하고 혐오스러운 짓들만 골라서 하는지라 많은 강호인으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고 신랄하게 욕을 퍼붓는 강호인들도 적지 않았다.
명현우는 보란 듯이 그 액체를 한 모금 마시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천라보찰 놈들에게나 그런 한심한 습성이 있는 줄 알았더니, 언제부터 범교도 그리된 거요?”
신가라는 헛기침으로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냥 내 개인적인 습성이외다. 그나저나 오늘 명 형과 의논할 일이 있어서 왔소.”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신가라가 정색하며 말했다.
“극락마궁 무사들을 잠시 나한테 빌려줄 수 없겠소? 동역 창오군을 쓸어버리고 거기 군수를 범교로 압송해야 할 판이라서 말이오. 아무래도 그자가 우리 범교 사람과 관련된 중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하니,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놈을 잡아야만 하오!”
그러나 명현우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신가라와 다년간 알고 지내온 사이인 건 맞다. 두 사람 사이에 어느덧 우정 비슷한 게 싹튼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우정이 있고 친구도 있는 게 아닌가. 지금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이라고 해봤자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즉시, 언제든 등을 돌리고도 남을 얄팍한 수준일 뿐이었다.
잠시 생각한 명현우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일은 곤란하겠구려. 극락마궁은 남역에, 상대는 동역에 있지 않소? 함부로 남의 지역에 발을 들이면 안 된다는 금기 정도는 그대도 잘 알 거 아니오. 게다가 상대는 황천각 사람이라면서? 함부로 그자를 건드리면 황천각에는 또 어찌 해명하란 말이오?”
신가라는 난색을 표하는 그를 차분히 설득했다.
“그건 염려 마시오. 타 지역까지 침범해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극락마궁은 창오군에서 출수할 필요가 없소. 대신 남만 땅에서 손을 좀 써주구려. 남만이야 창오군의 관할지가 아니잖소? 게다가 황천각 쪽도 염려 붙들어 매시오. 나는 지금 동역에서 오는 길이오. 황천각 사정을 그대도 들어서 알겠지만, 지금 거기엔 고작 무선 하나밖에 남지 않았소.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국면에 시달리는 처치란 말이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군수 하나 건드렸다 한들, 저들이 뭘 어쩌겠소? 우리 사이에 좀 돕고 삽시다.”
그러나 명현우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신가라의 말에 틀린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고, 황천각이 보복해올까 봐 염려해서도 아니었다.
사실 극락마궁은 황천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문제는 지금 신가라의 요구가 너무 지나치다는 데 있었다.
신가라와의 알량한 우정으로는 기껏해야 그가 이따금 지나가다 들리면 예를 차려 대접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요구는 빈 쭉정이나 간신히 면한 수준의 우정을 내세워 알곡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꼴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