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33)
1133화 일권 진청제 (3)
정·마로 양분된 강호에서 어느 쪽에도 끼지 않다 보니, 여차하면 정·마 어느 쪽에서건 시비를 걸어올 소지가 다분했다. 그럼에도 천하맹이 지금까지 잘 버텨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진청제의 가공할 실력 덕분이라 봐야 했다.
“그나저나 사 형, 진 맹주님은 지금 종문 내에 계시는가?”
“물론이지. 뵙고 싶으면 나를 따라오게.”
사실 초휴가 진청제를 못 본 지도 꽤 되었다. 정마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강호는 정도와 마도로 양분되어 본격적으로 화약 냄새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유독 진청제가 이끄는 천하맹만은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가 두려워서라도 도발하려는 자는 없었다.
하여 요즘 그는 대부분 시간을 수련하는 데 보낼 뿐, 좀처럼 강호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종문 일도 대거 사소루에게 맡긴 상태였다.
물론 더러는 진청제가 사소루를 거느리고 구경하러 나오는 경우도 있긴 했다.
이를테면 일전에 초휴가 수보리선원을 뒤엎었을 때처럼 말이다. 당시 그는 잠자코 지켜만 볼 뿐 끼어들지는 않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 * *
실로 오랜만에 진청제를 만나자 과연 그가 상위 경지를 뚫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가 지닌 육신의 힘이 초휴조차 가늠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으니 말이다.
현재 진청제의 체내에는 폭발적인 힘이 응축되어 있었다. 그가 드러낸 근육마다 전율을 자아낼 만큼 힘이 느껴졌다.
심지어 초휴는 자기 앞에 인간 형상을 한 흉수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윽고 진청제가 기세도 당당하게 의자에 앉더니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우리 위대한 초 교주께서 어인 일로 천하맹까지 납시셨는가? 회포나 풀자고 여기까지 나를 찾아왔을 리는 없을 텐데? 어디 한번 말해보게. 무슨 일인가?”
초휴도 웃으며 답했다.
“교주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저야 사 형과 친우 사이가 아닙니까. 그러니 진 맹주님 앞에서 감히 교주라 불릴 자격이 없지요. 진 맹주께서 경지를 돌파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마침 저도 진화연신을 수련한 몸이니, 맹주께 가르침이나 한번 받아볼까 해서 말이죠.”
진청제가 웃을 듯 말 듯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허, 말인즉슨 나와 겨뤄보고 싶다는 소린가? 물론 안 될 것 없지. 일전에 자네가 나마와 싸우는 걸 보니 온갖 수법이 끊이질 않고 쏟아지더군. 본좌가 침을 질질 흘리면서 봤다는 말이네. 오늘 직접 체험할 수 있다면야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지.”
웬만한 후배가 진청제에게 가르침을 청한다는 소릴 했다면 그는 냅다 주먹을 날려 혼내주었을 것이다. 가르침을 청하기는 개뿔, 그런 소리는 피차 웬만큼 수준이 맞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초휴는 예외였다. 남북 이불종을 모두 밟고 일어나 당금의 강호에 지존으로 우뚝 선 존재가 아닌가. 적어도 명성으로는 진청제를 능가했다.
두 사람은 즉시 일어나 천하맹 후원에 있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 뒤를 사소루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따랐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서로 두어 마디 인사를 나누는가 싶더니 다짜고짜 연무장행이라니?
진청제가 연무장 한쪽에 자리 잡더니 담담히 말했다.
“준비되었나? 본좌의 일권을 받아내는 게 그리 만만치는 않을 걸세. 조심하는 게 좋을 게야.”
그 말이 결코 허풍이 아님을 아는지라 초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청제는 뜸을 들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냅다 일권을 날렸다.
주먹의 격출과 함께 바람과 구름이 갈라졌다. 그 일권 앞에서 그 어떤 힘도 예외 없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딱히 특별한 위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힘의 극치로만 일궈낸 결과였다. 천지 원기마저 그 차원이 다른 강대함에 압도당해 위축된 듯했다.
연무장을 둘러싼 진법이 빛을 발했다가 금세 꺼졌다. 권세가 미치는 족족 지면에서 흙가루와 돌가루가 날리는 모습이 지진이라도 난 양 난리도 아니었다.
멀찍이서 관전 중이던 사소루가 입을 삐죽거렸다.
사부는 정녕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건가? 자기 집을 이 지경으로 부숴놓다니.
진청제가 일권을 날린 그 순간, 초휴는 이미 그의 진정한 실력을 알아보았다.
그건 인간의 육신이 낼 수 있는 힘의 상한선마저 넘어선 것이었다. 아마 지난날 여봉선이 무쌍의 힘을 터뜨려내면서 보였던 육신의 힘도 저 일권에 비할 바는 못 되리라.
이윽고 초휴가 파진자를 내리치자 날 선 도망이 허공을 갈랐다. 이와 동시에 신역이 펼쳐지자, 음양오행이 뒤틀리고 전도되며 모든 힘을 파괴해버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흉수와도 맞먹을 극강의 육신만은 여전히 어쩌지 못했다.
바로 코앞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양 굉음이 고막을 때렸다. 진청제의 일권이 보란 듯이 신역을 깨부수었음은 물론, 파진자의 도광마저 분쇄한 것이다.
그러자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하늘에서 혈우가 퍼붓기 시작하더니 마신이 그 거대한 손을 뻗어 진청제의 일권을 움켜잡으려 들었다. 양측의 힘이 팽팽한 접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세 호흡 가량 대치를 이어간 끝에 결국 마신의 거수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나마 다행히도, 대비주의 위력이 와해 됨과 동시에 일권의 힘도 소진되었다. 그가 두 번째 일권을 날리려던 순간, 초휴가 소리쳤다.
“그만! 이제 됐습니다!”
단 일권으로 초휴는 진청제의 실력을 알아보았다.
진화연신에 이르는 길은 통상적인 무도 수행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멀고도 험난하다. 그러나 일단 돌파하면 웬만한 공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위력을 뿜어냈다.
주먹 한 방에 진화련신 하나씩을 해치우던 진청제는, 돌파 후에는 천지통현 하나씩을 날려 버릴 모양이었다.
이처럼 놀라운 전투력에 무슨 초기나 중기 따위의 구분은 없었다. 그저 돌파 한 번에 곧장 절정기로 치고 올라가 버리는 것이다.
진청제가 김샌 표정을 지으며 투덜댔다.
“뭐야, 벌써 끝내자고? 자네가 아직 실력을 최고조로 발휘하지도 않은 걸 내가 아는데도 그냥 끝내자는 건가? 지난번 풍운검총 늙다리와 싸웠을 때도 기분이 영 별로였다고. 그냥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더란 말이지. 자기가 질 것 같으니까 대뜸 풍운검총이 숨겨온 패나 디밀고 말이야. 재미라곤 하나도 없었네. 싸우다 만 기분이었다니까.”
그 말에 초휴가 웃음을 터뜨렸다.
“신나게 한번 싸워보고 싶으신 거죠? 그러면 제가 기회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에 맹주님을 뵈러 온 건 사실 아주 중요한 일을 의논드리기 위함입니다.”
초휴의 말에 진청제가 정색하며 물었다.
“엥? 무슨 일인데 그러는가?”
진청제는 맨땅에서부터 치고 올라가 지금의 천하맹을 일구어냈다. 당연히 여느 범부들과는 다른 구석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눈치부터가 예리했다. 지금의 초휴는 곤륜마교의 교주로, 천하를 쥐락펴락하는 거물이다. 그런 인물이 여기까지 찾아와 중요한 일 운운할 때는 정말이지 틀림없이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초휴가 부쩍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 일은 워낙 중대한지라 비밀이 확실히 보장될 만한 곳에서 얘기를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그 말에 진청제는 초휴와 사소루를 밀실로 데려갔다.
* * *
“이만하면 되겠는가?”
초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껏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일은 저의 최대 기밀이라 할만한 겁니다. 그런데도 진 맹주께 말씀드리는 연유가 뭔고 하면,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사 형을, 그리고 진 맹주님의 사람됨을 믿기에 이처럼 터놓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 얘기를 다 들은 다음 도와주실지 말지, 결정하시면 되고요. 단, 어떤 결정을 내리시건 간에 오늘 들으신 내용은 절대 외부에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진청제가 별소리도 다 듣겠다는 양 손사래를 마구 쳐댔다.
“그 점이라면 염려 붙들어 매게. 자네가 내 제자 녀석과 친해서가 아니라, 맹세코 나 진청제의 입은 태산보다도 무겁네.”
초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혹시 제가 실종되어 있었던 지난 일년간, 어디에 있었던지 아십니까?”
사소루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어딜 다녀왔는데?”
초휴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꺼냈다.
“또 다른 세상에 다녀왔다네!”
그 말을 시작으로 초휴는 대라천에서 있었던 일을 죄다 들려주었다. 독고유아가 관련된 대목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은 남김없이 죄다 털어놓았다.
그의 얘기를 듣는 내내 사소루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어찌나 놀랐던지 시종일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말소리도 못 내고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어낸 진청제도 이번만큼은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는지, 표정이 대경실색을 넘어 혼비백산한 수준이었다.
대라천이라는 또 다른 세상의 존재는 진청제처럼 밑바닥에서부터 굴기한 사람들에게는 여간 충격적인 게 아니었다. 고급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은 대문파 출신들과는 달리, 그는 상고 시대에 대해 제대로 들어볼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초휴는 잠시 숨을 고를 겸 말을 멈추었다. 저 두 사람이 이 꿈같은 얘기들을 다 소화해낼 때까지 기다려주기 위해서였다. 좀 시간이 지나자 그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하여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우리가 포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진 맹주께 힘을 좀 빌리고자 함입니다. 그러니까 범교의 그 반쪽짜리 무선을 물리쳐 주십사 하는 거죠. 수고해주시는 대가로, 진 맹주님과 사 형이 마음대로 대라천과 하계를 넘나드실 수 있게 해드리지요. 원하신다면 천하맹의 정예 무사들을 거기서 수련케 하셔도 무방합니다. 단, 대라천 내를 함부로 돌아다니는 건 곤란합니다. 비경 한 곳을 알려드릴 테니 수련은 거기서만 하는 조건입니다. 자, 이 조건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한참이 흐른 뒤에야 진청제가 손끝으로 탁자를 톡톡 치며 답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자네 말인즉슨, 나를 용병으로 쓰고 싶다는 소리 아닌가? 뭐, 의도는 좀 불경스럽다마는, 자네가 제시한 대가를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사실 대라천에 아무리 천지 원기가 풍족해도, 진청제의 수련에는 별 도움이 못 되었다. 진화연신은 외부의 천지 원기를 흡수해 힘을 축적해나가는 수련과는 거리가 먼 육신 단련법인 만큼, 그에게는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반쪽짜리 무선 강자와의 대결은 꽤 솔깃하게 들렸다. 돌파를 이룬 진청제는 이미 지존방에 오르고도 남을 실력자가 되었다. 하지만 하계에서는 겨뤄볼 만한 상대가 솔직히 몇 사람 되지 않았다.
초휴야 자기편 사람이나 다름없으니 대충 기량이나 겨뤄볼 수 있을 뿐이다.
노천사는 웬만해선 자기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전에 야소남과 붙었을 때만 해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었다.
더욱이 천하맹과 천사부 사이에는 부딪힐 만한 일도 없었다. 아무리 노천사와 겨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지금으로서는 다짜고짜 용호산에 쳐들어가 천사부와 진검승부를 벌일 명분이 없었다.
야소남과도 붙어봄 직했지만, 그는 지금 폐관 중이다. 그나마 남은 호적수라고는 천문과 자재천뿐이지만 그 둘은 절대로 이길 자신이 없었다.
더욱이 지더라도 전투 경험을 쌓은 셈 치자는 위안이 통할만 한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졌다가는 그 즉시 황천행일 게 뻔하잖은가. 그런데 초휴의 말을 듣고 보니 대라천에는 반쪽짜리 무선이나 천지통현 절정급의 강자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한바탕 신명 나게 실력 발휘를 해봄 직하지 않은가. 게다가 대라천의 수련 환경이 사소루 및 그 외 천하맹 무사들에게 꽤 도움이 되리라 여겨졌다.
현재 천하맹을 통틀어 진화연신을 이룬 사람은 오직 진청제뿐, 사소루도 아직 그 길을 가지 못했다. 대라천이라면 분명 천하맹 무사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로써 결론이 나자 초휴는 즉시 진청제와 사소루를 대라천으로 데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