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35)
1135화 천하무적 철권 (2)
초휴를 향해 힐끗 눈길을 돌린 순간, 명현우의 동공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냥 이 길로 줄행랑을 놓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신가라가 건넨 초휴의 기록이 대체 얼마나 오래 묵은 건지는 모를 일이나, 여하튼 그를 여간 과소평가한 게 아니잖은가.
물론 아직 상처를 입지는 않았고 꺼내 들 비장의 패도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계속 싸우고픈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초휴가 지금까지 펼쳐낸 일련의 공세만 해도 이미 그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정말로 생사결에 돌입하면 천지통현의 절정에 이른 자신의 실력으로도 승산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신가라의 눈치를 보려던 그는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초휴 측 거한의 가공할 실력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싶을 정도였다. 신가라가 온갖 비법을 동원하는 족족 거한의 일권에 무참하게 박살이 나고 있지 않은가.
어떤 공법이나 비술도 그 일권에는 통하지 않았다. 상대가 줄기차게 날리는 철권에 무너지는 그의 모습이 어찌나 참담했던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미 반은 무선이나 다름없는 그는 엄연히 실력에서 자기보다 한 수 위였다. 그런 실력으로도 저렇게 무참하게 당한다면 자기 실력으로는 오죽하겠는가.
바로 이때 저 멀리서 ‘죽여라!’라고 외치는 만족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어이없게도 만족들이 대거 쳐들어와 극락마궁의 진영에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녹비가 파견한 자가 만족 간의 연합을 성사시켜 다른 부락민들까지 몰고 온 것이다.
초휴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었지만, 이제라도 와준 게 어디인가. 명현우는 이제 더 망설이고 자시고 할 여지가 없었다.
“후퇴! 전원 후퇴!”
그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지금, 이 싸움은 이미 그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었다. 더 싸웠다가는 수하들까지 대거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극락마궁 무사들이 퇴각하자, 줄곧 진청제에게 눌려 맥도 못 추다가 급기야 피까지 토한 신가라도 더는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그가 태양진화를 터뜨리며 몸을 날리자 태양이 막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듯한 강렬한 기세가 전해져 왔다. 이윽고 빛의 속도로 허공을 질주하더니 결국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청제는 두어 걸음 뒤쫓는가 싶더니 이내 멈춰 섰다.
아무래도 저토록 빨리 달아나는 적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할 듯해서였다.
진청제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한창 신나던 참인데 저렇게 꽁무니를 빼다니······.”
* * *
죽을힘을 다해 안전한 곳까지 몸을 피한 신가라와 명현우는 그제야 서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신가라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명현우! 이게 대체 몇 번째요? 자그마치 두 번째 아닌가! 두 번째! 번번이 먼저 도망쳐버리면 남은 나는 혼자 어쩌란 말인가! 내 물건만 날름 받아먹고 내 일을 제대로 도울 생각을 왜 안 하는가 말요!”
그러나 명현우는 냉담하게 대꾸했다.
“신 형, 공연히 애먼 나한테 화풀이하지 마시오. 지금 내가 도망치고 안 치고가 뭐가 그리 중요하오? 그 덩치 큰 자의 육신은 그야말로 금강불괴 그 자체더군. 아까 싸울 때, 보니까 신 형은 반격 한번 제대로 못 하고 두들겨 맞고 있습디다. 당신은 이미 패했는데 나 혼자 악으로 버텨봤자 내 부하들만 줄줄이 죽어 나가지 않소? 그건 그냥 개죽음일 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듣기 싫은 소리라도 내 한마디 꼭 해야겠소. 당신한테 받은 것보다 당신 때문에 잃은 게 더 많으니, 그깟 뼈다귀 타령일랑 작작하시구려!”
명현우의 말에 틀린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 이미 패색이 짙어질 대로 짙어진 싸움이었다. 더 싸워봤자 의미 없는 희생자만 속출할 뿐이다. 신가라라고 해서 그걸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분이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그토록 오랜 시간 온갖 머리를 굴렸건만, 심지어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서 명현우까지 끌어들였건만,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겼지 않은가.
화를 주체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를 명현우가 살살 구슬리기 시작했다.
“신 형, 일단 내 말대로 합시다. 그 강한 범교의 실력은 놔두었다가 어디에 쓰려 하오? 우선 돌아가서 무선 전주 한 명만 데려오시오. 확실하게 우월한 힘으로 실력 행사해서 초휴를 끌고 가면 될 일 아니오? 여기서 혼자 골머리를 앓아봤자 더는 뾰족한 수가 없을 거란 말이지.”
어느덧 냉정을 되찾은 신가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이야 쉽지. 당신 말은 범교 내 암투가 어느 정도나 심각한지 모르니까 하는 소리요. 우리 사이니까 까놓고 말하리다. 범천, 시바, 비슈누, 이 세 전은 이미 수천년째 암투 중이오. 천라보찰의 위협만 아니었어도 진작 우리끼리 치고받았을지도 모른다니까. 그런데 명색이 차기 전주라는 자가 이깟 일도 혼자 해결하지 못해 도움이나 청하고 앉았다면 저들이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보겠소? 게다가 딱히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소. 노전주께선 이미 연로하시니, 여기 오는 도중에 다른 무선의 기습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단 말이오. 물론 시바전과 범천전이 대신 나서줄 수도 있겠지. 하나 그리되면 우리 비슈누전의 체면은 또 뭐가 되오?”
명현우가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범교 내 암투가 그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극락마궁에도 권력다툼을 비롯한 여러 암투가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용납 가능한 선에서 그쳤다. 설령 격렬한 양상을 띠더라도 큰 문제로 비화하기 전에 궁주가 제때 진화에 나서곤 했다.
그러나 범교의 암투는 종문의 이익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지경에 이른 듯하지 않은가. 범교의 그 구중천이라는 교주는 여전히 나 몰라라 하는 모양이니, 남의 일이라도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 형, 범교에 도움을 청하지 않을 거면 다른 대책이라도 세워야 하지 않겠소? 내가 의리 없이 굴자는 게 아니라, 정말이지 우리 둘만의 힘으로는 절대로 저 초휴 일당을 당해내지 못할 것 같단 말이오. 그나저나 그 무지막지한 놈은 도대체 누군지 모르겠군. 그 정도 실력자를 내가 모를 리 없을 텐데.”
신가라가 코웃음을 쳤다.
“초휴 그자가 동역에서 밉보인 데가 한두 곳이 아니더군. 당장 혈하교 혈하노야의 제자만 해도 초휴 측에 의해 폐인이 되었고, 한강성과도 여간 앙숙이 아니니까. 그들 쪽을 좀 쑤셔볼까 생각 중이오······.”
순간 신가라는 말을 하다 말고 낯빛이 변하며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진반을 꺼내 들었다.
표면에 떠올라 반짝이던 범문을 다 읽은 그의 표정이 매우 심각해졌다. 명현우는 범문을 모르는지라 그에게 묻는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진반을 움켜쥔 신가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은 초휴 놈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오. 비슈누전의 선대 전주께서 원적에 드셨다는구려.”
그 말을 끝으로 신가라의 신형이 번쩍하더니 빛의 속도로 서쪽을 향해 사라졌다.
* * *
극락마궁 패거리를 격퇴하자 비로소 초휴 측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명현우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하들과 함께 퇴각하는 모습에, 초휴는 극락마궁과 신가라의 관계가 그리 끈끈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양자는 이해관계로 잠시 야합한 사이에 불과한 것이다. 신가라가 무슨 방법을 써서 극락마궁의 협조를 끌어낸 것인지는 물론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신가라가 진청제에게 쫓겨난 지금, 극락마궁도 더는 도발해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진청제가 건들건들 다가와서는 말했다.
“이거 꽤 재밌는걸! 여기 대라천 무사들의 실력이 꽤 봐줄 만 하단 말이지. 무도에 있어서도 하계와는 좀 다른 듯하고 말이야. 다만 끝장을 보지 못한 게 영 아쉽군그래. 승부를 내기도 전에 내빼 버리는 법이 어디 있나 이 말이야.”
진정체의 말에 주위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승부를 내지 못했다고? 신가라가 진청제에게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는 모습을 다들 똑똑히 지켜봤는데 뭔 소리인가?
그러고도 승부를 끝까지 봤어야 했다고? 신가라가 도망쳤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맞아 죽는 건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초휴가 다가오더니 진청제에게 깍듯이 예를 올렸다.
“진 맹주님, 감사합니다.”
그러자 진청제는 손사래를 쳤다.
“거추장스러운 인사치레 같은 건 안 해도 되네. 자네는 나를 대라천에 데려와 주었고 나는 자네를 도와 적을 물리쳤으니, 피차 신세 진 건 없는 셈이지. 그나저나 사소루 놈을 잠시 자네 곁에 두었으면 좋겠군. 당분간만 좀 부탁함세. 내가 대라천을 한 바퀴 둘러보며 상위 경지 돌파를 위한 영감을 좀 얻어볼까 싶어서 말이지. 그 김에 또 겨뤄볼 상대도 찾아보고.”
초휴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그 김에’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그거야말로 진청제가 가장하고픈 일일 게 뻔했다. 일단 허락은 하되, 충고의 말은 잊지 않았다.
“진 맹주님, 대라천은 하계와는 달리 동서남북 사방에 고수가 수두룩합니다. 지역마다 무선 강자가 최소한 몇 명씩은 버티고 있으니 단단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초휴 자신도 사고 치는 능력이라면 진청제 못지않았다. 하지만 초휴가 치는 사고와 진청제가 치는 사고는 차원이 달랐다.
초휴야 본인의 이익이나 명성이 걸려있기 때문에 그런다지만, 진청제는 순전히 싸움을 위한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가.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수하도 아닌 그를 단속할 방법도 없었다. 그냥 충고나 할 수밖에.
“염려 말게.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단 말이지. 내가 아무리 싸우길 좋아해도 그렇지, 그리 분별없이 굴기야 하겠는가.”
다행히 진청제가 순순히 충고를 받아들이는 것 같더니 돌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네가 나를 대라천에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다음 발걸음을 어떻게 내디딜지 막막했을 거야.”
초휴가 별소리를 다 듣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청제의 실력이면 반쪽짜리 무선 대접은 받고도 남았다.
육신의 강도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그 정도 전투력이면 출중하단 소릴 듣기에 부족함이 없건만 뭐가 문제라는 걸까?
진청제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하계에서는 내가 단연 별종이긴 했지. 자네도 진화연신을 수련했다지만, 사실 자네는 그것 말고도 밟아온 무도가 다양하지 않은가. 개개의 무도마다 하나같이 정상급 기량을 일구어냈고 말이지.”
초휴가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무도가 다양하다고 반드시 좋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천지통현을 돌파하려 애쓰던 때도, 무도가 너무 잡다하니 많은 탓에 오히려 방향을 못 잡고 헤매지 않았던가.
진청제의 말이 이어졌다.
“적어도 자네는 선택할 여지라도 많잖은가. 그리고 야소남, 노천사, 그리고 영가의 늙다리 등등 하계를 통틀어 천지통현에 이른 존재들도 자기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다들 잘 알고 있을 테지. 유일하게 나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을 헤매는 꼴이란 말이네. 물론 내 길은 처음부터 동반자라곤 전혀 없는 외로운 일이긴 했지. 그래서 홀로 좌충우돌 미친 듯이 헤쳐나갈 수밖에 없었고. 사실 하계에서 나는 도합 세 차례 돌파를 했네.”
“첫 번째는 내력진화를 만들어냈을 때였지. 진화련신 돌파에 실패한 후 어찌어찌 연체(煉體)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의외로 그게 성공했단 말이지. 두 번째는 자네와 치고받던 그 천문 신장이란 잡놈과 교전을 벌인 직후였어. 연체에 있어 대성을 맞게 되니 동급에서 내 적수라곤 없었지. 세 번째가 바로 얼마 전 그때였네. 육신이 천지와 동화를 이루면서 단순히 육신의 힘만으로도 천지의 힘을 견인하는 게 가능해지더란 말이지. 한마디로 반쪽짜리 무선 정도는 적수로 삼을 수 있을 정도가 된 게야.”
“그렇다면 과연 네 번째 돌파도 기대할 수 있을까? 내 육신이 신선의 몸처럼 변할지는 나로서도 장담하기 어렵네. 대라천은 이렇게나 광대하고 강자들도 지천으로 널렸으니, 나의 무도가 한 단계 더 진보할 수 있을지는 이번 기회에 달렸다고 봐야겠지. 천하맹 쪽에는 이미 조용하게 지내라고 분부해 두었네. 나는 일년 후에나 돌아올 거라고 미리 말해두었단 말이지. 만에 하나, 일년이 지나도 내가 돌아오지 않거든, 사소루가 천하맹 맹주 자리를 승계할 수 있도록 자네가 좀 도와주면 좋겠네. 그간 내 이 더러운 성질머리로 하계에 적을 하도 많이 만들어 놓아서, 내가 죽으면 필경 누구라도 천하맹을 치려 들 게 뻔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