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45)
1145화 얽히고설킨 원한
엽유공은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이번 일격에 쏟아부어 단번에 황천각을 도륙 낼 작정이었다. 그 후 나머지 일이야 기무한 등 다음 세대로 넘기면 될 게 아닌가.
그러나 초휴의 얼굴에는 괴이한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엽 성주, 뭐가 그리도 자신만만하시오? 그러다가 큰코다치면 본인만 서러울 텐데. 방 종주! 이제 나서실 때가 된 듯합니다. 능소종이 신용을 지킨다는 걸 보여주셨으면 좋겠군요.”
초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응룡이 허공을 밟으며 내려섰다. 그가 입은 구룡포가 바람에 펄럭이니, 그 위세가 하늘까지 솟구쳤다.
“염려 말게. 우리 능소종이 한번 한 약속은 신병보다도 견고하니까!”
방응룡이 등장하자 엽유공의 안색이 화들짝 변했다. 아무래도 그가 마음먹은 대로 일이 흘러가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방응룡이 등장한 순간, 엽유공은 직감했다. 이제 일의 향방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자신이 대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거라던 자신감은 어느새 오뉴월 눈 녹듯이 사라졌다. 능소종과 황천각의 원한 관계에 대해서라면 엽유공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능소종은 응당 여기에 나타나지 않았어야 했다.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하면서 어부지리 얻으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도 나타났다면, 대체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가?
엽유공이 방응룡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능소종이 이번 일에 끼어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소. 설마 당신들의 숙적인 황천각보다 한강성이 더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
방응룡이 뜻밖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오. 당신들이 황천각보다 더 위협적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능소종과 황천각은 장장 만년 세월에 걸쳐 힘겨루기를 해왔지. 해서 우리는 황천각의 실력을 낱낱이 꿰뚫고 있지. 저들의 상한선은 어디고 하한선은 어딘지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단 말이오. 그러나 한강성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투성이지. 미지의 존재야말로 훨씬 두려운 법이니, 마땅히 경계해야 하지 않겠소?”
엽유공과 방응룡 간의 대화를 듣던 초휴는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대라천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장점이 있지 않은가.
예컨대 허세로 말장난하거나 에둘러 변죽만 울리는 대신, 직설적으로 본론만 말하는 것 말이다. 지금 상황만 봐도 그랬다.
만약 방응룡이 하계 정도 종문 출신이었다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장광설만 잔뜩 늘어놓았을 것이다.
동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대국적 견지에서 한강성이 황천각을 무너뜨리도록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둥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방응룡은 사실 그대로 요점만 말했다. 능소종 입장에서는 한강성이 황천각보다 더 위협적이기 때문에 한강성이 승승장구하게 두고 볼 수 없노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가.
딱히 거창한 대의를 내걸지도 않았다. 그냥 종문의 이익을 위해 한강성을 저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얼마나 깔끔하고 전달력이 확실한 화법인가.
그러나 방응룡은 잠시 말을 멈추고 초휴를 힐끗 쳐다보는가 싶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물론 그것 말고도 이유가 더 있긴 하지. 그게 뭔고 하니······ 저 젊은 친구의 언변이 어찌나 예리하고 현란하던지, 우리가 나서지 않고는 못 배길 말만 골라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이리되었소.”
초휴는 엽유공의 시선이 험악해지며 자기한테로 향하는 걸 느꼈다. 살기마저 번득이는 눈빛이었다.
초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잠시나마 방응룡의 직설적인 화법을 좋게 평가했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명색이 무선이라는 자의 심보가 왜 이렇게 치사하단 말인가. 이 와중에 새카만 후배의 뒤통수를 후려칠 궁리나 하다니! 그런데 엽유공이 갑자기 방응룡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응룡, 우리가 최근에 겨루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감감하군. 수십년 전? 아니면 수백년 전? 아마 그대가 무선이 되기도 전이었을 듯한데. 나는 여태 동역 최강 고수 자리를 두고 그대와 다퉈본 적이 없었소. 그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줄곧 그대의 차지였으니까. 그러니 오늘 동역 최강 고수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확인해 봅시다!”
사실 무선 강자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 법이다. 지난번 초휴와 엮였을 때는 예외였지만 말이다.
당시 그는 초휴를 혼 좀 내주는 걸로 그칠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뜻하지 않게 ‘고존’과 맞닥뜨리긴 했지만, 어차피 끝장을 볼 작정이 아니었던지라 순순히 물러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강성의 병력을 총집결해서 쳐들어온 것이니만큼, 체면 때문에라도 저번처럼 쉽게 물러나는 건 곤란했다. 그 누구보다도 기세 당당한 한강성 성주가, 같은 장소에서 두 번씩이나 후퇴를 거듭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엽유공은 말을 맺기가 무섭게 성큼 한 발 내디디며 질풍노도와 같은 기세를 내뿜었다. 삽시간에 서릿발 같은 폭풍이 휘몰아쳤다.
매서운 한풍에는 눈발이 섞여 휘날렸다. 그의 기세가 정점까지 폭증했다 싶은 찰라, 그를 중심으로 반경 수백 장의 공간이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였다.
순간 초휴는 자기가 하계의 극북표설성에 와 있는 줄 착각할 뻔했다.
초휴는 무선의 기세를 단계별로 구분할 줄 몰랐다. 막연히 상대가 매우 강하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방응룡의 반응은 예민했다.
“무선 칠중천! 그새 칠중천에 올랐단 말인가!”
예전부터 공공연히 무림에 나도는 소문이 있었다. 엽유공이 육중천의 실력을 갖췄고, 전력을 폭발하면 칠중천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는 명실상부한 칠중천에 안착한 게 아닌가. 종추수의 낯빛도 부쩍 무겁게 가라앉았다.
지난번 교전했을 때, 엽유공은 실력을 숨긴 모양이었다. 뜻밖에도 진정한 칠중천의 실력이 황천각이 아닌 능소종을 상대로 처음 발휘될 판이었다.
원래 무선경은 아홉 단계로 구분된다. 그러나 세인들은 일중천부터 삼중천까지를 하나의 천지로, 사중천부터 육중천까지를 또 하나의 천지로 보았다.
그리고 칠중천부터 구중천까지가 무선의 절정기로 간주되는 것이다. 따라서 육중천과 칠중천 사이에는 엄연히 경지 하나의 차이가 존재했다.
경지 하나의 차이라곤 하지만 사실은 상당히 큰 차이였다. 엽유공이 칠중천까지도 가능하다는 말에 사람들이 경계의 날을 세우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정작 칠중천과 팔중천 간의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이로써 엽유공은 방응룡이라는 동역 최강 고수를 경계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그와 동등하게 맞붙어 볼 자격을 갖춘 셈이었다.
엽유공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등 뒤에는 얼음과 서리의 폭풍우가 층층이 몰아치더니 거대한 빙룡(氷龍)으로 화하여 포효하고 있었다.
엽유공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자 거대한 빙룡이 용 형상의 장도로 변해서 그의 수중에 들어왔다. 그 장도 둘레로 얼음과 서리가 휘돌았다.
하지만 거기에 함축된 것은 천지의 힘이 아닌, 일종의 천지간 규칙이었다. 한마디로 현재 엽유공은 신통을 병기로 만들어 손에 거머쥔 셈이었다.
이에 질세라 방응룡도 성큼 한 발을 내딛자 그의 일신에서 용 아홉 마리가 울부짖었다. 그리고 금빛 강기가 화한 거룡(巨龍)이 허공을 선회하다가 엽유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선 강자들이 작정하고 제대로 싸우기 시작하자 그 위세는 신선들의 싸움을 방불케 했다. 말 그대로 하늘을 무너뜨리고 땅도 갈라버릴 기세였다.
두 사람의 신형은 어느덧 허공으로 장소를 바꾸더니 숨 쉴 틈 없는 격전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은 잠시라도 땅을 디디는 일이 없었다.
이때 초휴 곁에 서 있던 종추수의 표정은 복잡하기만 했다. 자기도 합세해야 할지 말지 결정을 못 내리는 눈치였다.
이에 초휴가 재촉했다.
“각주, 뭘 망설이십니까? 방응룡과 합세하셔야지요. 엽유공을 격퇴하지 못해도 중상만 입혀도 충분합니다. 여기에 용쟁호투(龍爭虎鬪) 구경을 나오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종추수의 표정은 더욱 복잡해졌다.
“뭘 망설이느냐고 물었나? 하지만 생각해보게. 하나는 무선 팔중천, 또 하나는 무선 칠중천이네. 섣불리 저 싸움에 끼어들었다가는 내가 제일 먼저 나가떨어질 게 뻔하지 않은가.”
“다 같은 무선끼리 뭘 그리 재십니까? 그저 몇 단계 차이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 격차가 그리도 큰 겁니까?”
초휴의 질문에 종추수가 콧방귀를 꼈다.
“그저 몇 단계 차이? 자네가 진화련신 경지일 당시 천지통현도 쉽사리 죽였다고 들었네. 그때 자네 눈에 평범한 진화련신 무사들이 어찌 보이던가? 지금이 딱 그런 경우란 말이네. 지금 방응룡과 엽유공의 눈에는 내가 그렇게 보일 걸세!”
초휴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확실히 매우 큰 격차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방응룡과 손잡고 엽유공을 협공하기로 했던 애초의 계획을 밀어붙여야 했다. 엽유공이 중상을 입으면 그 최대 수혜자는 황천각이 아닌가.
그런데도 종추수가 출수를 미적대다가 방응룡의 분노를 사는 날엔 어찌 될까? 그 즉시 방응룡이 이 일에서 손 떼고 철수하기밖에 더하겠는가. 일이 그리되면 황천각은 극심한 손해를 보게 될 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초휴의 채근을 못 이긴 종추수는 돌격하자마자 엽규공의 일권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여간 참담한 모습이 아니었다.
무선 간의 차원이 다른 대결을 초휴는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방응룡 및 엽유공과 같은 경지 간의 싸움은 보면서도 이해가 잘 안 갈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넋 놓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초휴가 수신호를 보내자 그의 수하들, 그리고 황천각 무사들까지 일제히 한강성 진영을 향해 진격했다.
이번만큼은 초휴도 인정사정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의 수하들 가운데 혈하교 궤멸에 참여했던 정예 무사들도 그를 따라 돌진했다.
사실 그에게는 황천각이 살아남고 안 남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핵심은, 한강성은 이미 초휴에게 눈엣가시로 찍혔다는 사실이다. 물론 한강성의 눈에도 초휴가 도저히 용납 못할 가시인 건 마찬가지일 터!
이번에 엽유공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하면 이래저래 밤에 발 뻗고 자는 건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끝장을 내야만 했다.
초휴가 전장에 뛰어들자 차가운 남색 전갑 차림의 기무한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두 눈에는 초휴를 당장이라도 얼려 죽일 것 같은 차가운 살기가 번뜩였다.
“초휴!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애당초 능라군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네놈의 명줄을 끊어버렸을 것이다!”
기무한은 정말이지 후회막심했다. 당시에도 초휴가 만만치 않은 상대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만만치 않은 자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강성의 위상이 아직 능소종과 황천각에 못 미치는 건 사실이니, 기회는 이번 단 한 번뿐이었다. 모든 걸 쏟아부은 총공세를 펼쳐서 황천각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한다면, 이번에 소모된 병력과 자원 등의 손실을 만회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황천각에 의외의 변고가 생기지 않는 이상, 다음 출수는 소모된 실력이 보충될 때까지 무한정 미뤄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전 계획대로라면 이번에 황천각을 충분히 무릎 꿇릴 수 있었다. 그런데 초휴가 대체 무슨 귀신도 울고 갈 수법을 썼기에 능소종까지 끌어들였단 말인가.
기무한의 입장에서는 이가 갈릴 판이었다.
“무슨 대가를 치르고라도 나를 끝장냈을 거라고? 기무한, 이걸 알아야지. 당시 네가 정말 그럴 각오로 나를 죽이려 들었으면 그 결과는 지금보다 더 참담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무한은 초휴의 독설에 끌려다닐 기분이 아니었다. 그가 일갈하자 영역이 펼쳐졌다. 가없이 몰아치던 폭풍이 영역 한가운데 응집되더니 초휴를 향해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