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47)
1147화 뜻밖의 기연
초휴가 그의 몫을 가로채자 육강하는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그는 초휴와 달랐다. 진화련신 시절에도 천지통현을 닭 모가지 비틀 듯 죽여 가며 무수한 전적을 쌓아가던 괴물이 아닌 것이다.
이번이야말로 천지통현 존재를 죽인 첫 전과를 올릴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초휴가 날름 그 공을 빼앗아간 모양새가 되었으니, 기분이 언짢을 만도 했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 편이라서 그리 길게 이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는 않았다. 대신 이때다 싶어서 초휴한테 바짝 다가가 실없이 주절대기 시작했다.
“이봐, 초 대인! 아니, 초 교주님! 어쨌거나 이 몸이 천지통현 경지에 올랐으니, 이쯤 해서 ‘혈해마존’으로 봉해주는 게 어떨까? 왕년에 독고유아 교주도 휘하에 사대 마존을 두었으니, 초 교주도 비슷하게나마 구색은 갖춰야지. 안 그래? 이러면 어떨까 싶은데. 일단 본존을 혈해마존으로 봉하고, 위 영감도 명망이 높고 다년간 공로가 컸으니 한자리 주어야겠지. 상 성주 영감탱이는 재주도 별로고 성질머리는 고약하지만, 어쨌거나 천지통현은 천지통현이니 역시나 한자리 주어야 할 테고 말이야. 마지막 남은 한 자리 말인데······, 여봉선과 매경령 그 계집애 중 먼저 천지통현에 오르는 사람한테 주는 게 어때? 내 생각이 어떤지 교주님 생각도 한번 말해보라니까.”
아무래도 육강하에게는 천지통현 적수의 수급보다 혈해마존 자리가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하긴 무려 오백년 동안을 집착해온 자리니 그럴 만도 했다. 더 있으면 집착을 넘어 집념이 될 듯하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초휴는 귀에 그 말이 들어올 형편이 아니었다. 그는 바위처럼 굳은 표정으로 하염없이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기무한의 죽음과 동시에 엽유공은 미쳐버린 상태나 다름없었다. 기무한은 그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존재였다. 자신이 직접 발탁한 후계자로서 한강성의 다음 세대를 짊어질 책임자이자 미래인 것이다.
어찌 보면 친아들보다도 더 중요한 존재였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그런 존재를 초휴가 죽인 것이다. 이는 곧 한강성의 미래가 통째로 날아간 거나 진배없었다.
엽유공 대에서나 반짝 강세를 띤 한강성은 아직 쌓아온 저력이 취약했다. 물론 엽유공이 언제까지라도 버틴다면야 또 다른 후계자를 양성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속성으로 키워내는 후계자가 오랜 세월 공들여온 기무한과 비교나 되겠는가?
기무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이제 한강성의 앞날은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게 된 셈이었다.
엽유공이 분노의 일갈을 내지르며 일신의 힘을 최대치로 폭발시켰다. 희망을 잃은 그는 이제 이판사판 목숨이라도 걸 기세였다.
이성을 잃은 나머지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지경이었다. 그의 광기 젖은 공세에 종추수가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진 데 이어서, 방응룡조차 감히 맞설 엄두를 못 내고 뒷걸음질 치기에 급급했다.
방응룡이야 어디까지나 도우러 온 제삼자에 불과했다. 동역의 세력 균형이 깨지는 일이 없도록 황천각이 망하지만 않게 하면 되는 것이다. 굳이 엽유공과 생사결까지 할 이유가 없었다.
방응룡이 수세를 취하자 상대적으로 엽유공의 기세는 더욱 흉포해졌다. 하지만 종추수에게 중상을 입히고 방응룡을 연신 몰아붙이는 판에 본인의 소모인들 적을 리가 없었다.
그는 살벌한 눈빛으로 종추수와 방응룡을 힐끗 보았다. 잠시나마 초휴를 향해서도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냈다. 그런 다음에 한강성 무사들을 이끌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분노를 어찌 말로 다 형용하겠는가. 하지만 지금 퇴각하지 않으면 정말로 더는 만회할 기회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엽유공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기무한이 죽었다. 차기 성주를 잃은 한강성의 앞날에 안개가 자욱이 깔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 여기서 치명타를 입는 것보다는, 안개 속을 더듬어 헤쳐나갈 여지라도 남기는 게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엽유공이 도주하는 것을 본 초휴가 방응룡을 향해 냅다 고함을 질렀다.
“방 종주! 엽유공을 저대로 보내면 능소종도 두고두고 골치가 아파질 겁니다!”
방응룡이 초휴를 째려보며 콧방귀를 날렸다.
“그걸 내가 모를 것 같나?”
방응룡이 비록 엽유공과 동시대에 활약하진 않았지만, 그의 성격상 오늘 일을 그냥 넘기지 않으리라는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자기가 당한 건 언제가 되더라도 반드시 앙갚음할 위인임을 잘 아는 것이다.
그가 심각한 타격을 입지 않은 채 이대로 한강성에 돌아간다면, 훗날 반드시 능소종에 보복하려 들 게 뻔했다. 해서 방응룡도 엽유공의 뒤를 추적하며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공격을 이어나갔다.
동역의 안정을 위해서는 세력들 간에 힘의 균형이 이뤄져야 했다. 황천각과 한강성이 서로 치고받다 한꺼번에 망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둘 다 양패구상의 국면을 맞아 같이 쇠약해진 후 서로 견제케 하고, 능소종만이 나 홀로 건재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엽유공은 퇴각을 하면서 한강성 제자들도 보호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적잖은 부상을 입게 되었다.
그러나 남만과의 경계지대까지 이를 악물고 퇴각을 강행했다. 조금만 더 가면 능라군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방응룡의 일신에서 아홉 용이 솟구쳐 허공을 선회하더니 천지의 한켠을 장악해 엽유공을 그 안에 가두었다. 이것은 방응룡이 가하는 최후의 일격이자 일신의 모든 힘을 건 공세라는 것을 엽유공도 직감했다.
이에 엽유공도 기세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자신의 몸에 모조리 응결시켰다. 슬며시 손가락으로 허공을 찌르는 동작을 취하자 무궁무진한 한기가 거대한 손가락 형상으로 응집되었다.
그것이 땅을 향해 내리꽂히자, 스치는 곳마다 모든 게 얼음으로 뒤덮였다. 심지어 시간마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것은 엽유공 특유의 강력 신통으로 ‘응빙신지(凝氷神指)’라는 것이었다.
얼핏 별 특이한 점이 없는 저급 무예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이것이야말로 천지 규칙을 뒤바꿔버릴 수 있는 강력한 신통 술식인 것이다. 기세등등하게 천지를 움켜잡으며 포효해대던 아홉 용도 그만 허공에 갇히고 말았다.
순간 초휴는 세상의 종말을 보는 듯했다. 하늘은 이미 본연의 색깔과 형상을 잃었고 두 갈래의 힘이 찢어 발겨놓은 허공과 강기가 빚어낸 폭풍만이 울부짖고 있을 뿐이었다.
초휴는 눈에 힘을 주며 천자망기술을 극한까지 시전했다. 두 힘의 싸움에 실린 규칙을 들여다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무선 팔중천의 경지는 그에게 있어 너무도 요원하고 아득했다.
실핏줄이 터져 두 눈이 시뻘게질 때까지 뚫어지도록 쳐다보았지만, 미약한 규칙의 힘들을 들여다보는 데 그쳤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엽유공이 얼마 버티지 못하리라는 사실이었다.
분명히 방응룡이 그보다 단계가 하나 더 높았다. 게다가 능소종의 웅혼한 전승을 기반으로 한 힘은 계속 엽유공보다 한 수 우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싸움이 이 정도까지 단계까지 왔으니, 설령 방응룡이 생사결을 피하고 싶어도 출수를 거두는 게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이 목숨을 건 최후의 일격을 날릴 상황에 접어들었다고 초휴가 여길 즈음, 남만 땅 깊숙이에서 연무가 요동치더니 강대한 기세가 화산처럼 솟구쳐 올랐다.
그 기세가 두 사람의 기세와도 겹쳐지더니,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지역마저 뒤덮어버리는 게 아닌가.
남만 땅에서 터져 나온 그 기운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없이 정순한 천지 기운이었다.
그 기운의 유입으로 인해 두 사람에게는 각자의 힘을 거둬들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해서 그들은 거의 동시에 힘을 갈무리했다.
방응룡의 안색이 약간 창백해진 것과는 달리, 엽유공의 기운은 극도로 불안정했다. 보아하니 조금 전 치른 격전과 신통의 시전으로 인해 근간까지 손상된 게 분명했다.
두 사람이 서로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놀란 표정으로 나직이 일갈했다.
“동천복지다!”
둘 다 무선 강자이자 대라천 정상급 대종문의 수장으로서, 웬만한 일에 대해서 견식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지금 상황이 어떤 것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그 기운은 새로운 동천복지가 출현했다는 일종의 신호탄과도 같았다. 현재 여러 대문파가 대라천 내의 지역 대부분을 나눠 가진 상황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동천복지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남만 땅이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지역들이 많은 만큼, 새로운 동천복지의 출현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방금 기운이 터져 나온 곳은 일전에 이무상도 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지난번 만족 폭동 때 이무상이 진압에 나서면서 만족들을 적잖이 죽인 바 있었으나, 동천복지를 발견했다는 얘기는 없었다.
당시는 그 혼자만의 힘이어서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나, 이번은 무선 팔중천 강자 둘이서 전력을 다해 격전을 치른 덕분에 주위 천지 규칙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로써 동천복지의 힘이 자극을 받았고, 결국 밖으로 분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귀하디귀한 동천복지가 세상에 나타난 이상, 방응룡은 한강성을 이미 제압한 선에서 만족해야만 했다. 엽유공을 끝까지 죽이려 들다가 양패구상의 지경까지 이를 생각은 없었다. 해서 그는 출수를 접고 동천복지가 나타난 방향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동천복지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존재인 만큼, 처음 열릴 때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거기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미지의 강대한 존재와 맞닥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일한 이치로, 오랜 세월 개방된 적 없는 동천복지에는 무수히 많은 천연 지보들 또한 널려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두 사람을 뒤따르는 초휴의 표정에는 흥분보다 애석함이 더 짙게 묻어났다. 어쩌면 저놈의 동천복지는 때를 못 맞춰도 저렇게나 못 맞춰 모습을 드러낸단 말인가.
조금만 더 늦게 나타났어도 저 둘의 싸움은 분명 승부가 났을 것이다. 지금 엽유공의 몰골을 보아하니, 근간까지 심하게 다친 게 분명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출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아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미개척 동천복지와 조우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엄청난 기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기연이 눈앞에 있으니, 엽유공을 죽이지 못한 애석함에도 불구하고 초휴 또한 마음이 동하기는 했다.
물론 방응룡이라는 무선 강자가 버티고 있으니 살코기는 그의 차지가 되겠지만, 그를 따라다니다 보면 고깃국물 한 숟가락 얻어먹는 거야 가능할 터였다. 초휴는 두 사람을 따라 남만 땅 깊숙이 들어갔다.
그제야 말로만 들어왔던 동천복지라는 게 어떤 건지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그건 단순히 하나의 공간이었다. 더 정확히는 대라천의 부속 공간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되 대라천에 예속된 것이기도 했다.
하계의 비경도 동천복지의 일종일 터였다. 크게 보면 상천량이 살던 녹도도 동천복지 축에 들지 않겠는가.
예전에 보았던 동천복지들은 능소종과 황천각에서 만년 세월에 걸쳐 여러 차례 손을 본 끝에 지금의 그 모습이 된 것이다.
반면, 눈 앞에 펼쳐진 이곳은 천연 상태 그대로의 동천복지이니, 예전에 보았던 것들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입구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고, 전체 형상이 거대한 봉분을 연상케 하는 것이 족히 백 장 크기에 달했다. 전체적으로 흘러 나는 기운과 힘이 어찌나 정순하고 강력한지 찬탄이 나올 정도였다.
방응룡이 눈앞의 거대한 봉분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정색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천연 진법인가?”
그 거대한 봉분은 전체가 다 지면 밖으로 드러난 게 아니었다. 땅 밑에도 규모가 방대한 천연 진법이 숨겨져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진법을 생성할 수 있는 동천복지는 실로 드물었다. 이처럼 특별한 동천복지와의 만남은 엄청난 기연인 동시에 막대한 위험이 따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