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48)
1148화 동천복지
돌연 나타난 이 동천복지는 방응룡도 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억지로 진법을 해체할 수는 있지만, 그랬다간 자칫 동천복지 전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엽유공을 돌아보며 방응룡이 차분히 말했다.
“엽유공, 오늘 운이 좋은 줄 알아라. 한강성 무사들을 전부 데리고 물러나라. 그러지 않을 시엔 정말로 한강성의 명줄을 끊어버릴 테니까!”
엽유공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한강성의 명줄이 끊어지는 게 정녕 능소종이 바라는 바인가? 방응룡, 뻔히 속 들여다보이는 소리 작작 해라. 당분간이야 동역 패주 자리를 유지할 수야 있겠지. 그러나 언젠가 그 자리를 비워줘야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말을 끝으로 엽유공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물론 가기 전에 초휴를 다시 한번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굳이 눈에 가득 차오른 살기를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초휴도 이에 질세라 똑같이 그를 노려보았다. 남만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한강성과의 화해는 영영 물 건너간 셈이 되었으니, 굳이 적대감을 감출 필요를 못 느꼈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상대가 원한을 품는 게 대수겠는가. 무선 강자에게 찍히는 것이 절대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이판사판인 것이다.
방응룡이 초휴에게 말했다.
“약속대로 엽유공을 물리치는데 협조했으니, 이제 황천각 측에서 약속을 지킬 차례네. 양도하겠다고 했던 군을 넘기시게. 우리가 직접 받으러 가기 전에.”
“걱정도 팔자이십니다. 우리 황천각은 한번 약속한 일을 뒤엎은 일이 없습니다.”
초휴 본인 것도 아닌데 그까짓 군 한 곳 내주는 게 대수겠는가.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방응룡은 그 거대한 봉분 쪽을 힐끗 보더니 정색하며 말했다.
“동천복지가 세상에 드러난 이상, 강자들이 몰려와 저기 들어가려고 쟁탈전을 벌일 건 자명한 일이지. 특히 우리 동역이 아닌 남만 땅에 나타났으니 일이 더 묘해졌단 말이지. 따라서 이번에는 남역 대종문 강자들도 쟁탈전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네. 그렇다면 동역 무사들끼리라도 연합을 해야 하지 않겠나. 먼저 타 지역 경쟁자들부터 처리한 다음에 우리끼리 공평히 분배하는 게 좋을 듯한데? 종추수와 잘 의논해보게. 나는 이 길로 능소종으로 돌아가 동천복지의 천연 진법을 파훼할 진법 종사들을 데려올 테니까”
말을 마치자 방응룡은 급히 떠났다. 자기가 자리를 비운 동안 황천각이 선수 쳐서 먼저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종추수도 무선 강자고 황천각에도 엄연히 전승되어온 지식이 있는 만큼, 동천복지를 억지로 개방하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를 모를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잠시 후 종추수도 뒤늦게 당도했다. 안색이 창백한 것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기운이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라는 걸 초휴도 느낄 수 있었다.
“각주님, 많이 안 좋으십니까?”
초휴의 질문에 종추수가 발끈하여 받아쳤다.
“아니, 자네 사부는 무선 경지 간의 격차에 대해 알려주지도 않으시던가? 단계 하나 차이야 극복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저들과 무려 서너 단계씩이나 차이가 난단 말일세. 이 정도라도 버틴 것만도 대단한 일이네.”
그는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아까 그 두 사람 중 하나는 자타공인의 동역 최강 고수고, 다른 하나는 근자에 부쩍 굴기하여 대라천의 지각변동을 이끌어온 한강성 성주가 아닌가.
그는 마음을 추스르고 난 다음에 물었다.
“엽유공은 갔는가?”
이에 초휴가 전방의 거대한 봉분을 가리키며 답했다.
“두 사람이 어찌나 요란하게 싸워댔던지, 숨어있던 동천복지까지 나타났지 뭡니까. 둘의 싸움이 흐지부지 끝나버릴 만도 했지요. 하지만 동천복지가 발견되었으니 이거야 당연히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마침 우리가 여기에 와 있으니 기회를 선점하는 효과를 한번 노려볼 만하겠습니다.”
그러자 종추수가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만큼 간단치는 않을 걸세. 차라리 동천복지를 포기하고 엽유공 그 영감탱이를 끝장내는 게 나았을 텐데 일이 더럽게도 꼬였군. 이번에 엽유공이 중상만 입고 구사일생으로 도주했으니 두고두고 얼마나 이를 갈겠는가 말이야. 다음 번 출수 때는 대응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야. 게다가 여기가 황천각과 가까운 위치라고는 하나, 남만 땅 깊숙한 곳이 아닌가. 남역 놈들도 떼로 몰려오겠지. 그놈들 가운데 하나라도 만만한 놈이 있어야 말이지.”
“일단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능소종이 오면 합세하세. 두 지역에 걸쳐 벌어진 일은 비단 일 개 세력만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 능소종을 전면에 내세우고 우리는 그 뒤에 서는 편이 여러모로 유익하네. 누가 뭐래도 능소종은 동역 제일 대파가 아닌가. 적어도 그 정도 위세는 되어야 타 지역 종문들 앞에서 꿀리지 않는 법이지. 중대사에서는 응당 능소종이 동역을 대표해 최전방에 나서줘야 하는 게야.”
각주가 된 뒤로, 그 불같던 종추수의 성격도 많이 차분해져서 매사를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비굴하게 들리기 좋을 이런 소리를 서슴없이 하는 건 가당치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황천각의 힘을 온전히 보존할 수만 있다면 각주로서 어떤 짓이라도 불사할 생각이었다.
* * *
그로부터 수일 후, 남만 땅 전체가 달궈진 기름 솥처럼 팔팔 끓어올랐다. 새로운 동천복지가 출현했다는 소문을 들은 동역 무사들이 속속 몰려든 것이다.
주변에서 얼쩡대다 보면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온 자들도 많았다. 물론 정상급 대문파들 틈에서 그런 요행을 바라는 게 얼토당토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구경이라도 하자 싶어 대거 몰려온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동천복지의 출현이 어디 보통 일인가. 적어도 최근 몇 년간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사실 상고 시대 종문들이 막 대라천으로 넘어왔던 시기에는 동천복지가 적지 않게 존재했었다. 심지어 일부 대파들은 숫제 동천복지 주변에 종문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웬만한 동천복지는 거의 다 발굴되었고, 언젠가부터 극소수의 동천복지 발굴 소식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이제 백년, 아니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 된 만큼, 강호인이라면 누구나 한몫 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능소종 측에서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초휴는 남만 거점의 은닉과 관련해 신경을 좀 쓰고, 천혼과도 한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천혼은 초휴더러 독고유아와는 다른 길을 걸으라 했지만, 그 말인즉슨 그의 무도 노선을 무작정 모방하지는 말라는 것일 뿐, 무도 수련 등과 관련한 경험 등을 참고하는 건 상관없었다.
심지어 독고유아를 전승한 절기일지라도 초휴가 거기에 자신의 무도를 담을 수만 있다면 독고유아와는 다른 길을 걷는 셈이 되는 게 아닌가.
초휴가 천혼에게 다시 연락했을 때 그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구나. 상당히 좋아. 너의 실력이 그새 또 향상되었음을 알겠다.”
초휴가 의아하여 물었다.
“단순히 원신을 통한 접촉만으로도 내 구체적인 실력을 감지할 수 있는가?”
그 말에 천혼이 웃음을 터뜨렸다.
“너와 나는 원래 한 몸이었으니 당연히 감지할 수 있지. 너는 기억이 지워져 버린 탓에 나를 감지하지 못하겠지만, 나야 기억이 온전하니 너에 대해 또렷이 느낄 수가 있다.”
천혼의 말은 이론상 합당했지만, 초휴는 왠지 기분이 찜찜했다. 누가 자신에 대해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유쾌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설령 그게 자신과 동일 원천의 존재일지라도 말이다.
“그 얘기는 그쯤 해두고, 시간이 없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자. 무슨 문제가 생겼기에 나를 찾았느냐?”
“수련상의 문제는 아니고, 동천복지 때문이야. 하계의 그 천연 비경과 같은 것 말이지. 내가 지금 관할 중인 남만 땅에 완전히 새로운 동천복지가 나타났단 말이지. 머지않아 여기저기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쟁탈전을 벌여댈 거야. 그런데 그게 다른 곳도 아니고 남만 땅에 나타났다는 게 찜찜해. 내가 기껏 구축해둔 남만 거점이 저들에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정말 난감하잖아. 그러니 차라리 그 동천복지를 부숴버리고 싶어. 하지만 그게 내 실력으로 가능할까?”
초휴는 줄곧 이 문제로 고민했다. 하지만 혼자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닌지라 천혼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사실 동천복지가 출현했다는 사실 자체는 그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솔직히 창남부 턱 밑에 나타났다 해도 상관없었다.
여차하면 그깟 군수부야 포기해버리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남만 땅은 하계와의 통로가 있는 곳이니, 동천복지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사수해야 했다.
천혼이 눈썹을 한 번 치켜뜨더니 이내 답을 술술 내놓았다.
“동천복지를 파괴하고 싶다고?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지. 사실 동천복지건, 비경이건 간에 완전한 세상에 붙어 기생하는 소공간인 건 매한가지야. 워낙 천지 원기가 풍족하다 보니 온갖 기현상들도 생겨나지. 하지만 그것만 보고 그 공간 자체가 완전무결하다고 여기면 곤란해. 오히려 취약하다고 봐야지. 실력만 충분하다면 강제로 무너뜨리는 건 일도 아니야. 물론 지금 네 실력이 좀 모자라긴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비경의 핵심을 찾아라.”
“핵심을?”
“그렇다. 사실 모든 비경은 어김없이 핵심을 하나씩 갖고 있다. 그 핵심이 비경 내에서 힘이 가장 강한 지점이라고 보면 틀림없어. 그게 바로 비경 전체를 지탱하는 존재니까. 그것을 파괴하거나 방법을 강구하여 밖으로 끄집어내면 비경은 자연히 무너질 거야. 내 뒤에 나를 묶어둔 저 기둥이 보이지? 저게 바로 여기 영소경의 핵심이다. 원래 평범한 쇠기둥에 지나지 않던 것을, 후대에 이르러 대라천의 수많은 강자가 힘을 합쳐 저렇게 제련한 것이지. 운이 좋다면야 그 비경의 핵심을 파괴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혹은 네가 차지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이 내 뒤의 저 기둥처럼 소공간이나마 하나의 세상을 지탱해낼 정도로 견고하다면 달리 방법이 없어. 운이 나쁜 셈 칠 수밖에.”
기껏 천혼이 알려준 방법이 운에 달린 거라고 하니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여기 남만 땅의 풍수가 안 좋은가 싶기도 했다.
이곳을 지척에 둔 황천각이 굳이 여기에 세력을 확장하려 들지 않았던 게 이해가 가기도 했다. 툭하면 크고 작은 일들이 터져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나서야 능소종 사람들이 당도했다. 방응룡은 물론이고, 영호선산까지 포함해 능소종 정예 무사들이 총출동하다시피 몰려왔다.
능소종에는 진백원만 남아서 지키게 한 모양이었다. 마찬가지로 황천각 측에서도 육삼금이 나름 정예 무사들을 골라서 왔다. 물론 한눈에 봐도 능소종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규모였지만.
능소종 측은 당도하자마자 그 즉시 동천복지를 봉쇄한 다음, 곧 천연 대진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다짜고짜 동천복지를 점거하고 봉쇄하자 일부 동역 무사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들이 불만스럽다고 해서 동역의 패자, 능소종을 상대로 무얼 어쩌겠는가. 순순히 비켜나 있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어디선가 누군가의 조롱 섞인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남만이 언제부터 당신들 동역 땅이었나? 능소종! 동역에서 어깨에 힘 좀 준다고 해서 대라천 땅이 죄다 당신들 영역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닐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