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바꿔치기
예로부터 정도와 마도는 양립할 수 없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정도에 속한 문파들은 대의명분을 중시한 나머지, 적잖은 속박과 규제를 감내해야 했다. 그에 비해 마도는 거침없이 자유로운 행보가 가능했다. 물론 그 때문에 강호의 규칙을 어기고 무리한 짓을 해서 지탄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말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무공까지도 정도와 마도가 뚜렷한 구분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초휴의 입장에서는 어불성설이었다. 정도면 어떻고 마도면 어떻단 말인가. 정도의 무공을 익혔다고 해서 반드시 선인이라는 보장은 없다. 마찬가지로 마도의 무공을 익혔다고 해서 악인이라고 규정짓는 것도 무리인 것이다.
무도(武道)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싸워 죽이는 데 필요한 도(道)이다.
어느 무공이건 간에 종국에 가서는 피를 볼 수밖에 없다. 굳이 정사(正邪)의 구분을 둔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 아닌가. 물론 이건 초휴의 견해였다. 강호 무사들 대부분은 여전히 정사는 양립 불가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이것이 보편타당하게 통용되는 강호의 상식이었다.
따라서 혈옥영롱이 매우 진귀한 물건임에도 취의장은 그것을 손에 넣지 못했다. 섭인룡이건 그 아들이건 간에 그 물건을 취하는 순간, 강호의 신랄한 비난을 한 몸에 받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제아무리 혈옥영롱일지라도, 취의장이 수십년에 걸쳐 일궈온 명성과 맞바꿀 만한 가치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극북표설성은 어떨까. 그들은 취의장과는 입장이 달랐다.
원래부터 정사의 구분이 모호한 문파인지라, 일을 행하는 방식도 난폭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점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강호의 비난도 적잖이 받아 왔었다. 그런 극북표설성의 입장에서야 물건이 좋다면야 당연히 취하고 봐야 했다. 그것이 정도이건 마도이건 불가의 것이건 도가의 것이건 간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귀수왕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타주 대인, 차라리 극북표설성 사람들이 오기 전에 탈취하는 건 어떨지요? 저들이 도착해서 물건을 인수한 후에는 우리가 극북표설성과 취의장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잖습니까.”
천죄 타주가 대답했다.
“내가 이미 은밀히 우리 사람을 잠입시켜 방가의 직계 제자 하나를 구워삶아 놓았다. 지금 맹원룡이 물건을 자기 몸에 지니다시피하고 있는 데다, 방씨 가문은 물론이고 임중군 주변 문파 십여 곳도 구경하러 와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강공으로 치고 들어가면 성공률이 오할도 못 될 것이야. 결국, 유일한 기회는 물건을 인계하는 바로 그 순간이란 말이지.”
“일단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맹원룡이 물건을 방가 측에 돌려주면, 방가 측이 그걸 받아 극복표설성 사람에게 건네주게 되어있다. 우리가 노리는 건 이때다. 물론 이때라고 해서 성공률이 높다고는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계획을 짜기를······, 한마디로 바꿔치기와 양동 작전으로 물건을 빼돌리는 수밖에 없다.”
타주가 잠시 뜸을 들이며 좌중의 살수들을 훑어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너희들 중 하나가 역용술(易容術)로 모습을 바꾼 후, 구경꾼인 척하고 방가에 잠입해야 한다. 나는 놈들의 인수인계가 시작되기 전에 살수들을 이끌고 방가 밖에 매복하고 있다가, 물건이 방가의 수중에 들어갔을 때 그들을 칠 것이다. 내가 소란을 피워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동안, 매수해둔 방가 제자는 내가 미리 준비해둔 가짜 물건으로 바꿔치기한 후, 혼란한 틈을 타 진품을 잠입한 우리 편한테 내어줄 것이다. 공격을 받는 와중이니, 저들은 진품이 가짜로 바꿔치기 당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겠지. 잠입했던 우리 편이 진품을 갖고 안전한 곳으로 도망쳤다고 판단되면, 내가 공격을 물리고 임무는 종료된다.”
살수들은 아무런 말 없이, 타주의 설명을 듣고만 있었다.
타주는 혈옥영롱을 탈취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해온 모양이었다. 거기에다 대고 새삼 무슨 토를 달겠는가. 살수들은 그저 타주의 명령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초휴는 타주의 계획에 의구심이 들었다.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뭔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때 타주가 살수들을 또 한 번 훑어보며 물었다.
“아직 결정할 문제가 남아 있다. 너희들 가운데 누가 방가로 잠입하겠느냐? 바꿔치기한 진품을 밖으로 빼돌려야 하는 중책이니라. 돌발사태라도 발생하면 자칫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그러니 세심하고도 대담하며 몸놀림도 잽싸고 임기응변에도 능한 자가 맡아야 한다.”
타주의 시선이 좌중 전체를 향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주로 초휴와 당아에게 머물러 있었다. 자리한 살수들 가운데 단연 실력이 강한 건 안불귀였지만, 이 중책은 실력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안불귀는 성격상 이 일에 절대적으로 부적격자였다. 역용술로 모습을 바꾼다 해도 안불귀는 여전히 저 모양 저 꼴일 게 뻔하니, 방가에 잠입하기도 전에 발각될 확률이 높았다.
안불귀를 제외하면 실력상 당아와 초휴로 후보군이 좁혀지게 된다. 당아는 외강경이라서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할 확률이 높았다. 초휴는 내강경이긴 하나, 그간 임무에서 보여준 능력치가 돋보였다. 머리도 기민하게 잘 돌아가고, 전략을 짜는 데도 능하며, 실력 면에서도 다소 약한 외강경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만했다.
타주가 고민 끝에 말했다.
“초휴, 이 일은 네가 맡아주어야겠다. 당아는 기질상 눈에 띄기 쉬우니, 방가 잠입 때 들킬 소지가 많다. 걱정할 건 없다. 청룡회의 상벌은 줄곧 공정하게 이루어져 왔다. 네가 맡은 임무의 어려움이 가장 크다는 점을 참작해서, 임무가 끝나면 수당도 가장 많이 줄 것이다.”
초휴는 내심 탐탁지가 않았다.
수당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나서는 일 자체가 싫었기 때문이다.
사실 남들 틈바구니에 껴서, 흘러가는 대로 움직이는 게 안전하고 실리도 크기 마련이다. 하지만 타주에게 지명된 이상 거절할 권리는 없었다. 그저 분부를 받잡겠노라고 순순히 대답할밖에.
그제야 타주가 흡족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제 판이 다 짜였으니 세부적인 준비에 들어가면 되겠군. 좀 더 실감 나는 효과를 노리기 위해, 이 일의 내막은 다른 살수들에게는 절대 비밀로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방가를 치는 줄로만 알아야, 저들이 죽자 살자 덤벼들 테니 말이지. 양동 작전의 연극이라는 티가 절대로 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살수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번에 청룡회의 일반 살수들은 철저히 이용당하는 셈이었다.
물론 인간의 심리상 양동 작전이라는 것을 알면, 뒤에서 시늉만 하며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 들 수도 있다. 몇 사람만 그러면 몰라도, 백 명에 달하는 살수들이 죄다 그런 식이라면 누가 봐도 연극이라는 게 간파될 터였다.
다른 살수들 모르게 애당초 고수들만 따로 모아놓고 회의를 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다들 타주의 성격을 아는 마당에 뭐라고 항변할 수도 없었다. 그저 수긍의 뜻을 보인 후, 각자 맡은 일을 준비하러 갔다. 특히 방가 잠입을 맡은 초휴는 얼굴을 바꿔야 했다. 이 일은 청룡회 내에서 역용술에 그나마 능한 귀수왕이 맡았다.
귀수왕은 무공실력도 실력이지만 워낙 다재다능하고 잡학 다식한 자였다. 그래서 매번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이런 잡기(雜技)가 유난히 빛을 발하곤 했다. 심지어 살수들의 칼날보다 그의 잡기가 더 빨리 먹힐 때도 있었다.
역용술에 있어 특별히 고명한 축에는 못 들었지만, 그래도 어깨너머로 익힌 재주로 잠시나마 초휴를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자기 방으로 초휴를 데려간 그는 일단 인피면구(人皮面具)를 씌운 다음, 정체 모를 고만고만한 병들을 한 보따리 가져다가 초휴의 얼굴에 칠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면도칼과 세필로 한껏 다듬고 나자, 초휴의 얼굴은 순식간에 딴사람처럼 바뀌었다.
뒤이어 얼굴뿐 아니라, 양손을 비롯한 노출된 모든 피부에 누런 칠까지 하자, 초휴는 누가 봐도 얼굴이 누렇게 뜬 서른 살 남짓의 촌부로 보였다.
“정말 손재주가 절묘하기도 하십니다. 누가 붙인 별혼지는 몰라도, 귀수(鬼手)라고 참으로 잘도 붙였구려.”
초휴가 감탄하며 말하자 귀수왕이 껄껄 웃었다.
“이 정도 갖고 뭘 그러나. 역용술이 고명하기로 치자면 단연 풍만루가 최고지. 거기 정보원들은 얼굴을 천 개도 넘게 갖고 있다더라고. 늘 남의 집이나 문파에 숨어 들어가 귀신도 모르게 정보를 캐야 하니 그럴 테지만 말이지. 하지만 내 역용술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네. 지워질 수 있으니, 절대 물을 묻히면 안 되네. 그리고 자네 몸에서 발산되는 그 기세도 가려야 하네. 이대로는 모습은 촌부이면서, 나는 내강경이라고 선전하는 격이잖는가.”
귀수왕이 옥부(玉符) 한 조각을 그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이걸로 자네의 기세를 감추도록 하게. 우선 자네 힘으로 기세를 누른 후 이 옥부를 몸에 지니면 천인합일의 초절정 고수라 해도, 자네의 진짜 실력을 눈치 못 챌 걸세. 물론 먼저 출수하면 안 되지. 진기를 조금만 운용해도 옥부에 걸린 진법이 효력을 잃을 테니까.”
초휴도 자신이 변장한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뜻밖의 변고가 벌어지지 않는 한, 외양은 문제없어 보였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기면 초휴는 그 즉시 다 때려치우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초휴는 청룡회에 목숨 바쳐 충성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이번 임무는 청룡회라는 조직의 임무가 아니라, 타주의 개인적인 임무일 뿐이지 않은가. 남은 시일 동안 초휴는 자신의 외양에 어울릴 법한 몸가짐과 동작, 어조 등을 연습했다.
그로부터 반 개월 후, 드디어 극북표설성에서 방가로 사람을 보내왔다.
청룡회도 대거 출동하여 방가 주변에 매복한 상태로 결정적인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그 무렵 방가의 대문 앞은 취의장과 극북표설성 사람들은 물론, 구경하러 온 임중군 일대의 무림세력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구경거리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방가의 현명한 대처에 찬사를 보냈다. 원래 저급 비전함에서 보물이 나올 확률은 바다의 모래알보다도 작기 마련이었다. 아예 기대를 안 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을 정도였다.
하지만 강호가 워낙 넓다 보니, 별별 일이 다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런 기적적인 일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 나오곤 했다. 하긴 이런 맛이 있으니, 세상을 사는 재미도 있는 것이겠지만.
대부분의 작은 가문들은 보물을 손에 넣으면 대개 이성을 잃고 그것을 독차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보물로 인해 가문의 실력이 늘어나긴커녕 멸문지화를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방가의 판단은 확실히 현명했다. 자기 보물이 온 세상이 노리는 표적이 된 것을 눈치채자,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눈앞의 횡재보다 자신을 보호하고 지원해줄 확실한 뒷배를 택했으니 말이다.
방가는 임중군에서 평범한 수준의 가문이었다. 집안 내부도 좁아서, 밖은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상고시대 마도의 보물인 혈옥영롱이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나 한번 해보려고 몰려든 자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천진파와 금도문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후회막심한 나머지 접싯물에 코라도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이 이리될 줄 알았더라면 자기들끼리 싸우는 대신, 일단 방가로부터 물건부터 빼앗고 봤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보물이 뜬금없는 극북표설성의 차지가 되었으니, 남 좋은 일만 시킨 꼴이었다. 그야말로 후회막급이다. 그들 두 문파의 실력은 임중군에서나 통할 뿐이지, 극북표설성 앞에서는 개미만도 못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냥 쓰린 마음을 달랠 수밖에.
이때 초휴는 강호의 평범한 삼류 무사의 모습으로 군중 속에 있었다. 변장이 워낙 감쪽같아서 전혀 남의 이목을 끌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