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61)
1161화 선참후계(先斬後啓) (1)
초휴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원공성도 농담이 아님을 깨달았다.
천마궁과 극락마궁은 화목한 사이가 아니었다. 하긴 극락마궁은 그 해괴한 작태 때문에 그 어떤 세력과도 사이가 화목하지 않긴 했다.
극락마궁을 궤멸하고 천마궁이 남역 마도의 으뜸, 곧 대라천 전체의 마도 제일이 된다면 원공성으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초휴가 원하는 바 역시 천마궁과 이익이 충돌하는 일은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원공성은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극락마궁을 멸문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오. 안비풍 그자도 수완이 만만치 않고 말이지. 정말로 생사결을 벌인다면 나는 그를 당하기 어려우니까. 우리 천마궁 궁주님은······. 내 솔직히 말하리다. 수련 중 발생한 사고로 천마궁을 떠나실 수 없는 몸이오. 남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긴 하지만. 그러니 참전하실 수 없고. 극락마궁은 무엇이건 따지고 가리는 법이 없는지라 아무나 받아들여서 제자의 숫자도 아주 많지. 심성이나 자질이 들쭉날쭉하긴 해도, 고수를 적잖게 키워서 보유하고 있단 말이오. 아마 우리 천마궁보다 두 배는 강할 듯하군. 그간 극락마궁과 천마궁 간에 다툼은 잦았지만 큰 싸움으로 번진 적은 한 번도 없었지. 피차 상대방을 끝장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요.”
초휴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건 지금까지의 이야기지요. 내가 나서면 결과는 달라질 겁니다.”
원공성은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자신감이 넘치는군그래. 도대체 힘을 얼마나 동원할 수 있기에 그리 자신을 하시오? 황천각 전원이 나선다면 내 억지로라도 믿어 보겠지만······. 황천각이 정말 나서면 남역에서도 다른 세력이 끼어들 텐데?”
초휴는 손바닥을 펼쳐 내밀어 보였다.
한 가닥 강기가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돌며 뒤틀리고 있었다. 극한의 예리함이 쉬지 않고 주변의 모든 힘을 가르고 찢었다.
아주 가느다란 한 줄기 힘이었다. 그러나 원공성은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힘의 의미를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반보 무선에 들었군! 가까운 사람 중에 반보 무선이 있었소?”
원공성은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초휴가 안비풍의 만마고두를 막아냈을 때 원공성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서 그 상황을 전해 듣긴 했다.
그때 초휴는 아직 반보 무선이 아니었는데, 얼마나 지났다고 또 경지가 오른 것이다. 이렇게 빨리 실력이 느는 속도에는 무선인 원공성조차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쪽에 반보 무선이 두 사람 더 있습니다. 극락마궁 총단을 총공격할 때는 그 둘 다 나설 겁니다. 천마궁에서 결단만 내린다면, 어떤 방법으로 극락마궁을 무찌를지 계책은 내가 내겠습니다. 천마궁의 손실은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말이죠.”
초휴는 제 머리를 가리켰다.
“저는 주먹과 칼로 해결하기를 좋아하지만, 머리를 써야 할 때는 써야지요.”
사실 대라천에서는 하계에서 사용하던 온갖 수단을 거의 쓴 적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실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머리를 쓰고 계책을 꾸미려면 그만한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 꾀에 제가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초휴는 무선과 상대할 만한 자신이 있었다.
원공성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일어섰다.
“초 소협, 좀 기다려 주시오. 워낙 중대한 일이니 천마궁에 돌아가 궁주께 여쭈어본 후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으니.”
* * *
남역의 천마궁은 옛 마굴 유적에 자리하고 있었다. 원래는 동천복지처럼 작은 세계였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비경이 깨져나가고 대라천과 하나로 융합된 것이다.
천마궁 근방 십 리는 모두 칠흑처럼 시커먼 돌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풀은 한 포기도 자라지 않았고 살아있는 것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두려운 마기만 뿜어져 나오는지라 마도 무공을 수행하기에는 오히려 좋았다.
천마궁 총단은 그 한가운데 산을 등지고 지어져 있었다.
궁전 건물은 모두 그 칠흑 같은 돌덩이로 지어졌다. 이에 천마궁 건물 자체가 자연스럽게 마기가 솟구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원공성은 천마궁 가장 깊숙한 전각에 서 있었다. 옆에는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이 다리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수염과 머리가 온통 희게 세어 매우 노쇠해 보였다.
그러나 가장 기이한 것은 그의 다리였다. 마치 돌인 것처럼 그의 하체는 천마궁 대전과 한데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가 바로 현 천마궁 궁주 ‘대황마존(大荒魔尊)’ ‘좌구량(左丘粱)’으로, 한때는 남역을 누비던 무선 팔중천의 강자였다.
수십년 전 좌구량은 마굴에서 태어난 마령(魔靈)에 제를 올려 대전과 융합시킴으로써 천마궁을 수호하게 만들려 했다. 그러다 애석하게도 중간에 사고가 생겨, 자신의 몸이 대전과 융합되는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해서 좌구량은 다시는 천마궁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자신의 육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일평생 천마궁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게 된 것이다.
좌구량이 수련한 무공은 특수한 것이라 육신의 단련이 매우 중요했다. 육신을 버린다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무선의 실력을 버리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좌구량은 이 대전에서 나가지 않았다.
원공성이 초휴의 제안을 이야기하자 좌구량은 코웃음을 치더니 손을 저었다.
“안 돼. 공성,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가 호언장담을 믿고서 그자와 손을 잡고 그리 큰일을 벌이겠다고? 웃기는 소리! 우리 천마궁이 남역에서 이리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신중하고 침착하게 처신했기 때문인 걸 알아야지. 위험한 고비마다 알맞은 선택을 해와서 오늘날까지 크게 쇠약해지지 않고 이렇게 버티고 있지 않나. 그렇게 위험천만한 일은 절대 해선 안 돼!”
원공성은 속으로 생각했다.
‘퍽도 신중했지. 그때 당신이 느닷없이 무슨 마령을 제련해 보겠다고 설치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하고 말이다.
그러나 속내야 어떻건 일단 설득을 해야 했다.
“종주님, 초휴는 나이는 많지 않아도 결코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 동역에서 명성이 대단하여 무선 강자와 버금갈 정도입니다. 천지통현의 실력으로 안비풍의 신통 만마고두에 맞선 적도 있고, 이미 반보 무선의 실력을 지녔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극락마궁을 없애기만 하면 우리 천마궁은······.”
“안 된다면 안 돼!”
좌구량은 대뜸 원공성의 말을 끊어 버렸다. 그 단호한 태도에는 어떤 설득도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좌구량이 그처럼 완강하게 굴자 원공성도 맥이 빠졌다.
좌구량은 수십년 동안 천마궁을 나선 적이 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천마궁을 손에 틀어쥐고 있었다.
궁주 좌구량이 내린 결정은 원공성이라 할지라도 뒤집을 수가 없었다. 그는 풀이 죽어 물러났다.
그러나 원공성은 그래도 도리를 아는 사람이었다. 일이 틀어졌으나 그래도 직접 동역까지 찾아가서 초휴에게 결과를 말해주었다.
초휴는 원공성의 말에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좌 궁주의 태도는 그렇다 치고, 원 궁주 본인은 찬성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원공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내가 동의해 봐야 헛일이오. 궁주의 말씀은 천금의 무게를 지닌 것이니까. 궁주님이 반대하시는 이상 내 심복 몇몇을 제외한 천마궁 인원은 거의 동원할 수 없고 말이지.”
초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원 궁주는 좌 궁주와 관계가 어찌 되는지요?”
“내 사백이시오.”
초휴의 눈초리가 뭔가 이상해진 것을 보고 원공성이 설명했다.
“내 사부는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소. 생전에 현 궁주와 사이도 좋으셨고, 종문 내 암투 같은 것도 없었지. 궁주가 이렇게 말씀하신 적도 있소. 천마궁 궁주 자리를 이어받을 자격이 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고.”
초휴는 양손을 짝 마주쳤다.
“그렇다면 일이 쉽겠군요. 제게 계책이 하나 있는데 한 번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무슨 계책인데?”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간단합니다. 선참후계지요. 좌 궁주가 동의하지 않으신다고요? 그럼 무슨 수를 쓰든 간에 번개 같은 속도로 극락마궁 명현우를 해치운 뒤, 그의 머리를 좌 궁주에게 가져가서 보여주는 겁니다. 그럼 당연히 동의하시겠지요. 명현우의 분전은 극락마궁에서 가장 중요한 분전입니다. 그곳을 없애 버리면 일은 알아서 굴러갈 수밖에 없죠. 좌 궁주가 동의하건 말건 쌍방은 필사의 격전을 벌이게 되어있습니다.”
말이 선참후계지, 종주 자리를 내놓으라는 협박과 다를 게 없었다.
천마궁이 극락마궁 전주를 죽인다면 두 문파는 싸우기 싫어도 사생결단을 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원공성은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그 정도 수준에 다다른 무사 중에서 우유부단한 자는 드물기 마련인 법이다.
그는 본래 과감한 성격이었다. 전에 안비풍을 막아선 것도, 초휴에게 독고유아의 정혈을 교환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도 그래서였다.
초휴의 계획은 좀 모험으로 보이긴 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정말로 명현우의 수급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좌구량도 무조건 승낙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했다.
“명현우를 죽이기야 쉽지. 하지만 극락마궁이 눈치채지 않겠소?”
원공성의 물음에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내가 책임지고 깔끔하게 처리할 테니까요. 사람을 죽이는 일에 매번 직접 나설 필요는 없죠. 원 궁주는 일단 기다리고 계시면 됩니다.”
지금 초휴의 실력이면 명현우를 죽이는 건 간단했다. 물론 극락마궁에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문제였다. 그가 움직이는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나서서 싸울 자는 다른 사람이어야 했다.
누구를 보낼지 초휴는 이미 생각해 두었다. 만족이 딱 알맞았다. 초휴가 열심히 돌봐준 덕에 흑라부의 실력은 제라산맥을 통틀어 첫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상태였다.
그리고 초휴는 만족 사람들의 특징도 잘 알았다. 무슨 일을 할 때 눈앞의 일만 해치우려 드는 습성이 있었다. 먼 앞날이 어찌 될지 재고 따져서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만족의 시야가 좁아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습관이 그런 것이었다. 물론 좋은 습관이라 할 수는 없었다.
초휴가 흑라부에 시킨 일은 아주 간단했다. 여러 부족을 이끌고 다 같이 명현우의 분전을 공격하라는 것이었다.
이건 그가 처음 생각해 낸 방법도 아니었다.
전에 한강성도 창오군에서 소란을 일으키려고 몇몇 만족 마을을 선동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반란을 일으켜 창오군 전임 군수를 죽이기까지 했던 전력이 있었다.
* * *
명현우의 분전은 남역 밀림 가까이에 있었으나 흑라부의 세력 범위는 아니었다.
물론 그곳의 만족들도 흑라부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교류하는 방식도 간단했다. 자기 조상이나 신 따위를 걸고 맹세하면 쉽게 상대를 믿었다.
명현우는 초휴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는 어둡고 음침한 대전 안에 서 있었다. 앞에는 온갖 종류의 선혈이 놓여 있었다. 주문이 빙글빙글 돌며 무사의 원신의 힘이나 진령 따위를 가둬 놓고 있었다.
극락마궁은 각양각색의 사악하고 기이한 연구를 즐겼다. 누군가를 죽이려면 그 사람에 관해 알아야 했다.
온갖 실험을 통해 보물을 손에 넣기도 하고, 어떤 힘을 얻기도 했다. 당연히 괴물을 만들어낼 때도 있었다.
명현우는 선혈과 마기를 혼합하여 진령 하나를 악귀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그것을 체내에 융합해 본 다음 혀를 쯧쯧 찼다.
만족의 육신은 강했으나 정신력이 너무 약했다. 그들에게서 진령을 뽑아내려면 제사장 정도는 되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만족을 잡아 오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명현우는 분전 위치를 좀 더 남만 내부로 이동하고 싶었다.
그때 분전 바깥에서 어지러운 고함이 들려왔다. 명현우는 안색이 변하여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극락마궁 제자 하나가 공황에 빠져 외쳤다.
“만족입니다! 여러 부족이 연합해서 우리 분전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진법이 모두 부서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