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69)
1169화 거짓말이다
공손 장로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초 대인, 극락마궁에는 찾으시는 물건 외에도 만 년 넘게 쌓인 보물이 많습니다. 한 가지만 약속하신다면 전부 내드리겠습니다.”
“무슨 약속?”
공손 장로는 저편에서 미친 사람처럼 극락마궁 무사들을 도륙하는 왕일지를 바라보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일이 다 마무리된 후 저놈을 제 손으로 죽이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아는 걸 모조리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 안비풍조차 그의 손자가 죽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공손 장로에게는 자손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나쯤 죽었다고 대수겠는가.
그러나 그 자신만은 달랐다. 왕일지가 죽인 손자는 그가 제일 아끼고 사랑하던 아이였다.
혈육을 죽인 원수는 불공대천이다. 극락마궁의 멸망은 방관할 수 있어도 손자를 죽인 원수가 버젓이 목숨을 부지하고 잘 나가는 것을 어찌 두고 보겠는가.
그리고 초휴가 왕일지를 앞에 내세운 것은 그의 신분을 이용하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이제 극락마궁은 곧 멸망할 테니, 왕일지의 용도도 끝날 터였다. 그러니 이 정도의 사소한 일은 초휴도 승낙해 주지 않겠는가.
초휴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담담히 말했다.
“공손 장로가 그리 정이 깊은 성품일 줄은 몰랐군. 문제없소. 약속하지.”
공손 장로의 안내를 받은 초휴는 순조롭게 극락마궁의 장보각(藏寶閣)에 들어갔다.
종문에서 이 정도로 중요한 장소는 보통 진법을 쳐 두지만, 대개 공격형이 아니라 방어형 진법이었다. 그런 진법은 가장 까다로운 종류라서 풀려면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 상천량이 성쇠의 영역을 펼친다 해도 큰 효과가 없을 터였다.
다행히 공손 장로가 길을 튼 덕분에 초휴는 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에는 온갖 기괴한 것이 잔뜩 있었다.
극락마궁은 인간의 기혈, 육신, 심지어 원신까지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수많은 괴물과 알 수 없는 존재를 만들어냈다.
초휴는 그것들을 빤히 눈으로 보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극락마궁은 그냥 마가 아니라 광마라고 해야겠구나 싶었다.
정말 뚜렷한 목표가 있었으면 또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담한 발상이 하나 떠오르면 미친 듯이 살육을 벌여 인간의 피와 살로 실험을 하곤 했던 것이다.
실패하면 그냥 갖다버리고 다른 실험으로 바꾼다. 그러다 성공하여 좀 쓸데가 있는 괴물이나 비법 따위를 만들어내면 이득을 보는 셈이었다.
초휴도 사람은 적잖게 죽였다. 그러니 극락마궁이 무고한 사람들을 함부로 죽였다며 위선적인 비난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극락마궁의 이런 행태는 정말로 죽여 달라고 모두에게 외치는 거나 매한가지 아닌가.
초휴의 눈초리가 이상한 것을 본 공손 장로가 민망한 듯 웃으며 설명했다.
“초 대인, 사실 극락마궁이 해온 일에 저는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극락마궁 안에서도 여러 유파가 나뉩니다. 어떤 사람은 굳이 괴상망측한 비법을 연구하느라 혈안이지만 얌전히 마공이나 수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극락마궁도 이렇지 않았습니다. 후손들이 난동을 피워 극락마궁의 핵심 전승을 함부로 바꾸더니 이렇게 된 것이지요. 우리 극락마궁의 핵심 전승은 사실 ‘조화(造化)’ 두 글자로 귀결됩니다. 마란 천지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도불 양맥이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과 달리 수천수만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마가 만 가지 모습을 지니듯, 극락마궁의 조화 역시 만 가지로 변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다만 그 길은 지극히 어렵습니다. 그 무도의 핵심에 다다를 수 있었던 극락마궁 제자는 너무도 드물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없다고 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이렇게 되고 만 것이죠. 요사한 비술이나 술법만 부리고, 정작 극락마궁 무도의 핵심을 잊은 셈입니다.”
공손 장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지막 밀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극락마궁에서 가장 진귀하게 여기는 것은 모두 여기 있습니다. 그 강자의 선혈 또한 여기 보관되어 있지요.”
그는 옥병을 하나 꺼냈다. 병 안에 선혈이 봉인되어 있었는데 여덟 방울이나 되어서 천마궁보다 더 많았다. 공손 장로가 말했다.
“이 강자와 얽힌 전설은 사문의 웃어른들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간 궁주와 여러 무사가 이 선혈의 소화를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했습니다. 이것을 이용한 실험 또한 시도했으나 모조리 다 실패했지요. 원래 십여 방울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것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극락마궁의 선대 궁주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정혈에는 죽음의 기운, 사기(死氣)가 담겨 있다고 말입니다. 그 때문에 소화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옛날 그 강자는 죽지 않고 능소종에 봉인되어 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정혈에 왜 사기가 담긴 것인지 퍽 괴이한 일입니다.”
초휴는 눈썹을 움찔했다.
‘사기?’
하지만 더 묻지 않고 밀실의 다른 보물로 눈을 돌렸다.
원공성한테, 자신은 독고유아의 정혈만 있으면 족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휴는 얌전하게 정혈만 챙기고 눈앞의 보물을 내팽개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바퀴 둘러보아도 특별히 가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에게 평범한 수련 자원 따위는 차고 넘쳤으니, 그런 거야 자신의 ‘대범함’을 뽐낼 겸 전부 원공성에게 주면 그만이었다.
나머지는······ 아무래도 극락마궁의 보물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뭔지 모를 흉수의 피나 골수, 심지어 뇌까지 있지 않은가.
가장 기괴한 것으로는 살아 있는 사람의 원신을 봉인해 둔 것도 있었다. 그런 것을 가져가 봐야 어디에 쓰겠는가.
그러나 밀실 한가운데 있는 것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 그것은 옥함에 담겨 있는 새카만 단약이었다. 움직이는 액체 상태처럼 보이는지라 정확히 말하면 검은색과도 달랐다.
“이건 뭐요?”
“조화의 마종(魔種)입니다. 일만년 전, 하계에 있던 시절 마지막으로 조화 마도를 수련했던 궁주께서 남기셨지요. 그분은 이것을 남기시면서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후인들도 이것이 뭔지 몰랐고, 오래도록 연구했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조사님이 남기신 것이니 줄곧 보관해 오고 있었던 것이죠.”
초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것을 챙겼다.
이걸 어디다 쓸 수 있을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 마종을 본 순간 원시마굴에서 비롯된 몸속 마기가 일순 진동했다.
그 마기는 예전 군무신의 정두칠전을 직면했을 때 법천상지를 터득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이런 떨림이 나타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쓸모가 있건, 없건 일단 챙겨놓고 볼 일이었다.
한 바퀴 둘러보고 쓸 만한 것을 못 찾은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됐소. 난 가봐야겠군.”
공손 장로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럼 제가 왕일지 그놈을 죽이도록 도와주시겠지요?”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죽이다니, 왜 죽여야 하지? 그자는 말도 잘 듣고, 이번 일에 큰 도움이 되었는데. 그자를 죽이면 남역에서의 내 명성에 금이 갈 게 아닌가. 그리고 내가 가봐야겠다고 했지, 당신이 가도 된다고는 하지 않았소.”
공손 장로는 입을 쩍 벌리고 부릅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목소리가 떨렸다.
“초 대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까 저와 약속하셨잖습니까? 저는 성심을 다해 대인을 도와 드렸습니다!”
초휴는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약속하긴 했지만, 지킬 생각은 없었소. 당신 같은 사마외도를 상대로 강호의 도의를 따진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초휴의 신역이 펼쳐졌다. 공손 장로는 순식간에 갇혀 버렸다.
그는 극락마궁에서 실력이 강한 편에 속하지 않았다. 그의 경력과 사무 능력 덕분에 지위가 높았던 것뿐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나이가 들어 힘도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초휴의 신역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정혈과 원신을 태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초휴가 무표정한 얼굴로 날린 일권에 그는 왈칵 선혈을 토하고 호흡이 희미해졌다.
한 번 더 주먹을 내지르자 뼈가 다 부서지고 강기가 흩어졌다. 세 번째 주먹을 날리자 밀실에는 한 덩어리의 혈무만 남았다.
“마도 장로가 되어서 이리도 순진하다니. 남을 쉽게 믿으면 곤란하다는 이치도 못 깨쳤나. 정말 딱한 사람이군 그래.”
초휴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가뿐하게 그곳을 떠났다.
* * *
그때 밖에서는 원공성이 전력으로 차천마수에 갇힌 안비풍을 옥죄고 있었다. 극한까지 힘을 폭발시키며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무선 사중천이 오중천과 맞서는 싸움이었다. 그것도 상대는 남역에서 내로라할 전투력을 지닌 안비풍인 것이다. 초휴와 상천량이 주의를 끌어 기습에 성공하긴 했으나 그를 죽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끊임없이 힘을 침식당하고 있는 안비풍은 전혀 절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심지어 분노하거나 욕을 퍼붓지도 않았다. 원공성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비풍은 양손으로 인결을 맺은 채였다. 그런데 두 손이 각기 완전히 다른 인결을 만들고 있었다.
왼쪽에서는 그윽한 빛이 흘러나오며 마기가 치솟아 차천마수의 침식을 막았다. 반면 오른쪽 인결에서는 희미한 핏빛이 끊임없이 휘돌고 있었다.
원공성은 기묘한 분위기를 참을 수가 없어 외쳤다.
“안비풍, 더 버텨서 무엇 하려느냐? 극락마궁은 이미 무너졌다. 너희 일맥은 망했단 말이다!”
안비풍의 입가에 흉포한 살기가 떠올랐다. 그는 히죽 웃고 있었다.
“그래, 극락마궁은 무너졌지. 그러니 오늘 너희도 다 죽을 것이다. 극락마궁과 함께 모조리 이곳에 순장해 주마! 하지만 극락마궁은 망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극락마궁은 영원할 것이다!”
원공성이 다시 입을 열어 대꾸하려던 순간, 새빨간 빛이 휘돌면서 강대한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쳤다.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차천마수는 그대로 터져 나가고 말았다.
“저게 대체 뭐야?”
원공성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눈앞을 바라보았다.
안비풍의 낯빛은 백지장 같아서 기혈을 싹 빨아 먹힌 듯했다. 그의 주변을 기괴하기 짝이 없는 서른여섯 개의 무언가가 감싸고 있었다. 원공성은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서른여섯, 삼심육존(三十六尊)의 괴물은 마치 아무렇게나 접붙여 놓은 것 같았다. 어떤 것은 사람의 몸에 짐승 머리였고, 어떤 것은 반대로 짐승의 몸에 사람 머리가 달려 있지 않은가. 전혀 사람 같지 않고, 아무렇게나 멋대로 갖다 붙여 만든 것 같은 괴물도 있었다.
게다가 그것들은 모두가 살아 있었다. 흉포하기 이를 데 없는 원신의 힘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삼십육존 괴물이 한 바퀴 빙글 돌며 진세를 형성하더니 성신의 힘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몸에서 주문이 번쩍이며 별빛처럼 빛났다.
그 순간 기괴한 괴물들의 몸에 정통 도문의 기세가 섞여들었다. 정도와 마도가 뒤섞인 그 모습은 너무도 기괴했다.
“그게 대체 뭐지?”
원공성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안비풍이 업신여기는 말투로 말했다.
“뭐냐고? 우리 극락마궁 무도의 진정한 핵심이다! 나 자신을 위해 천지의 조화를 쓰는 것! 우리 극락마궁 무도의 핵심은 무로부터 유를 만드는, 생사 음양을 관통하는 조화의 힘이다! 이 주천마신대진의 삼십육존 마신은 내가 백년의 시간을 바쳐 무수한 흉수의 진령과 만족 고수의 원신을 써서 만들어낸 것이다. 하나하나가 모두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진짜 생령이란 말이다! 상고 마신은 천지에서 생겨난 존재라 천지의 위력을 지닌다. 나의 삼십육존 마신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 천지의 힘은 빌릴 수 없지만, 그 또한 마신이지. 후천적 마신! 천지가 마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조화의 무공이 절정에 달하면 신이 된다는 말이다!”
원공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친놈! 이런 미친놈을 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