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78)
1178화 가…… 강도야!
쇠가 부딪치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노인이 들고 있던 장검이 순식간에 깨져나가고, 그는 거대한 힘에 베여 나가떨어졌다.
안 그래도 그리 약한 편이 아니던 초휴의 육신이 지금은 마신의 힘까지 얻어 어마어마하게 강한 상태였다. 동급 중 진청제를 제외하면 누구도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나가떨어진 노인은 초휴의 신역이 펼쳐지자 억지로 끌려들어 왔다. 그는 경악하여 기혈을 불태웠다. 그러나 힘을 터뜨리기도 전에 기혈이 멈추더니 체내를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일순간 터진 반작용에 노인은 울컥 선혈을 토했다.
“그 나이를 먹고도 기혈을 갖고 장난을 치나?”
초휴의 태연한 전음이 들려왔다. 신역에서 음양이 뒤집히고 오행이 뒤바뀌며 노인을 찢어버리려 했다.
“좋다, 어디 끝장을 보자!”
그러나 노인도 어지간히 독했다. 그는 이를 꽉 악물더니 자신의 심장에 손을 쑤셔 넣었다. 제 손으로 심장을 으깨 선혈을 흩뿌리자 피가 칠흑처럼 어두운색으로 변하더니 끔찍한 마신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초휴는 이미 인결을 맺고 있었다. 죽어가는 노인의 눈 속에서 비술로 만들어낸 허상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다. 노인은 자신이 만든 허상에 덮여 휘돌고 뒤틀리다 결국 박살이 나서 죽었다.
선혈이 흩뿌려졌다. 노인은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영패 네 개와 호두알 크기의 혼정이 땅에 뒹굴었다.
초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화천마의 힘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천마는 형상이 없고, 조화는 형태가 없다. 그러니 수많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음기와 마기는 무엇이건 조화천마의 힘으로 조종할 수 있었다. 심지어 다른 속성의 힘을 조화천마의 힘으로 역전시켜 마기로 바꾸는 것까지 가능했다.
이 노인도 마도 무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폭발적이고 과감하며 사나운 무도를 구사했다. 아마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낭인 무사였으리라.
고작 하루가 좀 지났을 뿐인데 사람과 요귀를 하나씩 죽이다니, 효율이 썩 높았다.
그러고 보면 노인의 발상은 정말 기발했다. 귀신이 사람 흉내를 내는 법이지, 사람이 귀신 흉내를 낼 줄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중주는 특별한 곳이다. 그러니 비법을 써서 기운까지 억눌러 귀신 같은 모습을 가장한다면 누구나 그 사람이 요귀인 줄 알 것이다.
그리고 요귀와 마주치면 대부분은 본체의 약점을 조심스레 탐색하기 마련이다. 대뜸 출수부터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노인이 가까이 다가와 기습하기가 쉬웠던 것이다.
혼정의 무게를 어림잡아 보니 한 근도 안 되었다. 초휴는 실망스러워서 입을 삐죽거렸다. 너무 작아서 소화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며 자기가 온 길을 되짚어 보았다. 이 골짜기를 넘어 더 나아가면 중주의 한복판이었다.
그러니 노인은 그와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길목도 잘 골랐으나 실력이 좀 약했을 뿐이다. 혹은, 초휴를 만난 게 운이 나빴거나.
초휴는 더 가지 않고 그 골짜기 입구에서 노인이 하려던 일을 ‘대신’하기로 했다. 그는 도를 앞에 꽂아두고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기다렸다.
그러나 초휴의 ‘손님’ 운은 노인보다 못했다. 꼬박 하루를 기다렸는데 아무도 마주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다음날이 되어서야 전무신종 무사 하나가 왔는데 우람한 체구에 갑옷 차림이었다. 초휴를 본 전무신종 무사는 잠시 굳어 버렸다.
전무신종의 전신전 전주 사공가라는 초휴에 관해 알고 있었다. 말인즉슨 동천복지 싸움에 참여했던 전신전 무사라면 알아봤을 터다.
하지만, 이 무사는 전신전 출신이 아닌지라 초휴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물론, 눈앞의 상대는 누가 봐도 괴이쩍어 보였다. 중주에서는 남과 싸우고 있거나, 싸울 상대를 찾아다니거나 둘 중 하나다. 이런 곳에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게 말이 되는가?
누군가 온 것을 본 초휴는 이리저리 목을 돌렸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하나 왔군. 여기 나의 길을 지나려면······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낸 길은 아니군. 좌우간 가진 영패와 혼정을 다 내놔라.”
전무신종 무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초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도 가지 않았다. 뜬금없이 대체 이런 소리를 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초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내 말이 어려워서 못 알아듣겠나? 그럼 쉽게 말해주지, 난 지금 강도짓을 하는 중이니까 협조하란 말이다.”
전무신종 무사가 냉소했다.
“감히 여기서 길을 막고 강도질을 하다니, 참으로 대담하구나. 어디 네놈 재주도 간덩이만큼 대단한가 보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몸을 날리자 기혈의 힘이 광포하게 끓어올랐다. 주변 천지의 힘이 움직이며 전무신종 무사를 감싸고 거대한 폭풍을 형성했다.
일권이 날아들자 폭음이 온 천지를 울렸다. 내딛는 걸음마다 발아래 대지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경악할만한 위력이었다.
전무신종 무사는 육신 위주의 무도를 수련하는데 동급 중에는 적수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그의 상대는 초휴였다.
초휴는 도에 손도 대지 않고 일권을 날렸다.
아무 변화도 없는 단순한 일권이었으나 일순 천지가 멈춘 듯했다. 천지의 힘이 저절로 초휴의 몸속에 흘러들었다.
법천상지를 쓴 것도 아니었고 몸이 마신처럼 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일권에는 법천상지의 기운 칠 할이 담겨 있었다.
굉음이 터지며 두 주먹이 맞부딪쳤다. 발아래 대지가 그대로 수백 장의 거대한 구덩이로 변했다.
전무신종 무사의 눈빛은 멸시에서 공포로 변했다. 강대한 힘에 벌거숭이로 노출된 공포였다. 오른팔의 근육이 모조리 박살 나며 팔이 쪼개진 것처럼 핏자국이 생겼다.
그는 급하게 뒤로 물러서며 그 힘을 끊어 버리려 했다. 그러나 초휴가 연이어 주먹을 날렸다.
전무신종 무사는 초휴의 일권을 받아내지 못하고 사정없이 나가떨어졌다. 입에서 선혈이 울컥 흘러나왔다.
초휴는 느긋하게 전무신종 무사에게 다가가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가진 걸 다 내놔라.”
전무신종 무사의 얼굴은 원통함과 경악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자기 실력이 상대보다 못하니 어쩌겠는가?
초휴가 특별히 살기를 품고 덤비는 게 아니라는 건 그도 느낄 수 있었다. 억지로 버티다가 죽으면 그거야말로 치명적인 손해였다. 중주에서 사람을 죽이는 거야 별일도 아니지 않은가.
전무신종 무사가 건넨 영패는 두 개뿐이었으나 혼정은 네 개나 되었다. 초휴는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우락부락 생긴 놈이 요귀 퇴치에 소질이 있는 건가?
“됐다, 이제 가도 된다. 그리고 똑똑히 기억해 둬라. 네 것을 빼앗은 자는 동역의 초휴다.”
전무신종 무사는 충격받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주먹 두 방으로 자신에게 중상을 입힌 자의 정체를 똑똑히 알게 된 것이다.
천마궁과 연합해 남역 대문파 극락마궁을 멸망시킨 초휴였다니!
고존의 전인에다가 반보 무선의 실력을 지닌 자. 심지어 전력을 폭발시키면 무선과 정면으로 맞설 정도의 전투력까지 지니고 있지 않은가.
초휴 자신은 잘 몰랐지만, 남역에서 그의 명성은 꽤 높았다. 이번 대라신궁 선발전에서 가장 위험한 상대의 하나로 초휴를 꼽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무선은 아니었으나 그와 비슷한 급의 존재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조금 전까지는 억울하고 원통해서 미칠 지경이었으나, 초휴의 이름을 듣자 그는 잽싸게 일어나서 정양할 곳을 찾으러 갔다. 초휴 손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운이 좋다 해야 할 테니까.
초휴는 사람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강도질을 하려는 거지 변태 살인광이 아니었으니까.
한 번 강도를 당한 사람이 요귀를 한 무더기 죽이고 다시 강도질을 당하러 와주면 참 좋겠구나 싶었다.
단물, 쓴 물 모조리 빼먹을 수 있지 않은가.
이름을 알려준 것도 우쭐대고 싶어서가 아니라 중주 안 무사들에게 소문이 널리 퍼지기를 바라서였다. 그러다 보면 여봉선과 다른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 찾아올 게 아닌가.
* * *
그렇게 며칠을, 초휴는 토끼가 그루터기에 머리를 들이박기를 바라며 그 자리를 지키는 농부처럼 가만히 앉아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재수가 좋은 날에는 일고여덟 명, 나쁜 날에도 두세 명쯤은 왔다. 하지만 그와 몇 합을 겨룰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무것도 빼앗지 못한 사람은 딱 하나 있었다.
여섯째 되던 날 정오, 한창나이의 젊은 얼굴에 웃는 인상의 도사 하나가 왔다.
도사는 몇 번이나 벌어진 싸움으로 엉망이 된 땅바닥을 보았고, 은은한 피 냄새도 맡았다. 그는 날카롭게 잘 빠진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그대는 귀신인가?”
“사람이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소?”
“강도질을 하는 중인데?”
젊은 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사의 몸에서 도온의 빛이 휘돌더니 지수화풍 네 가지의 힘이 변화무쌍하게 움직였다. 법칙이 뒤틀리더니 거대한 검은 구멍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는 반보 무선이었다!
종추수가 초휴에게 귀띔해 준 바 있었다. 중주에서 무선 일중천을 만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그러니 반보 무선을 마주치는 거야 당연했다. 초휴도 자신이 중주를 천하무적으로 종횡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도사는 정말 젊었다. 너무 젊은 반보 무선이라 초휴도 놀랄 정도였다.
무슨 비법을 따로 수련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나이가 젊었다. 그런데도 벌써 반보 무선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젊은 도사가 불진을 휙 떨쳤다. 가뿐하고 편안해 보이는 동작이었으나 스치는 곳마다 검은 구멍 같은 힘이 모든 것을 뒤틀어 버렸다. 천지 원기마저 일그러지며 변하기 시작했다.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그러나 도문 무공의 수련이 일정 경지에 이르면 자연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신역이 폭발적으로 퍼지면서 뒤바뀌고 비틀린 음양이 도사의 힘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는 몸을 날려 순식간에 젊은 도사의 앞에 다가섰다. 산을 무너뜨릴 듯한 일권이 날아들자 젊은 도사는 빙그레 웃었다.
“근접전에 능하신가 보군요? 마침 잘 되었습니다. 빈도도 무공을 갓 소성한 터라 싸워볼 만한 상대를 찾고 있던 참이라서요.”
그렇게 말한 도사는 일권을 마주 내찔렀다. 하얗고 보드라워 보이던 주먹이 금빛으로 물들며 엄청난 폭음을 냈다. 주먹을 맞부딪친 두 사람은 몇십 장이나 뒤로 물러났다.
미풍이 불어왔다. 살랑이는 바람결에 대지의 모래와 돌이 모조리 가루로 부서져 허공에 떠올랐다.
두 사람의 눈에는 동시에 이채로운 기색이 돌았다.
다음 순간 초휴는 칼을 뽑았다. 사납고 격렬한 도의가 대지를 찢어 버릴 듯했다. 그것은 형체도 질량도 없는 허무의 도세였다.
젊은 도사도 은색 도검(道劍)을 손에 들었다. 장검 끝을 슬며시 내찌르자 도온이 희미하게 돌더니 검기가 천지에 진동했다.
도세와 검기가 맞부딪치고, 강대한 예기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소용돌이치는 폭풍이 끊임없이 골짜기를 쓸어냈다.
그러나 폭풍이 가라앉자 이미 초휴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환술인가? 재미있군.”
도사는 끊임없이 뭔가 중얼거리면서 빠르게 인결을 맺었다. 지수화풍 사극(四極)의 힘이 미친 듯이 빠르게 그를 감싸고 돌았다. 마지막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원기의 폭풍이 사방으로 확 퍼져 나갔다.
근방 천 장 범위가 모조리 원기 폭풍에 휩쓸렸다. 위력이 대단히 강한 건 아니었으나 그 범위가 너무 넓었다.
도사는 눈을 반쯤 감고 그 모든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환술은 환각에 불과하다. 눈을 속일 수 있고 감지력도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르나, 존재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가 초휴의 환술을 꿰뚫어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천지의 힘, 천지의 원기, 천지의 도, 이 모든 것이 그에게 초휴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