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89)
1189화 불문의 벗이 악을 대신 처단하다 (1)
아마도 전무신종 무사는 여러 난관을 거쳐 대라신궁에서 싸울 자격을 갖게 되었으리라. 그런데 칠대한을 손에 넣자 요귀에게 죽었으니,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너무 공교롭다 싶었다.
하지만 초휴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명이 끈질긴 걸 믿었다. 진작 파해와 멸지, 이 두 초식을 터득했는데도 여태 끄떡없이 목숨이 붙어있지 않은가. 하나쯤 더 추가된다고 해서 대수겠는가.
그는 물건을 잘 챙겨 넣은 후 내친김에 전무신종 무사와 천라보찰 승려의 시신도 안장해 주었다. 남의 물건을 차지했으니, 그 정도의 성의 표시는 해야 할 터였다.
천라보찰 승려 자체는 요귀가 아니었고, 그의 육도윤회탁을 초휴가 차지한 것도 어찌 보면 인과인 셈이었다. 그간 불종 화상들을 눈꼴사납게 여겨온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는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만 갑시다. 중주 깊이 들어가 일행들을 모아야지요.”
초휴가 호쾌한 손짓으로 상천량을 불렀다. 두 사람은 그길로 함께 중주 내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로 초휴가 불가와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는 건지, 승려를 안장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몇 명의 승려들 조우하게 되었다.
초휴와 상천량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범교 무사 세 명이 천라보찰 무사 한 명을 협공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원 천지통현 실력자였다. 게다가 중주에 들어올 자격을 지닐 정도면, 양쪽 다 자기 종문에서는 한가락 하는 인물일 테니 실력이 약할 리 없었다.
따라서 개개의 실력은 별반 차이 없었으나, 머릿수에서 밀리다 보니 천라보찰 승려는 이내 열세에 처했다. 중년 나이의 그 승려는 하계의 대광명사와 유사한 연체 쪽 무도 노선을 견지해온 자로 보였다.
더는 후퇴할 곳도 없게 된 그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노호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몸에 걸치고 있던 적홍색 가사가 찢어지며 강건한 상체가 드러났다.
전신 피부에 걸쳐 금색 범문이 하나씩 잇따라 떠오르니, 그의 온몸은 순식간에 도금을 입힌 것처럼 금빛으로 물들었다.
이에 범교 승려 하나가 대거 영역을 펼치자, 괴이한 마기를 머금은 흑색 연무가 목이 천 개 달린 거대한 뱀으로 화하더니 상대의 금색 불광을 끊임없이 갉아 먹었다. 그 승려는 거센 공격을 하면서 상대를 비웃었다.
“소불멸금신(小不滅金身)? 무선이나 다룰 수 있는 범문으로 불멸금신과 같은 신통을 쓰려 하다니! 그래 봐야 가소로운 수작일 뿐이다. 법명(法明) 화상, 당신네 천라보찰은 말끝마다 우리 범교가 이단이라고 비웃지 않았던가? 헌데 천지통현 주제에 불멸금신과 같은 신통을 강행하는 헛짓거리는 정통에 속한다더냐? 흥, 하긴 너희 천라보찰 놈들은 늘 가식적이었지!”
법명은 상대의 도발에 휘말리는 대신 차분히 응수했다.
“그게 뭐든 간에 자신의 몸에 맞춰 쓰면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가소로운 수작이니 뭐니 비웃는 것 자체가 무지의 소치인 것이야. 나는 범문을 몸속에 박아 넣는 고통을 견뎌낸 끝에 소불멸금신을 터득했다. 오직 네놈들 같은 이단의 무리를 상대할 목적으로 말이다! 온갖 더럽고 사악한 비법을 수련의 근간으로 삼는 범교 네놈들이 감히 나를 비웃다니!”
그러자 사람의 몸에 사자 머리가 달린 마신법상을 몸 뒤에 응집해낸 범교 무사가 소리높여 말했다.
“천라보찰 놈들치고 말이 통하는 놈은 하나도 없다니까! 저놈과 긴말 섞을 것 없이 죽여 버리세! 이번에 중주에 들어온 인원수만 따지면 천라보찰이 우리 범교보다 많았지.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이미 대거 소탕되었는데. 신가라 궁주께서 엄명을 내리시길, 이번 대라신궁 선발전에서 필히 천라보찰 놈들을 전멸시키라 하셨네. 한 놈도 중주에서 살아나갈 수 없게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그 거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신법상이 노호성을 내지르자, 주위 천지의 힘이 깡그리 그 소리 속에 소멸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범교 무사도 수인을 결하자, 가없는 멸세지화가 터져 나와 법명을 완전히 뒤덮었다.
곧이어 멸삼련성전의 거수식을 취하면서 법명을 겨누었다. 일단 상대에게서 무슨 허점이라도 발견되었다 하면 그 즉시 발사할 기세였다.
양측의 격전을 지켜보던 상천량이 탄식했다.
“중놈들의 손속이 어쩌면 저리도 독한지 모르겠군. 그래도 같은 불문에 몸담은 사이인데 서로 죽고 죽이는 데 있어 아무런 죄책감도 못 느끼는 모양이군. 그러고 보면 하계의 대광명사와 수보리선원은 나름 잘 지낸 편이었어. 하나는 남쪽에, 하나는 북쪽에 뚝 떨어져 있다 보니 서로 다툴 일도 없었고 말이야. 더러는 불법도 교류하지 않았던가. 하긴 이제는 자네가 모조리 다 쓸어버렸으니 더는 그럴 기회가 없겠지만.”
초휴가 담담히 말을 받았다.
“그건 아니죠. 천라보찰만 제대로 된 화상(수행을 많이 한 승려: 역주)이고, 범교 저치들은 정확히는 승려일 뿐입니다. 화상 축에도 못 들죠. 양측의 도통부터가 다르니 태생부터 숙적의 운명을 타고난 겁니다. 대광명사와 수보리선원은 갈래가 나뉘기는 했어도 전승 도통은 같았으니 당연히 눈에 불을 켜고 싸울 일이 없었던 것이고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래쪽에서는 승부가 갈리고 있었다. 법명의 실력은 확실히 비범했다. 천지통현의 실력으로 일부나마 신통에 버금갈 위력을 발했으니, 일대일로 싸웠으면 범교 측 세 사람은 모두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서 셋을 상대해야만 했다. 법명이 전력을 다한다고 해서 승부를 뒤바꿀 수 있는 싸움이 아닌 것이다.
범교 측은 이미 살심이 단단히 동한 상태였다. 그러니 법명이 도주할 기회를 마련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법명의 눈빛에서 결연한 살의가 엿보였다. 기혈의 힘으로 일신에 각인된 범문들을 폭발시킬 결심을 한 것이다.
이제 죽는 건 기정사실이겠으나, 혼자 황천길에 오를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동귀어진하여 이단자 중 하나는 데려가야 분이 조금은 풀릴 것 같았다.
바로 이때 초휴가 번쩍하며 몸을 날리더니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곧장 대일여래인을 결하자 그의 몸에서 불광이 터져 나왔다.
법명이 동귀어진까지도 생각하던 그때, 초휴가 범교 무사들을 향해 맹공을 퍼부어 그들을 격퇴했다.
상천량이 뜨악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얼떨떨하기만 했다. 초휴가 화상을 죽이는 거야 숱하게 보았지만, 화상을 구하는 건 처음이었다. 또 무슨 꼼수를 필 작정일까?
초휴의 뜬금없는 출수에 상천량만 당황한 게 아니었다. 덕분에 결정적인 위기를 모면한 법명조차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헤어날 길이 없는 절망에 빠져있는 순간, 대일여래인이 떨어지는 것만 보고 천라보찰 동료들이 구하러 와주었나 생각했다.
알고 보니 일면식도 없는 인물이 아닌가. 차림새를 보아하니 범교 사람 또한 절대 아니었다. 누군지도 모를 낯선 사람이 자기를 왜 구해주었으며 불문 공법은 또 어찌 된 영문인지 당최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범교 측 무사들은 초휴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그들이 당황한 기색을 드러낸 것도 잠시였고 놀람을 금치 못하며 소리쳤다.
“초휴! 어째서 네놈이!”
그들이 초휴를 알아본 건 그의 유명세가 서역까지 뒤흔들어놓을 정도로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여기 오기 전에 신가라가 초휴를 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한 때문이었다.
그들은 초휴와 마주치게 될 때의 행동지침까지 지시를 받았던 것이다. 이쪽 사람 수가 많으면 놈을 죽이고, 아군의 숫자가 적으면 즉시 도망치라고 했다. 생포할 수 있으면야 최상이겠으나 여의치 않으면 진령을 봉인해서 수급과 함께 가져오라고 했다.
신가라는 초휴의 실력을 잘 알았다. 해서 천지통현 무사들이 떼로 달려들면 승산이 있을 것이나, 그럴 상황이 아니면 주저 말고 도망치라고 지침을 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신가라의 뜻을 잘못 해석한 것이었다. 물론 신가라가 의사전달을 명확히 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세 명이면 충분하겠거니 싶었다. 이 정도면 ‘많은 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초휴는 달랑 혼자 아닌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법명이 힘을 합친들 이쪽의 수적 우세에는 변함이 없었다. 영역 속에서 거대한 뱀을 부렸던 무사가 자신감을 되찾으며 냉소를 날렸다.
“초휴, 우리 신가라 대인께서 너를 찾으시는 건 알고 있겠지? 이 점만은 분명히 해두자. 우리가 네놈을 건드린 게 아니라, 네놈이 먼저 시비를 걸어온 것이다. 마침 잘 되었구나. 법명과 네놈을 한꺼번에 처리해주마!”
이때 법명의 몸을 뒤덮었던 금색 범문은 태반이 깨져나간 상태였다.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거기 시주 양반, 범교와 무슨 원한이라도 있소? 저쪽은 수가 많고 빈승은 얼마 버티지 못할 거요. 싸울 힘도 거의 바닥나서 별 도움이 못 될 거외다. 그러니 시주라도 속히 몸을 피하는 게 좋겠소. 빈승이 얼마라도 저들의 발목을 잡아 시간을 끌어 보리다. 혹시 나중에라도 우리 천라보찰 형제들을 만나면 빈승이 어떻게 죽었는지 소식이나 전해주시구려. 우리 형제들이 나의 복수를 해줄 수 있게 말이외다!”
법명은 초휴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다만 절체절명의 순간 혜성처럼 나타나 불문 공법으로 자신을 구해주었고 범교와 원한도 있는 듯하니, 자기편 사람은 분명할 거라고 지레짐작을 했다.
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에게 호감을 느꼈고, 그마저 여기서 죽는 건 말리고 싶었다. 그의 말에 초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부탁은 제가 들어드리기 어렵겠군요. 여기에서의 일은 법명 대사께서 직접 천라보찰 대사님들께 설명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초휴가 자기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 법명과 대화하자, 거대 뱀을 부리던 무사가 목청을 높였다.
“초휴부터 처리하자! 놈은 신가라 대인께서 잡아 오라 명하신 자니까!”
이에 그가 영역 속에 빚어낸 거대 흑사가 날카롭게 울부짖더니 짙은 안개로 화하여 초휴를 뒤덮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 무사가 함께 출수하기도 전에 초휴는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일신에서 금빛 불광이 솟구치더니 대일여래 법상이 떠올랐다. 작열하는 태양진화가 불광을 물들이며 세상의 모든 요사한 힘을 불살라버렸다.
그가 성큼 한 발을 내딛자 순식간에 상대편 무사 앞에 이르렀다. 위기감을 느낀 상대의 전신에서 층층이 피어난 흑무가 사슬처럼 연결되며 응집되었다.
자세히 보니 그건 뱀들이 뒤엉켜서 이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강한 힘 앞에서 그것들의 역할은 한계가 뚜렷해서 초휴의 일권에 사정없이 찢겨 나갔다.
뱀들을 부리던 자도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며 피를 토했다. 우두둑거리는 소리는 섬뜩하기 짝이 없었다.
그제야 다른 두 무사도 공격에 가담했다. 초휴의 발밑에서 멸세지화가 격렬히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귀를 때리는 포효성이 그의 원신을 가격했다.
그러나 이런 공격은 초휴에게 영향을 미쳐봤자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초휴는 이미 멸세지화를 궁극의 경지까지 터득한 존재였다. 상대의 공격은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셈이었다.
설령 왕년의 대흑천신궁 궁주가 왔어도 울고 갈 마당에 다른 이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다른 자의 원신 공격도 위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혼정을 체화시켰고 육도윤회의 굴레 속에 극도로 강건하게 심경을 단련한 초휴한테 그것은 애들 장난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대로 눌러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껏 피워낸 멸세지화가 어이없게도 초휴를 비켜 가기 시작했다. 사자후가 실린 음공 역시 아무 효과도 내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졌다.
초휴가 재차 일권을 내리치자 뱀을 부리던 무사의 흑무는 완전히 파훼되며 온전히 몸이 드러났다.
초휴가 거칠게 왼손으로 상대의 목을 움켜쥐고 들어 올리니, 허공에 매달린 채 바들바들 떨던 그의 동공에서 폭음이 한바탕 일었다.
그의 머리통이 폭발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