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92)
1191화 연합하다
‘반보 무선’이라는 소리에 좌중의 천라보찰 무사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강자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이 험난한 중주 땅에서 반보 무선 두 명이 합류한다면 호박이 넝쿨째 들어오는 셈이 아닌가. 이에 법정이 성큼 나서며 그를 불러 세웠다.
“초 시주, 잠시만 멈추시구려.”
하지만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앞만 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무슨 일을 빈대떡 뒤집듯 이랬다저랬다 한단 말인가. 애당초 연합은 법명이 부탁하다시피 청했던 것이지, 자신이 먼저 꺼낸 말도 아니었다.
‘필요 없으니 꺼져줬으면 좋겠다는 표정을 지을 땐 언제고, 인제 와서 명령질인가!’
초휴가 멈춰 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법정이 왼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투명한 광택을 띤 금색 연꽃이 떠오르더니 초휴 앞을 막았다.
그건 유약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감히 범접하기 힘든 신묘한 존재였다. 초휴도 이에 질세라 수인을 결하자 대일여래인이 출수 되었다.
등 뒤의 대일여래 법상이 뜨거운 화염을 터뜨렸다. 같은 불문 일맥일지라도 연꽃의 불광과는 전혀 다른 속성의 불길이었다.
그런데도 연꽃과 대치하면서 전혀 밀리지 않는 위력을 보였다. 초휴가 뒤돌아보며 웃을 듯 말 듯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유명한 화생각 정련불광(淨蓮佛光)이로군요.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그러나 법정 대사, 나는 귀하의 사제를 구해준 사람입니다. 천라보찰에서는 은인 대접을 이리하십니까?”
법정이 아미타불을 읊조리더니 그에게 예를 올리며 말했다.
“아까의 무례함을 부디 양해 바라오. 범교가 우리의 공적인 게 확실하니, 우리 천라보찰은 초 시주 및 상 시주와 연합하길 원하외다. 앞으로 노획하게 될 영패와 혼정은 균등히 나누고, 대라신궁 선발전에서도 우리는 서로 적이 아닌 게지요.”
법정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초휴의 얼굴에도 미소가 감돌았다. 인제 보니 이 법정이라는 자는 나름대로 눈치도 있고 사리에도 밝은 듯했다.
초휴가 고개를 끄덕이며 못 이기는 척 말했다.
“법정 대사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소생도 거절하기 어렵군요. 자, 시간이 촉박하니 일단 범교에 관해 이야기를 좀 나눠봅시다. 범교가 내부적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비법을 운용 중이라는 사실을 대사께서도 이미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대응책도 마련해 두셨는지요?”
이에 법정이 장탄식을 내뱉었다.
“솔직히 말하리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우리 측 대비가 실로 부족했소.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고 말았소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모두 한꺼번에 나서 신가라를 찾으러 다니는 것 말곤 방법이 없겠습디다. 범교 놈들이 무리 지어 다닌다는 건, 그들이 서로의 위치를 알기 때문인 게요.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없으니, 따로 다니면 놈들의 표적이 되기에 십상일 터, 그러니 뭉쳐 다니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우르르 신가라를 찾으러 다니는 것도 너무 눈에 띌 테지요. 우리가 그를 노린다는 사실이 발각이 나는 날엔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될 테지. 그가 포위를 풀어주지 않는 한, 우리는 꼼짝없이 여기에 발이 묶이는 수밖에 없을 거요.”
법정이 자신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대라신궁에는 오직 여섯 명만 들어갈 수 있소이다. 그중 한 자리는 우리 천라보찰이 반드시 따내야만 하오. 여기 사형, 사제들은 다들 나를 돕기 위해 온 것이오. 각자 차지한 영패와 혼정을 막판에 내게 다 몰아주기로 합의가 되어 있소이다. 하지만 신가라에게 발각되어 포위라도 당해 발이 묶이거나 함께 몰려다니느라 활동을 활발히 못 하게 되면, 영패와 혼정을 턱없이 적게 모을 수밖에 없지 않겠소? 그러면 그 여섯 명 안에 들지 못할 테니, 섣불리 신가라를 찾아 나서는 것도 딱히 좋은 방법은 아니니 고민이외다.”
사실 초휴가 당도하기 전부터 그들은 진퇴양난의 국면에 빠져있었다. 흩어져 다니다가는 각개 격파에 당하기 쉽다. 그렇다고 안전하게 함께 모여 다녔다가 결국 신가라를 찾지 못하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영패와 혼정을 확보하는 데도 적잖이 차질이 빚어질 테고, 대라신궁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대라보찰은 패배하는 것이다.
고민 끝에 법정이 내심 내린 결론은, 정말로 상황이 이도 저도 여의치 않을 시엔 범교 쪽은 신경 쓰지 말고 요귀 사냥에나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천라보찰의 공법에는 마음의 안정과 정신을 집중하는 효과가 있어서 심경의 빈틈이 적은 편이었다. 그러니 요귀를 상대할 때 매우 유리했다.
다만 실리를 챙기자니 비굴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마치 범교가 두려워 지레 피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기에 법정은 차마 그 방안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있었다.
법정의 말을 다 들은 초휴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범교가 그런 비법까지 쓰는 건 천라보찰을 겨냥한 겁니다. 하지만 천라보찰이 나와 손잡을 줄은 상상도 못 할 테죠. 천라보찰은 인원수가 많으니 눈에 띄기 쉽지만, 나야 혈혈단신이라 운신이 자유롭습니다. 귀측에서 나를 믿고 미끼 노릇만 좀 해주신다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다 처리하겠습니다. 많이도 필요 없고, 딱 한 사람만 미끼로 내어주시면 됩니다. ······결국, 문제의 관건은, 과연 여러분이 나를 믿어줄 수 있느냐는 거겠죠.”
다들 일순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당당한 대라천 지존 천라보찰더러 미끼 노릇이나 해달라니, 이것만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은가.
게다가 초휴는 한낱 생면부지 외부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자에게 사실상 목숨을 맡기고 미끼 노릇이나 한다면, 그건 자기들의 운명을 오롯이 위탁하는 셈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지금으로서는 초휴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를 안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정도로 두터운 믿음을 가진단 말인가.
그러나 이때 법명이 힘차게 나섰다.
“사형, 초 시주는 제가 데려왔으니, 누군가 미끼 노릇을 해야 한다면 마땅히 제가 하는 게 옳을 듯합니다.”
법정이 그를 힐끗 보더니 잠시 생각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초 시주의 말대로 네가 미끼를 해라. 하지만 초 시주, 최대한 법명의 안전을 보장해주길 바라오.”
초휴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법정 대사, 염려 놓으시지요. 여태 나와 손잡아서 실망한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 * *
중주의 한가운데, 내지 모처의 거대한 동굴 안을 등불이 휘황찬란하게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등불이 아니었다.
눈을 찌를 듯 강렬한 태양 금망이 솟구쳐서 동굴 내부를 환히 비추었던 것이다. 동굴 한가운데는 신가라가 가부좌를 튼 채 앉아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주위의 짙은 천지 원기를 삼키고 내뱉길 반복하며 자신의 힘을 가다듬고 있었다.
갓 무선에 이른 그는 경지를 안정시키는 중요한 단계를 밟고 있었다. 경지가 불안정하여 전투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을 방지할 목적에서였다.
만약 중주 밖에서 무선을 돌파했다면 충분히 시간적 여유를 갖고 경지를 안정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이처럼 중차대한 일이면 수년의 시간을 쏟아도 지나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여기는 한바탕 큰 싸움을 앞둔 중주가 아닌가. 지금 그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잠시 후 흑포 차림의 무사 하나가 들어와 나직이 고했다.
“궁주······, 아니, 전주님! 제가 알아보니 사기(獅祁)를 비롯한 세 명이 모두 죽었습니다.”
신가라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구 짓이더냐? 사람이냐 아니면 요귀이냐?”
“사람입니다. 이건 절대 요귀의 짓일 리가 없습니다! 고의로 시신의 흔적을 훼멸한 탓에 확실한 단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만, 흉수의 출수가 매우 빨랐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꺼번에 죽은 것도 아닙니다. 한 사람이 공격당할 때 다른 둘이 지원한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반각도 안 되어 그 둘도 잇따라 죽었습니다. 제대로 도와주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전주, 혹시 천라보찰 놈들과 싸우다 그리된 게 아닐까요? 정보에 의하면 아직 살아 돌아다니는 천라보찰 놈들이 있다고 합니다.”
신가라가 몸 뒤의 강렬한 태양 광휘를 거두어들이더니 이마를 문질렀다.
“천라보찰 놈들은 아닐 거다. 만약 그들이 출수한 거라면 흔적도 안 남게 시신을 훼멸했을 리가 없다. 그 화상들이 얼마나 가식적인지는 잘 알지 않느냐? 자기네 전적(戰績)을 떠벌리기 위해서라도 보란 듯이 시체를 남겨두었을 테지. 어쨌건 공연히 법석 떨 것 없다. 중주에 들어온 사람들의 태반이 죽어 나가지 않느냐? 일일이 흉수를 찾아내는 건 당연히 어렵지. 중주 내에 강자가 천라보찰 출신만 있는 것 또한 아니고······. 여타 세력 놈들도 그런 실력을 갖고 있을 수 있어. 도문 삼천법(三千法) 중 이천구백 가지에 통달했다고 알려진 삼청전 도존의 직계 제자인 허귀산(許歸山)도 이번에 왔다면서? 그자는 사십 년 전 진작 무선에 오르고도 남을 실력자였다. 그러나 중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다면서, 무려 사십년 동안이나 경지 돌파를 미루다가 이번에 들어온 것이지.”
“어디 그뿐인가. 세상 유일무이한 도체, 즉 ‘도체무쌍(道體無雙)’이라 불리는 방일진(方逸眞)은 또 어떻고. 열 살 나이로 삼청전에 들어가 십년 동안 장경각 정리를 맡아 했던 도동이었지. 천인합일에도 이르지 못한 채 말이야. 하지만 십년 후 하루아침에 도를 깨우치더니 당일에 천인합일을 뚫고, 셋째 날 무도진단을 응집했지. 그리고 열흘째는 진화련신에 이르더니 백 일째 되던 날 천지통현을 돌파했다. 이 밖에도 북역의 현천경, 남역의 천하검종을 비롯해 낭인 출신 고수들과 고전 전인들에 이르기까지, 강자들이 수두룩하다. 우리의 적이 천라보찰 하나만이 아님을 잊으면 곤란하다.”
그러자 흑포 무사가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불쑥 물었다.
“그럼 이미 짜둔 계획은 어찌 되는 겁니까? 혹 계획을 바꿀 필요는 없을지요?”
신가라가 고개를 저었다.
“계획을 왜 바꾸느냐? 천라보찰이 우리의 유일한 적은 아니라도, 우리의 최대 난적인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계속 계획대로 밀고 나간다.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다니는 천라보찰 무사는 가차 없이 죽이는 것도 물론이다. 그리고 천라보찰이 대대적인 움직임을 보일 경우, 정면 대결은 잠시 피하고 놈들을 여기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야!”
분부를 마친 후 신가라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초휴에 관한 정보는 얼마나 모았느냐?”
“근자에 중주에서 그자가 꽤 유명합니다. 듣자니 중주 외곽 끝에서 내지로 진입하는 길목에 진을 쳐놓고서 지나가는 무사들을 상대로 노략질을 했다고 합니다. 적잖은 무사들이 놈에게 당했고요. 그 후에는 다른 고존 전인 여러 명과 충돌을 빚은 것 같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중 능천검존 전인 우문복이 피살당했고, 고월존자 일맥의 허장과 진룡신장 일맥의 진구룡이 중상을 입고 도주했다더군요. 그들과 함께 있던 신기문 사공담도 심하게 다쳤답니다. 말하자니 좀 어폐가 있긴 한데, 초휴 그자가 고존 전인인 건 확실한 듯하나, 정작 고존 전인 중에 인맥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인맥은커녕 원한만 잔뜩 맺었으니 말입니다.”
신가라는 흑포 무사의 마지막 두어 마디는 숫제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그저 다 듣고 난 후 낯빛이 살짝 가라앉았을 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든 초휴를 해치울 궁리부터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감정에 휩쓸려 대세를 그르치는 부류의 인물이 아니었다.
초휴가 마리가와 모종의 연관이 있긴 하나, 천라보찰 무사들과 언제 맞붙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것도 대라신궁 선발전을 목전에 앞두고 그런 사소한 일에 정력을 소모할 생각은 없었다. 해서 잠시 초휴는 젖혀두고 우선 천라보찰부터 처리할 작정이었다.
“가자. 이번 대라신궁 선발전에서는 필히 천라보찰 놈들을 모조리 탈락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