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93)
1193화 유인해 죽이다
법명은 산속을 홀로 열심히 헤매고 있었다. 한창 경황없이 자기 일행을 찾아다니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하는 중이었다.
표정이 좀 더 그럴듯했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연기력이 영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대세에 큰 지장은 없을 듯했다.
범교 측 눈에 띄어, 천라보찰 사람이 여기에 나타났음을 그들이 알아채게 하는 것만도 충분했다. 저들의 포위 공격을 유도해 내면 그의 임무는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초휴와 상천량은 십 리 간격을 유지하며 법명의 뒤를 쫓고 있었다.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가는 게 아니라, 범교 무사들은 하나같이 고수라는 걸 염두에 둔 처사였다.
아무리 상천량한테 성쇠 영역을 펼치게 해서 자신들의 힘과 기운을 최대한 떨어뜨려도 그들이 감지하지 못할 거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그런 측면에서 이번 미끼 작전에는 다소의 위험이 뒤따랐다. 법명에게 변고가 생기면, 단걸음에 이 먼 거리를 뛰어넘어 그를 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초휴가 순간이동이라도 하면 모를까.
물론 법명의 실력이라면 그리 허망하게 당하지는 않을 터였다. 적어도 몇 초는 버틸 수 있을 테니, 초휴가 구하러 올 시간 정도야 충분히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바로 이때 법명의 전방에서 강대한 파동이 덮쳐왔다. 어느샌가 범교 무사 세 명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중 태양 광망이 번뜩이는 금색 비단옷을 입은 화상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아직도 천라보찰 놈들 가운데 바깥을 얼쩡대는 팔푼이가 있을 줄은 몰랐구나. 어느 각 소속이냐? 화생각이냐?”
그자들을 본 순간, 법명은 분노가 솟구쳐 노호성을 내질렀다.
“범교 네 이놈들! 나를 죽이려고 길거리에서 진을 치고 기다렸더냐? 내 사형 사제들도 네놈들이 해친 게냐!?”
좀 전까지만 해도 어설프기 그지없던 법명의 연기력이, 분노로 폭주하자 제대로 물이 올랐다.
범교와 천라보찰 간의 원한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하계에서부터 맺어진 악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철천지원수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그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가 죽고 죽인 무사들 수만도 부지기수였다. 해서 양측은 얼굴을 맞대기만 해도 살을 떨며 끝장을 보자며 싸우곤 했다.
법명의 성격이 워낙 불같은 데다 자기 측 무사가 범교한테 열 명 가까이나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지라, 적어도 이때만큼은 그의 분노에 일말의 과장도 없었다.
하지만 저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무사는 법명이 노발대발하는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듯 되레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이 어찌 되었을 것 같으냐? 물론 많이 죽었지. 여덟이던가? 아니, 아홉이었나? 모르겠다. 여하튼 너까지 합하면 얼추 열 명쯤 되긴 하겠군.”
그 말을 신호탄으로 천지통현의 범교 무사 세 명이 동시에 공격해왔다. 초휴가 내내 뒤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법명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천라보찰 동문보다 그가 훨씬 더 미덥게 느껴졌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절망적이던 순간에 초휴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범교 무사 셋을 손바닥 뒤집듯 해치웠지 않는가. 지금은 그때만큼 상황이 절망적이지도 않건만 뭐가 두렵겠는가.
법명은 위축되기는커녕 서슴없이 최강의 힘을 터뜨려냈다. 전신에서 금색 범문이 번뜩이며 상대의 협공에 맞섰다.
그러자 범교 측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 천라보찰 중놈이 뭘 잘못 처먹은 걸까? 이 정도까지 열세에 처한 상황에서도 저런 강수로 대항하려 들다니! 그 우두머리는 잠시 출수를 거두며 냉소를 날렸다.
“뭘 그리 아등바등 발악하느냐? 그나마 곱게 보내줄 때 얌전히 극락왕생하면 피차 편하지 않으냐. 아 참, 네놈 소속을 아직 안 밝혔구나. 화생각이냐, 아니냐? 정련불광을 쓸 줄은 알고? 화생각 놈 하나 죽이는 건, 다른 천라보찰 중놈 두 명을 죽이는 것과 맞먹으니까!”
이때 웬 낯선 음성이 그들의 귓전에 울렸다.
“그러면 너는 뭐냐? 범교 내 어느 전, 어느 궁 소속이지? 네 공법을 보아하니 태양신궁 무사일 듯한데?”
우두머리가 자기도 모르게 대답했다.
“주제에 보는 눈은 있나 보군. 이 몸은 비슈누전 태양신궁의 신임 궁주이시다!”
그런데 막상 대답하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관절 자기가 지금 누구와 얘기하고 있단 말인가.
그 의문에 대한 응답인 것처럼 강대한 예기를 품은 광채가 그의 몸을 뒤덮었다. 순간 그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며 단전까지 한기를 느꼈다.
그가 부랴부랴 수인을 결하여 영역을 펼쳤다. 더불어 그의 일신에서 찬란한 대일(大日)의 광채가 터져 나와 반경 수 리를 여름 한낮처럼 환히 밝혔다.
하지만 오래 가지도 못하고 영역이 파괴되며 대일도 그 빛을 잃었다. 자칭 태양신궁 궁주도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칼날이 남긴 거대한 상흔에서는 피가 콸콸 솟구치고 있었다. 그가 여전히 얼떨떨해 어쩔 바를 모르자 다른 두 무사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조심하십시오!”
알고 보니 궁주의 발아래, 태양의 음영 속으로 흉흉한 마의 그림자가 섞여들고 있지 않은가. 급기야 그 마영(魔影)이 궁주의 전신에 드리워지며 대일 광망의 힘을 빨아들이자, 그의 몸 뒤에서 또 한 번 대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종전의 찬란히 빛나던 태양이 아니라, 자흑색 광망을 뿜어내는 마의 태양이었다.
그 마의 태양은 태양신궁 궁주의 힘에 근간을 둔 것이었음에도 되레 그를 잠식하고 있었다. 삽시간에 불지옥을 연상케 하는 마염에 휩싸인 궁주는 비명 한 번 못 질러보고 재가 되어 흩어졌다.
곧이어 마의 그림자도 흩어져 사라졌다. 원래 형태도 실체도 없으나 그렇기 때문에 천변만화하며, 무에서 유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온갖 힘을 다루고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화천마(造化天魔)의 힘이었다.
초휴가 법명의 곁에 내려서며 빈정댔다.
“약해도 너무 약하군. 어째 너희 범교는 갈수록 이 모양인가? 신임 태양신궁 궁주의 실력이 고작 이 정도라니. 신가라보다 더 형편없군그래.”
초휴가 눈 깜짝할 새에 거짓말처럼 하나를 해치우자, 남은 두 명은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잠시 후 초휴의 얼굴을 알아본 그들은 비명을 터뜨렸다.
“으앗! 초휴다!”
초휴와 천라보찰, 이 뜬금없는 조합에 그들은 말문이 막혔다. 전혀 상관도 없는 자들끼리 어째서 함께 붙어 다니며 사람을 식겁하게 만든단 말인가.
그 둘은 망설이고 자시고 할 새도 없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천량이 이미 그들을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그가 성쇠 영역을 펼쳐 두 명의 움직임을 제어하자, 초휴가 출수해서 간단하게 처리해버렸다.
두 명의 반보 무선이 천지통현 둘을 요리하는 것은 애들 장난에 가까웠다. 초휴는 활활 타오르는 태양진화로 시신 세 구를 모조리 소각해버린 후, 시신에서 수습해 두었던 영패와 혼정을 법명에게 건네주었다. 법명은 멈칫하더니 손사래를 쳤다.
“이럴 것까지는 없소이다. 저들은 엄연히 초 시주가 해치운 것이오. 빈승이 어찌 이것들을 받을 수 있겠소?”
초휴가 고개를 저었다.
“법명 대사, 마다하실 것 없습니다. 이미 이렇게 하기로 약조했지 않습니까? 사람은 내가 죽였으나, 대사께서 미끼 노릇을 하지 않았으면 일이 이렇게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미끼 노릇은 큰 위험이 따르는 것이니까요. 이건 선심을 쓰는 게 아니라, 응당 대사의 공로만큼 가져야 할 몫을 드리는 것입니다.”
초휴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법명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과연 남다른 인물이라며 그는 내심 찬탄을 금치 못했다.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법명이 먼저 요구했어도, 법명 본인이 싸움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주려 하지 않았을 게 아닌가.
“그럼 빈승도 사양하지 않으리다.”
영패와 혼정을 받은 그는 초휴에 대한 호감이 한층 깊어졌다. 이들이 흔적 하나 안 남기고 사라진 지 반 시진이 지나서야 현장을 발견한 범교 무사들은 난리가 났다.
먼젓번과 같이 반 시진도 못 되어 세 명으로 구성된 일개조가 전멸한 것이다. 격전을 치른 흔적이라도 남았으면 정보라도 파악할 텐데, 두 번 연속으로 단서가 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이에 그들은 신가라에게 보고하기 위해 급히 돌아갔다.
* * *
그 무렵 천라보찰 주둔지.
초휴와 법명이 너끈하게 영패와 혼정을 획득해서 돌아오자 초휴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사뭇 달라졌다. 직전까지만 해도 초휴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여러모로 회의적이었다.
물론 그것은 악의에서라기보다는, 워낙 천라보찰 승려들이 삼청전을 제외한 나머지는 우습게 보는 게 습관처럼 굳어진 탓이었다. 겉으로는 겸허한 척해도 속마음은 뼛속까지 오만함이 깊게 배어 있는 게 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초휴가 보란 듯이 성공해 보임으로써, 천라보찰을 곤경에서 구해줄 실력이 그에게 있음이 증명된 셈이었다. 따라서 이 화상들의 초휴에 대한 태도도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초휴는 범교의 활동조 하나를 궤멸한 당일엔 후속 출수를 삼갔다. 막 사건이 터졌으니 범교 측에서도 방비 태세를 강화하려고 활동 범위를 확 좁혔을 텐데, 이럴 때 연이어 출수하는 건 발각당할 위험이 컸다.
그래서 이튿날까지 기다린 그들은 다시 한 무리를 덮쳤다. 그런 식으로 내리 사흘에 걸쳐 범교 측 천지통현 강자가 총 세개조, 아홉 명이 피살당했다.
천라보찰 측 희생자와 수가 같아진 그제야 범교에서도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이라고 해서 그런 느낌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봤자 실제로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었으니 애써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신가라는 당장 인원들을 집결시켜, 돌아가며 조사에 착수케 하자 나흘째에는 초휴도 허탕을 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섯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법명이 제 발로 돌아와 초휴 앞에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초 시주, 이만 돌아갑시다. 더 기다려봤자 소용없을 거요. 잇따라 그리도 많이 죽어 나갔으니, 사형 말씀대로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뭔가 눈치챘을 거요. 신가라가 우둔한 인물은 아니니, 이쯤 되면 그간 풀어두었던 활동조를 죄다 불러들이지 않겠소?”
초휴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범교의 힘을 이 정도까지 약화해 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로써 두 세력의 실력이 얼추 비슷해진 셈이니, 나머지는 자기들끼리 치고받으며 해결하게 놔두면 될 터였다.
바로 이때 초휴는 어디선가 익숙한 파동 한 줄기를 느꼈다. 그가 한 한 방향을 특정하여 주시하자, 상천량도 그쪽을 바라보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건 홍련업화의 기운이 아닌가! 설마 매경령 고 계집애가 천지통현을 돌파한 건가? 허 참, 빠르기도 하지!”
“다른 두 종류의 기혈이 빚은 파동도 느껴지는군요. 하나는 극강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속성이 많이 복잡한 것이, 아무래도 여 형과 육 형이 아닌가 싶소.”
그들이 중주에 들어온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으니, 웬만하면 중주의 중심인 내지까지 진입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쯤 해서 여봉선 등과 마주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다만 교전으로 인한 파동이 꽤 큰 것으로 보아 난적을 만난 듯했다.
요귀인가, 아니면 다른 적일까?
* * *
이때 서쪽 계곡 안쪽에서는 여봉선, 육강하, 매경령이 천지통현 무사 여섯에게 포위 공격당하고 있었다. 상대의 수가 아군의 곱절이었으나, 그들 셋은 한 몸처럼 환상의 호흡을 보이며 선전하고 있었다.
육강하는 천지통현 중에서도 최고봉에 이른 상태였고 혈마신공의 기이함도 물이 익을 대로 익어 변화무쌍했다.
치명상을 입지만 않는다면 약간의 정양만으로도 금세 회복될 것이니,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상대 여러 명의 공세를 앞장서서 막아내고 있었다.
물론 그가 과감하게 싸울 수 있는 건, 여봉선과 매경령이 든든히 받쳐준 덕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