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196)
1196화 자발적인 굴복 (2)
그렇게 초휴로부터 십여 리나 거리를 벌린 그제야 진구룡이 대로하여 소리쳤다.
“방금 그게 무슨 짓인가? 각자 팔 하나를 그리 만들어 초휴에게 굴복했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겠는가? 이 망신살을 어쩔 셈이야? 나중에 사문으로 돌아가서 뭐라고 해명할 거냔 말이야!”
그러자 허장이 굳은 표정으로 결연히 받아쳤다.
“해명? 굴복하고 떠나지 않았으면 우리에겐 해명할 기회조차 사라졌을지 모른다는 걸 알아야지! 초인적으로 발달한 고월존자 일맥의 감지 능력은 자네도 알지 않은가. 나는 방금 초휴한테서 극강의 살의를 느꼈네.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우린 꼼짝없이 죽었을 거라고!”
허장의 감지력은 정확했다. 방금 초휴는 정말로 이 둘을 죽이려 했었다.
천하검종 무사들은 보내줘도 괜찮았다. 그 만검귀류인가 뭔가가 정확히 무언지도 모르는데, 동귀어진하겠다는 협박을 하는 그걸 쓰게 내버려 두는 건 영 찜찜했다.
그래서 한발 물러나 주었다. 그리고 두 낭인 무사는 실력이야 봐줄 만했지만, 살려둔다고 해서 초휴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 또한 한 번쯤이야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그러나 진구룡과 허장은 경우가 달랐다. 일전에 협공에 가담하더니 이번에는 또 여봉선 등을 공격했다.
원한이 두 번 겹쳤으니 자비를 베풀 여지가 사라졌다. 게다가 그들 뒤에는 하나같이 초휴에게 위협을 가하고도 남을 실력의 고존 둘이 버티고 있었다.
사제(師弟)가 힘을 합쳐 더 큰 위협을 가해오기 전에 잔챙이들이라도 미리 정리해두는 게 좋겠다 싶었던지라 초휴는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팔 한 짝만 내놓으면 보내주겠노라고 중인환시리에 공언을 해버린 게 문제였다. 약속을 뒤집고 그들을 죽이면 사람들이 얼마나 뒷말이 많겠는가.
초휴가 비록 평소에는 명성 같은 건 개떡같이 여기는 자일지라도, 지금은 천라보찰과 연합한 상태이니 당분간은 성가시더라도 평판에 신경을 써야 했다.
다행히도 좀 전에는 허장의 반응이 빨랐다. 그의 대처가 조금만 늦었으면 초휴는 상대가 뭐라 말할 기회도 안 주고 죽였을 것이다.
물론 끝까지 반성할 줄 모르는 그들의 태도를 질책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을 것이다.
이로써 싸움판이 완전히 정리되자 구경하던 사람들도 흩어지려 했다. 이제야 위기에서 벗어난 여봉선 무리가 초휴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려던 그때, 초휴가 돌연 능소종 무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능소종 오 장로가 심상찮은 조짐을 느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초휴가 분명 그들의 종주를 구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여봉선 무리의 위기를 수수방관만 했으니, 이건 누가 봐도 염치없고 경우 없는 행동이 아닌가.
오 장로가 무어라 변명이라도 해보려는데 초휴가 무방비 상태이던 헌원무쌍을 향해 다짜고짜 손을 뻗었다.
초휴가 이렇듯 갑자기 출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그는 방천화극을 집어들 틈도 없이 강기로 영역을 펼쳐서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초휴의 신역이 삽시간에 그의 영역을 압살해버렸다. 뒤이어 조화천마가 음영으로 화하여 헌원무쌍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더니 힘을 폭발해서 그의 사지를 마비시켰다.
초휴가 냅다 그의 목을 움켜잡더니 허공으로 들어 올리며 으르렁댔다.
“헌원무쌍! 죽고 싶으냐? 내가 네놈을 못 죽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허장과 진구룡이 여봉선 등을 공격하는 걸 봤을 때부터 초휴는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이치대로라면 그 둘은 여봉선 무리와 자신과의 관계를 모르는 게 정상이니까.
초휴는 그저 동역과 남역에서나 이름을 알렸으니, 대라천 무사들의 태반이 보기에 여봉선 등은 그저 무명지배에 불과했다.
여기에 있는 이들 중 유일하게 초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 그리고 그의 동료들에 대한 정보까지도 얼마간 아는 자는 단 한 사람이었다. 더 정확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으니, 바로 헌원무쌍을 중심으로 한 능소종 인원들이었다.
처음에야 능소종과 적대시했어도 나중에 방응룡을 구해준 걸 계기로 초휴는 그들과 관계가 꽤 개선된 상태였다. 심지어 그들은 초휴를 대단한 은인으로까지 여기고 있으니, 그를 음해하려 들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딱 하나. 초휴 무리를 해코지 할 자는 헌원무쌍이 유일하지 않은가. 방금 교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초휴는 줄곧 헌원무쌍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낯빛만 봐도 이 일의 배후가 그가 확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헌원무쌍이 버둥대며 벗어나려 기를 썼다. 하지만 전신 경맥이 죄다 조화천마의 힘에 잠식된 탓에 강기를 운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초휴! 네가 감히!”
헌원무쌍은 악다문 잇새로 간신히 이 두 마디를 쥐어 짜냈다.
“감히라고? 내가 감히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한번 볼 테냐!”
초휴의 눈에서 살기가 솟구쳤다. 수중에서도 강기가 터져 나오니, 제아무리 금강불괴의 육신을 가진 그일지라도 이번에는 꼼짝없이 초휴의 손에 숨이 끊어질 듯했다.
헌원무쌍의 얕은꾀는 눈 뜬 봉사가 아닌 바에야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때만큼은 능소종 동문들조차 속이 불편해서 참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에 중주로 들어온 능소종 무사 중 장로 한 사람을 제외하면 헌원무쌍의 서열이 가장 높았으니 딱히 내색하기 어려웠을 뿐이었다.
비록 진백원이 벌을 내려 길거리 순찰을 다니고 성벽 수비도 서기는 했으나, 능소종 후계자라는 그의 신분은 여전히 유효했다.
어쨌든 아무리 밉상이어도 자기네 후계자가 눈앞에서 목이 졸려 죽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오 장로가 다급히 나서서 애원하기 시작했다.
“초 대인, 이번엔 헌원무쌍이 실로 경솔했소. 그러나 고의는 아니었으니 부디 오해는 마셨으면 하오. 어쩌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흘린 것이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시구려. 다 같은 동역 종문끼리 이런 험지에서는 서로 도와야 하지 않겠소? 우리끼리 치고받아 이득 될 일이 무에 있겠소!”
초휴가 손아귀에 힘을 빼더니 오 장로를 향해 또박또박 받아쳤다.
“오해라 하셨소? 오 장로, 대체 본인을 바보 취급하는 거요, 아니면 이 초휴를 바보로 아는 겁니까? 이게 정말로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 여기는 겁니까? 그리고 말씀 한번 잘하셨소이다. 그러면 같은 동역 세력끼리 왜 돕지 않았소?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능소종에 잘못한 일이 없소이다. 일전에 당신들 종주를 구해주고도 내가 대가를 요구한 적이 있었소? 물론 능소종이 날 위해 뭘 해달라는 건 아니오. 그런 건 바라지도 않소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 사람들을 모해 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거 아니오. 세상천지에 이렇게나 배은망덕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이오?”
오 장로는 반박 한마디 못 하고 귓불까지 벌게졌다.
초휴의 일장 연설이 끝나자 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초 대인, 이번 일은 확실히 능소종이 잘못했소.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구려. 사조님의 명예를 걸고 맹세컨대, 차후에 우리 장로 어르신을 뵈면 이 모든 일을 다 말씀드리고, 중주 내에서 헌원무쌍이 지닌 모든 결정권을 박탈하겠소! 여기 대라신궁 쪽 일을 다 마치면 헌원무쌍의 생사 여하를 막론하고 능소종 차원에서 초 대인께 제대로 사죄도 하리다!”
오 장로의 맹세는 여간 엄청난 게 아니었다. 능소종의 장로로서 능소종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이니, 이는 종문의 명예를 걸고 도박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장에는 수많은 제삼자 외에 천라보찰 사람도 있었다. 오 장로가 한번 말을 내뱉은 이상, 나중에라도 번복하는 날엔 무림의 멸시를 면치 못할 터였다.
초휴가 시선을 돌려 헌원무쌍을 힐끗 쏘아보더니 그를 냅다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헌원무쌍이 끙끙대며 무어라 입을 열려 들자, 오 장로는 장검을 들어 그를 겨누며 냉랭히 말했다.
“헌원무쌍, 한 번만 더 멋대로 굴었다가는 이 검이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 손에 죽는 편이 외부인에게 죽어 종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터!!”
“당신이 감히!”
헌원무쌍이 죽일 듯이 오 장로를 노려보았다. 언제나 자기 앞에서 굽실대던 집사급 장로 따위가 감히 자기한테 검을 겨눌 줄을 어찌 알았으랴.
그러나 오 장로는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감히라니! 능소종에 후계자가 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이런 식으로 계속 종문에 폐를 끼칠 것 같으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깔끔히 처단하여 문호를 정리하는 게 나을 테지. 나 오 아무개는 지난날 동역 대파의 추살에 쫓기다가 능소종의 구원으로 목숨을 건졌다. 능소종은 내게 공법까지 전수해주어 오늘날 이 자리에 이르게 해 준 고마운 존재다. 네가 일개 후계자가 아니라 설령 종주일지라도 마찬가지다. 능소종에 해를 끼친다면 내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워서라도 너를 처단할 것이다!”
초휴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오 장로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능소종과 같은 대문파에는 대문파 사람 다운 저력과 기개가 있다는 것을 알 듯했다.
사실 어떤 종문을 막론하고 오 장로와 같은 인물이야말로 가장 필요하고, 보유할 가치가 있는 중견 역량이라 할 수 있다. 종문은 누구 한 사람의 입김으로 꾸려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 장로처럼 자신이 큰 미움을 받는 걸 무릅쓰면서 종문의 이익을 우선하는 자들이 많을수록 그 종문은 더욱 장구히 발전해나갈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능소종이 지난 만년 동안 동역 제일 대파의 위명을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자들의 희생 및 노력과 무관치 않았다.
오 장로가 헌원무쌍을 거의 끌다시피 데려가는 것을 보며 상천량이 전음으로 의아해했다.
“아니, 저놈을 왜 그냥 보내주지? 그건 자네가 늘 해오던 방식이 아니잖은가. 우리 실력 정도면 중주에 들어와 있는 능소종 놈들을 죄다 해치우고도 남을 텐데? 저들 중에는 제대로 된 무선도 없고 말이지. 제일 강해봤자 반보 무선인 장로 하나뿐이 아닌가.”
초휴가 눈을 흘기며 역시 전음으로 답했다.
“능소종은 내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걸 잊으면 어떡하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저들과 등을 돌려 기껏 확보해둔 빚을 날려 버린단 말이오. 게다가 법명 화상이 옆에서 다 지켜보고 있잖소. 천라보찰과 협력 중일 때만이라도 너무 심하게 굴지는 맙시다. 천라보찰 화상들의 행태도 하계의 중들과 같은지는 내 잘 모르겠소만, 그래도 가급적 조심하는 게 나을 테지. 물론 헌원무쌍이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로 해둡시다. 아시다시피 여기는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누구 하나 죽어 나가도 이상할 게 없는 곳이잖소. 아니 그렇소?”
그렇게 전음을 보내는 초휴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으나, 그와 다년간 함께 지내온 상천량이 그의 속내를 모를 리 만무했다.
그가 지금이야 서슬 퍼런 예기를 싹 감추고 담담히 말하고 있지만, 헌원무쌍이 장차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상천량의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초휴가 법명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씁쓸히 웃어 보였다.
“이게 다 나와 동역 무사들 간의 사사로운 은원에서 비롯된 일이니, 대사께서는 마음에 담아두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몸을 강호에 두고 있으니, 내가 남을 건드리지 않아도 누군가는 꼭 나를 건드리는 일이 생기는군요. 내 명예를 위해서도, 그리고 내 소중한 벗들을 위해서도, 이번엔 강경하게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양보해서 좋게 끝낼 상황이 아니니 어쩌겠습니까.”
법명이 충분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입장에 대해서라면 빈승도 잘 알지요. 범교 그 이단 놈들도 그렇지 않소이까. 정작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늘 저들이 먼저 사달을 일으키니 말입니다. 초 시주는 동역의 알아주는 준걸이니 아무래도 시기와 원한을 살 일도 많을 수밖에 없을 듯하군요.”
법명이 보기에도 초휴가 적이 좀 많은 것 같긴 했다.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이미 그와 협력하기로 했으니 법명의 눈에는 그가 다 옳은 것처럼 보였다.
이게 다 저들이 초휴의 출중한 능력을 시기해서 빚어진 일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밖에서 내내 벼르고 있다가 중주에서 어떻게든 그에게 해코지하려는 것 아니겠는가.
특히나 헌원무쌍의 생각은 자기가 보기에도 너무 뻔했다. 그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질투와 미움의 감정을 이 불가의 무사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감정이 서서히 심경에까지 영향을 미쳐 초휴를 증오하게 만든 것이다.
초휴는 법명과 몇 마디 더 주고받은 다음, 여봉선 무리를 불러다 그간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
육강하는 머리까지 흔들어가며 신이 나서 떠들었다.
“일전에 교주님이 그랬잖은가. 중주는 몹시 위험한 곳이고 요귀도 상대하기 만만치 않다고 말이야. 내 눈도, 감지력도 믿을 수 없으니 어쩌겠어. 그저 내가 흡입한 기혈의 힘만을 믿을 수밖에. 일단 요귀에게는 기혈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러니 기혈의 힘을 빨아들일 수 없으면 그건 곧 사람이 아닌 거지.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모았는지 좀 보라고!”
그가 자랑스럽게 보따리를 높이 들더니 거꾸로 쏟아붓자, 혼정들이 소리도 요란하게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대충 봐도 족히 수십 개는 되어 보였다.
다만 하나같이 그리 크지는 않아서, 가장 무거운 게 아기 주먹만 한 모양이 한 근 무게도 안 되었다.
물론 육강하에게 자랑스러운 무용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비록 요귀를 많이 죽이기는 했지만, 도중에 대파 강자들과도 적잖이 마주쳤던 것이다.
하나같이 어찌나 일신의 기세가 살벌했던지, 감히 그들을 상대로 출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