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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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 들어서자 그들 앞에 나타난 광경은 당황스럽게도 전혀 상상 밖이었다. 웅장하기 이를 데 없는 거대한 성 하나가 우뚝 서 있었는데, 검은 돌을 쌓아 올린 성벽 높이는 족히 수십 장에 이르고도 남았다.
가뜩이나 성도 시커멓건만, 사방 천지 또한 매우 어두웠다. 바깥의 안개가 몽롱하던 정경과는 달리, 거대한 먹구름이 성을 통째로 짓누르는 듯한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혹시나 해서 뒤돌아보니 어느샌가 안개는 싹 걷혀있고, 대신 어둠의 장막이 끝도 없이 깔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감지력은 쓸 수 있었지만, 어둠의 끝이 어딘지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인제 보니 허귀산의 말이 맞는 듯해. 여기는 요귀가 만들어낸 곳이 틀림없어.”
육강하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나 광대한 범위의 영역을 장악하는 요귀라면 대관절 얼마나 무지막지한 존재라는 거야?”
비록 육강하도 요귀를 적잖이 죽였지만, 그 요귀들이 차지한 영역이라고 해봐야 손바닥만 했었다.
심지어 저급 요귀들이 빚어낸 몽환경은 비루하기가 말도 못 하여 첫눈에도 가짜인 게 훤히 들여다보였다.
하지만 눈앞의 거성은 그 끝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강한 요귀란 말인가.
이윽고 초휴와 육강하가 성문 앞에 당도하자 누군가 성문을 지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건 악귀 두 마리였다. 푸르뎅뎅한 얼굴에 송곳니는 흉악하게 뻗어있고 머리엔 뿔 두 개가 나 있으며 하반신에는 거미처럼 다리가 여덟 개나 달린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사악해 보였다.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초휴와 육강하를 발견하자 그 두 문지기 악귀는 으름장을 놓았다.
“왕사성(枉死城, 원래는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망령이 머무는 지옥의 한 곳: 역주) 안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목숨값을 바쳐야 한다!”
그것들이 같잖지도 않은 소리를 하자 육강하의 팔이 자기도 모르게 올라갔다. 하지만 초휴가 막아섰다.
“성벽 위에 걸려있는 저것부터 좀 보라고.”
육강하가 고개를 쳐들고 보니 성벽 위에 웬 수급이 하나 걸려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눈에 익은 면상이었다.
기억을 돌이켜 보니 지난번 허장을 도와 협공에 나섰던 두 낭인 무사 중 하나가 분명했다. 그리 강하다 싶었던 적수는 아니었지만, 그들도 엄연히 천지통현 절정급이었다.
고급 요귀가 무서운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치울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천지통현 절정급에 이른 실력자라면 요귀를 쳐부수지는 못해도 최소한 도망칠 수는 있을 터였다.
일전에 겪었던 귀장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가. 놈은 무선과도 맞먹을 가공할 실력을 지녔지만, 허장과 진구룡은 비법을 써서 도망칠 수 있었다.
조무래기 요귀 두 마리가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려고?
처음에 육강하는 저깟 문이나 지키고 앉아있는 악귀 따위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었다. 그러나 성벽 위 수급을 보자 할 말을 잃었다.
“저 수급이 진짜일까?”
육강하가 조심스레 묻자 초휴가 담담히 받아쳤다.
“육 형이 느끼기에는 어떤데? 저 수급에서 아무런 기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말고. 설령 저게 가짜라 해도 그렇지. 육 형의 눈과 감지력, 심지어 본능적인 기혈의 감각마저 속일 수 있을 정도의 요귀라면 실력이 약할 리가 없잖아.”
육강하가 수긍하는 표정을 짓자 초휴가 악귀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통행료가 얼마지?”
둘중 한 악귀가 꼬질꼬질 때가 잔뜩 낀 작은 대야를 꺼내더니 독하게도 을러댔다.
“두 사람이 지나가려면 네 근, 넉 냥, 넉 돈 어치의 선혈을 내놓아야 한다!”
이에 초휴가 육강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뭐해? 피를 줘야지.”
육강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따졌다.
“왜 하필 내 피야?”
“혈신마공을 수련했다는 사람이 그 정도 피가 아까운 거야?”
“혈신마공은 교주도 할 줄 알잖아!”
“좀 있다가 저 왕사성인지, 빌어먹을 곳인지에 들어갔다가 뭔 일을 당할 줄 알고? 그때 가서 누가 누굴 의지하게 될까? 만일에 대비해 나는 계속 최상의 기량을 유지해야 한단 말이야. 피 한 방울도 허투루 허비해선 안 된다니까!”
육강하는 할 말이 없어졌다. 왜 자기가 저 인간을 따라 안개를 뚫겠다고 했을까?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물론 자기가 혈신마공을 수련한 건 사실이지만, 이게 어디 거저 생긴 피란 말인가.
내키진 않았으나 육강하는 순순히 피를 바쳤다. 초휴의 말에 일리가 있으니, 딱히 반박할 수도 없었다.
피를 다 받아낸 악귀들이 성문을 열어 그들을 들여보내 주었다. 왕사성 안은 적막강산이 따로 없었다.
성 안 모습은 곳곳마다 도로가 반듯하게 뻗은 데다 집들도 자로 잰 듯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었다.
지나치다 못해 괴이해 보일 정도로 단정한 모습이 아닌가. 집마다 한 개의 틀로 찍어낸 양 형태도 똑같고 심지어 대문의 장식마저도 똑같았다.
이때 길가 쪽에서 해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피리를 부는 모양인데 그 소리가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지옥에서 흘러나온 귀곡성 같다고나 할까.
초휴가 육강하를 잡아끌더니 어느 한 집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탁자와 의자 등, 세간살이만 있을 뿐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는 평범한 빈집이었다.
집 중앙의 신불을 모셔놓는 감실(龕室)이 유일하게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정작 그 안에 모셔둔 건 신상이 아니라, 주먹 크기만 한 혼정 한 알이었다.
육강하가 눈썹을 치켜뜨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헉!! 이게 웬 떡이야! 혹시 이 왕사성에 있는 모든 집에 이런 혼정이 하나씩 있는 건가? 성이 이렇게나 크니, 집마다 뒤져서 혼정을 털고 다니면 금세 떼부자가 되겠는걸!”
초휴가 한참 동안 뚫어질세라 혼정을 들여다보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이 혼정은 살아있어.”
육강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살아있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초휴가 눈가에 힘을 주며 말했다.
“말 그대로 살아있다고. 정신을 집중해서 혼정을 들여다봐. 뭔가 보일 테니까.”
육강하가 초휴의 말대로 해보았더니, 과연 혼정의 가장 깊숙한 곳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자의 복색을 보니 요즘 시대의 무사는 아닌 듯했다.
“저게 뭐지? 요귀인가?”
초휴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사실 나는 줄곧 의문을 품어왔어. 요귀는 죽을까, 안 죽을까? 중주에서는 힘의 규칙이 왜곡되기 때문에 요귀가 생기는 거라고 일전에 종추수가 말했었지. 적어도 인간 무사의 원신은 여기서 소멸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요귀는 어떨까? 우리가 죽인 요귀는 혼정으로 변했지. 그렇다고 해서 진짜 죽은 걸까? 원신만 적멸한 걸까, 아니면 혼백까지 흩어진 걸까? 여기 규칙 중 하나는 원신은 불멸한다는 거야. 그렇다면 혼백이 흩어지고 자시고 할 일이 없잖아?”
육강하는 순간 무언가에 생각이 미친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말인즉슨, 중주의 요귀들은 근본적으로 불사의 존재라는 소리야?”
“내가 추측한 바로는 불사불멸의 존재가 분명해. 설령 우리가 놈들을 ‘죽였다’ 할지라도 계속 힘을 응집해서 되살아나는 거지. 혼정은 요귀의 힘을 담아둔 그릇에 불과해. 놈들의 겉껍데기일 뿐이란 말이지. 우리가 놈들의 겉껍데기를 빼앗아도 저들이 힘을 재차 응집할 수 있을까? 저 감실 속에 모셔둔 혼정을 보면 알 수 있지. 지금도 주위 힘을 빨아들이고 있으니까. 이 왕사성 안의 힘은 심지어 중주 내부보다도 강력해. 이 강력한 힘이 서서히 혼정 속에 스며들어 결국 요귀로 재탄생하는 거지.”
육강하가 참다못해 물었다.
“대체 대라천 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건지 모르겠군. 대라신궁은 만년이 넘게 존재해왔어. 정말 그들이 지금까지 이 사실을 몰랐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요귀가 불사불멸의 존재라면 아무리 죽여도 끝이 날 리가 없잖아! 되레 갈수록 점점 더 많아질 게 아니냐고. 그렇다면 대라천 전역에 걸쳐 요귀를 양성이라도 하자는 거야 뭐야? 이렇게 방치해 놓기만 하면 어쩌냐고!”
초휴가 말했다.
“대라천 정상급 강자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지 않아도, 이런 일에 대처하는 데 함부로 굴 리는 없지. 대라천이 요귀 소굴로 변해가는 꼴을 두고만 볼 리는 없단 말이야. 그런데도 일이 이 지경이 되었을 때는 분명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거야. 즉, 여기를 손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손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일 거란 말이지.”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밖의 해괴한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왕사성에 들어와서는 감지력이 차단된 상태인지라, 둘은 문틈을 통해 밖의 상황을 엿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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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대오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서서히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대오 중에 인간은 없고 모두 요귀였다.
그런데 요귀의 외양이 다소 특이한 게, 초휴가 일전에 맞닥뜨린 적 있는 귀장의 모습과 꽤 흡사했다.
다들 똑같은 모양의 전갑을 입었으나, 정작 몸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검은 연무만이 전갑 안을 휘돌고 있을 뿐이었다.
요귀 병사들 주위에는 괴이한 존재도 몇몇 보였다. 생김새는 인간의 형체를 했으나 깡마른 몸은 비정상적이리만치 후리후리해서 족히 삼 장 크기는 될 듯했다. 상복 차림에 삿갓을 썼으며, 손에 든 뼈 피리로 아까 들려왔던 끔찍한 곡조를 불어 대고 있었다.
대오를 이끄는 승려 모양의 요귀는 더 해괴망측했다. 몸 전체를 기이한 범문이 가득 새겨진 금갑(金甲, 금속 갑옷)으로 감쌌는데, 어울리지 않게도 겉면에는 불광 한줄기가 은은히 감돌고 있지 않은가.
이 때문에 초휴는 부쩍 의심이 들었다.
저 요귀는 살아생전에 천라보찰이나 범교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찌 된 게 유독 불문 출신 무사들이 죽은 뒤에 극강의 실력을 지닌 요귀로 화하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혹시 불문 무사들이 심경을 강하게 단련하는 데 수련을 집중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요귀로 화하고 나서도 힘이 증강되는 걸까?
초휴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져 육강하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는 눈빛이 흐릿해져서 온몸을 떨고 있지 않은가. 마치 무슨 몽환경 속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초휴가 정색하며 수중의 육도윤회탁을 활성화하자 원신 금망 한줄기가 터져 나왔다. 그 빛이 육강하의 뇌리에 경종을 울리듯 파고들어 그를 깨어나게 했다.
육강하는 입에서 피를 뿜어내더니 눈빛이 청명함을 되찾았다.
“무슨 일이야? 요귀의 몽환경에라도 빠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