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06)
초휴가 그를 흘겨보며 받아쳤다.
“이 지경까지 와서 무슨 동서남북 타령이야? 왕사성을 한바탕 뒤엎어버리지 않으면 여기서 벗어나기 어려울 거야. 일단 치고 나가고 보는 거지.”
“그야 그렇긴 하지.”
두 사람은 잽싸게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이때 뒷골목에서는 초휴가 상상한 이상으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허장, 진구룡, 헌원무쌍 및 낭인 무사 두 명이 특이한 모습의 귀장 네 놈과 격전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격전보다 난투극에 가까웠다. 사실 이 특이한 요귀 무리의 우두머리 귀장이 강하긴 해도 그들 다섯이 손잡으면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그러나 이들이 지금 경쟁 관계에 있다는 게 문제였다. 경쟁을 넘어서 서로 죽이기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영패 때문이었다.
헌원무쌍이 비록 중주에 들어와 있는 반보 무선들에 비해 딱히 나은 점은 없어도 그의 배후에는 능소종이 버티고 있다.
그가 영패와 혼정만 충분히 확보하면, 능소종의 후계자라는 명함만으로도 대라신궁 선발전에 끼어들 자격이 있었다. 아니, 체면 때문에라도 꼭 그렇게 해야 했다.
따라서 그는 이곳에 들어온 후 낭인 무사 둘을 발견하자 그들부터 해치우려 들었다. 그는 초휴와 처지가 다르니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초휴야 범교 무리를 궤멸한 걸 계기로 영패가 모자랄 걱정같은 건 사라졌으니까. 설마 그 많은 영패를 지니고도 여섯 명 안에 못 들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헌원무쌍이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그렇지. 감히 왕사성에 들어올 용기를 낸 낭인 무사들을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변변한 뒷배 하나 없는 자들이 믿을 거라고는 자기 몸뚱이 하나뿐일 터. 딱히 잃을 것도 없는 자들이 세상천지에 두려울 게 무에 있겠는가.
까짓것 자기 인생 송두리째 걸 각오로 운이건 기연이건 간에 일단 한번 부딪히고 보자는 심정인 것이다.
그러니 헌원무쌍 앞에서도 위축될 리 만무했다. 양측의 충돌은 대번에 격전으로 치달았고, 결국 허장과 진구룡까지 가세하면서 싸움은 삼파전으로 확대되었다.
원래 허장과 진구룡은 언감생심 대라신궁 선발전 순위에 드는 건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먼저 싸움이 붙은 낭인 무사 둘과 헌원무쌍이 그들 눈에 들어온 게 아닌가.
자기들한테는 영패와 혼정이 필요치 않다고 해도 구양성한테는 유용하지 않겠는가. 원래부터도 구양성이 속한 원양천존 일맥은 그 둘과 사이가 가까웠다.
더욱이 일전에 구양성은 그 둘을 대신해 초휴를 상대로 설욕까지 해주려 들었으니, 도의상 영패를 줘서라도 은혜를 갚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격전이 일으키는 파장이 워낙 큰 바람에 요귀 무리를 연이어 불러들인 게 문제였다. 한 무리를 쳐내면 또 다른 무리가 몰려드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리하여 싸움은 처음과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고, 이제 싸우기 싫어도 싸워야만 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들은 요귀를 상대하면서 자기들끼리도 견제를 늦추지 않고 싸워야 했다. 진구룡이 살벌한 얼굴로 말했다.
“헌원무쌍, 그리고 거기 두 양반! 굳이 대라신궁 선발전에 목숨을 걸 필요가 있겠나? 순순히 당신들이 가진 영패와 혼정을 내놓으면 우리도 그 즉시 물러나지. 계속 이런 식으로 싸웠다가는 요귀들이 더 많이 몰려올 텐데, 그렇게 되면 우리 중 누구도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고!”
그 말에 낭인 무사들의 마음이 살짝 움직였다. 그들은 기연을 얻고자 했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대라신궁은 낭인 출신에게 있어 가당치도 않은 꿈의 전당임을 그들이 왜 모르겠는가.
물론 대라신궁에 들어간 낭인 무사가 지금까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헌원무쌍의 반응은 좀 달랐다.
“더 싸웠다가는 몰려드는 요귀들이 점점 더 많아질 줄을 그리도 잘 알면서, 왜 그쪽 혼정은 내놓을 생각은 안 하는 거지? 초휴 앞에서는 팔 한 짝 날리고 상갓집 개처럼 잘도 꽁무니 빼더니만, 이제 내 앞에서는 고존 전인의 위세라도 떨어보겠다는 거냐? 그럴 깜냥이나 되고?”
헌원무쌍의 세 치 혀가 진구룡 및 허장의 아픈 곳을 통렬하게 찔렀다. 그들의 얼굴은 노기로 벌게졌다.
초휴 앞에서 패배를 자인하고 스스로 팔 한 짝을 폐해야 했던 그 아픔, 평생 최대 흑역사로 남을 그 치욕을 정통으로 건드리고 만 것이다.
사실 능소종 쯤 되는 정상급 대파 앞에서는 제아무리 고존 전인이라 할지라도, 뒷배가 있어 그나마 사정이 약간 나은 낭인 무사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강호에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내내 대파로부터 상전 대접만 받아왔다. 작은 문파와 낭인 무사들도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꼬리를 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언제 이런 수모를 겪어나 봤겠는가?
진구룡이 격노하여 소리쳤다.
“초휴가 뭐 대수라고 나불대느냐? 이번에 놈은 중주에서만도 적을 수없이 많이 만들었다. 범교, 천하검종, 능천검존 등등, 누구 하나 놈을 씹어 먹으려 하지 않는 자가 없다. 어차피 그 놈은 대라신궁에서 나가면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다!”
순간 어디선가 저승사자의 외침과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내 이야기를 하는 건가? 그러면, 죽기 전에 네놈들부터 손봐주랴?”
초휴가 자기 앞에 나타난 걸 본 순간, 진구룡은 정말이지 자기 주둥이를 찢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놈의 망할 주둥이는 다른 때는 잘도 버벅대더니, 하필 이런 때 기름칠이라도 한 양 청산유수란 말인가.
진구룡은 말만 세게 했을 뿐, 다시 초휴를 보자 허장과 더불어 눈빛에 적의란 온데간데없고 공포만 가득했다.
중주 내에서만도 그들은 초휴와 몇 차례를 맞붙었고, 그때마다 흠씬 두들겨 맞았다. 특히 가장 최근에는 신가라가 이 초 만에 초휴에게 죽었다.
당시의 기억이 어찌나 강렬한지, 초휴와 다시 맞붙을 마음이 추호도 없는 건 물론이려니와, 아직도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헌원무쌍은 옆에서 그 둘의 표정이 썩어가는 걸 똑똑히 보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게, 기분이 한 마디로 엿 같았다.
저 두 놈이 자기한테는 영패와 혼정을 내놓으라고 큰소리를 뻥뻥 치더니, 초휴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꼬리를 내리지 않는가.
저들이 자기와 초휴를 이토록 다르게 취급하자 그는 격노가 치밀어 올랐다.
한편, 허장과 진구룡을 쳐다보는 초휴의 눈빛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어째서 한마디도 못 하지? 좀 전까지만 해도 내가 죽은 목숨이라며 잘도 나불거리더니 갑자기 입이 얼어붙기라도 한 건가?”
초휴의 눈에서 한겨울 한기를 느낀 순간, 허장이 몸에서 맹렬히 월광을 뿜었다. 칠흑처럼 캄캄하던 왕사성 하늘에 보름달이 떠오른 듯했다.
급기야 월광 한가운데에 금빛 원신 광망이 섞이더니 허장의 원신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달이 쏘아낸 빛살이 진구룡의 체내로 주입되자, 귀가 먹먹할 정도로 우렁찬 용의 포효가 울림과 동시에 기혈이 폭발했다. 어느샌가 혈룡으로 화한 그는 허장을 품더니 빛의 속도로 줄행랑을 놓았다.
“도망쳐? 식상하게 같은 수법을 되풀이해서야 쓰나. 운이 좋아 처음과 두 번째는 잘 달아났지. 하지만 세 번째도 그런 행운이 따를 줄 알면 곤란한데?”
허장은 초휴의 눈빛에서 적나라한 살의를 느꼈다. 그리고 그건 제대로 본 것이었다.
비록 어용 고존 전인 노릇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초휴는 고존의 전인이라는 자들에게 전혀 호감을 못 느꼈다.
그간 겪어본 고존 전인들을 보니 하나같이 공통의 특징이 있었다. 마치 희대의 악녀한테 숭고한 열녀문을 세워준 격이다 싶었다.
무선 팔중천이나 구중천에 이른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고존들은 왜 대라천 무림에서 세력을 구축하지 않고, 굳이 깊은 산속에 은거하길 자청했던 걸까?
대외적인 명분은 속세의 난잡한 이권 다툼에 염증을 느낀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강호와 연을 끊고 은거해서 오롯이 무도에만 정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들에게 세력을 꾸릴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인 탓이 컸다.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대라천 대파들이 수천년, 심지어 만년 가까이 세도를 누려온 비결은 대부분 하계로부터 이어온 전승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더러는 실력을 계승했고 더러는 저력을 이어받는 등, 선대의 힘을 빌리지 않은 경우는 실로 드물었다.
딱히 물려받은 게 없었던 한강성과 같은 후발주자는 희대의 영웅, 맹성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위상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삼, 사중천 정도 실력의 고존 무선 한 명이 정상급 대파 하나를 세웠다고 치자. 그 뒤에도 계속 세력을 이어나갈 저력이 있을까? 또 정력과 능력은 따라줄 것인가?
따라서 이런 고존들은 기껏해야 한두 대 정도 버티다가 서서히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결국 맥이 끊기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깊은 산중에 은거하며 일신의 모든 저력과 정력을 한 사람에게만 몰아줌으로써, 그를 통해 전승을 이어나가는 편이 훨씬 이득일 터였다.
실제로는 전승을 이어갈 정상급 대파 하나 차릴 실력이 못 되는 주제에, 남들 앞에서 온갖 고고한 척은 다 해가며 대접받을 궁리뿐이지 않은가. 그러니 악녀에게 열녀문을 세워준 격이 아니면 뭐겠는가.
한마디로 초휴는 그자들이 재수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살의를 느낄 정도로 심하게 혐오했던 건 아니었다.
고존 전인이고 나발이고 간에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도망가면 도망가나 보다 했고, 우문복이 죽었으니 그걸로 끝났다 싶었다.
하지만 얌전히 죽은 척하던 것들이 어느샌가 되살아나 여봉선 등을 공격했으니, 그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물론 여봉선 등의 실력이라면 초휴가 굳이 돕지 않았어도 저들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겠지만, 십중팔구 중상 입은 몸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을 게 뻔했다.
정작 자기 앞에서는 허리도 제대로 못 펴던 것들이 그 수하는 만만히 보고 건드렸으니, 초휴는 저들이 여간 괘씸한 게 아니었다.
혈하노야와 같은 반보 무선도 괘씸죄를 물어 죽였건만, 저 두 놈한테 번번이 관용을 베푸는 게 가당키나 하겠는가. 하지만 초휴가 출수하기도 전에 그들은 한 줄기 빛살로 화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사라져갔다.
그때 쏜살같이 멀어져가던 그 빛살이 어느 순간 허공에 멈춰서는 게 아닌가.
육강하가 미친 듯이 소리 내어 웃었다.
“푸하하! 내가 기혈 없는 요귀들을 상대할 때나 힘을 못 썼지, 네놈들한테도 그럴 거 같으냐?”
육강하가 잠시나마 그 둘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초휴가 파진자를 내리쳤다. 일견 힘이 실리지 않은 것 같았으나 그 일도에는 그의 모든 힘이 실려 있었다. 그 힘들이 한순간에 폭발을 일으키자 도망의 예리한 칼날이 닿는 족족 모든 것이 그 힘에 잠식되어 적멸했다.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혹시 이런 모양은 아닐까.
그 찰나의 순간에 규칙의 힘이 어그러지더니 천지간 음양도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멸세의 힘이 실린 일도가 규칙의 힘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신통에 버금갈 위력을 토했으니, 바로 칠대한 탄천이었다.
사실 이 도법을 얻었던 초휴는 정식으로 이를 수련할 겨를이 없었다. 중주 내에서 워낙 시간이 바삐 돌아간 탓에 진득하게 폐관을 할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도법만은 그의 뇌리에 또렷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그는 이미 파해와 멸지를 익혀 얼마간의 기초도 있었다. 틈틈이 한 번씩 머릿속에 도법을 그려본 것만으로 탄천의 흉내를 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탄천은 칠대한 중 가장 강력한 도법으로, ‘하늘을 삼킨다’란 뜻에 부끄럽지 않을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모든 힘을 다해 그 일도를 구사한 것이다.
주위의 모든 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규칙의 힘도 적멸해갔다. 진구룡과 허장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때는 이미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형국이 되어있었다.